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 005. 돌아온 걸 후회하게 해드리겠습니다.
문피아 공유방에서 작업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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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아···!”
광진검의 검로를 계속 펼치며 정문이 감았던 눈을 조심스레 떠올렸다.
이내 그의 눈앞에 자신이 펼쳤던 복마검결의 검로가 허공에 새겨진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띄엄띄엄 검로의 빈 곳이 정문의 눈에 들어온다.
이상하게도, 정문은 그곳을 향해 검을 뻗고 싶은 욕구가 차올랐다.
밑져야 본전.
정문은 이내 느릿하게 펼치던 광진검의 검로를 틀어버렸다.
빈틈.
자신이 펼쳤던 복마검결의 빈틈을 향해 광진검을 꽂아 넣는 정문.
그제야 느릿하게만 보이던 광진검이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쉭-!
휘익!
어느새 복마검결의 빈틈이 모두 메워지기 시작하자, 정문의 뺨에 한줄기의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한다.
파바방-!
허공을 가르는 검이 사선으로 정문의 시선을 베고 지나가자, 이제야 정문이 숨을 내쉰다.
“복마검법···.”
정문의 말처럼, 복마검결의 빈 곳을 광진검으로 채우며 하나의 검법으로 묶어가는 공동의 절기가 복마검법이다.
원래 공동파 제자들은 자연스레 이러한 원리를 익혀가기에 이런 이론을 머리로 계산하는 제자는 없다.
원래 몸의 주인인 정문 역시 자연스레 복마검법을 수련했을 것이고.
다만, 이제 막 공동의 검법을 접한 외부인인 지금 정문은 스스로 이러한 원리를 깨우친 것이다.
“구대문파는 그래도 다르다 이건가···”
공동파에 대한 정문의 인식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잠시 숨을 돌린 정문은 서둘러 검술을 제외한 다른 공동 무공을 시연해보았다.
진각술인 뇌진보(雷振步)와 질전보(疾電步), 경공술인 행운유수(行雲流水), 권장술인 추운권(追雲拳), 복마권(伏魔拳), 혼원장(混元掌), 복마장(伏魔掌)까지.
이제는 하나의 무공만을 남겨놓고 있는 정문.
“이게 그나마 공동의 상징이지.”
나지막이 말을 뱉은 정문은 자신의 주먹을 꽉 쥐었다.
단전에서 흩뿌려진 혼원일기공의 기운이 일곱 갈래로 나뉘어 정문의 주먹으로 모여들었다.
이는 흡사 칠살검을 펼칠 때와 같은 조화.
투로는 단순했다.
정권.
그냥 정면으로 질러대는 정권이 그 시작을 알린다.
꽈광!
이제 막 일수를 펼쳤음에도 이미 수련동의 벽은 깊게 파여 들었다.
“좋군, 좋아!”
정문은 칠상권(七傷拳)이 마음에 들었다.
단순하며 패도적인, 강력한 한방이 있는 무공.
다만, 허점도 많기에 조심히 펼치긴 해야 하겠으나, 맞기만 한다면 누구든 고통을 견디지 못할 게 분명해 보였다.
정문은 남아도는 모든 기운을 수련동에서 쏟아 내었다.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고 검이 무거워지면 권장을 휘둘러갔다.
“헉, 헉, 헉.”
이렇게 검과 주먹을 휘둘러 본 것이 얼마 만일까.
답은 간단하다.
처음.
이전 생에서는 뜀박질도 겨우 하는 정도의 몸이 아니었나.
정문은 그런 한풀이를 하듯 몸의 모든 기운을 쏟아내었다. 이제는 검을 겨우 쥐는 정도의 힘이 남았다.
‘한 번만 더 휘둘러 볼까?’
처음으로 장난감을 손에 쥔 아이의 욕망과 같은 감정이 꿈틀거렸다.
- 꾸욱.
정문이 검을 말아쥔다. 전신에 남은 기력을 모두 짜내어 검을 휘두를 준비를 마친다.
‘그냥 한 번.’
눈을 살짝 감은 채 남은 힘을 모두 손에 집중시킨 정문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순간.
- 콰과과광!
커다란 굉음과 함께 정문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분명 자신은 아무런 초식도 없이 검을 한 번 휘둘렀을 뿐이다.
한데, 잠시 눈을 감고 남은 힘을 모두 집중시키자 이내 새로운 검법이 펼쳐지는 것이 아닌가.
검기가 발산돼 스치고 간 자리는 선명하게 검로를 기록했다.
이는 한 두 번의 휘두름이 아닌 하나의 검로, 즉 검법의 초식이 분명했다.
“이···이게 무슨?”
검법을 펼친 장본인 역시 이게 무슨 조화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아는 무공 중에는 이런 검로와 이런 파괴력을 가진 무공이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새겨진 검로가 하나같이 급소를 노리고 들어가는 치명적인 살초(殺招)였다.
“이건 완전 죽이라고 만든 검식인데···?”
사실 검법이란 모두 맞으면 죽기 마련이기는 하다.
하지만 정파, 백도, 정도라는 이름이 붙은 문파의 무공이라면, 적어도 한수, 한수 정성스레 급소를 노리는 이런 치명적인 검술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정파의 대제자에게 이런 검술이라니···”
정문이 고개를 푹 숙였다.
“존나 좋군. 낄낄낄낄”
고요한 수련동이 사악한 웃음으로 가득 찼다.
***
다다다다다.
분주한 발소리가 공동산을 채운다.
태청궁을 지나 조천문을 통과한 까무잡잡한 피부에 건장한 도인이 서둘러 자신의 사저를 찾는다.
“야···양사저!”
다행히 한 번의 외침이 꽤 울림 컸기에 사저는 어렵지 않게 자신의 사제를 찾을 수 있었다.
서둘러 산을 뛰어오른 사내는 공동파 일대제자 중 막내인 묵환이다.
“무슨 일이야?”
“와, 왔습니다! 왔어요!”
“오다니, 누가?”
“삼사형네요!”
!!!!
삼사형이란 묵환의 말에 명화의 표정이 굳어갔다.
“벌써?”
“조금 전 산문을 넘었으니, 곧 태청궁을 지나···”
묵환이 무언가 말을 이으려 할 때, 조금 전 그의 발소리보다 더 웅장한 여러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내 곧 십여명의 칼을 찬 도인들이 반듯한 무복을 입은 채 조천문을 통과해 공동파의 전각 내로 들어서고 있었다.
“사저, 대사형은?”
“아직이야. 이거 예상보다 너무 빠른데? 하다못해 진명 사형이라도 있으면···”
명화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묵환 역시 근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어댔다.
그런 그들의 표정은 안중에도 없듯, 십여명의 도인이 얼른 그들에게 다가섰다.
“사형을 뵙습니다.”
“사형을 뵙습니다.”
절도 있게 포권하는 명화와 묵환.
그러나 인사를 받는 사내는 짐짓 건방진 표정이 하늘을 찌른다.
“흐음.”
내려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들의 표정을 살피는 사형.
“그러니까. 돌아왔다지?”
거만한 목소리에 심중을 숨긴 듯한 말투가 명화에게 꽂힌다.
“대사형 말씀인가요?”
“음···, 정문 사형. 어디 있지?”
명화의 대답에 잠시 쉼을 가지던 그는 느릿하게 자신의 용건만을 뱉어냈다.
오래간만에 만난 사형제와 적당히 회포도 풀만 했건만,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폐관동에 계십니다. 대사형은.”
명화가 뒷말에 조금 더 강조를 둔 채 답을 하자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폐관? 정문 사형이? 푸하하하! 그 사람 머리가 어찌 된 것이 아니더냐? 청유나 다니던 치가 폐관이라니?”
“푸하하하!”
“숨은 거 아닙니까?”
“헤헤헤헤”
선두에 선 제자가 웃기 시작하자 뒤따르던 제자들 역시 크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선두에 선 사내의 이름은 진사풍.
공동의 일대 제자 중 삼석을 차지하는 수재로 다른 일대 제자들의 지지를 독차지하는 인물이었다.
특히나 그의 뒷배경이 늘 든든하게 그를 지지해줬는데, 그의 조부가 다름 아닌 공동의 태상장로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훗날 장문인이 되실 분입니다. 사풍 사형. 말씀을 자중하시지요.”
그런 웃음을 끊으려는 듯 명화가 쏘며 말했다.
크게 올라가는 사풍의 눈썹.
명화의 말이 그의 폐부를 찌른 듯했다.
“지금 사형을 가르치려 드는 것이냐?”
전하고자 하는 말에서 밀린다면, 전하는 자를 공격하는 법.
기분이 상한 사풍은 되려 명화의 태도를 문제 삼아 시비를 걸려 한다.
그때, 조천문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내가 가르치면 되겠느냐?”
잔뜩 더럽혀진 무복에 등에 찬 허름한 검.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젊은 도인이 홀로 조천문을 넘어왔다.
“진명 사형!”
명화와 묵환의 얼굴이 환하게 펼쳐졌다.
“···!”
반대로 사풍의 얼굴은 최대한 구겨졌고.
“사형을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 사형을 뵙습니다.”
사풍은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며 포권했다.
“진사제, 사형제간 옳은 말로 조언을 권하는 것은 항렬에 상관없이 좋은 현상이 아니겠나?”
“······, 사형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를 앙다물며 대답하는 진사풍.
그를 바라보는 위진명의 표정이 의기양양하다.
“사형, 그렇다면 항렬에 상관없이. 사제가 조언을 하나 하지요.”
“해보게.”
진사풍은 아래로 향하던 눈을 천천히 치켜뜨며 진명을 응시했다.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행운이 온 뒤 불행이 오는 것이니.”
“흥, 자네의 충고는 공허하군. 일단은 잘 들었네.”
콧바람을 한 번 내쉬어준 진명은 서둘러 사풍의 곁을 스쳐 갔다.
잠시 두 제자의 눈빛이 강렬하게 얽혔으나, 이를 알아챈 이는 없었다.
“그래서, 대사형은 폐관동에 있다고?”
“옛! 사형!”
“우선은, 스승님을 찾아 뵈어야 하니 그 뒤 함께 가보자꾸나.”
진명은 한마디를 남기고는 뒤를 돌아 사제들을 바라보며 말을 던졌다.
“네놈들은 뭣들 하는 것이냐? 출타했던 제자들이 얼른 스승님을 찾아뵙지도 않고?”
“가, 가려했습니다.”
“가, 가야지요.”
쭈뼛대며 진명의 호령에 따르는 제자들.
진사풍의 어깨가 살짝 부들거렸으나, 다들 이를 모른 체했다.
간만에 제자들을 맞이한 장문인 자정의 표정은 기쁘기 그지없었다.
대제자인 정문이 실종된 후 사형을 찾겠다며 산문을 뛰쳐나간 제자들이 아닌가.
물론 그 속에 저마다 자신들의 잇속이 있다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으나, 마음 한편에 사형제에 대한 걱정이 있으리라 믿었던 그였다.
스승과 짧은 만남 이후 일대제자들의 움직임은 분주했다.
서둘러 자신을 따르는 사제들을 모으는 진사풍.
서대의 한 편에 모인 그들은 저마다 불안한 표정을 감추기 어렵다.
“그, 대사형이 돌아왔으니 이제 어쩝니까?”
“우리가 대사형을 찾지 않았단걸 스승님이 아시면···”
“대사형이 멀쩡하다면, 진사형은 미래가 없는 것 아닙니까?”
“자네, 위사형이랑 친하지 않았나?”
“그래도 진사형의 조부님이 태상장로 아닙니까···”
공동산에 돌아오자, 진사풍의 파벌 내부에 불안감이 조성되는 모양이다.
실제로, 대사형을 찾겠다며 산문을 나섰던 진사풍의 파벌은 지난 시간 정문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았다.
그저 속가를 몇 군데 돌며 찾는 척만 했을 뿐.
사실 속가 부근으로 정문이 갔다면, 그들이 움직이지 않아도 소식은 들려왔을 것이다.
반대로, 얼마 전에야 겨우 산문을 나선 위진명은 성심을 다해 사형을 찾아 나섰다.
더럽혀진 무복, 닳아버린 그의 신발이 그를 뒷받침해주었다.
멀리서 사제들의 동요를 지켜보던 진사풍이 눈을 부릅떴다.
사풍이 모습을 드러내자 동요하던 사제들의 입이 쏙 다물어졌다.
- 후우우우.
숨을 내쉬는 진사풍.
이내 호흡을 가다듬고는 눈에 힘을 주며 그가 입을 뗐다.
“다들 정문 사형이 돌아온 것을 알 것이다. 나 역시 사제들에게 불안한 마음이 있다는 것도 알고.”
“······.”
“나가서 우리가 했던 일들에 대한 후회가 있는 것도 안다.”
“······, 허면 어찌해야 합니까? 위 사형이 이를 문제 삼으면···.”
사제 중 누군가 용기를 내 말을 꺼내자 사풍의 매서운 시선이 그에게 닿는다.
“그전에! 이 사건의 본질을 찾아야 하지 않겠느냐? 우선은 산문을 나가 실종된 정문 사형의 잘못을 논해야 할 것이다!”
!!!
진사풍의 거센 발언에 제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 그렇습니다! 산문을 허락 없이 나간 것은 잘못이지요!”
“맞습니다!”
빠져나갈 구실이 보이기 시작하자, 사제들이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또한, 2년간 나갔다 들어온 정문 사형이 멀쩡히 돌아왔겠느냐? 무언가 사고를 치거나 몸이 상해서 돌아왔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
“그, 약왕당에서 듣기로는 조천문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합니다!”
“폐관한 이유도?”
“무공을 잃은 건 아닌가?”
궁지에 몰린 자들에게는 작은 구멍만 틔워주면 된다는 말이 있다.
지금 심적으로 몰린 제자들은 사풍이 틔워준 작은 구멍을 열심히 파고든 것이다.
“대, 대사형을 만나봐야 합니다!”
“상태를 확인하시지요!”
흐름이 좋다.
사풍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정문이 무공을 잃었거나 다치지 않았어도 상관없다.
사고를 쳤다면 가장 좋겠지만.
이를 시험한다는 핑계로 사풍은 정문에게 대련을 청할 예정이다.
지난 세월 간 누구보다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사풍이다.
대제자.
오로지 대제자의 위치만을 바라보며.
당연히 대제자였던 정문의 존재는 그에게 눈엣가시였다.
2년 전 고맙게도 스스로 모습을 감춰줬을 땐, 그간의 감정이 모두 사라지고 그를 찾아가 힘껏 안아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다만, 그의 위에는 한 명의 사형이 더 있었다.
바로 위진명.
고지식하기로는 정문보다 더하며, 무공 역시 고강하다.
특히 그가 가장 까다로웠던 이유는 그는 욕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대제자의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면 얼른 그 자리를 꾀어 차면 될 것인데, 그는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보다 정문을 찾으려 애썼고 없는 사이 정문의 자리를 박탈하려던 진사풍을 번번이 막아섰다.
그렇기에 사풍은 진명을 상대하는 것이 늘 어려웠다.
명분 역시 저쪽에 있었고, 실력 역시 비등했기에.
번번이 위진명의 방해에 가로막혔지만,
산문을 나서며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부 제자들이 빠짐에 따라 남은 제자들에게 문파의 업무가 몰릴 것이고, 이는 정문을 수색할 시간을 뺏음은 물론이요, 수련할 시간마저 뺏을 절호의 기회였다.
사풍은 자신의 역량을 모두 동원해 자신의 파벌만 산문을 나설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의 조부가 한 팔 걷어 그를 도와준 탓일 터이다.
그 결과 사풍의 무공은 산문을 나서기 전보다 강해졌다.
둘째 사형 위진명은 몰라도 2년간 공동을 떠나있던 정문은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 계산이 이미 서 있던 사풍이었다.
사문을 떠나기 전 정문과 자신의 무공 수위를 비교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자, 다들 자중하시게! 사형이 폐관동을 나온다면, 그때 가서 따져 물으면 될 일이네.”
“따져 물읍시다!”
“대사형 덕에 태청궁도 한동안 제 역할을 못 하지 않았습니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몸 상태도 확인을 해야죠!”
사풍의 부추김에 신이 난 제자들은 저마다 말을 이어붙이려 애썼다.
아마, 그러지 않는다면, 자신들의 암울한 미래가 계속해서 떠올라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다시금 자신의 파벌에 사기를 불어넣은 진사풍은 이내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정문 사형, 돌아온 걸 후회하게 해드리겠습니다.’
진사풍의 얼굴 겉면에 잔뜩 비릿한 미소가 걸린다.
그때,
꽈과광!
커다란 폭발음이 공동산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