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172화 (172/202)

# 172화

외진 막다른 골목 끝에서 굳은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무인을 보며 부곡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무인의 뒤를 몸을 기울여 슬쩍 보았다.

‘패신살성!’

중상을 입은 듯 창백한 얼굴로 가부좌를 틀고 운기중인 패신살성을 보는 순간 부곡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절로 주먹이 쥐어 지며 술기운과 함께 욕망이 끓어오르는 부곡.

저도 모르게 부곡의 발걸음이 연수를 향하고 있었다.

주먹을 꽉 쥐고 다가오는 부곡을 보며 도산은 이를 악물었다.

“더 다가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순간 움찔하며 멈춰서는 부곡.

그제야 욕망과 복수심, 술기운에 가려졌던 이성이 고개를 쳐들었다.

이곳은 덕창이었다. 혈개문에는 쟁쟁한 고수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은 장문인에게 받은 명령이 있었다.

도산을 유심히 살펴보는 부곡.

천천히 도산을 살피다 보니 그의 기세가 아직 경지에 오르지 못한 듯 느껴졌다.

게다가 그의 기운이 그리 강해보이지 않는 것이 부상을 당한건지 곡절이 있어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순간 고개를 쳐들었던 그의 이성이 다시 한 번 마비되기 시작했다.

“아 오해하지 마시오. 나는 종남에서 온······.”

순간 몸을 날리며 도산의 곁을 스쳐지나가는 부곡 그의 주먹에는 잔뜩 끌어 올린 내기가 담겨 있었다.

-퍽!

부곡은 인상을 굳히며 본능적으로 뒤로 몸을 날렸다.

어느새 도산이 채 뻗어지기도 전에 자신의 주먹을 이마로 받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분명 하수로 보았거늘 그 힘이 다 실리지 않았다 해도 자신은 종남신권이었다.

자신의 주먹을 이마로 받고도 머리가 깨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도산이 한수는 있는 무인인 듯 보였다.

골이 울리고 순간적으로 시야가 흐려지며 초점이 잘 맞지 않는다.

도산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수의 앞을 막아서며 상대에게 집중했다.

“너희 정파새끼들은 항상 그딴 식이지.”

씹어뱉듯 내뱉는 도산의 말에 부곡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 그저 저 패신살성에게 인사나 한번 하려던 것뿐인데. 우리의 연이 보통이 아니라서 말이야. 굳이 방해 하지 말아 주었으면 좋겠는데···.”

말을 하던 부곡의 신형이 늘어지듯 도산에게 날아들었다.

생각을 바꿔 하수인 도산을 쓰러트리고 연수에게 손을 쓰기로 한 것이다.

세 번의 주먹질이 온다고 느낀 순간 이미 도산의 몸은 부곡의 주먹에 다섯 번이나 난타를 당했다.

머리와 몸을 순식간에 치고 빠지는 종남신권.

하지만 요혈에 다섯 번이나 권격을 허락하고도 멀쩡히 서서는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도산을 보며 부곡은 일단 물러섰다.

분명 하수가 분명해 보이거늘 저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요혈에 분명 적중했고 타격감이 전해졌는데···.’

부곡은 머리를 가로 기울이며 도산을 살폈다.

연수의 앞을 가로막고는 한 발도 뒤로 물러서지 않은 채 그 앞을 지키고 있는 무인을 보자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어, 얼마나... 운기를 하고 있었을까? 굉음이 난지 시간이 얼마나 지난거지?’

순간 뒤에 가부좌를 틀고 있는 저 패신살성이 금방이라도 일어나 자신의 목을 떨어트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미 기호지세, 한번 호랑이 등에 올라탄 이상 돌아갈 방법은 없었다.

“사형!”

순간 부곡이 움찔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도산의 눈에 절망감이 깃들었다. 한명도 힘든데 두 명이라니.

‘대주님! 빨리 오십시오. 이러다 큰일 납니다.’

도산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도평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저 자들은···.”

도산과 그의 뒤에서 운기중인 연수를 알아본 종남의 일대제자 가수종은 눈을 부릅떴다.

“패, 패신살성···.”

그제야 도산과 부곡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그는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했다.

“사형! 미쳤습니까? 지금 무슨 짓을···.”

“닥쳐! 지금은 네놈과 실랑이를 할 시간이 없다. 저 놈이 일어나기 전에 빨리 끝내야 해. 사파의 기둥이 된 저 놈을 죽이고 정파의 기치를 세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왔어!”

도산을 노려보며 출수를 준비하는 부곡의 팔을 잡아끄는 가수종.

“안됩니다! 사형! 정신 차리세요. 자칫 잘못하면 종남산이 불타오릅니다! 대체···.”

-퍼퍽!

순간적으로 명치와 목을 치는 기습에 말문과 숨통이 막히며 뒤로 물러서 주저앉는 가수종.

“멍청한 놈. 대의도 모르는 병신 같은 새끼!”

말을 마친 부곡은 살벌한 눈빛으로 도산을 노려보았다.

그런 그의 주먹에 기사가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도산은 종남신권의 주먹에 풀려 나오기 시작하는 기사를 보며 이제 막 돌아오기 시작하는 흩어졌던 내기들을 끌어올리고 정신을 바로 새웠다.

‘대장님의 주먹에 비하면 굼뱅이에 불과하다. 대장님의 주먹에 불구하면 솜방망이나 다름없다.’

몸을 날리며 기사에 감긴 주먹을 휘두르는 부곡.

‘어깨’

순간 도산은 왼쪽어깨로 내기를 보내며 오른손을 마주 뻗었다.

부곡의 입매가 차갑게 비틀렸다.

‘주제도 모르고.. 그 어깨 날려주마.’

-퍽! 펑!

분명 기사를 풀어낸 이상 저 무식한 놈의 어깨를 깨끗이 육편의 조각으로 날려 보낼 자신이 있었다.

한데 무슨 조화인지 마치 강철을 때린 듯 반탄력이 느껴지더니 자신의 손목이 힘을 버티지 못하고 탈골되고 말았다.

게다가 옆구리에는 저 무식한 놈의 별 볼일 없는 장력을 허락하기까지 했다.

부곡의 눈에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강권이 안 되면 아까처럼 쾌권으로 가면 그만.’

분명 처음 쾌권으로 공격을 했을 때는 저 무식한 놈이 전혀 반응을 하지 못했었다.

-으득!

탈골된 손목을 맞춘 부곡이 재차 몸을 날렸다.

도산의 주위로 모기처럼 날아들며 빠른 연격을 날리는 부곡.

-퍼퍽! 퍽! 퍼퍼퍽!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처럼 충격이 쌓이기 시작하자 도산은 꼼짝을 하지 못한 채 비틀거리며 매만 맞고 있었다.

부곡은 눈앞에 하수가 전혀 손을 쓰지 못하고 맞기만 하고 있자 점점 신이 났다.

“크크 그러기에 어딜 나설 자리 빠질 자리 구분도 못하고!”

-퍼퍼퍼퍽!

“큭!”

네 번의 연격이 한 곳에 집중되어 타격되자 도산이 크게 비틀거렸다.

이미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만큼 부어있었고, 입가엔 계속해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도 몇 개인가 날아간 지 오래였고, 갈비뼈와 오른쪽 팔과 어깨도 골절되었다.

그런데도 도산은 쓰러지지 않고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런 도산에게 몸을 날리던 부곡이 빙글 돌며 그를 지나쳐 연수를 공격하려 했다.

-덥썩.

도산이 부곡의 공격에 조금의 저항도 못하고 맞기만 했던 제일 큰 이유는 이것이었다.

뒤에 있는 연수. 언제 부곡이 연수를 노릴지 몰랐다.

그래서 도산은 모든 방어와 저항을 포기하고 오로지 부곡의 움직임만 주시하고 있었다. 자신이 맞는 것은 괜찮았다. 하지만 헛손질 한방이라도 운기중인 연수가 맞는 것은 절대 허락할 수 없었다.

자신을 지나쳐 가려는 부곡의 허리춤을 뒤에서 꽉 안고는 바닥으로 구르는 도산.

당연히 도산에게 붙들린 부곡역시 도산과 함께 바닥을 굴렀다.

“놔! 놓으라고! 이 병신 같은 새끼야!”

-퍽퍽퍽!

부곡은 뒤를 잡힌 채 손등으로 도산의 머리를 연신 쳐댔지만 도산은 꿈쩍도 않고 부곡을 놓아주지 않았다.

도산이 연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이 순간 연수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심상 속에서 격정에 휘말리고 있었다.

살비도와 그 살비도에 얇게 기척을 죽인 채 덧씌워져 있던 천살호의 도강.

너무도 은밀한 도강의 기운은 연수의 대맥과 단전을 손상시키고도 몸에 남아 연수를 괴롭히고 있었다.

대맥을 치유하는 중에도 그 남아있는 살비도의 예기와 합쳐진 천살호의 기운은 연수를 죽이기 위해 차갑고 단단한 그 기운 그대로 연수의 대맥에 들러붙어 있었다.

한참을 목의 기운으로 그 기운을 몰아내려던 연수.

‘목기로는 안 돼.’

잠시 멈칫하던 연수의 목의 기운이 잦아들며 화기가 올라왔다.

심하게 상한 대맥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화기를 자칫 잘 못쓰면 오히려 부상이 심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도무지 가시질 않고 자신을 괴롭히는 천살호의 기운을 몰아 내려면 이 방법밖엔 없다고 생각되는 연수였다.

화기가 목의 기운을 타고 오르며 상한 대맥으로 치닫자 선홍빛핏줄기가 연수의 입매로 흘러나왔다.

강렬한 화기가 대맥에 자리 잡은 천살호의 기운을 태우려하자 기가 막힌 일이 벌어졌다.

단단하고 차갑던 그 기운이 연수의 화기와 만나며 녹아 그 기질이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부상의 악화를 각오하고 끌어올린 화기였것만 천살호의 그 기운을 채 태워버리지 못하자 연수는 다급해졌다.

그 순간.

연수의 중단전에 뭉쳐있던 기운이 꿈틀거리며 격전이 치러지고 있는 연수의 대맥으로 흘러내려 왔다.

똬리를 틀고 있던 뱀이 기어내려 와 감싸 안듯 대맥의 천살호의 기운을 감싸 안는 듯한 중단전의 기운.

잠시 후 그 기운이 금기로 탈바꿈되며 연수의 단전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아!’

새로운 기운의 등장에 연수의 단전속이 잠시 소란이 일었고, 네 개의 기운들이 서로 균형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금생수.’

금의 기운은 수의 기운과 상생의 관계에 있다.

‘수생목.’

그리 강해진 수의 기운을 목의 기운과 더하자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강렬한 목의 기운이 탄생했다.

‘이것이 오행신공의 진정한 위력이구나······.’

만약 토의 기운까지 오행을 완성할 경우 상생의 회전이 끝이 없이 이뤄지며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너무나 궁금해지는 연수였다.

금생수, 수생목의 기운이 연수의 몸을 빠르게 휘돌며 상한 대맥과 단전을 순식간에 회복시키는 순간.

이마에 피를 잔뜩 흘리며 부곡과 씨름 중이던 도산도, 그런 도산의 이마를 부셔놓을 듯 두드리던 부곡도 눈을 부릅뜨며 연수를 바라보았다.

연수의 단전에서부터 시작된 따뜻한 빛이 연수의 온 몸을 감싸며 눈부시게 빛났다.

그 따뜻한 빛이 그 기운이 너무나 안락하고 따뜻하여 어머니의 뱃속으로 돌아간 듯 착각이 들 정도의 편안함을 주어 두 사람은 순간 서로의 처지도 잊고 그 빛을 느끼며 멍하니 있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나자 그제야 부곡은 일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사실에 인상을 구겼다.

-퍽!퍽!

이미 깨져 피가 줄줄 흐르는 도산의 이마와 골절된 어깨를 두드리는 부곡.

“놓으라고 이 새끼야!”

도산은 이미 죽음을 각오한 바 이를 악 물고 부곡을 붙들고 놓아주질 않았다.

점차 흐려지는 도산의 시야와는 다르게 꽉 끼어진 도산의 깍지에는 그 힘이 빠지지 않고 있었다.

“종남은 끝내 그런 선택을 했구나.”

“···.”

부곡은 지금 이 순간 저승사자를 앞에 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어느새 일어나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연수.

그런 연수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남아있던 술기운과 이성을 가리던 감정들이 씻은 듯 사라져갔다.

그러자 공포라는 본능의 감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는 부곡.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일련의 상황을 바닥에 주저앉아 보고 있던 가수종은 목을 당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겨우 짜냈다.

“아, 아닙니다!”

마치 철판을 긁는 듯한 힘없고 듣기 싫은 하지만 너무도 절실한 목소리에 연수의 시선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가수종에게 닿았다.

“이, 이는 모두 사형의 개인적인 일...탈...입니..다.”

힘겹게 말을 마치는 가수종을 의문이 담긴 눈으로 계속 바라보는 연수.

그러자 숨을 몰아쉰 가수종이 목소리를 계속해서 쥐어짰다.

“장문인께서는 사형에게... 사죄를 하라고 이곳으로 보냈습니다.”

그제야 연수의 시선이 다시금 부곡에게 옮겨졌다.

“놔.”

연수의 한마디에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도산의 깍지가 풀렸다.

그런 도산을 일으키며 그의 등에 대고 목의 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연수.

“무식한 놈.”

연수의 말에 도산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도산의 어깨와 팔의 뼈를 맞춰준 연수는 아직도 바닥에서 자신을 올려다보며 굳어 있는 부곡을 바라보았다.

“···.사, 살려....주시오...”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는데도 부곡의 몸이 사시나무 떨 듯 떨려왔다.

한참을 그를 보고 있던 연수가 가수종을 보며 말했다.

“종남에 일련의 상황을 전해라. 그리고 종남신권 부곡을 찾지 말라는 내 말도 꼭 전하고.”

연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곡은 전신의 혈도가 제압되며 온몸이 굳어가기 시작했다.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며 연수의 옆으로 떠오르는 부곡.

가수종은 종남의 제자를 데려 가는 연수를 차마 막아설 수 없었다.

“나, 나를 어쩌려는 게요?”

“도산 괜찮으냐?”

“예.”

“날 보내주시오. 지금이라도 보내주면 종남과는 큰 척을 지지 않을···.”

“비령곡이라는 곳이 있어.”

연수의 말에 부곡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런 부곡을 바라보며 말을 잇는 연수.

“차라리 죽는 것이 만 배는 났다고 하던가? 지금이라도 죽지 못한 것을 매일 후회하는 삶을 살게 될 거야.”

“!!”

“연수야!!!”

들려오는 소리에 부곡에게서 시선을 옮겨 보니 저 멀리 소개를 비롯한 공숙과 도평 그리고 사부와 무황이 달려오고 있었다.

연수는 도평에게 짧게 상황을 설명하고 부곡을 넘겼다.

눈이 뒤집힌 공숙이 특유의 날카로운 동공으로 부곡을 찢어 죽인다고 흥분했지만 도평은 이해가 빨랐다.

“비령곡으로 보내는 것이 이놈에게 더 고통이 될 것입니다.”

장내 모든 무인들의 살기를 받던 부곡은 단 한마디도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있었다.

혈개문의 장원으로 돌아온 연수는 달려드는 미여를 안아 올렸다.

그간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는 미여.

“아저씨! 흐어엉.”

“아이고, 무인은 함부로 우는 것이 아닌데.”

“흐윽! 흐어엉!”

너무나 서럽게 우는 미여를 보며 연수는 농을 멈추고 아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흐흑 다 들었어. 흐흐흑 나 때문에 아저씨가 흐흑.”

순간 연수의 얼굴이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하더냐?”

연수의 말에 설개와 호개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미여를 데리고 혈개문으로 돌아오며 생각 없이 주고받았던 대화였다.

-우리만 아니었어도, 태상문주님이 부상을 입진 않았을 텐데······.

그 한마디가 가슴에 남아있던 미여였다.

설개와 호개의 머릿속에 연수의 전성이 울렸다.

-입이 가벼운 건 좋지 않아. 무인으로서나 사내로서나.

설개와 호개가 허리를 꾸벅 숙였다.

사실 설개와 호개의 말이 틀린 것은 없었다.

미여와 두 사람만 아니었다면 애초에 천살호의 함정에 빠지지도 수동적으로 방어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사람을 버리고 적을 쓸어버릴 만큼 독하지 못한 연수였다.

“아이고, 다 큰 숙녀가 이리도 서럽게 우니 어찌하나?”

“흑흑···. 흑!”

아직도 진정하지 못하고 우는 미여를 달래길 한참, 겨우 울음을 멈춘 미여를 내려놓으며 연수가 몸을 낮춰 미여와 눈높이를 맞췄다.

“너 때문이 아니다. 알겠니?”

“정말?”

“그럼. 무인의 싸움은 항상 다 자신이 쌓은 은원의 고리에서 시작되는 것이지. 그 싸움의 결과에 누구의 탓 같은 것은 없어. 싸움도 그 결과도 모두 당사자의 것.”

제법 무겁고 어려운 말에 잠시 고개를 갸웃하던 미여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이 노오오옴! 그러기에 이 사부의 말을 거역하고 땡땡이를 쳐?”

그제야 등 뒤에서 들려오는 공숙의 목소리에 흠칫 어깨를 떨며 애처로운 눈으로 연수를 바라보는 미여.

공숙에게 뒷덜미가 잡혀가는 미여를 보며 연수도 고개를 흔들었다.

이 부분은 어찌 자신이 도와줄 길이 없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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