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185화 (185/202)

# 185화

둔감한 감각과 함께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

덕분에 생각한 것 보다 뒤로 물러서는 반응이 훨씬 늦게 되었다.

바늘에 찔리는 순간부터 이미 독기를 누르며 기운을 쏟아붓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비가 진행되어 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앞에 있는 적은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이런 상태로 호락호락 이길 수 없는 적이었다.

‘젠장!’

-콰콰쾅!

강효각의 상태를 놓치지 않고 있던 연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쏟아지는 강공.

연수의 강공에도 강효각은 그 막대한 내력을 쏟아부으며 버텨냈다.

강효각이 수세에 밀리는 듯 보이자 잠시 지켜보고 있던 호위들이 뛰어들기 시작했다.

달려드는 호위들의 기척을 느끼며 연수는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한 수면 되었다. 단 한 수.

하지만 강효각은 산공독까지 당한 상태로도 어마어마한 내력을 쏟아내며 시커먼 팔을 휘둘러 연수를 밀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목과 심장 그 외에 사혈을 철저히 방어하던 강효각의 어깨와 다리에서 피가 튀어 올랐지만 강효각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목숨을 위협하는 공격들만 막아내었다.

-콰차차차창!

또 한 번의 무식한 장력이 굉음과 함께 퍼부어졌다.

순전히 연수를 밀어내려는 의도가 다분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 의도를 알고 있는 연수는 곡월을 휘두르며 밀려나지 않고 버티어 냈다.

그런 연수의 몰골 또한 썩 좋진 못했다.

그리고 연수를 향해 검을 뻗어내는 호위들.

‘쳇!’

저 호위들이 다가오기 전에 어떻게든 강효각의 목을 벴어야만 했다.

연수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바삐 신형을 움직였다.

-까깡! 서걱!

제일 먼저 검을 들이밀던 고수의 검을 막아내며 목을 베어내려 했던 연수.

하지만 만만치 않은 호위는 겨우 왼팔 하나를 내어주고 물러섰다.

-카카카캉! 까캉!

연수는 찰나의 순간에 서슴없이 왼팔을 희생하며 몸을 빼내는 호위의 판단에 혀를 내둘렀다.

그가 물러서기 무섭게 날아드는 검들을 쳐내며 맞공격을 펼치는 연수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차륜전의 양상이 되면 시간이 끌리고 마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경계를 했지만 이미 전황은 그리되어가고 있었다.

호위들의 검술은 중원의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혼연일체의 살검. 기어코 적을 죽이고 말겠다는 의지로 똘똘 뭉친듯한 그들의 검은 한 푼의 불필요한 동작도 없이 모든 초식이 살초로 이루어져 있었다.

거기다 특별한 진을 짜고 있지 않은 듯 보이지만 철저히 강효각에 닿을 길을 막고 있는 그들의 움직임은 호위로서는 최고라 할 만했다.

-까까깡! 스스슷!

이판사판이었다. 이대로 시간을 끌리고 강효각이 다른 곳으로 몸을 숨기면 이곳에서 강효각을 찾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여 연수는 모든 내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으며 강기공을 퍼부었다.

곡월에 휩싸였던 강기를 돌아가며 차륜의 묘로 막아내던 여섯 호위의 몸이 순식간에 난자되며 나가떨어졌다.

그 꼴을 보고 있던 강효각은 이를 악물었다.

어질어질한 머리와 자꾸만 쳐 올라오는 핏물.

보통 독에 당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대체 저만한 고수가 어디서···.’

자신을 노리는 적이 신교 내에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리 대놓고 암습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은 신교의 암주.

아무리 정적이라 할지라도 이리 대놓고 자객을 보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세상천지에 강기를 쏟아부으며 목표를 죽이는 입신경의 자객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는 강효각이었다.

강호를 통틀어 이제는 겨우 셋밖에 남지 않았다고 알려진 입신경의 경지였다.

‘가만···. 그러고 보니···.’

“패신살성! 이 개자식이구나!”

강효각이 미친 듯 내력을 끌어올리며 연수에게 달려들었다.

중독된 그가 조금 더 주저하길 바라던 연수로서는 그리 달가운 전개는 아니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호위들을 모두 쳐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 넉넉하게 시간을 줄 생각이 강효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떠올렸단 말이지.’

강효각의 양팔을 휘감고 있던 시커먼 기운이 점차 커지며 강효각의 온몸을 휘감는다 싶은 순간 살아남아 있던 호위 스물다섯 명이 막무가내로 연수에게 달려들었다.

검에 막대한 내력을 담아 내던지며 연수를 붙잡고자 사방에서 달려드는 호위들을 보며 연수가 잠시 당황하며 곡월을 휘둘렀다.

막 일곱 명의 목을 떨어트리는 순간.

강효각의 장심에서 어마어마한 장력이 쏟아지며 연수를 비롯한 주변 공간을 휩쓸어 버렸다.

연수는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호위가 장력에 휩싸여 사지가 비틀리며 죽는 꼴을 보면서 이를 악물고 곡월을 교차시켰다.

-콰촤아아콰콰콰쾅!

어마어마한 굉음과 함께 봉우리에 마치 용이 지나간 듯한 흔적이 남으며 뒤로 있던 작은 석산이 날아가 버렸다.

“하아하아···.”

숨을 몰아쉬며 쉴 새 없이 입가로 흐르는 피를 닦아내는 강효각.

중독된 상태에서 막대한 내력을 쏟아내어 기혈이 들끓고 꼬이기 시작하자 독기가 무섭게 날뛰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그가 쓰러지지 않는 것은 그의 내력이 정말이지 방대한 양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웬만한 무림인이었다면 진작에 온몸이 녹아내렸을 극독에 중독되고도 이만한 신위를 보일 수 있는 고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먼지구름이 잦아들자 단검을 교차하고 서 있는 듯 보이는 적의 그림자를 확인한 강효각의 얼굴에 절망감이 떠올랐다.

아끼던 호위들을 희생시키며 가했던 회심의 일격이 막혀 버렸다.

독기를 누르던 모든 내력을 끌어올려 마지막을 불태우려던 강효각의 입매가 뒤틀렸다.

반대로 그런 강효각을 보며 아쉬운 얼굴로 물러서는 연수.

사방에서 무시무시한 기세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여섯 명의 기척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 외에도 여섯 명의 뒤로 어마어마한 수의 마인들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당한 부상이 만만치 않아 이대로 강효각과 싸운다 해도 빠르게 결판을 낼 수 없었던 연수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강효각을 죽이고도 살아서 돌아가야 했기에.

먼지구름과 함께 허공으로 녹아들며 사라지는 연수의 신형.

강효각은 적이 사라지는 허공을 향해 장력을 난사하며 신형을 날렸다.

-콰콰쾅!

하지만 이미 사라진 적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장력이 휩쓸고 간 땅 위에 검은 핏덩어리만이 적이 상처 입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강효각의 주변으로 떨어져 내리는 여섯 명의 마인들.

“대체 무슨 일입니까?”

주변 봉우리의 주인들은 갑자기 터져 나온 어마어마한 굉음에 놀라 달려왔다.

얼마나 놀랐는지 차림들이 그다지 단정치 못한 자들도 있었다.

“경화각주.”

창백한 얼굴로 자신을 부르는 암주를 빤히 바라보며 고개를 숙이는 경화각주라 불린 사내.

“말씀하시지요.”

“패신살성의 용모파기를 구해오시오. 최대한 빨리.”

“예? 아, 알겠습니다.”

경화각주는 먼지구름이 완전히 걷힌 장내에 온몸이 뒤틀려 죽어있는 무인들을 바라보는 암주의 살기 어린 얼굴에 두말하지 않고 물러섰다.

겨우 은신하여 몸을 빼낸 연수는 상당한 위기감에 몰려 있었다.

적진의 한가운데에서 심상치 않은 내상을 입었다.

당장 요상을 해야 할 터인데 이곳에서 자신에게 안전한 곳 따위 있을 리가 없었고, 설사 있다 해도 거기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전신 기혈이 멀쩡한 곳을 찾기 어려울 만큼 상해있는 연수였다.

‘빌어먹을 새끼들이···.’

그 호위들의 죽음을 각오한 물고 늘어짐만 아니었다면 그런 무식한 장력에 맞아줄 이유 따위 눈곱만치도 없었다.

피하고자 한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사방에서 죽자고 달려드는 고수들을 모두 뿌리치고 몸을 빼내다가는 자칫 더 큰 상처를 입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한동안 망설이던 연수는 이를 갈며 신형을 움직였다.

은신을 유지한 채 움직일 때마다 울컥울컥 각혈이 올라왔지만, 꾹 참으며 피를 삼키는 연수.

이미 어마어마한 수의 고수들이 격전이 일어났던 봉우리를 중심으로 수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한 번이라도 꼬리를 잡히면 목숨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일단은 몸을 숨길 곳을 찾아야 하는데···.’

궁리하던 연수의 머릿속으로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 하나.

‘그가 있었구나.’

생각을 마친 연수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였다.

처음 올랐던 석봉의 중간에 있던 뇌옥.

그 안으로 은신하고 들어간 연수의 손끝에서 다섯 줄기의 지풍이 날아갔다.

-투투투투툭.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는 두 명과 아직 잠들어 있던 세 명의 죄수들 수혈을 짚은 연수는 좁은 창살을 기이하게 통과하기 시작했다.

-우두두둑! 우둑!

신체를 기묘하게 변형시키며 살벌한 소리와 함께 자신의 옥 안으로 기어들어 오는 연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원목.

“우웩!”

들어오자마자 원목의 오물통에 피를 토해내는 연수.

“설명해 드릴 시간이 없습니다. 큰 상처를 입어 요상을 해야 하는데 갈 곳이 마땅찮아 왔습니다.”

슥슥 소리를 내며 바닥에 글을 쓰는 원목.

-보전.

“아니 대사님. 이런 급박한 순간에도 그리···.”

순간 연수의 말이 끊겼다.

입을 크게 벌리는 원목의 혀가 깊게 잘려있었다.

“험한 꼴을 당하셨군요. 혹 식사를 넣어주는 젊은 마인이 오늘 왔다 갔습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원목.

“하면 오늘은 또 오지 않습니까?”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원목을 보며 연수는 구석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하면 요상 좀 하겠습니다. 저놈들은 오늘은 푹 잘 터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을 마치고 두 눈을 감으며 요상을 시작하는 연수.

원목은 잠시 그런 연수를 바라보고는 두 눈을 감았다.

수생목의 기운으로 요상을 시작하는 연수.

최대한 적은 기운으로 기척을 죽이며 요상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치유하는 시간이 적잖게 들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겠구나.’

요상을 하는 내내 머리가 아픈 연수였다.

무엇보다 큰 걱정은 암주를 찾아내는 일이었다.

그나마 암습으로 중독까지 시키고 큰 부상을 입힌 상태에서 싸웠는데도 만만치 않은 그였다. 그런 놈이 몸을 숨기고 회복하고 있을 것은 당연했다.

부상과 중독을 모두 치료하고 경계심이 강해진 놈을 상대로 싸울 생각을 하니 절로 골치가 아파지는 연수였다.

게다가 이곳은 마교의 본진이었다.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연수는 자신을 끌어들인 교주의 욕을 하며 요상을 계속했다.

급한 대로 주요 기맥들을 치료하는 데만 두 시진이 꼬박 소요되었다.

요상을 끝내고 눈을 뜨니 원목이 작은 나무그릇에 담긴 물을 내밀었다.

목이 타서 단숨에 들이킨 연수.

“더 없습니까?”

원목은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보니 젊은 마인이 음식은 주는 것 같은데 물을 주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연수의 의문을 알아차렸는지 원목이 한쪽 구석을 손짓했다.

아주 작은 틈에서 조금씩 새어 나오는 물.

그곳에 나무그릇을 갖다 대니 한 방울씩 흘러나온 물이 그릇에 쌓이기 시작한다.

자신이 마신 물이 온종일 받아낸 물임을 알아챈 연수가 미안한 표정으로 원목을 보니 원목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원목을 보는 연수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막 연수가 뭐라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며 은신해 버리자 원목은 빠르게 돌아앉으며 두 눈을 감고 평소와 같은 자세로 돌아갔다.

그런 굴 안으로 들어오는 젊은 마인.

“하 참,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지들이 뒤져보던지 여기 한번 올라오는 게 그리 쉬워 보이나? 지들은 경공도 뛰어나니 쉽겠지. 빌어먹을 새끼들. 뇌옥에 숨긴 누가 숨는다고···.”

구시렁거리며 들어온 젊은 마인은 횃불을 비춰보며 뇌옥 안을 샅샅이 살폈다.

원목의 옥까지 살핀 젊은 마인의 고개가 가로 기울여졌다.

“그런데 이분들은 왜 이리 오래자? 어르신!”

원목의 옆 옥에 누워 있는 죄수를 불러보는 젊은 마인.

그의 눈에는 일말의 걱정이 담겨 있었다.

“으음···. 아니 벌써 하루가 간 거야?”

“어딜 요. 암천각에 자객이 들었다나 어쨌다나 해서 뇌옥을 살펴보라 해서 다시 왔어요.”

“거 오는 김에 뭐라도 좀 가져오지.”

죄수의 말에 젊은 마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번 올라올 때마다 얼마나 힘든데요. 그러게 부족한 내력이라도 좀 채우게 도와주시면···.”

슬쩍 죄수의 눈치를 보며 말하는 젊은 마인.

“큭큭큭, 단애를 오르기 힘들면 경공을 공부해야지. 어째서 내력이 적다 투덜대느냐?”

“뭐 말이 그렇다는 거죠. 그리고 신교의 무공은 하나같이 내력을 크게 소모하잖아요. 뭘 익히든 내력이 넉넉해야 대성한다고들 하던데요?”

젊은 마인의 대꾸에 죄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괜찮은 심공좀 전수해 주세요.”

“글쎄···. 뭐 기름진 음식이라도 좀 가져다준다면 생각이라도 해 보마.”

순간 젊은 마인의 눈에 이채가 띄었다.

“저, 정말요?”

“그래.”

노인의 말에 젊은 마인은 주변을 돌아보고는 품에서 하얀 만두 하나를 옥 안으로 넣었다.

-꿀꺽.

절로 죄수의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먹으려던 건데 일단 드세요. 제가 다음에는 어르신들에게 기름진 음식들 잔뜩 올릴 테니 심공만 전수해 주세요. 그러시면 그 은혜 절대 잊지 않을게요.”

죄수는 이미 만두에 온정신이 팔려있었다.

순식간에 만두를 뱃속으로 집어넣은 죄수는 너무나 아쉬운 표정으로 젊은 마인을 바라보았다.

“더 있으면 드렸죠. 다음에는 닭이라도···.”

“다, 닭을 가져올 수 있겠느냐?”

“물론 쉽지는 않겠죠. 게다가 어르신들 전부를 먹이려면 한두 마리로는 되지도 않으니···.”

젊은 마인의 말에 노인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노력은 해 볼게요. 제가 괜찮은 경공과 심공만 받쳐줘도 그깟 닭이야 수없이 왔다 갔다 하며 가져다드릴 수 있을 텐데···.”

빤히 보이는 젊은 마인의 수에도 고기맛을 본 노인의 고개는 맹렬히 끄덕여졌다.

“다음에 올 때 여기 친구들과 잘 상의해 보마. 그러니 기름진 음식 좀 잘 부탁한다.”

“그럼 제가 한번 힘을 써 보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서둘러 나가는 젊은 마인.

“그런데 대체 언제 잠이 들었더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는 죄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