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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62화 (162/202)

# 162화

*     *     *

당문의 정문을 통과하여 세가의 안으로 들어서는 일행.

도화는 안으로 들어서며 그 거대한 규모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때 전성기를 달리던 패천후 산하의 사황성에서도 지내본 그녀였지만 일개 세가가 이만큼의 거대한 세를 유지한다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하지만 일행 중 오직 그녀만이 그런 반응을 보일뿐 다른 무인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연수역시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외당의 건물배치가 오묘하군.”

그 말에 당진원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모를 침입에 대비하여 지었다고 들었습니다.”

연수는 말을 아끼는 당진원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당가의 직계 삼공자인 주제에 들었다니, 누구보다 저 건물배치의 사정과 이유에 대해 잘 알고 있을놈이 꼴에 당씨성의 값을 하려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딱봐도 기관과 진법으로 버무려 놨네.’

-따라붙는 눈이 있습니다.

천영의 전음에 연수는 표정의 변화 없이 전성을 보냈다.

-놔둬. 이 정도 경계는 당연히 하겠지.

당진원의 안내를 받으며 미로같은 외당의 복잡한길을 따라 가다 보니 제법 큰 연못 한 가운데에 지어놓은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에서 기다리고 계시네요.”

말을 마치며 정자로 몸을 날리는 당진원.

그의 뒤를 따라 도화의 옆구리를 잡고는 정자로 몸을 날리는 연수.

그런 연수의 뒤를 적영대원 셋과 십일인의 천화대가 뒤따랐다.

-턱.

멀리서 보았을때는 연못의 크기에 비해 작아보이던 정자에 발을 디디자 생각보다 큰 규모에 도화의 눈이 커졌다.

정자의 안으로 들어서자 청성파와 아미파의 수장과 당문의 가주 당일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연수를 맞이했다.

포권을 해 보이는 세 무인을 보며 연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마주 포권을 했다.

‘이 양반들이 뭘 잘못 먹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환대가 지나쳤다.

“먼길 와 주느라 고생이 많았네.”

당일수의 말에 연수는 당진원의 얼굴을 슬쩍 보고는 예의를 갖춰 화답했다.

“이리 진정을 알아주고 청해 주시니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연수의 말에 진여덕과 우공은 제법 놀란 표정이었다.

지난번에 봤을때와는 그 자세가 많이 달랐기에 그럴만도 했다.

시종일관 귀찮은 표정으로 여차하면 봉문시켜 버리겠다며 말하던 그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듯했다.

뒤로 서 있는 수십명의 무인들을 두고 가운데에 탁자를 두고 앉아서는 차를 따르는 당일수.

역시나 연수는 그가 내미는 찻잔을 서슴없이 붙들고는 입에 가져다 대었다.

“역시나 자네의 품성이 호쾌하기 그지 없구먼.”

지난번에는 이런 연수를 보며 오만하다 속으로 욕을 했었던 당일수의 말에 적응이 되지 않은 연수는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 했다.

잠시 차맛을 음미하던 중 진여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소림에 가보았네.”

“예.”

“자네의 칭찬이 끝이 없더군.”

“큼큼! 저, 저를 소림에서 알던가요?”

당황한 연수는 짐짓 모른 척 진여덕에게 되물었다.

진여덕은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원공 대사님과는 어린시절 인연이 닿은 후로 왕래가 있던 사이였네. 설마 자네가 그런 원공 대사님과 연이 닿아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지 뭔가? 원공 대사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팔자에 살계를 타고 난 아이지만 도리를 저버릴 아이는 아니라고 하시더군. 설마하니 그 분께서 사파인에게 도리를 안다며 칭찬을 하시는 날이 올줄은 상상도 못했지 뭔가?”

“그, 그러셨군요.”

연수는 한때 신승이라 불리우던 그 늙은이가 혹여 괜한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닌지 당진원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괜히 여장이 어쩌고 하는 헛소리를 했다면 실로 난감하기 그지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분과 그런 인연이 있었다면 진작에 이야기를 하지 그랬던가? 하면 더 이야기가 쉽게 풀렸을 것을.”

“그분에게는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괜히 저 같은 자에게 호의를 베푼 그분에게 누를 끼칠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이 하나가 싫으면 그 사람이 키우는 개도 싫어지고 사람이 하나가 좋으면 그 사람이 사는 집 기둥도 좋아진다 했던가? 원공이라는 인물은 진여덕에게는 아주 큰 영향력을 주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에게 극찬이나 다름없는 말을 들은 연수가 한번 좋게 보이니 저리 말하는 모든 것이 다 좋게 보이는 진여덕은 평소 보기 힘든 함박미소를 지으며 연수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청성의 우공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옆에 같이 오신분은 그 유명한 패천일미 정 소저가 아닌가?”

“인사가 늦었습니다. 정도화라고 합니다. 여러 명숙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은은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도화.

우공의 뒤에 서 있던 몇몇 청성의 제자들과 당문의 사내들은 순간 넋을 빼앗긴듯 도화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날아드는 날카로운 기세.

천영을 비롯한 천화대의 호위들의 날카로운 기세에 무인들은 인상을 찡그리며 마주 기세를 끌어올렸다.

동시에 올라가는 연수의 손.

“중요한 자리다.”

연수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기세를 거둬들이는 천화대.

당일수와 우공또한 뒤에 서있는 젊은 무인들에게 질책의 눈빛을 보냈다.

물론 자신들도 사내로서 젊은 무인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저 여인은 이미 패신살성의 부인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자유로운 무가라지만 남의 부인을 함부로 바라보는 것은 큰 잘못이었다.

“이거 아무래도 부인께서 미모가 남다르다 보니 저희 젊은 아이들이 실례를 범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저희 호위들이 예민한 편이라서.”

굳이 부인이라 강조하는 우공의 사과를 연수는 담담히 받아 들였다.

한동안 좋은 분위기의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대화를 이어가던 중 당일수가 인상을 굳히며 본론을 꺼냈다.

“자네의 이야기를 들은 후 맹주에게 수십번의 만남을 요청하였는데 모두 거절 당했네. 자네도 알다시피 현 강호에는 사패련의 멸망과 관련된 소문들이 돌고 있네.”

“그 소문의 진원이 저였죠.”

“그렇지. 한데 무림맹의 반응이 참으로 미묘하다는 말이지. 그들의 반응을 보고 우리는 자네의 말에 확신을 갖게 되었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맹주가 마교와 결탁한 주범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무림맹은 그저 괴소문이라며 일축할 뿐, 맹주는 그 어떤 입장표명도 없네. 분명 맹의 안에서는 평범하게 일과중 이라고 하는데, 많은 명숙들과의 면담을 모두 거절하고 있네. 심지어 무당의 장문인과의 독대마저 거절했다는 소문도 들리고 있어. 또한 무당의 반응이 참으로 미적지근해.”

“어떻다는 말이죠?”

“자파의 고수가 마교와 결탁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적극 해명하기 보다는 그저 괴소문이라며 명문에 괴소문에 휘둘리지 말라는 연판장을 보내온 것이 다이네.”

“그랬군요.”

담담한 연수의 말에 당일수의 눈썹이 씰룩였다.

“뭔가 짚이는 것이 있는가? 있다면 속시원히 말해보게.”

“현 무림맹에 있다는 맹주는 본인이 아닙니다.”

“뭐?!”

“그게 무슨!”

“하면?”

너무나 놀라운 말에 세 무인은 체통마저 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연수에게로 몸을 기울였다.

“얼마전 마교의 습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음살대의 대주라는 고수에게 들은 것이 있습니다.”

“그, 그게 뭔가?”

진여덕의 다급한 물음에 연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무인들을 진정시켰다.

연수가 잠시 말을 끊고 찻잔에 입을 대니, 흥분했던 무인들은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바로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들의 흥분이 가라앉자 연수는 말을 이었다.

“그 고수의 말로는 현재 무림맹의 맹주 옥현인은 천령관이라는 마교의 교주와 암주만 드나들수 있다는 곳으로 폐관을 들어갔다 합니다.”

“!!!”

당일수를 비롯한 각파의 수장들은 너무나 놀라운 말에 눈을 부릅뜨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 그말이 정녕 사실인 게야?”

“저야 그리 들었으니 그리 말씀드릴뿐이죠. 하지만 여러분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앞뒤가 모두 맞아 떨어집니다.”

이야기를 듣던 우공은 주먹을 꽉 쥐었다.

“이러고 있을때가 아닌것 같군요. 지금당장 명숙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무림맹으로 달려가 확인을 해야 합니다.”

진여덕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이에 동조했다.

“맞아요. 저희가 이러고 있는 동안에도 정파의 정기가 훼손되고 있어요.”

하지만 당일수는 고개를 저으며 그들의 말에 동조하지 않았다.

“정말 맹주가 마교와 그토록 깊게 연관되어 있다면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어차피 지금의 맹주가 가짜라면 아무리 명숙들이 찾아간들 절대 만나줄 리가 없습니다. 무당의 장문인마저 독대를 거부당했다는데, 다른 문파의 명숙들인들 무슨 핑계를 대든 피할것이 분명해요.”

“하면 어떻게 합니까? 당 가주. 지금도 무림맹에 수많은 명문과 정파인들이 맹주의 검은속도 모르고 이용당하고 있어요! 두고두고 후대에 지탄을 받을 일이에요!”

진여덕의 노성에 당일수는 묵묵부답이었다.

무거운 분위기를 걷어내는 연수의 목소리.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하시죠?”

“애초의 계획?”

“새로운 정파의 연합을 만드시죠. 정파의 가치를 새로 새우고 그 정기를 지켜낼 진정한 정파의 연합. 현재의 무림맹은 이미 썩어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우공은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리하면 정파를 둘로 쪼개는 일이 됩니다. 적영대장은 솔직히 말해 사파인이니 내심 그런 상황을 바라고 있을지 모르지만 정파를 둘로 쪼개 분열하게 만든 책임은 두고두고 저희의 어깨를 짓누를 거에요.”

“마교와 관련된 일입니다. 약속드리죠. 저희는 절대 여러분이 정파를 일통하고 마교를 몰아낼 때까지 정파와 반목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원무림의 미래가 달린 일입니다.”

한참동안 고심하던 당일수의 입이 열렸다.

“잠시 자리를 물려줄 수 있겠나?”

연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자의 밖으로 수십의 무인들이 튀어 나왔다. 장내에는 세 명문의 수장과 연수, 그리고 도화만이 남아 있었다.

“소림을... 설득해 줄수 있겠는가?”

그 말에 연수의 눈썹이 씰룩였다.

“어찌 제가?”

사파인인 연수가 정파의 새로운 연합을 위해 소림을 설득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럼에도 당일수는 연수에게 부탁을 하고 있었다.

“자네는 신승 원공 대사와의 연이 있지 않은가?”

“저 말고도 모두 그분과 연이 있지 않습니까?”

이번에는 진여덕의 입이 열렸다.

“무림맹은... 단순한 정파의 연합이 아니라네. 만약 맹주가 정말 마교에 간과 쓸개를 빼어줄 만큼 긴밀한 사이를 맺고 있다면 어쩌면 중원의 명문 정파는 모두 망할지도 모르네. 이건 소림도 예외가 아니야.”

잠시 진여덕의 무거운 두 눈을 바라보던 연수는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전극공합에 대한 이야기 군요.”

“!!!”

너무 놀란 나머지 입마저 벌리고는 연수를 바라보는 무인들.

“어쩌다 보니 휘말려 알게 되었습니다. 전극공합과 오행신공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 의미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 명문 정파의 모든 절기가 무림맹주의 머릿속에 들어 있네. 그뿐이겠는가? 그의 후계자들에게 또한...”

명가의 비전을 모종의 이유로 유출하는 것은 아무리 그들이 문파의 수장이라도 함부로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런 비화를 꺼내는 당일수를 비롯한 진여덕과 우공은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무림맹이 공고하다면 이런 고민은 필요 없겠지.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우리는 치명적인 약점을 맹주에게 잡힌것이나 매 한가지야.”

“그렇다면 더더욱 여러분이 소림을 설득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공과 진여덕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소림은 절대 우리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거야. 분명 진위를 확인하고 대화를 통한 해결이 먼저라고 생각할 것이네.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그리 여유 있지 않아. 맹주가 돌아오기 전에...”

뒷말을 흐리는 진여덕.

그 뒤의 말을 듣지 않아도 연수는 충분히 짐작할수 있었다.

무당을 지운다.

그래야만 했다. 무당을 지우지 않고는 도무지 맹주의 힘을 빼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소림과 무당의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는것이 아미파의 수장인 진여덕이었다.

태산과 북두.

이 연은 절대 가볍지도 짧지도 않았다.

“좋습니다.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소림을 한번 찾아가 보려 했습니다. 가겠습니다.”

진여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각 명문을 설득하겠네.”

“서두르셔야 합니다.”

“알고있네.”

당일수는 눈을 빛내며 대답했다. 그의 결연한 눈빛을 보며 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림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우공 대사의 선의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진즉 미쳐 살성이 되었거나 죽었을 것이다.

연수에게 소림은 단순한 정파의 일 문이 아니었다.

천하공부 출소림.

사부에게 지겹게도 들어왔던, 또 연수의 도둑질의 대의 명분이었다. 그런 만큼 마음속에 소림에 대한 존경은 항상 있어왔다.

게다가 큰 은혜를 입었으니, 남들은 전혀 그렇게 보지 않겠지만 연수에게 소림은 각별할 수 밖에 없었다.

당일수는 혹시몰라 주변에 쳐 놓았던 기막을 거두며 전성을 보냈다.

-자네의 성품을 의심하는 것은 절대 아니네만 전극공합의 이야기는...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성과 함께 포권을 하고는 도화와 함께 연못을 건너뛰는 연수.

그런 연수를 잠시 바라보던 진여덕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무림에 큰 태풍이 몰아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우공.

“그 태풍의 눈에는 저 사파인이 자리할것 같습니다.”

한 마디 보태며 고개를 끄덕이는 당일수였다.

“저자가 사천에 자리잡은 것이 흉이 될지 길이 될지 도무지 판단을 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 말에 두 무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만약 패신살성이 정파인이었다면 하고 생각해 보는 진여덕은 금새 고개를 저었다.

그런 가정은 이미 소용이 없었다.

패신살성 고연수는 사파인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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