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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66화 (166/202)

# 166화

잠시 그런 아이를 기특하게 바라보다가 밖으로 나온 연수는 기막을 치며 입을 열었다.

“다들 괜찮아?”

-옛!

“무리하지 말고 제대로 말해. 얼마나 요양해야 해?”

천영은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 삼일은 더···. 적영대장님이 아니었다면 보름은 넘게 자리를 보전해야 할 부상이었습니다.”

“그 빌어먹을 놈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어?”

“글쎄요. 마교의 고수들은 몇몇을 빼놓고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보니.”

“도산!”

“예!”

“하오문으로 가서 마교의 놈들에 대해 그리고 오늘 서안의 나타난 음공의 고수들에 대해 있는 정보는 모두 모아놓으라고 해. 특히나 놈들의 위치에 관한 정보는 들어오는 데로 나에게 직접 가져오라 전해.”

“옛!”

대답을 마친 도산이 날듯이 뛰쳐나가자 연수는 이를 갈았다. 절로 연수의 몸에서 살기가 풍겨 나왔다.

“대, 대장님.”

“아, 미안.”

인상을 굳히고 주춤하며 살기에 눌려 물러서는 천화대의 무인들을 보고는 황급히 새어 나온 살기를 거두는 연수였다.

며칠의 시간 동안 고학루에서 나오지 않고 요양하던 연수 일행.

일행이 고학루에 머무는 그 며칠의 시간 동안 종남파는 실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     *     *

“어째서! 그리 경솔한 행동을 한 게냐!”

장문의 호통에 부곡은 고개를 조아리고 들 수가 없었다.

"..."

“하필! 이럴 때···.”

장문인의 손에는 당문과 아미파 청성파의 수장들의 수결이 맺어진 연판장이 들려 있었다.

부곡은 애써 입을 열어 항변했다.

“백 명이 넘는 민초들이 죽었습니다. 당시 저는 어쩔 수 없는···.”

“닥쳐라! 네놈의 사사로운 원한으로 인한 한순간의 판단에 중상을 입은 마교 놈들을 놓쳤어! 그것도 섬서의 서안에서! 어찌! 내 어찌 섬서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란 말이냐?!”

“저, 저는···.”

“됐다.”

차가운 시선을 거두며 찬바람이 나게 돌아서는 장문인.

‘패신살성!’

이를 갈며 연수의 별호를 곱씹는 부곡은 차가운 바닥에 엎드린 채 주먹을 움켜쥐었다.

*     *     *

운기요상을 마친 연수의 일행은 고학루를 벗어나며 하남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천영.

-예.

-혹시 불시의 상황이 벌어지면 도화와 말년이의 안전은 너희 천화대에게 맡기마.

-옛!

천영은 며칠 전 마교 고수들의 습격에 자신과 천화대가 연수의 발목을 잡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천영은 연수의 명에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며칠 전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도화는 조금은 핼쑥한 얼굴로 연수를 바라봤다.

“오라버니.”

“응.”

“죄송해요.”

“도화가 뭐가 죄송해?”

“괜히 저 때문에 오라버니가···.”

“아니야. 그런 거 없어. 도화는 그런 생각 하지 마.”

연수의 따뜻한 눈빛에 도화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이 하남 등봉현에 들어서자 마차안 창밖 풍경이 일변했다.

창밖으로 등봉현의 숭산을 본 말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기야. 저기가 숭산이야.”

“숭산···.”

“여기는 등봉현이고.”

“등봉현···.”

“저 숭산의 중턱에 있다는 소림사라는 절에 가는 거야. 그 절에 가면 부처님이 계시거든. 그곳에서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는 거야.”

“아···.”

말년은 무언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멀리 보이는 숭산을 바라보았다.

서안에서 사 입힌 두꺼운 옷에 파묻혀 둔해 보이는 말년을 꽉 끌어안는 도화.

그 모습을 바라보는 연수의 얼굴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연수의 일행이 등봉현에 도착한 그때 신강의 천산에서는 한 사내의 분노에 천산의 봉우리가 울리고 있었다.

*     *     *

“그래서?”

바람에 휘날리는 왼쪽 소매를 씁쓸하게 쓸어 보인 노인은 초췌한 모습으로 입을 열었다.

“구연과 추공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꼴로 천산에는 뭐하러 기어들어 온 거지?”

“송구합니다.”

“분명 말했을 텐데. 암주에게 휘둘리지 말라고.”

“가야만 했습니다.”

“갔으면! 죽어 오지 말든지. 그 손에 모가지라도 들고 오던지. 대체 그 꼴로 내 앞에 다시 나타날 용기는 어디서 나온 거지? 홍취. 내가 그리 우습던가?”

“...”

무릎을 꿇고 주저앉는 노인. 그의 뒤로 두 명의 노인 역시 그를 따라 무릎을 꿇었다.

“처분에 따르겠습니다.”

“살려두면 또 기어 내려가겠다는 말로 들리는데?”

“...”

“다음에는 돌아올 필요 없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라져 버리는 사내.

그와 동시에 세 노인은 피를 토했다.

사내의 무지막지한 기세에 내상이 심해진 노인들이었다.

*     *     *

소림의 산문을 들어서는데 연수의 시선에 비질하는 허리 굽은 불목하니가 들어왔다.

그런 불목하니의 곁을 스치듯 지나가는 연수.

-오랜만에 뵙습니다.

-망할 놈. 여기엔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그리 보무도 당당히 걸어들어오누? 도둑놈주제에.

짙은 미소와 함께 소림사로 들어선 연수.

심상치 않은 기세를 내뿜는 연수의 일행이 들어서자, 접객당의 당주와 일단의 무승들이 달려 나왔다.

“배첩을 받은 기억은 없습니다만, 어디서 오신 시주들이신지?”

“사황성에서 온 적영대장 고연수라 합니다.”

합장하며 고개를 숙이는 연수를 보고는 접객당주의 긴장어린 표정이 풀렸다.

“그러고 보니 정사 대회 때 먼발치에서 한번 본 기억이 있구려. 일단 들어갑시다.”

“예.”

접객당에 들어서는 순간 천화대의 기세가 일변하며 걸음을 멈췄다.

“신경 쓰지 마. 다 자기 할 일하시는 거야.”

근처에 은신하고 일행을 주시하는 시선을 느낀 천화대의 무인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평소 생활이 은신이었던 그들이었기에 은신 한 무인들의 감시를 당하는 것이 불쾌할 수밖에 없었다.

앞장서던 접객 당주는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시주님들이 기감에 매우 뛰어나시군요. 실례가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저희 애들이 불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합장하며 고개를 숙이는 연수를 보며 접객 당주는 마주 반장을 한 채 고개를 숙였다.

접객당의 당주실 밖으로 천화대와 적영대의 무인들을 두고 홀로 당주와 독대하는 연수.

뜨거운 차를 권하는 당주에게 미소로 화답한 연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입을 열었다.

“갑자기 찾아와 이런 말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사안이 워낙에 시급한지라 이리 결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무슨 일이기에···.”

사파의 최고수이자 거목이 정파의 태산이라는 소림에 찾아오는 것은 쉽게 보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에 접객당주의 의문은 더욱 커졌다.

“마교 문제로 찾아 왔습니다.”

“!!!”

그렇지않아도 믿을 수 없는 괴소문으로 흉흉한 무림이었다.

소림까지 그 괴소문들은 들려왔고 그로 인해 뒤숭숭한 소림이었다.

접객 당주는 한동안 말없이 뜨거운 찻잔을 꽉 쥐고 있다가는 겨우 입을 뗐다.

“소문과 관련된 일입니까?”

“예. 방장님과···. 원공 대사님을 뵙고 싶습니다.”

“!!! 본사에는 원공 대사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원공 대사님과 작은 연이 닿았습니다. 제게는 기연이었지요.”

연수의 말에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접객 당주는 잠시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입을 열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무거운 표정으로 승포자락을 휘날리며 당주실을 나서는 접객 당주.

접객당의 안에서 찻잔을 만지며 기다리고 있는 연수의 머릿속에 울리는 전성.

-이놈아! 무슨 분란을 일으키려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드니 어느새 앞에 앉아 있는 원공이었다.

“이리 모습을 드러내셔도 되는 겁니까?”

“그리 날 걱정하는 놈이 대놓고 나를 찾아?”

“거, 몰래 엿듣는 건 신승이란 명성에 엇나가는 것 같지 않습니까?”

“하여간 주둥이는 여전하구나.”

미소가 짙어진 연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원공을 바라봤다.

“그간 강녕하신 것 같아 다행이네요.”

“네놈은 기껏 살성의 운명을 피했다 싶더니 피 냄새가 진동하는 삶을 살고 있구나. 대체 얼마나 많은 피를 본 게야?”

“뭐, 이래저래 은원의 파도에 휩쓸리다 보니 좀 많이 보네요.”

“에잉! 그때 그냥 내 손에 작은 피를 묻히고 끝낼 것을!”

“그랬으면 소림과 중원 무림의 앞날이 어두웠을걸요?”

“그럼 네놈이 중원 무림을 살리기라도 한다?”

“본의 아니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도 같고요.”

“무슨 말이야?”

연수는 한숨과 함께 천장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정세가 재미없게 돌아가고 있어요.”

“뭐가 그리 재미가 없는데?”

“방장님 오시면 한 번에 이야기하죠.”

“일 없어! 이 나이에 그 잘난 무림에 발을 다시 디딜까 봐?”

식은 차를 한입 들이킨 연수가 장난스럽던 표정을 지우며 말했다.

“소림이 망해도요?”

“이놈이! 재수 없는 소릴!”

“무림맹주가 마교와 결탁했습니다.”

“그 헛소문을 나한테 믿으라고? 현인이 그 아이는 그럴 아이가 아니야!”

놀란 표정의 연수는 버럭 언성을 높였다.

“그 빌어먹을 노친네랑도 인연이 있습니까?”

“그럼. 그 아이의 오행 신공을 완성시킨 게 나니까.”

“참내. 실수하신 겁니다. 큰 실수 하신 거예요!”

“이놈이! 내 실수라면 네놈에게 연을 허락한 것이겠지.”

연수는 미간을 구기며 찻잔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꽈드득!

깨어진 찻잔 일부가 가루가 되어 탁자 위로 떨어졌다.

“농담 아니에요. 그 노친네 지금 천령관인지 나발인지 하는 곳에 폐관 수련 갔답니다. 교주와 암주밖엔 들 수 없다는 곳에 그 인간이 있대요!”

“흥! 그런 헛소릴!”

“헛소리였으면 이리 찾아오지도 않았어요.”

“네놈이 봤더냐?!”

“예!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마교인들과 함께 성주를 습격하던 그 자리에 제가 있었습니다. 구사일생 하늘이 도와 이리 살아남은 제가 직접 보았어요. 후에 그놈들 주리를 틀어서 직접 들은 이야기에요. 오는 길에도 또 그 전에도 마교의 습격을 받았습니다.”

“그런···.”

“사천의 정파는 이미 모든 결심을 끝냈습니다. 이 일은 대화 따위로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

“소림은 결단을 내려야 할 겁니다. 그 결단이 늦으면 훗날 큰 비난을 피하지 못할 거에요.”

“그럴 아이가 아닌 것을···.”

“그 양반 나이가 몇인데 아이래요? 사람은 다 변하기 나름입니다.”

“...그래서 어쩌려는 것이야?”

“그 노친네와 저는 한 하늘 밑에 살아갈 수 없어요. 그리고 마교.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얼마 전에도 섬서에서 백 명이 넘는 민초가 절명했습니다.”

“이런 쳐 죽일!”

신승 원공대사의 입에서 승려의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큼큼!”

기척과 동시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림의 방장.

“사숙님. 혹여 외인이 들을까 무서운 소릴 하시면 어찌합니까?”

“흥!”

코웃음을 친 원공대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 버렸다.

쓴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는 소림사의 방장.

“이리 혜공대사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소림신권 혜공.

소림사의 방장이자 무림에서 두 손에 꼽힌다는 초절정의 고수였다.

연수의 인사를 가볍게 목레로 받은 혜공.

“시주께서 급히 꼭 해야 할 말이 있다고 들었소.”

“예.”

연수는 그간의 일을 천천히 보태지도 빼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풀어놓았다.

연수의 이야기가 모두 끝나자 혜공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런 빌어쳐먹을!”

동석해 있던 접객당주는 너무 놀라 헛기침을 해댔다.

“큼큼!”

접객 당주의 눈치에 잠시 화를 삼킨 혜공의 입이 열렸다.

“하여, 시주께서 사천을 대표해 소림을 찾으신 게군요.”

“예. 정사를 떠나 중원 무림의 안위가 달린 일이다 보니 사천의 명숙들의 청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이리 염치불구하고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혜공은 잠시 연수의 눈을 바라보았다.

“시주의 소문은 참 귀가 따갑게 들어왔는데, 소문과는 아주 다르시군요.”

멋쩍게 웃으며 고개를 젓는 연수.

“아마 강호에 저에 대해 퍼진 소문의 대부분은 마교의 주구라는 것만 빼고는 사실일 겁니다.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소림에 왔기에 몸가짐에 신경을 쓸 뿐입니다.”

솔직한 연수의 말에 혜공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저희 소림을 이리 찾아온 이유는 결국 정파를 둘로 가르는 데 힘을 보태달라는 이야기겠군요.”

“예.”

“시주께서는 소림과 무당의 사이를 아십니까?”

“모르지 않습니다.”

연수의 짧은 대답에 혜공의 두 눈이 감겼다.

“...”

“...”

짧지 않은 침묵을 먼저 깬 것은 혜공이었다.

“만약 소림이 강호의 분열에 합류하게 되면 정파는 큰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사파는 이미 겪어온 길입니다. 분란은 빠르게 마무리 짓고, 힘을 합쳐 마교에 대항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면 무당은···.”

혜공은 끝내 뒷말을 마무리 지을 수 없었다.

연수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혜공이 차마 하지 못한 뒷말을 대신했다.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되겠지요. 하지만 무당의 책임은 무겁습니다.”

혜공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교와 결탁한 무림맹주와 귀를 닫고 있는 무당.

생각만으로 절로 한숨이 터져 나오는 혜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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