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4화
목생화.
목의 기운을 태워 화를 키우는 것이 가능하다면 수의 기운을 바탕으로 목의 기운을 키우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연수.
잠시 아이의 몸에서 손을 떼고는 꿈틀거리는 수의 기운을 끌어올려 그 기운의 위로 목의 기운을 섞어보았다.
순간 연수의 몸이 은은하게 빛나며 생명의 기운이 가득 차오름이 느껴졌다.
그대로 아이의 단전에 손을 가져가는 연수.
아이의 막힌 기해혈로 도도히 흘러간 목의 기운은 기해혈을 휩싸며 꽉 막혀있는 혈도를 녹이듯 천천히 기해혈을 풀어갔다.
굳을 대로 굳고 꽉 막힌 기해혈이 조금씩 연수의 기운에 반응하며 풀리고 있었다.
막혔던 기해혈이 뚫리자 잠들어 있던 아이의 몸이 움찔거렸다.
순간 연수의 몸에서 한 줄기 바람이 뻗어 나오며 아이의 수혈을 짚었다.
기해혈이 뚫리고 굳어있던 기맥으로 기가 흐르자 대장유의 끊어진 기맥까지 흘러가는 아이의 미약한 기운.
그 기운과 합쳐지며 끊어진 기맥을 잇는 목의 기운.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던 땀이 결국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연수의 얼굴 전체에 맺힌 땀방울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이미 옷은 축축하게 젖어 가고 있었고, 연수의 미간이 점차 구겨져 갔다.
한 시진이 지나자 겨우 아이의 몸에서 손을 떼는 연수.
“후우.”
한숨과 함께 가부좌를 튼 그대로 눈을 감고 운기를 하는 연수.
과연 끊어진 기맥을 잇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니었다.
겨우 두 혈의 기맥을 잇는 것뿐이었지만, 내력과 심력의 소모가 보통이 아니었다.
그나마 수생목의 신공의 기운이 있었기에 겨우 그 맥을 겨우 이을 수 있었던 연수였다.
‘대체 절맥을 고친다는 신의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며 운기에 빠져드는 연수였다.
목생화 수생목.
두 기운이 합쳐져 하나의 강력한 기운이 된다. 서로 다른 기운들이 하나의 기운이 되며 상생하는 오행의 이치에 대해 깊게 빠져 있던 연수의 눈이 뜨여졌다.
‘어쩌면 중단전의 이 기운들은 토의 기운과 금의 기운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구나. 토와 금이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날이 밝아옴과 동시에 도화가 문을 열고 의방의 안으로 들어왔다.
“오라버니! 웬 땀을….”
연수는 멋쩍게 웃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 보니 지고한 경지에 오른 후 피를 뒤집어쓴 적은 있어도 땀을 흘려본 적은 거의 없는 연수였다.
의원밖 우물로 다가가 차가운 우물을 머리부터 그대로 뒤집어쓰는 연수.
차디찬 물에 의해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여러 번 우물을 뒤집어쓰자 구룡산에서 사부와 수련하며 살던 적이 떠올랐다.
‘사부…. 건강히 잘 계세요?’
아직 구룡산에 터를 잡고 지내고 있는지 혹시 어디 다른 곳에 터를 잡은 것은 아닌지 사부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연수였다.
물론 무황이 있는 한 사부의 안위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미 장수무투가 패신살성의 사부인 것을 모르는 무림인은 없다.
입신경의 고수인 패신살성의 사부를 함부로 건들 수 있는 자는 현 강호에 정사를 막론하고 얼마 없었다.
한참을 찬물에 몸을 적신 연수가 두레박을 우물 옆으로 내려놓자 연수의 몸에서 뜨거운 화기가 뿜어져 나오며 수증기가 솟아올랐다.
-투툭. 툭툭.
몸에 남은 수중기를 툭툭 털어내는 연수.
그의 몸에서 잔류하던 수중기가 연수의 손에 털려 나갔다.
그런 연수의 옆으로 다가오는 모도산.
“떠날 채비를 끝냈습니다.”
“그래. 오늘은….”
잠시 모도산을 바라보며 말을 끄는 연수.
꿀꺽.
절로 모도산이 침을 삼켰다.
연수의 어깨가 흔들린다 싶은 순간 배에 힘을 주고 온몸을 조이며 버티는 모도산.
-퍼퍼퍼퍼퍼퍼퍼퍼퍽!
연수의 빠른 연격이 순식간에 모도산의 전신을 두드렸다.
“하!”
수십 번의 권격이 폭풍같이 전신을 때리고 지나갔음에도 두 팔을 털어내며 기합성을 토해내는 모도산.
연수는 그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이제는 웬만큼 때려서는 아픈 기색도 않는 모도산이었다.
-우드득 우득!
팔로 목을 잡아당기며 목을 푸는 모도산.
“대장님. 오늘은 아주 가볍네요.”
“그, 그러냐?”
이미 매일 그 힘을 더 높이며 모도산의 전신을 두드리는 연수였다.
‘이제는 이놈 패다가 땀을 흘릴 판이구나.’
잠시 모도산의 손목을 잡고는 모도산의 몸 안을 살펴보는 연수.
“대장님께 맞고 난 후에는 항상 내력이 늘고 있습니다.”
“하 참…. 정말 무슨 놈의 체질인지 신기하기가 끝이 없구나. 네놈 혈도에 뭉쳐있던 기운이 푸는 족족 단전으로 기어들어 가니….”
“좋은 것 아닙니까? 아직도 기운이 많이 뭉쳐있습니까?”
“그래.”
“그럼 좀 더 때려 주시는 게….”
“...”
“아니면 내일 또 맞으면 되죠.”
머리를 긁적이며 몸을 돌려 나가는 모도산의 등을 한참 바라보던 연수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처음에는 모도산의 몸을 생각해서 무리하지 않고 적당히 힘 조절을 하며 그의 몸을 두드리던 연수였다.
한데 그의 혈과 맥은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더 튼튼해지며 맷집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잠시 모도산의 등을 바라보던 연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 또한 천살성이라는 희귀한 무재를 타고 났지만, 모도산의 저 재능은 특이하다 못해 신기할 정도였다.
의방으로 돌아온 연수는 아이를 조심히 안고는 의방을 나섰다.
걱정스럽게 따라서는 도화를 보며 미소짓는 연수.
“아이를 치유하느라 수혈을 짚어놓은 것뿐이야. 걱정 안 해도 돼.”
마차에 아이를 눕히고는 도화와 올라탄 연수.
적영대의 무인들은 말을 구해 마차의 뒤를 따르며 이동을 시작했다.
“이제 부쩍 날이 추워지는 것이 곧 눈이 내리겠어요.”
마차의 창문을 닫으며 도화가 말하자 연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 어쩌면 하얀 숭산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섬서의 성도 서안에 도착한 연수의 일행.
모도산의 등에 업힌 아이는 여전히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아이는 서안의 화려한 풍경이 신기한 듯 허리를 세우고 주변 곳곳을 큰 눈으로 돌아보고 있었다.
“이 녀석아 얌전히 좀 업혀있거라. 뭐가 그리 신기해서.”
모도산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아이는 연신 높은 전각과 여기저기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제법 다리의 힘이 돌아오기 시작하나 보구나. 잘 됐다. 가끔은 걷는 연습도 해야 한다. 오래 걸리겠지만, 힘들겠지만 꾸준히 걸어보거라. 하면 언젠간 다른 사람들처럼 걷고 뛸 수 있다.”
연수의 말에 큰 눈으로 연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
그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데 연수의 뒤로 화려하고 높은 고학루를 올려다보는 아이의 눈망울이 더 커졌다.
아이의 시선을 따라 돌아본 연수의 미소가 짙어졌다.
“왜? 들어가 보고 싶으냐?”
아이는 연수의 말에 시선을 내리깔며 고개를 저었다.
“이 아저씨는 이 정도는 데려갈 수 있으니 가고 싶으면 말을 해 보아라.”
아이는 모도산의 등에 얼굴을 묻으며 얼굴을 붉혔다.
“이 안에는 맛있는 음식이 엄청 많다던데?”
슬쩍 도화에게 눈짓을 주자 도화도 거들고 나섰다.
“그러고 보니 이 안에는 입에 넣으면 살살 녹는 고기부터 강에서 나는 맛있는 생선요리도 많다던데….”
꿀꺽.
침을 삼키는 아이.
“뭐 별로 가고 싶지 않은 모양이네. 그러면 할 수 없지.”
연수가 모도산을 지나치며 앞으로 나아가자 아이의 작은 입이 꼬물거렸다.
“...싶어요.”
“응?”
연수가 짐짓 모르는 척 돌아보자 시선을 내리깐 아이가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들어가 보고 싶어요.”
그런 아이를 보는 연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가 봐야지. 가고 싶으면 가 봐야지!”
일행은 귀여운 아이를 보며 미소짓고는 고학루로 들어섰다.
휘황찬란한 고학루 안으로 들어서자 아이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바빴다.
“어서 오십시오. 몇 분입니까?”
“다 해서 열일곱인데…. 혹 별채가 있나?”
천영이 점소이에게 묻자 점소이는 환하게 웃으며 더 허리를 숙였다.
“그럼요! 있고 말고요. 얼마나 묵으실 건지….”
“하루. 내일 떠날 것이다. 성도의 어귀에 마차와 말을 맡겨놓았는데, 데려다 루 안에서 관리해 주게.”
말을 마치며 그의 손에 은자 하나를 쥐여주는 천영.
점소이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숙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따라오세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고학루의 안쪽으로 들어서자 작은 연못이 있는 별채가 운치 있는 모습을 드러냈다.
“히익!”
아이는 그 모습에 눈을 빛내며 숨을 집어삼켰다.
별채의 둥근 식탁은 대단히 커서 많은 일행이 둘러앉고도 자리가 남았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금세 음식을 차려 드리겠습니다.”
무엇을 시킬지 묻지도 않고 나가는 점소이.
잠시 후 커다란 원탁에는 갖가지 진미가 차려지기 시작했다.
아이의 큰 눈망울이 세차게 흔들렸다.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아이의 작은 손이 허공을 헤매고 있을 때 도화는 오리의 기름진 다리를 쭉 뜯어 아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한참을 아이에게 집중된 일행의 시선은 점차 나오는 음식에 자연스럽게 분산되었다.
“맛있니? 천천히 먹어. 체할라.”
도화는 아이의 옆에서 음식을 덜어주며 아이를 돌보았다.
입가에 기름을 잔뜩 무치며 음식을 탐하는 아이에게 물을 따라주는 도화.
“음웁웁음!”
아이는 입에 음식을 가득 머금고 새로 나온 동파육을 손으로 가리켰다.
“아이고 입에 있는 음식은 다 삼키고 말을 해야지.”
도화가 말을 끝마치기 무섭게 원탁의 끝에 있던 동파육이 접시 채 둥둥 떠오르더니 아이의 앞에 놓였다.
“!!!”
놀란 눈으로 동파육의 접시를 살피는 아이.
“신기하지? 이 아저씨가 한 거야.”
아이는 놀란 눈으로 연수를 바라봤다.
“네 이름을 알려주면 더 신기한 것도 보여줄게.”
“...말년이에요.”
“말…. 년이구나. 이름이 참…. 평범하구나.”
“성은 뭐니?”
도화의 물음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성이 없구나.”
중원에 성이 없는 자는 사실 많이 있었다. 아이에게 도화는 동파육을 한 점 올려주었다.
식사가 모두 끝이 나자 연수는 배불리 먹고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도화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잠시 밖에 나갔다 올까?”
“밖이요?”
“아직 해가 지지 않았으니 서안의 거리를 조금은 구경해도 좋을 것 같아서.”
“좋아요.”
환한 웃음과 함께 옷매무새를 잠시 살핀 도화가 연수의 팔짱을 끼며 이끌었다.
적영대의 무인들을 놔두고 고학루를 벗어나는 연수와 도화. 그리고 그녀의 곁을 은신한 채 호위하는 천화대.
오직 천영만이 둘의 뒤를 따르며 도화를 힐끔거리는 사내들에게 살기를 쏘아 보낼 뿐이었다.
주변에 호위무사 여럿을 거느린 지체 높아 보이는 풍채 좋은 중년인 또한 도화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숨통을 죄어 오는 압박감에 몸을 흠칫 떨었다.
오래지 않아 자신을 노려보는 천영을 발견한 그의 얼굴에 노기가 가득 찼다.
주변의 호위무사들은 중년인의 노성에 천영에게 다가오려 하고 있었다.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는 호위무사의 귓속에 파고드는 전음.
-그 검 뽑으면 죽어. 너도, 네 주인도.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호위무사는 몸을 흠칫 떨고는 중년인을 데려고 거리를 벗어났다.
“이놈들이! 저 죽일ㄴ…. 읍읍”
중년인의 입까지 막고는 사라지는 무사들을 보며 천영은 계속 걸음을 옮기며 연수와 도화를 뒤따랐다.
-피이이이~
한참을 걷던 도화의 걸음이 거리의 구석에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에 멈췄다.
구슬픈 음률은 절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시선을 잡아끌었다.
구석에서 홀로 피리를 부는 노인이 일어서며 피리를 더 세게 불자 다른 방향에서 금소리가 들려오며 피리 음을 돋보이게 했다.
시선을 돌려보니 이 층의 주루 처마에 걸터앉아 금을 뜯는 노인.
-따안딴- 끼이이이-
이번에는 해금의 소리가 음률을 보태며 선율을 더해갔다.
잠시 음을 감상하던 연수와 도화의 발걸음이 떨어지려는데 아쟁과 퉁소 소리가 보태져 왔다.
그와 동시에 거리에 가득 차 있던 사람들이 귀를 막으며 쓰러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