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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73화 (173/202)

# 173화

천살호의 암습이후 덕창현의 시장은 눈에 띄게 조용해 졌다.

그날이후 휘말려 죽은 사람들의 숫자가 적지 않았기에.

그날의 습격 이후 연수역시 평소와는 조금 다른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거의 하루 중 대부분을 안채에 틀어박혀 명상에 전념을 하며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당연히 무황과 연수의 사부는 그런 연수를 방해하지 않았고, 매일 일이 바쁜 혈개문의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고 있었다.

오로지 미여만 도화를 붙들고 볼멘소리를 할 뿐이었다.

“언니, 아저씨는 매일 방에만 있고, 왜 밖으로 나오질 않아?”

도화는 볼을 씰룩이며 말하는 미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라버니께서는 무인이니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다 땀을 흘리며 무공을 수련하는 걸? 나도 매일 사부님의 잔소리를 들으며 땀을 흘리는데 아저씨만 가만히 앉아서 쉬면서 수련을 하는 게 어디 있어?”

“오호라 명상이 그리 쉽게 보인다는 말이지?”

깜짝.

놀라며 어깨를 흠칫한 미여가 뒤를 올려다보자 공숙이 팔을 걷어붙이는 모습이 미여의 큰 눈에 비쳤다.

“수련시간에 어디를 갔나 했더니 이번엔 여기있었구나.”

“사, 사부님.”

“명상이 그리 쉽게 보인다니 한번 해 보자.”

“그, 그게···.”

공숙의 손에 뒷덜미를 잡혀 대롱대롱 매달려 가는 미여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짓는 도화였다.

‘토의 기운이라. 어떻게 해야 그 기운을 느낄 수 있을까?’

최근 연수에게 가장 큰 화두는 이것이었다.

토의 기운. 토기를 느끼고 품어 중단전에 마지막 기운을 끌어내려 오행을 완성하는 것.

하지만 쉽게 실마리가 잡히질 않았다.

처음에는 감이 도무지 잡히질 않아 땅속에 몸을 파묻을까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삼년의 시간동안 땅속에서 지낸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찌해야 토기를 품을 수 있는 거지?’

아무리 명상을 하며 머리를 굴려보아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실속 없는 궁리의 시간이 계속되길 보름이 지났다.

혈개문으로 들어서는 하오문의 문도.

인상을 잔뜩 굳히고 혈개문의 문주 소개를 찾아온 그는 한참을 소개와 이야기 한 후 물러갔다.

그가 물러가기 무섭게 안채를 찾아온 소개.

“연수야!”

두 눈을 감고 명상 중이던 연수의 눈이 떠졌다.

“무슨 일 났어?”

“그래.”

심상치 않은 소개의 분위기에 연수의 표정이 달라졌다.

“뭐야?”

연수의 앞으로 앉으며 소개가 입을 열었다.

“무림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말에 두 눈을 반짝이는 연수.

“맹주 그 양반이 드디어 돌아왔나 보군.”

“최근 대부분의 맹의 문파들이 이탈한 것은 알고 있지?”

“응.”

“이제 남은 세력이래 봤자 무당과 공동 점창파와 명문 세가 중 팽가와 황보세가 뿐. 그 외에 아직 무림맹을 믿고 있는 군소방파들을 뺀 나머지는 모두 정협맹으로 돌아섰어. 이런 상황에서 무림맹이 남하해서 귀주로 향하고 있다고 해.”

“드디어 시작이구나. 성에는 연락을 했어?”

“전서를 보냈어.”

“맹주 그 늙은이가 무슨 속셈인지···.”

연수가 말을 채 끝내기 전에 안채의 밖에서 시비가 들어오며 입을 열었다.

“태상가주님을 찾는 분이 계십니다.”

“들여.”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방문을 열며 들어서는 무인.

당가의 셋째 아들 당진원이었다.

“오, 오랜만이군.”

“예. 오랜만에 뵙습니다. 지난번의 노고는 다시 한 번 사천의 정파를 대신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정협맹의 시작이 순조로웠습니다.”

“아아. 됐고, 본론만 하지. 앞으로 바빠질 것 같으니.”

“소식을 들으셨나 보군요.”

“무림맹이 남하하고 있다는 건 방금 들었어.”

당진원은 인상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그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맹주의 상태가 심상치가 않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

“무슨 소리야?”

“저희야 대장님의 언질로 맹주 그 사람이 마교와 손을 잡고 마교의 힘을 빌려 폐관에 들어선 걸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번에 맹주가 그 인성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변했다고 들어서 말입니다. 새로이 정협맹에 합류한 이들의 말을 들어보니 그 상태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연수가 의문을 담아 당진원을 바라보자 말을 잇는 당진원.

“맹주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곤륜파 장로의 머리를 발로 밟아 죽이고 맹의 간부들을 모욕했다고 합니다. 그에 대한 반발로 맹주에 관한 소문이 신뢰를 얻으며 정협맹에 대거 이탈문파들이 합류하게 되었고요.”

“그 양반 뭔가 얻긴 얻었나 보군. 그래서 자신만만하게 사황성을 친다?”

심각한 표정으로 연수를 돌아보는 소개.

“연수야, 심상치가 않다. 맹주가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알 수가 없어. 무림맹의 힘을 하나로 모아 사황성과 전쟁을 벌이는 것도 아니고 정파가 분열하는 이때에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하고 적어진 세력으로 사황성을 공격하려는 걸까?”

“패도.”

“응?”

“예?”

소개와 당진원은 연수의 말에 고개를 기울이며 되물었다.

“패도를 걷겠다는 거겠지.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그 정도의 고수가 성격이 변할 정도로 물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사패련을 지웠듯 사황성을 지울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그러고 나면 정협맹을 깨트려 자신의 발밑에 둘 자신도 있다는 거고. 한마디로 패도를 걷겠다는 거지 뭐 다른 생각이 있겠어?”

“마, 말도 안 돼···.”

“그, 그럴 리가요···.”

“그것밖에는 설명이 안 되지. 굳이 자기 세력을 줄여가며 사황성을 향해 공격을 해 오고 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건 힘들어.”

확실히 무림맹주가 어째서 미친 짓을 해서 맹의 주된 세를 이루는 명문들을 쫓아낸 것인지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이거 하나는 확실해 졌어. 이제 그 노친네와의 은원을 정리할 때가 되었다는 것.”

두 눈에 살기를 번들거리며 말하는 연수로 인해 당진원은 잔뜩 긴장한 채 입을 열었다.

“정협맹에서는 어떻게 도와드리면..”

“너희는 신강을 주시해야지. 괜히 너희까지 이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자칫 마교에 중원을 어부지리로 넘겨주는 수가 있어. 가서 확실히 전해. 괜히 끼어들 생각 말고 마교의 움직임을 놓치지 말라고.”

중원을 입에 담는 연수가 당진원의 눈에는 전혀 어색해 보이지가 않았다.

패신살성 고연수라는 무인은 이미 그럴만한 중원무림의 거목이었다.

꿀꺽.

침을 삼킨 당진원은 자신과 비슷한 또래인 연수를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자신의 아비이자 당가의 가주인 당일수의 말이 절로 떠올랐다.

-패신살성은 앞으로의 무림을 이끌어갈 인물이다. 좋건 싫건 그는 절대자로서 군림하게 될 거다. 너를 비롯한 그와 같은 세대의 후지기수들에게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지만.. 절대! 그와 척을 지지 말거라. 그는 원한을 잊는 자가 아니야.

당진원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슬쩍 외면하는 연수.

‘저놈이 눈치를······. 챘나?’

“자! 그러면 일촉즉발의 다급한 상황이니 얼른 돌아가야겠지?”

“아, 예. 전언은 확실히 전해겠습니다.”

“그래, 그래. 바쁠 텐데 얼른 가봐.”

서둘러 당진원을 보낸 연수는 소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가솔들 몽땅 데리고 사황성으로 가야겠다.”

“역시. 그래야겠지?”

“응. 그게 마음이 편해.”

그리 결정을 한 후 혈개문은 바쁘게 움직였다. 적지 않은 가솔들과 무인들이 이제 막 중축이 끝난 커다란 장원을 비워놓고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하느라 바빴다.

*     *     *

“너무 늦는군.”

높이가 족히 일장은 훌쩍 넘고, 금장으로 치장된 화려한 가마에 올라탄 무림맹주 옥현인의 말에 제갈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명문들의 이탈이 있었다지만 아직도 점창과 공동파가 남아있었고, 팽가와 황보세가 역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무림맹의 오천은 족히 되는 대군이 이동을 하고 있었다.

“이만한 수가 이동을 하는데 어쩔 수 없지요.”

대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옥현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리 많은 수가 움직일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군.”

“사황성이 사패련을 흡수하며 그 덩치가 만만치 않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사황성의 토벌을 마치고 곧바로 사천으로 움직여 정협맹을 깨트려야 하니까요.”

“숫자 따위 중요한 게 아니야.”

중원무림에 단 둘뿐인 최고수가 그리 말을 하자 제갈휘는 입을 다물었다.

대답 대신 뒤를 슬쩍 돌아보는 제갈휘.

검붉은 무복에 복면을 한 무인 둘이 제갈휘를 따르고 있었다.

‘고연수. 그 잘난 네 목을 가지러 간다.’

사황성을 멸하고 정협맹을 깨트리면 무림맹의 입지는 중원무림에서 확고해진다.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세가의 살아남은 혈족을 찾아 가문을 다시 세우는 것은 무림맹의 이인자인 자신의 힘이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뒤를 따르는 의문의 고수 둘을 보는 제갈휘의 입이 꽉 다물어졌다.

‘이미 정파의 정기 따위 진흙탕에 빠진지 오래다. 결국 힘이야.’

-으드득!

이를 꽉 다문 제갈휘의 턱에서 이 갈리는 소리가 살벌하게 울려나왔다.

*     *     *

사천 덕창현에서 출발한 혈개문이 귀주의 정안에 도착하자 연수는 저 멀리 보이는 웅장한 사황성을 보며 하얀이를 들어내고 밝게 웃었다.

사황성의 정문을 지키고 있던 문지기들은 혈개문의 등장에 연수에게 허리를 굽히며 예를 다했다.

-적영대장님을 뵙습니다!

“어어, 수고.”

혈개문의 가솔들은 혈개문의 장원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사황성의 그 어마어마한 규모에 휘둥그레 눈을 뜨고는 성을 둘러보며 걸음을 옮겼다.

얼마 가지 않아 저 앞에서 마중을 나오는 몇몇 인영들이 보였다.

뭐가 그리 급한지 불편한 다리로 경공을 발휘하며 연수의 앞으로 날아 내리는 비영.

“연수!”

와락. 연수를 부둥켜안는 비영이었다.

“오랜만이네요. 이래저래 바빠서 이제야 얼굴을 봅니다.”

“그간 고생이 많았다고 들었어. 수고했어!”

“고생은 사황성도 많았다고 들었어요.”

몸을 떼며 연수의 얼굴을 보는 비영.

“자네 덕에 이리 성이 제자리를 찾았어. 뭐라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군.”

“저야말로 도화를 지켜주어 고맙습니다.”

비영의 의족을 보며 연수가 고개를 숙였다.

“언제까지 말만하고 있을 겁니까? 사람들 기다리는데. 들어갑시다!”

화령가주 주염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두 사람은 걸음을 재촉했다.

사황성의 대전으로 이동 하자, 사패일성 강진후와 살화패성 수일지 철목가주 철가군등 사황성의 간부들이 연수의 일행을 맞았다.

“모두 오랜만이네요.”

연수의 말에 모두 한마디씩 인사를 보태며 분위기가 훈훈해 졌다.

“그래서, 무림맹이 남하하고 있다고?”

비영의 말에 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 노친네와의 악연을 정리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연수의 말에 장내에 있는 무인들에게서 살기가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하오문의 정보로는 내일쯤 우리가 출발하면 형산에서는 만날 것 같다더군요.”

“형산이라···.”

중원오악 중 남악 형산.

한때는 형산파라는 명문중의 명문이 그 뛰어난 검법으로 위세를 떨치며 신성시 되던 형산이었다.

하지만 지난 정사대전에서 형산파가 멸문한 이후로는 기괴하고 빼어난 봉우리가 많은 남악의 유명세만 남아있었다.

“무림맹과의 일전을 치르기에는 그만한 장소도 없겠군.”

철가군의 말을 사패일성이 받았다.

“형산의 중봉은 그 넓이를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넓은 공터도 있고, 그 지형도 나쁘지 않습니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비영의 입이 열렸다.

“혹여 매복을 당할 가능성은?”

“남하하여 쳐들어오는 건 저쪽이니 오히려 저쪽에서 걱정할 일이죠. 게다가 현재 그 노친네 반쯤 정신이 나가서 그런 귀찮은 짓을 할 마음도 없을 거예요.”

연수의 말에 비영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맹주 옥현인의 기행에 대해서는 이미 그도 들은바가 있었다.

“좋아. 내일 사황성의 총 전력을 이끌고 형산으로 간다.”

-옛!

우렁찬 대답이 대전을 울렸다.

그날 밤 보름달이 너무도 밝아 마치 대낮처럼 훤히 보이는 연못을 구경하며 도화가 입을 열었다.

“꼭 무사히 돌아오셔야 해요.”

“응. 걱정 마. 더는 혼자두지 않는다고 약조했잖아.”

“그 약속 믿을 거예요.”

“응 믿어.”

“저도 무공을 열심히 익혀 볼걸 그랬어요. 그랬다면 공 언니처럼 함께 전장에서 싸울 수 있었을 텐데..”

연수는 어깨에 슬쩍 머리를 기대는 도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그랬으면 내가 불안해서 제대로 싸울 수 있겠어?”

“그런가요?”

“걱정하지 마. 무사히 이기고 돌아올 테니.”

출전을 하룻밤 남긴 사황성에서 도화는 밝은 달빛을 보며 연수가 무사히 돌아오길 간절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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