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195화 (195/202)

# 195화

연수의 혼인 날짜 사흘 전 혈개문의 문지기들은 어느 때보다도 바쁘며 긴장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덕창의 저잣거리나 돌아다니며 상인들의 돈을 뜯고 여기저기 염왕채를 받으러 다니며 민초들의 피를 빨던 그들이 지금은 무림의 내로라하는 고수들을 접객하고 걸러내고 있으니 긴장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 그러니까 저는 섬서의 협검문의 문주인데, 배첩을 따로 받지는 못했습니다만, 혈개문의 큰 경사를 축하하고자 이리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부디 경사에 참여해 축복할 수 있도록 좀···.”

협검문이라면 섬서에서는 제법 이름이 나 있던 정파였다.

특히나 한중 현에서는 흑도 무리의 뿌리를 뽑아 민초들의 큰 존경을 받는 문파였다. 당연히 흑도 출신인 혈개문 무사들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문파였다.

평소와 다르게 정문에는 여섯 명의 무사들이 나와 있었는데, 그 무사들은 일제히 뒤를 바라보았다.

문지기 무사들의 뒤로 앉아서 접객명부를 작성하던 돌쇠는 잔뜩 긴장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무사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사들의 시선을 따라 돌쇠를 발견한 협검문의 문주는 얼른 돌쇠의 옆으로 움직이며 입을 열었다.

“혹시, 혈개문의···?”

“총관이오.”

“아! 초, 총관님이셨군요. 저는···.”

“압니다. 협검문 문주 되시는 일검일협 조일평 대협.”

“아이고, 대협이라니···. 졸명일 뿐인데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이 선물은···.”

“축하 선물은 안에 들어가셔서 부총관에게 맡기시면 됩니다.”

“아, 예.”

공손히 허리를 숙이는 조일평을 슬쩍 보며 앉은 채로 고개를 끄덕여 조일평을 들여보내는 돌쇠.

문지기 무사들은 그런 돌쇠를 존경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뭣들 해? 손님들 줄 안 보여? 빨리빨리 처리해야지! 해질 때까지 손님들 세워둘래?”

“아, 옛!”

혈개문 앞으로 쭉 줄을 선 무인들의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었다.

그런 줄들을 제치고 몰려오는 사십여 명의 무인들.

돌쇠는 힐끔 그들을 보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며 달려나갔다.

“성주님을 뵙습니다!”

무릎을 꿇으며 대차게 외치는 돌쇠의 뒤로 여섯 문지기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오, 석 층관. 오랜만이군. 좋은 일로 이리 얼굴을 보니 반가워.”

마차 위 달아놓은 가마에서 뛰어내려 철제 의족을 철그렁거리며 다가와 돌쇠를 일으키는 사황성 성주였다.

“기억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영광은 무슨. 새신랑 될 사람은 안에 있는가?”

“예. 드시지요. 거기 너! 태상문주님의 거처와 접객원으로 안내해 드리거라.”

“옛! 안내하겠습니다. 안으로···.”

지목받은 무사가 벌떡 일어서며 우렁차게 대답하고는 사황성의 무인들을 데려갔다.

혈개문이 손님들의 접객과 혼사준비로 분주할 때 덕창으로 모이는 수많은 무인 무리 속에 섞여 같이 덕창으로 들어오는 무인들이 있었다.

깊은 삿갓으로 얼굴을 전부 가리고 피처럼 검붉은 무복을 입은 아홉 명의 무인들.

그 주변의 무인들은 예사롭지 않은 흉흉한 기운을 퍼트리며 얼굴을 가린 그 무인들을 경계했다.

평소 같으면 이 흉흉한 기세만으로 검을 뽑아 들고 그들을 막아 세웠을 무인들이 많았지만, 덕창에서 소란을 일으킬 수는 없었기에 그저 그들을 유심히 살피기만 했다.

덕창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아홉 무인.

덕창 현령의 사택 별채에 모여있는 일련의 남자들.

하나같이 수염이 없이 허연 얼굴에 선이 고운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방금 덕창으로 들어왔다 연통이 왔습니다.”

“기억하거라. 수많은 중원 고수가 다 모이는 자리다. 자칫 자충수가 될지도 몰라. 혼례가 끝나고 삼일이다. 덕창에 모여든 야인들이 모두 빠져나갈 때까지 절대 문제 일으키지 말고 가만히 박혀 있으라고 해.”

“예. 그들 또한 이 일에 사활을 걸었으니 사소한 문제를 일으켜 일을 그르치진 않을 겁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잠시 주변의 남자들을 둘러보고는 찻잔을 드는 젊은 미남자.

그의 얼굴에 번들거리며 퍼져 나가는 살기 어린 미소.

그런 남자에게 밖에서 급히 들어온 수하로 보이는 남자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야?”

“그, 그것이···. 금위위쪽에서 폐하께 소식을 전한 것 같습니다.”

-쾅!

탁자를 내려치는 미남자.

그대로 찻잔과 탁자가 잘게 부서지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감히···. 폐하께 동창의 일을 직보했단 말이지.”

불안한 표정을 하고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사내.

“예···.”

“이번 일만 잘 끝내고 폐하를 뵈어야겠다. 모두 들어라. 오만한 무림의 야인이 역심을 품었고, 우리는 그를 처단했을 뿐이다. 혹여 동창에서 다른 말이 나올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충!

“걱정하지 마십시오. 감히 이 자리에 경 공공의 명을 어길 어리석은 인물은 없습니다.”

“그래야 할 것이야. 벌써 금위위가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했어. 이번 일이 끝나면 싹 물을 갈아야 하겠어.”

이를 갈며 자리에서 일어서는 미남자.

*     *     *

“오랜만에 이리 보니 좋네요.”

“그러게. 그러니까 좀 자주 들러. 이제 자네가 없다고 혈개문을 함부로 건들 수 있는 종자들은 없으니.”

“저도 나이가 먹는지 이제는 어딜 나가는 게 싫더라고요.”

“크크크, 저리 이쁜 새색시가 이곳에 있는데, 나 같아도 밖으로 돌기 싫겠어. 그래도 자주 들러줘. 요즘 자네가 통 오질 않으니 밑에 놈들도 말을 안 듣는 것 같고, 홀대당하는 느낌도 들고···.”

“거짓말도 가려 하세요. 퍽이나 가신들이 그 꼴을 두고 보겠습니다.”

“그러니까 느낌이 그렇다는 말이지. 혈개문도 이제 성의 가문이 되었는데, 자주 들러서 성의 일에 관여도 하고 해야 성내에 영향력도 생길 것 아니야?”

“그런 건 혈개문 문주가 해야 할 일이죠. 제가 할 일은 아니잖아요.”

“허허, 이 친구 고집도···. 내가 자주 좀 보고 싶어서 그래. 비령곡의 비참한 놈들 얼굴도 좀 보고 그러면 얼마나 좋아?”

연수가 대답을 하려는데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며 연수를 향해 하얀 물체를 던지는 인형.

턱.

“오랜만입니다.”

날아오던 술병을 받아든 연수가 말하니 멀끔한 얼굴로 밝게 웃으며 다가오는 강진후.

“자네 덕에 술 먹을 구실이 생겨 좋구먼.”

“그리 술을 좋아하는 분이, 그간 술을 멀리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단명의 운명을 자네 덕에 벗어났는데, 급히 즐기며 살 필요가 없겠더라고.”

“그렇지 않아도 한번 찾아뵐 요량이었어요. 받으세요.”

-쐐애액!

연수의 손끝에서 뭉툭한 물체가 쏘아지자 눈을 부릅뜨며 손을 뻗는 강진후.

머리로 날아오던 물체가 강진후의 손에서 시작된 흡인력에 궤도가 바뀌며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물체를 잡아들고도 해소되지 않은 힘이 적지 않아 강진후는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팽그르르 돌아 그 힘을 겨우 흘려보냈다.

연수를 보며 피식 웃는 강진후.

“하여튼 작은 것 하나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군. 받은 대로 돌려주려는 그 버릇은. 이제 그쯤 되었으면 변해도 좋을 텐데.”

“사람이 쉽게 변하겠습니까?”

입을 열려다가 강진후는 손에서 느껴지는 한기에 손을 내려다보았다.

검지 한 마디 만한 하얀 물체. 그 물체에서는 금방이라도 손을 얼릴듯한 한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몸에 지니고 있으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에요. 귀한 겁니다.”

마교의 암주 거처에서 잘라왔던 만년한옥의 일부분이었다.

총 여섯 조각을 내어 소개와 공숙, 도화, 그리고 미여에게 주고서 두 개 남은 조각 중 자신의 것을 제외하면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이었다.

“혹시 이건···?”

“예. 만년한옥이에요. 여전히 이종의 진기를 완벽하게 몸에 갈무리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도 그걸 지니면 어느 정도 도움은 줄 거에요.”

“내 것은 없나?”

진심으로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황성주.

“성주님이 이것이 왜 필요해요. 이제는 내력의 양보다는 깨달음을 얻으셔야죠.”

“그런 자네는 목에 그걸 왜 걸고 있는······.”

“큼큼! 그보다 성주님은 혼인 안 하십니까?”

말을 돌리는 연수를 잠시 바라보던 성주는 고개를 저었다.

“할 일이 많으니 하늘을 볼 새가 없군.”

“중매서겠다는 가신들은 없습니까?”

연수의 물음에 강진후가 껄껄 웃으며 끼어들었다.

“감히 사황성의 성주에게 함부로 중매를 설 수나 있겠어? 특히나 가신들은 더 그래. 괜히 혈연으로 줄을 엮는다. 오해를 사지는 안을까 조심스럽지.”

“그렇군요.”

“그런데 웬 철없는 여인 하나가 그런 와중에 성주님에게 구애하고 있지.”

“예? 누가요?”

“철목 가주의 손녀. 그 맹랑하고 철없는 아가씨가 성주님에게 반해 시집을 가겠다고 떼를 쓰고 있지. 철목 가주도 말리지 못해 두 손을 다 들었다나? 크크큭”

“그게 그리도 재미있습니까?”

성주의 불편한 음성에도 강진후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재미있고말고. 사황성의 성주에게 시집가겠다 떼를 쓰는 그 철없는 아가씨는 보고 있기만 해도 유쾌해. 천하에 거칠 게 없는 철목 가주가 쩔쩔매는 그 모습이 얼마나 웃기던지 크크크”

“처, 철목 가주님의 손녀라···. 혹시 철목 가주님과 많이 닮았나요?”

“빼다 박았지. 그 어두운 피부색이며 무공의 특색이며 성질머리까지. 아주 완벽히 빼다 박았어.”

“그, 그래요? 자, 잘되었네요.”

연수의 말에 성주는 눈을 부릅뜨며 연수를 노려보았다.

“철없는 여인의 투정이야. 잘 될 일이 뭐가 있다고.”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자지러지게 웃는 강진후.

그런 두 사람을 잠시 살피던 연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 나온 김에 가 보죠. 접객원에 계시죠? 가서 오랜만에 인사는 해야죠.”

바쁜 만큼 빠르게 시간이 흘렀다.

혈개문에 중원 무림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모였다.

당연히 그들과 연줄을 쌓고 싶은 수많은 무인이 모인 것 또한 당연했다.

그렇게 혼사 전날 밤.

늦은 밤임에도 혈개문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큰 축제의 전야제처럼 수많은 사람이 기분 좋게 웃으며 떠드는 소리가 혈개문을 가득 채웠다.

“덕분에 저희 셋째 아들놈이 큰 진전을 이뤘으니 이 모두 적영대장의 은혜지요.”

“어딜 귀하의 아드님뿐이겠습니까? 저 친구가 여기저기 무공을 많이도 베풀었습니다.”

무공도둑으로 이름이 높았던 장수무투의 앞이었다.

물론 그의 은원은 정사 대회에서 연수가 모두 풀어내었지만 그런 그에게 무공을 지도받아 큰 성취를 얻었다고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이 참으로 어색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 점을 꼬집어 짚을 큰 간을 가진 자는 이 자리에는 없었지만.

연수의 입이 열렸다.

“천하공부출소림이라고 모두 소림에서 받은 무공들이니 받은 만큼 풀어야죠. 여기 소림의 방장님이 계셔서 하는 말이 아니라 소림의 신승 원공 대사님께 정말 큰 은혜를 입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런 손익과 그 배경을 따지지 않고 제게 큰 가르침을 베풀어 주셨으니, 결코 말뿐이 아닙니다. 그런 무공을 인재를 발견해 전하는 것이니까 감사는 소림에 전해 주세요.”

“아미타불. 그리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 대협.”

신승 원공 대사와 인연이 있다는 말에 여기저기서 술렁이기 시작했다.

사실 벗겨 먹은 것이 미안하여 당진원에게 몇 수 알려준 것이 다였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모두 순순히 말할 수 없었던 연수는 최대한 겸손하게 말했다.

정사의 새로운 권력자들이 연수를 중심으로 뭉쳐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친분을 쌓기 시작하니 많은 대화가 이어졌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다들 취기가 오르기 시작하니 술에 만취한 무인들이 큰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때 내 사형제들이 모두 몰살이 되었는데!”

물론 오래지 않아 몇몇 무인들의 눈총에 정신이 번쩍 든 그들은 술이 확 깨어 자리를 떠났다.

“자네 어디의 누구지? 혹여 사천의 무인은 아니겠지?”

“딸꾹! 죄, 죄송합니다. 제가 술이 과해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죄송했습니다.”

그런 자리였다. 아직은 피로 쌓였던 은원이 적지 않은 정 사간의 만남. 그것이 가능한 데에는 오로지 중원의 최고수라는 패신살성의 존재가 있기에 가능했다.

즐거운 듯 긴장 가득한 취기 오르는 밤이 깊어졌다.

“오라버니는 어때?”

도화의 물음에 빈 허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긴 접객으로 조금 피곤해 보이신다, 하십니다.”

“내가 가서 오라버니를 도와야 하는데···.”

“혼사 전날입니다. 얼굴을 보이시지 않는 것이 맞습니다.”

“혹 불미스러운 일은 없어?”

“예. 감히 이곳에서 소란을 일으킬 무인은 들이지 않았을 겁니다.”

옆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잠 못 드는 도화를 지켜보던 정회가 입을 열었다.

“아가씨, 인제 그만 주무셔야지요. 밤이 깊었습니다.”

“잠이 안 오네. 정회야. 네가 좀 나가서 밖을 살펴주면 안 될까? 혹여 오라버니에게 술을 강권하는 분들 때문에 오라버니가 고생할 것 같아.”

“대장님께서 원치 않는데 그분께 뭔가를 강권할 사람은 없습니다. 아가씨.”

“그, 그런가? 그래도···. 걱정스러워서···.”

“겨우 사흘 못 보셨는데 그리도 걱정되세요?”

“하아, 워낙에 바람 같은 분이셔서. 혹여 꼭 쥐고 있지 않으면 언제 날아가 버릴지 알 수 없는 분이셔서.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 걱정되는구나.”

“괜찮습니다. 아가씨. 안심하고 주무세요. 빨리 주무셔야 대장님을 빨리 뵙지 않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빈 허공에 시선을 던지는 도화.

“오라버니를 잘 좀 부탁해.”

“충!”

그렇게 길고 긴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날 해가 뜨기 전부터 분주하게 돌아가는 혈개문.

도화가 그간 머물던 거처에는 아침부터 예단이 들어왔다.

천애 고아인 도화를 위해 무황과 두보는 그녀의 부모를 대신해 예단을 받고 도화에게 덕담과 교훈 될 여러 말을 전해 주었다.

초조한지 혼례복을 입고 안채를 서성이는 연수.

“불안한가 보군.”

옆으로 다가와 빙글 미소짓는 사황 성주.

“긴장되네요.”

“자네 같은 고수도 긴장을 다 하는군.”

“그러네요. 매일 보던 그녀인데, 부인으로 맞이한다 생각하니 떨리네요.”

“이제 아침이야. 저녁에나 되어야 신부를 맞이할 텐데 벌써 그리 긴장하면 저녁엔 몸살이라도 나겠구먼.”

“왜 저녁에 혼례식을 치르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훤한 낮에 치루면 좋을 것을.”

“난들 알겠나? 그리 하는 거라니까 그리 하는 거지. 그만 떨고 가세.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 가서 어제 못다 푼 회포를 풀어야지.”

“그렇게들 마시고 또 마십니까?”

“강 형이 신이 났어. 술 안 마신 지 얼마나 되었다고 내일이 없는 무인처럼 마시고 있어. 빨리 가세. 더 기다리게 했다간 남는 술이 없을 거야.”

“하아, 갑시다.”

*     *     *

같은 시각.

덕창의 어느 밀실에 모여있는 무인들.

“삼 일 남았습니다.”

“그래.”

쇠를 긁는 것 같은 무인들의 목소리.

“유사시에는 저와 막내. 그다음은 둘째 사형과 남은 사형들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대사형은 살아남으셔야 합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현경이 아닌 신선이 온다 해도 버텨내지 못할 것이야. 자그마치 팔만의 목숨으로 쌓은 혈정이다.”

“...예.”

“신경 쓰지 말아라. 우리는 기억되지 못할 초석. 인간임을 포기한 우리다.”

“예.”

다른 생각을 하는 수많은 무인이 모인 덕창의 하루가 그렇게 마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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