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화
-모두 물러서서 합격진을 유지하시오!
모인 고수들을 섬뜩하게 만드는 기운에 소림 방장이 외쳤다.
외침과 동시에 나한진을 펼치는 십팔나한.
그 뒤로 사대 금강과 방장이 뒤를 탄탄히 받쳤다.
그 외에도 각자 맡은 자리를 사수하며 합격진을 유지하는 무인들.
당문의 독진이 괴인들의 우측을 막아섰고, 청성파의 청명진이 좌측을, 사패일성 강진후를 비롯한 남아있던 사황성의 정예들이 괴인들의 후방을 막았다.
전방을 막아선 소림의 나한들을 보며 이를 가는 괴인.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진을 유지해야 한다. 모든 혈정을 개방하고 진세를 키운다. 절대 진세 밖에서 싸우지 마라.”
아홉 괴인 중 여덟 명의 괴인의 눈이 점차 검붉게 변하기 시작하며 그들의 어깨 위로 선명히 드러나는 붉은 연기.
그들의 어깨에서 태어난 혈무가 그들이 이루고 있는 진세에 녹아들며 주위를 붉게 물들였다.
제일 먼저 선공을 취하며 달려드는 당일수.
-파파팡! 캉!
직접 독장을 쏘아내며 혈무 속으로 달려들어 보았던 그는 혈무 안에서 날카롭게 쏘아진 검기에 밀려 뒤로 물러섰다.
혈무에 닿았던 손을 입에 대어보는 당일수.
-독은 아니오! 하지만 보통 마기가 아니니 다들 조심하시오!-
혹여 혈무에 독이 섞여 있진 않을까, 먼저 확인을 해봤던 당일수였다.
혈무에 장력이 닿는 순간 느껴지는 반발이 보통이 아니었다. 초절정고수의 일장을 가볍게 밀어내는 반탄력과 진세에 드는 순간 느껴지는 마기가 당일수를 긴장케 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끈적하고 기분 나쁜 마기가 느껴졌는데, 실제 진세에 드는 순간에는 가슴이 울렁거리며 살심이 치솟고, 분심이 차오르는 실로 사람을 흥분케 하는 감각에 놀랐던 당일수였다.
초절정고수인 자신이 이럴진대, 자칫 다른 고수들이 진세에 드는 순간 이성을 놓쳐버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런 당일수가 물러나기 무섭게 세 방향에서 지쳐 드는 무인들.
-만개화천!
괴인의 큰 목청에 혈무 속 흐릿하게 보이는 괴인들이 바삐 움직였다.
-쿠오오오오오
괴인들이 혈무 속에서 원진을 이루고 사방을 향해 검을 뻗는 순간.
진세가 폭발하듯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달려오던 무인들을 휩쓸었다.
순식간에 진세에 갇혀버린 무인들이 잠시 당황하는 순간 들려오는 일갈.
-정심정도 사마파도!
소림 방장의 일갈과 동시에 소림 무인들을 휘감았던 진세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카카캉! 캉! 카캉! 캉캉! 깡!
사방에서 들려오는 쇠가 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
순식간에 혈무로 휩싸여 난전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연수는 허공에 몸을 띄운 채 위에서 난전이 벌어지고 있는 장내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개화만발!
괴인의 외침에 사방에서 몰려드는 무인들과 검을 섞던 괴인들이 일제히 같은 초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검이 돌아가며 하늘을 향했던 검 끝이 괴인들의 몸이 떠오르고 뒤집혀 순식간에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며 바닥과 닿는 순간.
-쿠오오오,
사방에서 피어나는 혈매화.
“모두 물러나라!”
진한 혈향과 매화향이 어우러지며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기분 나쁜 향이 퍼지는 순간 당일수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크악!”
“컥!”
-따따땅!
“혈매화를 조심···. 끄어···.”
혈매화의 꽃잎이 흩날리며 온 사방 무인들을 휩쓸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풍운재천
괴인의 입에서 또 한 번 외침이 터져 나오는 순간 모든 무인이 잔뜩 긴장한 채 숨을 죽였다.
어떤 맹공이 날아올지 몰라 잔뜩 긴장하고 있는 무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검무를 추듯 유려하게 검을 놀리는 괴인들.
죽어간 동료들의 시체를 바라보며 몇몇 무인들은 참지 못하고 괴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멈춰라! 함부로···.”
-서걱! 쑤걱!
미처 제지하기도 전에 달려들던 무인들은 살벌한 소리와 함께 신체가 토막 나며 비명조차 남기지 못하고 허물어졌다.
-모두 맡은 바 자리를 지켜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괴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달려드는 무인들이 늘어갔다.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며 이성을 마비시키는 진세의 영향이었다.
경지가 얕은 무인들부터 차례대로 목숨을 버리듯 달려들자 이를 악문 당일수가 외쳤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일제히 공격합시다.
-좋소!
-지금이오!
사방에서 무인들이 덤벼드는 순간 괴인들의 검이 크게 한 바퀴 돌며 하늘을 향하자 휘날리던 매화잎들이 바람에 쓸리듯 괴인들 주변을 휘돌며 하늘로 향했다.
-따따따땅!
독강을 뽑아내며 휘몰아치는 매화입을 막아낸 당일수.
당연히 당문의 움직임은 제지될 수밖에 없었다.
당문만이 아니었다. 소림과 청성도 마찬가지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세차게 휘몰아친 후 머리 위로 몰려 있는 혈매화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강진후가 이끄는 사황성의 고수들만은 달랐다.
몇몇 무인들이 매화에 당해 쓰러질지언정 끝까지 달려나가 괴인들의 지척에서 검을 들이댔다.
-까까까깡!
-회강천하!
괴인의 외침에 괴인들이 일제히 강진후와 무인들을 향해 달려드는 순간.
소림의 나한들이 일제히 쇠봉을 휘두르며 괴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늦은 감이 있었다.
-쾅!
제일 먼저 괴인과 검을 부딪쳤던 사황성의 고수하나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으며 부러진 검에 심장을 찔려 단명했다.
마치 어른과 아이의 싸움처럼 괴인들과 고수들의 힘의 차이는 극명했다.
일반적인 내력이 아닌 인간의 정혈을 빼앗아 쌓아가며 혈정을 완성한 괴인들의 내력의 힘은 굉장한 파괴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콰콰콰쾅!
이윽고 여덟 명의 고수가 괴인들의 일격을 버티지 못하고 뒤로 밀리는 순간 강진후의 눈이 반짝였다.
격돌이 일어나는 찰나의 순간에 제일 약한 괴인을 강진후의 눈은 놓치지 않았다.
마치 사냥을 하는 이리무리의 대장처럼 괴인들을 지척에서 살피던 그의 눈이 빛나는 순간 괴인 중 한 명이 몸을 흠칫 떨며 뭐라 입을 열려고 했다.
-퉁퉁퉁!
백보신권.
현 소림에서는 사대 금강과 방주만이 익히고 있던 소림의 신공이 괴인들의 등을 두드렸다.
괴인들이 뒤를 노려보니 십팔나한 들이 달려오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백보신권을 펼치는 사대 금강과 방주가 보였다.
-낙화일검!
괴인이 외치자 일제히 높이 뛰어올라 나한들의 머리 위로 검 끝을 뻗으며 떨어져 내리는 여덟 명의 괴인들.
명령을 내리며 지휘를 하는 괴인은 나한의 쇠봉을 단숨에 자르려는 순간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미묘하게 진세가 일그러지고 힘이 달린다고 느낀 순간 제일 약한 괴인은 강진후의 곁으로 끌려가며 그의 손아귀에 잡히기 일보 직전이었다.
기이한 흡인력은 마치 괴인의 육체가 아닌 몸속의 기운을 잡아당기는 것 같아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뒤로 물러서길 포기한 괴인의 발이 바닥을 차며 강진후를 향해 검을 뻗어 매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까앙!
강진후의 손과 괴인의 검이 맞부딪히는 순간 일순 괴인은 검을 떨굴 뻔했다.
엄청난 반발력과 동시에 마치 거대한 쇠를 때린 것처럼 손이 저렸다.
그가 검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순전히 강진후가 그의 검을 덥석 움켜잡았기 때문이다.
놀란 괴인의 눈에는 선명하게 푸른 가닥가닥 영롱한 빛깔을 내는 상대의 손이 보였다.
마치 푸른 장갑을 낀듯한 그의 손에 푸른빛이 강렬해지는 순간.
-철캉!
소리와 함께 괴인의 검이 부러져 버렸다.
“큭!”
보통의 철검이 아니었다. 혈정으로 쌓은 내기를 끊임없이 쏟아붓던 선명한 붉은 검기가 충만한 검이었다.
다른 괴인들 만큼 진한 검기는 못 되었지만, 나무젓가락처럼 손으로 붙들고 툭 부러트릴 만큼 만만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검이 부러지는 순간 괴인의 입매를 비집고 흘러나오는 핏물.
청망사로 순식간에 괴인의 검을 부러트리자 반대 손을 향해 질질 끌려오는 괴인.
그래도 가락은 있는지 붉게 물든 일장을 뻗어오는 괴인.
그를 보는 강진후의 입매가 비틀렸다.
-화아아.
괴인은 일순 너무 놀라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강맹한 혈장을 날렸다. 비록 상대를 단번에 죽이지는 못할지언정 손을 어지럽게 할 순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강맹한 기세를 내뿜던 자신의 장력이 한순간에 상대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자 난생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사에 몸이 굳어버렸다.
이미 지척에 있던 강진후의 청망사로 씌워진 손에 붉은 기가 감돌기 시작하더니 방금 괴인이 뿌렸던 장력이 고스란히 담겨 강진후의 손에서 재현되어 나왔다.
-펑! 빠드득!
가슴에 자신의 장력을 그대로 맞은 괴인이 실 끊어진 연처럼 뒤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다섯째!”
이를 본 한 괴인이 눈을 부릅뜨며 당장이라도 강진후에게 달려들 것처럼 강진후를 노려 보았다.
“자리를 지켜!”
“하지만···.”
“모두 죽일 것이다. 자리를 이탈하지 마라.”
자리를 지키란 말을 내뱉는 괴인의 눈에 가득 찬 분노를 읽은 괴인은 자신을 향해 쇠봉을 질러오는 나한을 다시 상대하기 시작했다.
당문과 청성마저 나한과 합류하여 괴인들을 몰아붙이고 있었고, 강진후는 쓰러진 괴인을 향해 재차 손을 뻗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단숨에 강진후를 향해 빨려오는 괴인의 신형.
괴인의 백회에 강진후의 손바닥이 닿는 순간.
“끄아아아아!”
사람의 심혼을 뒤흔드는 비명이 괴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웬만한 고수의 내력쯤은 그리 오래지 않아 모조리 빨아버리던 강진후는 끝이 없어 보이는 괴인의 내력에 고개를 저었다.
“대체 얼마나 죽인 거냐!”
그리 외치는 강진후를 향해 끝내 몸을 빼며 일 검을 내지르는 괴인.
강진후는 검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붉은 검기에 뒤덮인 상대의 검을 보며 미련 없이 뒤로 물러섰다.
아무리 자신의 청망사라도 저 검과 부딪혔다가는 단숨에 손을 잃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다.
“놓치지 않는다!”
괴인은 발을 구르며 암향표를 펼쳤다. 거친 화산을 평지처럼 뛰어다니던 암향표의 발재간이 괴인의 신형을 늘리며 한순간에 강진후를 따라잡게 만들었다.
괴인이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검을 내리쳤다.
-카앙!
장성과 함께 튀어 오르는 불꽃.
청망사 대신 수강을 뽑아 괴인의 검을 막아낸 강진후였다.
수강의 삼분의 일가량을 파고든 괴인의 검에 강진후가 절로 고개를 저었다.
-파팟! 터엉!
“어딜!”
은밀히 괴인의 내력을 흡성하려던 강진후의 손길을 쳐낸 괴인.
강진후는 괴인과 섞어본 손속에서 팔이 울리는 통증을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괴인은 놓치지 않겠다는 심산을 들어내듯 빠르게 강진후를 향해 따라붙었다.
-뻐억!
괴인은 강렬한 통증에 입을 벌리고 뒤로 날아가는 와중에 상황판단이 되었다.
패신살성.
순식간에 다가와 암습으로 자신의 단전을 후려친 그의 비틀린 입매를 보는 순간 괴인의 이성이 끊어졌다.
뒤로 날아가는 괴인을 순식간에 따라잡아 팔꿈치로 내려찍는 연수.
-쾅!
뒤로 날아가던 괴인의 신형이 그대로 먼지를 일으키며 바닥에 처박혔다.
“단단하네. 부서지라 때렸는데 금도 안가?”
괴인의 단전을 부술 요량이었거늘 깨어지지 않는 그의 단전을 보며 연수가 입매를 비틀었다.
“누가이기나 해 보지.”
연수의 발이 들리며 괴인의 단전을 지르밟으려는 순간.
광기 어린눈으로 연수를 노려보던 괴인의 두 눈에서 붉은 광망이 터져 나왔다.
덥석.
연수의 다리를 붙드는 괴인.
“같이 가자. 패신살성!”
괴인의 몸에서 심상치 않게 휘도는 내력의 흐름을 읽은 연수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젠장! 모두 물러서!
연수의 외침에서 뒤로 몸을 빼며 시선을 돌리는 무인들.
무인들의 시선에 음울한 폭굉에 휩싸이는 연수의 신형이 들어왔다.
“안돼!!!”
놀란 강진후가 비명을 토해냈다.
-쿠와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폭발의 후폭풍이 장내에 무인들을 휩쓸었다.
거친 먼지 바람과 혈무 속에서 눈에 힘을 주며 폭발이 일어난 장소에 집중하는 무인들을 향해 달려드는 일곱의 괴인들.
사형제가 목숨을 걸고 만들어 준 기회를 이대로 내버릴 순 없었다.
-정신을 놓지 마시오! 적이 지척이오! 합격진을!
무인들이 이를 악물고 괴인들을 에워싼 채 다시금 싸움이 시작되었다.
당일수는 전보다 한결 상대하기 수월해진 괴인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머릿수가 줄어서 진세가 약해졌소! 지금이 기회요!
소림의 방장 역시 느꼈는지 호응하듯 명령을 내렸다.
-나한들은 공세에 집중해라.
열여덟 명 중 겨우 아홉 남은 나한들과 셋밖에 남질 않아 삼대 금강이라 불리게 생긴 소림의 고수들이 기세 올리며 괴인들을 몰아치는 순간, 검을 거칠게 휘두르며 달려드는 괴인.
진형을 벗어나며 미친 듯 달려드는 괴인의 검을 두 명의 나한들이 희생되며 막아냈다.
-툭.
소림방장에 의해 잘려나가는 괴인의 오른팔.
하지만 괴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흉한 얼굴로 밝게 웃었다.
“먼저 갑니다. 사형!”
남은 팔로 소림방장을 끌어안으며 달려드는 괴인.
-퍽퍽 펑!
놀란 방장의 손속에도 입가 가득 피를 흘리며 미소짓는 괴인이었다.
“크크크, 뒤에 숨어있던 늙은 여우를 드디어 내 손으로 죽이는구나.”
괴인은 전에 방장을 향해 절규 어린 악담을 내뱉던 그자였다.
괴인의 두 눈에서 폭광이 쏟아지는 순간 소림 방장은 죽음을 직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