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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91화 (191/202)

# 191화

연수는 생기를 찾아가는 원목을 보며 전성을 보냈다.

-대사님. 잠시 이곳에서 기다려 주셔야 하겠습니다. 마무리 짓고 올 일이 있어서요.

고개를 끄덕이는 원목.

연수는 옥을 나서며 쓰러져 있는 젊은 마인을 잠시 바라고는 고개를 저으며 발길을 옮겼다.

천산의 분지를 휩싸는 석봉너머 분지와 석봉을 내려다보듯 거대한 산.

처음 연수가 이곳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뒤져볼 생각도 않았던 그 산으로 발길을 옮기는 연수.

누가 보아도 교주의 거처가 그곳에 있음을 두 번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높은 높이만큼 고고하게 분지에서 떨어져 있는 산의 중턱에 올라서면서부터 은신을 풀고 여유 있게 걷는 연수,

뒷짐을 지고 천산의 방대한 주변 풍경을 돌아보며 걷는 연수의 신형이 한 발자국에 스무 장씩 미끄러지듯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잠시 산을 오르다 보니 큰 대전이 나왔다. 빈 대전을 잠시 둘러본 연수가 발길을 옮기려는데 연수의 발길이 닿으려는 청석 바닥이 깨져 나갔다.

파팟!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청석 조각이 튀어 올랐다.

“이곳의 주인과 약속이 돼 있어.”

다시금 발길을 옮기려는데 주변을 압박하는 듯한 무거운 공기가 사방을 옥죄어왔다.

어찌나 그 기세가 무거웠던지 사방 청석이 갈라지고 큰 대전을 받치고 있는 기둥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대들이 나설 자리가 아니래도.”

빈 허공에 말을 던져보았지만, 주변을 누르는 기세만 더 무거워질 뿐 도무지 대답이 들려오질 않자 연수는 고개를 젓고는 발을 뻗었다.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주변을 장악하듯 옥죄어 오는 기운 전체가 따라 움직이며 주위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퍼서석! 파팟! 퍼석!

대전을 빠져나갈 때쯤은 대전이 마치 무너질 듯 흔들리며 엉망이 되었다.

그대로 계속 발걸음을 옮기는 연수.

거석이 깨어져 나가며 주저앉을 정도의 압력 속을 유유히 산책하듯 가볍게 걷던 연수의 발걸음이 멈췄다.

십여 장 앞 장원을 등지고 계단 위에서 연수를 내려다보는 젊은 무인.

걸음을 멈춰선 연수가 그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이곳의 주인과 약속이 되어있는데. 이리 막지 않았으면 좋겠군. 마치 내가 억지를 부리는 것 같잖아?”

“자네 같은 사람을 막고 주인을 보호하는 게 우리의 일이라서.”

“주인의 손님에게 불손한 건 주인을 무는 개만큼 효용 가치가 없는 일이야.”

연수의 말에 젊은 무인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듣던 것과 매우 다르군.”

“나에 대해 잘못 듣고 있었던 것 같군.”

“그렇게나 오만할 만큼 자네가 대단하다. 들은 기억은 없는데. 이곳은 철인들이 철혈의 규칙으로 살아가는 천산이야.”

“그리고 나는 사파인이지. 남의 집 규칙 따위 중히 여겨본 적 없어.”

“크크크, 혓바닥 하나는 살아 있다 하더니 그 소문은 맞았구나.”

“쓸데없는 소리 하고 싶지 않아. 그대들 주인이 날 막아서라 명했다고 내가 오해라도 하면 곤란해지는 것은 그대들 주인이 될 거야.”

“어린놈이 예를 모르는구나. 그깟 암주를 꺾고 나니 이 천산이 만만히 보이더냐?”

한숨을 내쉬고는 발길을 옮겨 젊은 무인에게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연수.

-꽈르르릉!

소리와 함께 주변 공간이 흔들리는 듯 범상치 않은 반발력이 느껴졌다.

연수가 여섯 걸음을 옮기자 빈 허공에서 피 분수를 뿜으며 마인 하나가 가슴을 부여잡고 튀어나와 쓰러졌다.

아직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젊은 마인과 거리가 겨우 열한 계단 남아 있었다.

그대로 열 걸음을 옮기자 주위 사방에서 수십 명의 마인들이 피를 토하며 허공 밖으로 토해졌다.

모두 연수를 죽을 듯 노려보면서도 신형을 일으킬 기력이 없는지 신형을 세우지 못했다.

겨우 계단 하나를 놓고 마주 보고 있는 젊은 마인과 연수.

“호법원을 상하게 했으니 지금부터는 교주님과 신교를 적대하는 적으로 간주하지.”

“그래도 상관은 없는데···.”

-쐐액!

연수의 말을 끊으며 한 척 거리에서 검을 뽑은 젊은 마인.

그의 검을 뽑는 움직임이 얼마나 빠르고 자연스러웠는지 그가 검을 뽑고 나서야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수를 양단할 듯 연수의 정수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마인의 검.

그의 검을 중심으로 마치 주변의 공기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어코 연수의 정수리부터 가랑이까지 베어버리는 젊은 마인.

‘감각이 없다. 잔상?’

이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목에 닿는 차가운 예기.

순간 온몸의 소름이 끼치며 마인은 한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후아아아아

뒤늦게 젊은 마인의 일 검이 불러온 바람이 마인의 목에 곡월을 들이대고 있는 연수와 그대로 굳은 젊은 마인을 거칠게 훑고 지나갔다.

휘날리는 머리를 넘기며 끊겼던 말을 잇는 연수.

“내 적들 중 아직까지 살아 있는 사람은 없어. 괜찮겠어?”

-꿀꺽.

“더 다가오지 않는 게 좋아. 은신이라면 나도 어디 가서 지지는 않아. 초절정 고수 여섯과 입신경의 고수 하나를 더 잃으면 너희들의 주인이 몹시 슬퍼할 것 같은데.”

연수와 젊은 마인의 주변을 돌며 다가오던 여섯 기운이 멈칫하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는 말을 참 잘하는 것 같던데. 이제 그대의 결정이 남았어. 날 적으로 여기고 명예롭게 죽겠어? 아니면 날 그대들 주인의 손님으로 인정하고 불명예스럽게 연명하겠어?”

젊은 마인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악물고 있던 입을 벌리며 뭐라 말을 하려는 순간 주변으로 전성이 울려 퍼졌다.

-애들 그만 괴롭히고 들어오지.

땀을 잔뜩 흘리며 굳어있는 젊은 마인을 내려다보던 연수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 자꾸 생각이 많아지게 만드는군. 당신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야.

전성을 끝마친 연수의 곡월이 젊은 마인의 목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연수의 손에 힘이 들어갈수록 점점 깊게 파고드는 곡월.

-자신감이 가득 차 있는 아이들의 아집이 지나쳤다. 정도로 끝내는 게 어때?

“쩝.”

입맛을 다시며 손을 거두는 연수.

그 순간 젊은 마인은 눈을 부릅뜨며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본 듯 눈을 비볐다.

조금 전까지 자신의 목줄기를 끊어 놓을 듯하던 기형단검이 거둬지는 순간이 보이질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곡월이 보이질 않았다.

상대가 사파의 암수검이라는 쓸데없는 눈속임을 자주 쓴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설마하니 자신의 눈마저 속일 만큼 대단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한 적이 없었다.

-툭툭.

“앞으로는 조심해. 나는 뒤끝이 긴 사람이야.”

자신의 어깨를 툭툭 치고 경고하며 지나가는 패신살성에 의해 젊은 마인은 온몸에 소름이 올라왔다.

만약 저 손이 장난을 부렸다면 자신의 어깨나 목을 꿰뚫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계속해서 자신의 목에서 거둬지는 손을 떠올리던 젊은 마인이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쿠웨엑!”

마인을 지나쳐 가던 연수가 피를 토하는 소리에 슬쩍 돌아 마인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옮겼다.

호법원 건물을 지나쳐 넘어가자 흑색 거성 앞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흑색 무복을 입은 교주가 보였다.

단 한걸음으로 그런 교주의 옆으로 늘어지듯 이동한 연수.

“저번에도 느낀 것인데 참 직위에 어울리지 않는 옷차림이야.”

“클클, 왜? 이쯤 되면 화려한 장포라도 걸치고 있어야 할까 봐?”

“암주는 딱 그런 차림이더군.”

“그는 항상 겉모습을 중히 여겼어. 그의 마지막은 어땠지?”

“훌륭한 무인이었어.”

“다행이군.”

나란히 서서 저 멀리 지는 해를 바라보는 연수와 교주.

“대체 무슨 꿍꿍이였지? 어째서 내 손을 빌린 거냐 이 말이야.”

연수의 질문에 잠시 지는 노을에 빠져 있던 교주의 입이 열렸다.

“그것에 대한 것이라면 진작에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그런 개소리는 믿어줄 생각이 없어.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

교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군. 대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지만 내 앞에서 당당할 만큼 상황이 변한 것 같긴 하군. 고금을 통틀어 다섯 손가락 안에 셀 수 있을 만큼 도달한 자가 적다는 경지가 이리 쉬운 경지였던가? 의심이 들 정도야.”

“그래서. 말해 봐.”

“사실을 말하자면 간단해. 명분이 필요했을 뿐이야. 혹시 천산을 고깝게 보고 있을 북경에 암주의 목이 떨어지는 것을 보여줘야 했으니까. 또한, 중원의 유일한 절대자라는 네가 없어진다면 중원 무림이 또 피 터지게 싸워줄 거로 생각했지. 너는 암주의 손에 죽고, 나는 암주를 죽이고. 암주와 네가 싸우다 죽었다고 중원에 흘리며 여러 핑계를 대고 한 이십 년쯤 봉문을 선언하면 또 금방 죽자고 싸울 중원 무림이 훤히 그려졌거든. 그럼 황궁의 눈도 시끄러운 너희 중원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했어.”

너무나 담백하게 속내를 털어놓는 교주였다.

상대만큼이나 담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연수.

“결국, 날 살려 보낼 생각이 없었군.”

“암주와 부딪히면 절대 살아나갈 수가 없다고 생각했지.”

“만약 그 상황에서 내가 암주를 꺾었다면.”

“자네가 괴롭히던 아이들 손에 죽었겠지.”

“과연. 그랬군.”

고개를 끄덕이는 교주.

“그러했지.”

“아쉽겠어.”

“아쉽지. 아쉽고말고.”

순간 연수의 두 눈에 강렬한 기운이 맴돌았다.

“어때? 비슷한 경지의 무인끼리 모든 걸 걸고 싸우는 것은 아주 유익한 경험이 되던데···. 당신 정도면 지금의 내게 딱 맞는 호적수야.”

전의를 불태우는 연수와 다르게 고개를 젓는 교주.

“내 어깨에 걸린 목숨이 많아. 그런 모험을 할 처지가 못돼.”

“내가 그냥 떠날 생각이 없다면? 어쨌든 이 일의 대가는 받아야 나도 떠날 수 있지 않겠어?”

“자신만만하군. 나와 저 밑에 아이들을 상대로 자신 있나?”

교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피를 토하며 굴욕을 당했던 마인과 여섯 초절정의 마인들이 나타났다.

“천하의 마교 교주가 이리 약한 모습을 다 보이는군.”

“말했듯이 내 어깨에 걸린 목숨이 많아.”

연수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김 새는군. 대가는 원목 대사의 신변으로 받아가겠어.”

그 말에 교주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원목 대사? 땡중을 잡아 가둔 기억은 없는데.”

그 말에 연수가 멈칫하며 물었다.

“소림의 원목 대사가 역천의 주인인지 뭔지 하는 마인들과 갇혀있는 걸 직접 보았는데?”

“무슨 소릴 하는 거지? 그곳엔···. 혈괴불이···.”

“!!!”

연수는 눈을 부릅뜨며 교주를 바라보았다.

교주 역시 그런 연수를 바라보았다.

“혈괴불이 누구지?”

“중원에서는 혈승마불이라고 불렸었던가? 중원에서 공적으로 몰린 후 신교에 입교하여 신녀를 모욕하여 뇌옥에 갇힌 자. 신녀를 모욕하는 죄인으로 무공을 폐하고 죽음보다 괴로운 삶을 강요받은 자.”

연수는 잠시 교주의 눈치를 보고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것인데···. 그 혈괴불이란 양반, 혀를···.”

“잘렸지. 그 입으로 신녀를 욕보였으니 당연히.”

“혹시 말이야. 그 양반 무공을 되찾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단순히 단전을 깨버린 것이 아니야. 달궈진 쇠꼬챙이에 단전을 꿰여 완전히 그 단전을 헤집어 놓았어.”

“그러니까 혹시라고 말하잖아.”

“글쎄. 원체 정신이 불완전한 놈이라 무슨 짓을 할지 나도 모르겠군.”

“...그럼 나는 이만 가 보지.”

교주는 찝찝한 눈으로 연수의 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저 젊은 무인을 붙잡고 따져 물을 힘이 부족했다.

교주의 거처를 벗어난 연수는 경공을 최대로 발휘하며 뇌옥으로 향했다.

혼란스러운 연수의 머릿속이 도무지 정리되지 않았다.

‘대체 정체가 뭐길래···. 원목? 혈괴불? 혈승마불?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만약 그 불심 깊어 보이던 노인이 진정 마인 이였다면 어째서 자신을 그대로 두고 보았던 것인지, 그가 어째서 원자 배의 원목 행세를 한 것인지, 두 가지 의문이 도무지 풀리지 않았다.

그가 만약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얼마든지 자신을 해칠 기회가 있었다.

운기 중 위험한 고비를 그의 앞에서 두 번이나 겪었고, 그 앞에서 요상공을 운기 한 나날이 열흘이 넘었다.

힘없는 그 노구로도 얼마든지 자신을 크게 상하게 할 수 있었던 그였다.

혼란스러운 연수의 신형이 허공을 박차며 날아 뇌옥으로 들어섰다.

뇌옥에 들어서기 무섭게 안으로 들어서는 연수.

내심 이미 그 노인이 자리에 없을 것이란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깊숙한 옥으로 들어서니 아직 수혈이 짚여 깊게 잠들어 있는 벌거벗은 젊은 마인과 죄수들.

그리고 끝에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고 있는 정체불명의 괴노인.

연수가 그의 앞에 서자 노인의 두 눈이 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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