〈 11화 〉 011. 할아버님이 아셨다고?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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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형!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말 그대로야. 검을 버려.”
“고, 공동의 제자에게 검을 버리라니요···?”
“공동의 제자가 검을 버리면 안 된다?”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오는 묵환에게 정문이 되물었다.
“어째서? 어째서 안 되는 거지?”
“그, 그야···”
“스승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건가?”
“아닙···니다.”
“태사조님이?”
“······.”
“아니면···, 광성자께서 그런 말씀이라도 남기셨고?”
“······.”
말없이 고개만 떨구는 묵환이다.
정문의 말처럼 공동의 제자가 꼭 검을 휘둘러야 한다는 규칙은 없다.
공동이 검문으로 유명한 곳도 아니고.
오히려 강호에 퍼진 명성만 본다면 복마검법 보다는 칠상권이 아닌가.
“검이랑 대화를 나누라거나 검의 목소리를 들으란 말은 안 할게. 하지만 적어도 네 몸이 내는 소리는 들어봐야지.”
정문은 차게 식은 눈으로 묵환을 바라보지 않은 채 말을 뱉었다.
마치 꾸중하는 모양새다.
“그게 무슨···”
“네 몸이 공동의 검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
“사형···!”
“광진검을 펼칠 땐 편하다고 했지? 당연하지. 그건 그냥 베고 찌르는 게 전부였잖아? 베기랑 찌르기로 채워지는 복마검결이라··· 그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허나···”
“그냥 하고 싶은 걸 해. 검도 단순하게 휘두르고 싶고 차라리 권장술이 편하지?”
“······.”
“네가 검을 버린다 해서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 결국에 네가 가는 길이니까. 남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말라고.”
“···그래도 되는 건가요? 정말?”
“난 모르지.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무언가 확답을 받고 싶어 하는 사제에게 정문이 무책임한 말을 꺼낸다.
무책임하긴 하나 틀린 말은 아니다.
어떤 선택을 하건 감수하는 건 본인의 몫.
정문은 그저 묵환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묵환의 표정이 오묘하다.
가려운 곳을 긁어준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또다른 벽을 만난 것도 같다.
“잘 생각해봐.”
깊은 고민을 가진 막내 사제를 뒤로 정문이 발을 옮겼다.
‘남들과 다른 골격, 유달리 짙은 갈색의 피부. 굵은 모근, 진한 눈썹까지. 이유를 알 것도 같군.’
정문의 생각처럼 묵환은 자신의 출신을 알지 못하는 이민족 고아였다.
공동에 입산하기까지 여러 곳을 전전하며 어떤 대우를 받았을지 눈앞에 훤했다.
‘그저 출생일 뿐인데.’
그저 출생일 뿐인데 말이다.
정문 역시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났던 몸.
황궁에서 그가 받았던 멸시과 견제는 대부분 출신에 관한 것이 많았다.
본디 가진 능력이 없는 자들은 그런 법이다. 그저 제손으로 이루진 않았더래도 그저 저치의 잘못이 아니더래도, 내가 하나 잘난 게 있다면 끝까지 그것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 그들의 본성이니까.
그렇기에 정문은 묵환이 그토록 검에 집착하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그저 사문 내의 대다수와 같은, 아니 같아 보이고 싶은 열망이 묵환에게 있는 것이다.
외관만 보아도 남들과 다름이 분명한데 대부분이 검수인 공동의 제자 사이에서 홀로 권사의 길을 선택하는 것은 그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공동의 검은 철저히 상대의 약점을 노려 단박에 제압을 가하는 패도적인 검.
그러나 패도적이라는 말이 절대 단순하다거나 무거운 검이라는 뜻은 아니다.
검의를 풀어 본다면 그 속에 도가적인 심오한 깨달음이 담겨 있는 것 또한 공동의 검이다.
중검을 넘어 강검이 어울리는 묵환에게는 차라리 공동의 검은 독이 될 것이 분명했다.
“검을 버려라······ 검을···”
정문이 사라진 수련장에 묵환이 홀로 침전한다.
자신도 알던 사실이나 사형의 입을 통해 들으니 확실히 몸에 와닿았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간 살아온 인생과 경험이 있기에 묵환 역시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 후우.
짧은 한숨 소리가 들리더니 묵환이 몸을 움직인다.
그의 허리춤에는 아직도 검이 걸려 있다.
***
“흠···, 한 놈 더 있으면 좋을 텐데.”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정문이 붓을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주변에는 무언가 휘갈겨 쓴 복잡한 글들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장찬, 주보, 부통, 태영······”
이전 황궁에서 삶을 살던 시절에도 정문의 자신의 파벌로 아래에 넷을 두었다.
정확히 말하면 넷을 넘지만, 주축이 되는 이들은 넷이었다.
“아니지. 넷이라고 하면 그놈이 섭섭해 할 테니.”
문득 그리운 얼굴이 하나 정문의 머리를 스친다. 마지막까지 수보 조숭 역시 읽어내지 못했던 정문의 마지막 한 수.
모든 것이 들켰으나 그 한 수만큼은 천하의 수보대인 역시 읽어내지 못했다.
“섭섭해하지 마. 넌 곧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기대하자고.”
정문이 무언가 종이에 새로이 휘갈기기 시작한다.
그는 지금 자신이 강호에 나선 후의 행보에 대해 청사진을 그리고 있었다.
“크크큭, 이대로만 된다면······! 광성자고 뭐고 간에 나한테 감사해야 할 거요. 내가 공동을 아주 대단한 문파로 만들어 줄 테니까. 크킄크크크크!”
음흉한 웃음소리가 서대를 가득 채웠다.
***
웅수갑우관새(雄秀甲于关塞)라 불리며 웅장하고 수려한 풍경이 일품인 평량의 공동산은 수많은 동굴과 절벽들로 그 풍취를 더하곤 했다.
아래로는 굽이치는 연지하(胭脂河)가 허릿춤을 뽐내고 옆으로는 육반산(六盘山)이 높이를 자랑해 공동산과 그 크기를 가늠하며 섰다.
그런 풍경을 모두 품은 공동산의 절벽 혼원애(混元崖)에 높이 세워진 누각이 있으니, 공동파의 중대사를 정하는 회의가 열리는 혼원루(混元樓)가 그곳이다.
장문인과 장로들이 모여 사문의 중대사를 논의하고 결정하는 장소인 만큼, 사문의 모두를 내려다보라는 의미에서 공동파의 모든 전각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혼원루를 세운 것이다.
지금 그 혼원루에 장장 여섯 달 만에 공동파 장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이제 곧 태청궁(太淸宮)을 다시 열어야 하지 않겠소이까?”
공동의 장문인이자 일대제자들의 스승인 자정이 운을 뗐다.
“그렇습니다. 대제자도 돌아왔고 그를 찾아 나섰던 일대제자들도 모두 돌아왔으니 태청궁을 원래대로 운영하시지요.”
태청궁이란, 공동산의 산문을 넘으면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속세와 공동산을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동의 기관이다.
공동에 공식적으로 요청할 일이 있거나, 서신, 또는 도전까지.
모두 태청궁을 거쳐야만 했다.
또한, 속가를 단속하고 지원하는 것 역시 태청궁의 일이었다.
지난 1년, 태청궁에 속한 대부분의 일대제자들이 정문을 찾으러 사문을 나섰기에 태청궁은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지 못했다.
속가에 대한 감찰이나 지원 역시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고.
“속가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춘삼월엔 아이들을 한번 보내야 하지 싶습니다.”
“사풍이와 아이들이 머물던 속가는 제외해야겠지요.”
“음, 사문 내에 머무는 제자들의 수를 더 늘려야 합니다.”
“빠른 시일 내에 삼대제자를···”
“그건 아직 이르지 않···”
“············. ·········.”
여섯 달 만에 모여서일까, 그간 처리하지 못해 산적해 있던 여러 문파 내 사무들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장문인 자정은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하면서도 하나하나 세심히 듣고 판단을 내렸다.
“······해서 ······하고”
“·········하면 ······하게.”
한두 시진이 지나자 어느 정도 산적했던 사무들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이쯤 하면 이제 마무리해도 될 것 같은데? 어떤가?”
서둘러 사무를 끝내고 싶은 자정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율법을 담당하는 구천각(九天閣)의 각주 자산이 말을 덧붙였다.
“곧···, 태상장로들께서 돌아오신다고 합니다.”
!!
“폐관이 끝난 것인가?”
“서둘러 나오시는 것이겠지요. 정문이가 온 것을 아셨을 테니. 물론 사풍이 일도···”
“허허, 폐관에 들어가신 분들이 바깥세상에 관심이 그리 많으셔서야···”
자산의 말에 약왕당주(藥王堂主) 자준이 혀를 찼다.
“씁. 말씀들 조심하시게. 사문의 어른들이시네.”
장문인답게 선을 지키는 자정.
“사숙들께서 폐관을 마치고 나오신다면 반겨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 다들 행동과 말을 조심하시게나.”
“예, 장문인.”
자정의 일갈에 장로들이 서둘러 고개를 숙인다.
현세대의 공동이 마주한 가장 큰 내부적인 문제는 태상장로들의 입김이 너무나 강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공동오로(空峒五老)라 불리며 한때 감숙 내에서 그 무명을 널리 떨치던 무인들.
공동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자들이라면 그들의 활약을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아쉽게도 그들이 성인군자는 아니었는데, 자신들의 이런 위명을 활용해 사사건건 사문 내의 일에 간섭하려 들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전 장문인, 즉 자정의 스승이 장문인을 맡았던 시절에는 다들 입이 무거운 사숙들이었으나, 사형이 죽고 사질이 장문인에 오르자 저마다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부디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으련만···”
자정이 나지막이 바램을 속삭였다.
다들 그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알고는 있었지만, 섣불리 위로할 순 없었다.
그저 함께 탄식하며 걱정하는 것이 전부였다.
“태을무극.”
공동파 중진들의 근심 가득한 도호가 혼원애에 울려 퍼졌다.
***
천장이 눈에 보인다.
꾸며진 모습은 소박하나 사용된 자재의 특성을 본다면 입이 떡 벌어질 가격일 게 분명했다.
고개를 돌린다.
탁자와 의자, 그리고 열심히 수건을 짜내는 사제의 모습이 보인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여긴 약왕당이다.
“내가 얼마나 정신을 잃었지?”
“사형!”
진사풍의 물음에 옆에서 간호하던 일대제자 청익의 표정이 펴진다.
자신이 열심히 짜내던 수건도 내팽겨치고는 얼른 사풍의 침상으로 몸을 던진다.
“딱 나흘 만에 정신을 차리셨습니다.”
“나흘? 내상을 입은 건가?”
“내상은 심하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칠상권의 특성상 몸에 충격이 커서···”
“칠상권···?”
진사풍의 표정이 의문을 머금더니 이내
“아···, 그래. 칠상권에 당했지.”
“말도 안 됩니다! 대사형이 속임수를 쓴 것이 분명합니다!”
청익은 잔뜩 기운이 죽은 사형을 위로하려 아무 말이나 뱉어 본다.
“그런 말 말거라. 그 사람이 어디 속임수를 쓸래야 쓸 줄은 아는 자이더냐.”
“그래도 사형···!”
“됐다. 혼자 있고 싶으니 나가보거라.”
나흘 만에 정신을 차린 사풍은 아직도 자신이 처한 상황이 혼란스럽다.
비무에서 진 것은 확실히 알겠다.
칠상권에 맞아 정신을 잃은 것도.
하지만 지금 그에게는 너무나도 많은 의문이 가득했다.
왜?
자신은 왜 졌을까?
정문은 왜 칠살검과 칠상권을 함께 쓸 수 있을까?조용하던 사형은 왜 저리 적극적으로 변했을까?
하는 의문들 말이다.
- 툭.
자신의 이마에 힘없이 팔을 올린 사풍이 다시금 의문들을 곱씹으려 할 때.
“참, 곧 태상장로들께서 나오신다고 합니다.”
!!!
벌떡! 하고는 상체를 일으키는 진사풍.
“뭐라?”
사풍은 자신이 들은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태···태상장로들께서 폐관을 중단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건 또 왜!?”
“······.”
종종걸음으로 문을 나서려던 청익이 문 앞에 서서 안절부절못한다.
“혹여 고했더냐?”
“······.”
사풍의 의심처럼, 청익을 비롯한 사풍의 파벌들이 달려가 그간 있었던 일들을 고해바친 것이다.
“이런 못난 놈들···!”
“저흰 사형을 위해···”
“듣기 싫다! 썩 꺼지거라!”
사풍의 불호령에 청익이 서둘러 방을 나선다.
홀로 방에 앉은 사풍이 어쩔 줄을 모른다.
연신 이곳저곳 걸음을 옮기기도 하고 침상에 누웠다 일어서 탄식하기도 한다.
그러더니 이내 사풍의 표정에 근심을 넘은 무언가 아린다.
“할아버님이···, 할아버님이 아셨다고?”
두려움.
자신의 조부를 향한 두려움이 사풍의 얼굴에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