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화
해가 지기 시작하자 폭죽 소리로 요란스러워지는 혈개문.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서 요란하고 시끄럽게 혼례식이 시작되었다.
많은 허례를 건너뛰고 도화의 거처로 가서 신부의 대오를 끌고 오는 장원복을 입은 연수.
붉은 장원복을 입고 당당한 걸음으로 천화대의 무인들과 신부의 가마 그리고 무황과 두보가 이룬 대오의 선두에서 걷는 연수의 보보마다 하객들의 축하 성원이 이어졌다.
혼례를 올릴 접객원 뒤 대전으로 들어가 대례가 시작되자 강호의 명숙들과 무인들은 붉은 면포로 얼굴을 가린 신부에게 집중되었다.
정사 대회를 통해 도화의 미모는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아직 도화를 보지 못한 많은 무인은 중원 최고수의 신부가 될 사람에 대해 호기심이 깊어졌다.
대례식의 끝이 다가오자 신부의 면포를 들어 올리는 연수.
-와아!
-오오오!
도화의 곱게 화장한 얼굴이 드러나자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감탄성.
대례식이 끝이 나자 신방의 앞에 마련된 자리에 모여드는 하객들.
신방에 신부를 들여놓고는 장원복을 입은 신랑은 하객들에게 잡혀 신방에 들지 못하고 접객을 하고 있었다.
“황문방의 방주 황산덕이라 합니다. 명성을 익히 들어오던 패신살성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 잔을 한잔 받아 주시지요.”
“이리 찾아와 주어 감사합니다.”
“저는 객도문의 문주 구철렵이라 합니다. 제 잔도···.”
한 시진이 넘도록 술잔을 받느라 얼큰히 취기가 올라 얼굴이 붉다 못해 검어진 연수.
보다 못한 정협맹 맹주 당일수는 하객들에게 둘러싸인 연수의 곁으로 다가왔다.
“새신랑이 첫날밤 치를 기력은 남겨주어야지. 다들 짓궂게 굴지 말고 인제 그만 새신랑 좀 놔 주십시다. 이러다 첫날밤부터 소박맞는 남편을 만들겠소.”
농 섞인 당일수의 말에 대소를 터트리는 하객들. 겨우 하객들로부터 해방된 연수가 신방으로 들어서려 하자 이번엔 사황성의 무인들이 연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허허, 이 좋은 날 사선을 함께 넘은 동지들을 무시하면 원한을 살수도 있지 않겠나? 적영대장.”
“하아, 죽겠습니다. 며칠을 넘게 퍼먹이고도 부족하십니까?”
철목 가주와 화령 가주는 빙글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족하지.
동시에 말을 마치는 두 사람. 그런 두 사람이 따라주는 독주를 연거푸 마시고 지나치니 그 뒤로 술 항아리를 손바닥에 붙여 들고는 연수를 보며 미소짓는 강진후.
“이 좋은 날 내 술도 받아야지.”
“자, 잔이 심하게 큽니다?”
“사내가 이정도 배포는 있어야지.”
웬만한 성인남성 두 사람이 겨우 들만한 술 항아리를 그대로 입을 대고 퍼마신 후 연수를 향해 술 항아리를 날리는 강진후.
-후우우웅!
-오오오! 사패일성!!
-과연!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날아오는 항아리를 한 손으로 받아내는 연수.
미동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항아리를 받아내니 연수의 뒤로 세찬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대로 항아리를 입에 대고 술을 마신 연수가 빙글 웃었다.
“역시 좋군요! 좋습니다. 다음은 누가 제게 술을 주겠습니까?”
연수의 말이 끝나자 장내엔 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사패일성보다 내력에 자신 있지 못한 자들은 나설 엄두를 내질 못했다.
그때 자리를 박차며 뛰어오르는 인영.
“나도 패신살성과 축하주를 나눠야겠는데!”
청성의 장문이었다.
“좋습니다.”
-후우웅!
회의 묘리가 담긴 술 항아리가 빙글빙글 돌며 허공으로 몸을 띄운 청성파의 장문에게 날아갔다.
날아오는 술 항아리를 단숨에 잡아채는 청성파 장문.
항아리를 잡기 무섭게 그의 소맷자락이 감기며 팔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펄럭!
어깨를 한번 털어내자 말리던 소매가 단숨에 펴졌다.
-역시!
하객들은 단숨에 항아리에 담겨 그를 죄어오던 힘을 털어내는 청성 장문 우공이라며 감탄성을 터트렸다.
술을 마신 우공이 연수를 향해 항아리를 날렸다.
“패신살성의 술맛이 오묘하군요! 제 술도 받으시오!”
우공이 날린 항아리의 주둥이가 땅을 향해 날아왔다.
날아오는 항아리가 왼쪽의 축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회전하며 안에 든 술이 흘러내리지 않고 있었지만 그대로 잡아채면 안에 술이 쏟아질 것이 분명했고, 잡아채어 뒤집자니 항아리에 담긴 경력이 적지 않았다.
-구우우우웅!
좌장을 항아리를 향해 뻗는 연수.
그와 동시에 마치 종을 치는 듯한 소리가 항아리를 중심으로 퍼져 나왔다.
안에 담긴 경력이 그대로 해소되며 울리는 소리였다.
항아리의 주둥이를 기막으로 막은 연수가 항아리를 뒤집어 입에 가져다 대었다.
“과연 청성의 정순한 술맛은 일품이군요. 이번엔 누가 저와 술을 나누겠습니까?”
좌중을 훑어보니 더는 나서는 사람들이 없었다.
막 항아리를 내려놓으려는데 들려오는 목소리.
“저희를 잊으셨습니까?”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허공으로 몸을 띄우는 십인.
천화대였다.
‘저놈들은 안 되는데······.“
분명 천화대의 무인들은 연수를 곱게 보내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끝까지 매달려 연수를 어떻게든 인사불성으로 취하게 만들려고 독주 중의 독주라는 화천주까지 따로 구해온 그들이었다.
사천 제일 독주로 유명한 화천주는 한 병을 마시면 백일 간 금주하게 되고 두 병을 마시면 백일 간 일어나질 못하며 세 병을 마시면 천일 간 취기에 깨어나지 못한다던 독주였다.
이를 악문 연수는 허공으로 뛰어오른 그들을 향해 술 항아리를 날렸다.
-화아아악!
확실히 지금까지와 다른 기세로 날아가는 술 항아리.
그 안에는 술독을 꼭 깨고 말겠다는 연수의 강한 의지가 들어있었다.
“초!”
우렁찬 소리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일렬로 줄을 맞추는 천화대.
그와 동시에 제일 앞에 선 무인이 두 손으로 항아리를 막았다.
“푸웃!”
피를 토해내며 항아리를 멈추기 무섭게 뒤로 밀려나는 무인.
그의 뒤를 차례로 아홉 사람이 막아내었다.
마지막 무인까지 앞사람 등에 양 장을 뻗어 막아내니 결국 항아리가 허공에 멈추어 섰다.
‘저, 저···. 무식한 새끼들.’
제일 앞에서 항아리를 막아낸 무인은 창백한 얼굴로 휘청이며 항아리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이윽고 남은 아홉 무인은 마치 목숨이라도 건 듯 항아리의 술을 모조리 마셔 버렸다.
“크하! 이거 술독이 비어버렸습니다. 아쉬운 대로 저희가 준비한 술로 대신하시지요.”
말을 마치고는 화천주 열 병을 술 항아리에 따르기 시작하는 천화대 무인들.
그리고는 전에 비해 텅 비어버린 항아리를 연수를 향해 날렸다.
가볍게 항아리를 받아낸 연수는 항아리에 입을 가져다 대다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 새끼들이 진짜···.’
코를 찌르는 독한 향이 보통의 독주가 아니라고 시위하는 듯 느껴졌다.
인상을 찡그리고는 술을 마시기 시작하는 연수.
-꿀꺽. 꿀꺽. 꿀꺽. 꺼억!“
남김없이 마셔버린 연수가 항아리를 내려놓으며 트림함과 동시에 비틀거렸다.
내상을 입고 창백한 얼굴로 입매를 비틀며 길을 여는 천화대 무인의 얼굴이 두세 개로 보이는 연수.
길을 연 그들을 지나치며 비틀거리는 걸음을 옮기는데 입을 여는 천화대.
-장부심취. 대횡 관문 점혈! 대횡 관문 점혈!
대횡혈과 관문혈은 대맥을 잇는 양 문이다. 이 두 혈을 점혈하게 되면 몸에 싸인 독기를 몰아낼 수 없게 된다.
분명 연수 정도의 고수는 한순간에 취정을 모아 몰아낼 수 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그를 막기 위해 저리 외치는 것이 분명했다.
“적당히 해라. 이 새···.”
-대횡 관문 점혈!
점차 많은 하객이 같이 외치기 시작하자 절로 연수의 말이 끊겼다.
“하아.”
한숨을 몰아쉬고는 양팔을 드는 연수.
천화대의 대장은 창백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연수의 두 혈을 두드렸다.
-툭툭.
“도화 아가씨를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 앞으론 부인이라 불러.”
말을 마치고는 비틀거리며 신방이 있는 이 층 계단을 오르는 연수.
연수가 신방으로 들어서고 나자 몇몇 무인들을 시작으로 많은 짓궂은 무인들이 신방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쿵!
“신방을 엿보려거든 나를 대작으로 쓰러트린 후 하시오!”
술 항아리를 소리 나게 땅에 내려놓으며 말하는 강진후.
순간 자리에서 섰던 무인들이 멈칫했다.
연수가 신방으로 들어간 후에도 장내에는 한동안 술독이 날아다녔다.
겨우 몸을 세우고 신방으로 들어선 연수.
“오라버니! 괜찮으세요?”
달려와 연수를 부축하는 도화.
“아, 괜자나···. 잠시···. 잠시만···.”
-두둑! 뚝!
연수의 몸에서 기이한 소리가 나기 시작하더니 미간에서 독향의 주정이 모여 떨어지기 시작했다.
콧날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주정.
열 방울이 넘는 주정이 떨어지고 나서야 재 혈색을 찾는 연수의 얼굴.
“후아. 무식한 놈들. 겨우 두 혈을 막아서 될 것 같아?”
“술을 많이 먹였나 보군요.”
“천화대 놈들이 작정을 했나 봐.”
도화는 연수의 말에 피식 웃으며 손수건으로 연수의 미간과 코를 닦아 주었다.
“이리로 앉아 계세요.”
다탁에 앉는 연수에게 차를 따라주는 도화.
“차가 다 식었네요.”
“덥히면 되지.”
내력으로 순식간에 차를 덥히자 찻잔에서 김이 올라왔다.
막 연수가 뭐라 입을 열려는데 침대에 다소곳이 앉는 도화.
연수가 다탁의 앞 의자와 뒤에 침대에 앉아 있는 도화를 번갈아 보고는 헛기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연수가 도화를 향해 몸을 돌리자 신방을 밝히는 화촉이 전부 꺼졌다.
길었던 혈개문의 밤이 끝나고 날이 밝아왔다.
신방의 앞에는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 무인들이 밝은 햇빛에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나기 시작했고, 모두 머리를 부여잡으며 전날의 과음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특히나 강진후와 대작을 했던 무인들은 그의 인간 같지 않은 그의 주량에 혀를 내둘렀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아직 술을 퍼먹고 있던 강진후의 모습을 보며 무인들은 그의 주량에 엄지를 치켜들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와, 아직 드십니까?”
취기가 얼큰히 오르다 못해 승천하기 직전인 강진후가 연수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이 지나면 몇 년간 금주해야 할 텐데 많이 마셔 둬야지.”
“몇 년? 무슨 실마리라도 찾은 겁니까?”
-전에 자네가 전해 준 무서 중 순양공이란 비급에 화여도해 화광만해 라는 구절을 보고 느끼는 바가 있었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정 안되면 제가 내기의 기운을 바꿔 드릴 수도 있습니다,
고개를 젓는 강진후.
“나는 흡성신공의 전인일세.”
“예.”
마지막 술병을 비워낸 강진후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런 강진후에게 전성을 보내는 연수.
연수의 전성에 잠시 멈칫하던 강진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겠군.”
연수가 잠시 멀어지는 강진후의 등을 바라보고 있는데 미약한 살기가 느껴졌다.
그 기세가 익숙한 것이 지인의 살기가 분명했다.
그 자리에서 꺼지듯 사라지는 연수의 신형.
중축을 마친 거대한 혈개문의 장원 구석에서 느껴지는 살기를 따라가 보니 역시나 익숙한 얼굴이 검을 움켜쥐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사내의 말에 검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며 차마 뽑지 못하는 정회.
“거친 풍파를 전부 피하고 덩치를 불리며 잘 산다는 말은 들었다.”
정회의 말에 호검문 문주 진수상이 피식 웃었다.
“너는 어디서 객사라도 한 줄 알았는데, 사파에 붙어먹고 있었구나.”
“흥! 그러는 네놈은 그 사파의 고수가 혼례를 치른다니 먼 길을 달려왔구나.”
연수는 둘의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검문이 아직도 있었나? 무림맹에서 언제 발을 뺀 거지?’
“천하 정세를 읽지 못했으면 호검문은 진작에 현판을 떼었을 것이야. 여태 살아남아 그 정도 성취를 이룬 것은 칭찬할 만 하다만 아직 내게 검을 들이댈 정도는 아니구나. 게다가 이곳은 피를 보기 부담스러운 곳이야. 복수하고 싶다면 언제든 절강으로 찾아와.”
말을 마치며 정회를 스쳐 지나가는 진수상.
‘맞는 말이군. 모습을 감춘 용이 있었어.’
너무나 당당한 진수상의 말과 행동에 분을 눌러 참고 있던 정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미 어제 대례를 올리는 현장에서 진수상을 발견했던 정회였다.
하지만 경사가 있는 날 칼부림을 일으킬 수 없어 죽을힘을 다해 참았다.
겨우 마주한 죽여야 할 상대였다.
하지만 아무리 보아도 자신의 상대가 아니었다. 지난 세월 미친 듯이 수련에 매진했는데 상대는 자신의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벌써 훨훨 날아가 있었다.
“사파의 개가 되었으면 개처럼 살아. 네 부모 형제처럼 개죽음당하지 말고.”
지나치며 흘리듯 말하는 진수상.
‘저놈 봐라.’
연수의 눈매가 좁아졌다.
기어코 참지 못하고 검을 뽑는 정회.
-캉!
진수상은 기다렸다는 듯 몸을 돌리며 수강으로 검을 막고 정회를 향해 일장을 뻗어냈다.
-화아아!
일장에 정회를 때려죽일 심산으로 내심 내력을 끌어올렸던 진수상의 장력이 정회의 몸에 닿지 못하고 사그라졌다.
-툭.
결국, 모든 기운이 사라지고 힘없는 손바닥으로 정회의 가슴을 툭 밀어친 진수상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
“누구십니까?!”
“나다 이 십새끼야.”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연수.
연수를 발견한 진수상의 한쪽 눈꼬리가 심하게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