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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61화 (161/202)

# 161화

당황스러운 감정을 숨긴 연수는 짐짓 멀쩡한 척 인사를 받았다.

“사황성의 적영대장 고연수다.”

나이 차이는 별반 나지 않지만, 사황성의 최고수이자 사파의 거목이 된 연수를 보며 당진원은 더욱 고개를 숙였다.

“아버님께서 꼭 전하라 하신 말씀이 있어 이리 찾아왔습니다.”

허리를 펴며 말을 마친 당진원은 연수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 그래? 일단 안으로 들어가지.”

방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자 당진원은 시비가 내놓은 차를 따르며 입을 열었다.

“혹시, 외가 쪽이 서 씨 성을 쓰지 않으십니까?”

“큼큼! 서 씨? 아니. 나는 서 씨 성을 쓰는 가문과는 어떤 혈연관계도 없는데?”

“그렇습니까? 제가 아는 사람과 너무 닮아서···.”

연수는 화제를 돌리려 입을 열었다.

“그런 것보다 급히 전할 이야기가 있던 게 아니던가?”

“아! 아버님께서 사천의 정파는 패신살성의 진정을 한 치도 의심치 않는다. 전하라 하셨습니다. 조만간 꼭 사황성의 적영대장님과 자리를 함께하여 중원 무림의 미래에 대해 상의하고 싶다 하셨습니다.”

“다른 말은?”

“중요한 사안은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으시다며···. 가능하시다면 꼭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사천의 울타리에 있으면서도 자리를 비울 수 없으니 양해를 바란다고···.”

당진원의 말에 연수는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사패련을 멸하고 나니 확실히 당문이 저자세로 나오는 것은 이해가 되었다.

지난번 만났을 때도 여차하면 사천의 정파 따위 모두 봉문을 시켜 버린다고 엄포를 놓았던 자신이었다.

하니 저들로서는 이제는 사파를 일통하고 그 힘을 하나로 모은 사황성과 자신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고개를 숙일 위인들이 아니었다.

‘결국, 맹주를 의심하고 있다?’

고개를 끄덕인 연수는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그럼 함께 가기로 하지. 이제 막 도착했으니 오늘은 편히 쉬어. 내일 출발하기로 하지.”

“예.”

고개를 숙인 당진원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쇠의 안내로 뒤채에 자리를 잡은 당진원.

저녁이 되자 돌쇠의 안내를 받으며 혈개문의 큰 장원을 구경 다니던 진원은 그 규모에 혀를 내둘렀다.

‘이리 큰 중축을 할 만큼 큰 재물을 언제 모아둔 것이지? 이제 혈개문이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혈개문의 중축은 상당한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자금의 출처야 연수가 현령의 집에서 도둑질해 왔다는 것을 모르는 진원으로서는 이해가 안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 돌쇠는 하오문으로부터 천문학적인 자금을 비밀리에 받아오고 있었다.

제갈세가의 어마어마한 재산을 정리하는 족족 여러 전표로 챙겨 받아 대규모 중축공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막 돌쇠와 진원이 안채를 지나가고 있는데 연수에게 무공지도를 받는 무인들이 보였다.

진원은 그중 연수와 눈이 마주치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포권을 해 보였다.

“죄, 죄송합니다. 엿볼 생각은 아니었는데, 본의 아니게 지나가는 길에···.”

“아, 됐어. 뭐 대단한 거라고. 심심하면 구경 해도 돼.”

자그마치 입신경 고수의 무공지도를 구경할 기회를 마다할 무인은 없었다.

“정말 봐도 되는 것입니까?”

‘다른 놈은 몰라도 너는 괜찮다.’

고개를 끄덕이는 연수를 보며 당진원의 표정이 환해졌다.

한참 비무형식으로 무인들의 부족한 점을 짚어주는 연수를 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당진원이었다.

모든 무인의 지도가 끝이 나고 모도산이 흠씬 두드려 맞은 후 연수의 시선이 당진원에게 닿았다.

“당가와는 일도 잘 풀릴 것 같고, 같은 사천에서 지내게 될 것 같은데 어떻게 무공 좀 봐 줄까?”

진원은 집안 외에 고수에게 그것도 사파인에게 무공지도를 받을 수 없었지만, 선뜻 거절할 수가 없었다.

입신경의 고수에게 무공을 지도받는 기연은 평생에 한 번 만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 그것이···.”

“싫으면 말고.”

“아니, 가, 감사합니다.”

나중에 집안의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지금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한 당진원은 일단 연수의 앞으로 서고 보았다.

씩 미소지은 연수는 그런 진원을 향해 손을 까딱거렸다.

“얼마든지 와봐. 독을 써도 돼.”

패신살성은 암습 외에도 독을 쓰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하지만 진원은 표정을 굳히며 권법으로 연수에게 달려들었다.

진원의 공격을 적당히 받아주며 한동안 그의 권법을 살피던 연수는 고개를 저었다.

“손놀림은 좋다만 권격에 힘이 부족해. 기교에만 매달리느라 권법 본연의 힘을 하나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연수의 평가에 이를 악문 당진원의 손목이 기이하게 돌아가는 순간 연수를 향해 뻗어 나오는 지풍.

연수의 미소가 짙어졌다.

-퍼퍼펑! 땅!

짧은 소성이 사라지자 당진원의 표정이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지풍속에 암기를 숨긴 것은 좋았는데, 그 예기와 기세를 다 숨기지 못했으니 의미가 없지.”

-따따따따따따땅!

이제는 아예 대놓고 암기를 날려대는 당진원.

하지만 연수의 손에서 쏘아지는 바늘은 그 모든 암기를 맞추어 떨어트렸다.

진원은 자신의 아버지 말고도 이런 신기를 보이는 자가 강호에 또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무리 불세출의 고수라지만 암기술은 자신의 가문이 최고라 믿으며 살아왔던 그였기에 그 충격은 작지 않았다.

빠르게 날리는 암기를 중간에 맞춰 떨어트린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다.

자신을 향해 쏘아진 암기의 궤도를 잃고 그 후에 암기를 날려 날아오는 중의 암기를 맞춰야 하기에 함부로 흉내 내기 힘든 신기인 것이다.

“어, 어찌···.”

“아아 암습이라면 나도 어디 가서 지지는 않아.”

당진원은 연수의 담담한 말에 진원은 연수를 향해 달려들며 금나수를 펼쳐왔다. 이리된 것 가진 모든 무공을 짜내 보리라 다짐하는 당진원이었다.

하지만 연수의 손은 기묘하게 움직이며 날아드는 당진원의 손을 모조리 쳐냈다.

“제법이긴 하다만, 금나수 같은 제약이 많은 무공은 함부로 꺼내는 게 아니야. 특히나 자신보다 고수를 상대로 금나수를 펼치는 건 죽기 딱 좋아. 그리고···.”

-화르륵!

진원의 근처로 불길이 이는 소리가 나며 진원이 조심히 하독 하던 독기가 모조리 타버렸다.

“기세를 그리 피워올리는데 하독을 눈치 못 챌까?”

지금의 진원의 하독을 빠르게 간파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연수가 그의 하독술을 상당 부분 배웠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막을 모르는 진원은 눈을 부릅뜨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슨 짓을 해도 그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벽. 막막함에 절로 다리에 힘이 빠졌다.

“너무 실망하지 마. 그리 나쁘진 않아. 보아하니 무재도 훌륭한 편이고. 다만 실전경험이 많이 부족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군. 특히나 암기술을 비롯한 많은 무공을 두루 익히느라 무엇하나 정수를 제대로 익힌 것이 없어. 독과 암기에 의존해서는 진정한 고수는 될 수 없어.”

망치로 뒤통수를 후려 맞는 듯한 당진원이었다.

어려서부터 누누이 들어왔던 말이었다.

-독과 암기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독과 암기를 수단으로 삼을 뿐. 우리는 무인이다.-

할아버지께서 무수히 말했지만, 가슴에 와닿은 적은 없는 말이었다.

암기를 잘 쓰기 위해 지법을 비롯한 금나수와 장법 권법을 익혔고, 독공을 배워 독인을 꿈꾸며 살아왔다. 그런 그에게 암기와 독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지금처럼 가슴에 다가온 적은 없었다.

“마, 많이 배웠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네가 익힌 권법. 한번 잘 익혀봐, 분명 좋은 성과가 있겠어.”

당진원의 근골은 대체로 훌륭한 편이었다. 하지만 암기술과 독공에 치중하느라 정작 깊이 있는 공부가 부족해 보였다.

만약 한가지 무공을 심도 있게 공부한다면 그 성과가 분명 빛을 발할 수 있을 것 같아 나름 조언을 해 주는 연수였다.

물론 그 안에는 그의 마음과 무공을 훔친 것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연수와 적영대의 세 무인, 도화, 천화대는 당진원과 함께 혈개문을 나섰다.

처음에는 적영대의 무인들만 데려갈 심산이었는데 기어코 따라온다는 도화를 말릴 수는 없었다.

그녀가 가는 곳에 천화대 또한 빠질 리가 없었고, 하여 갑작스레 인원이 늘어버린 일행이었다.

공숙과 도화가 타고 온 마차에 몸을 실은 연수와 도화 그리고 당진원과 적영대의 무인들. 남은 천화대의 무인들은 마차를 둘러싸고는 말을 타며 마차를 호위한 채 이동했다.

“저, 저는 말을 타고 가도 괜찮습니다.”

“아니야. 같은 사천에서 오래 볼 사이가 될 텐데 친분을 다져 놓는 게 서로에게 좋겠지.”

당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아버지이자 당문의 가주인 당일수는 앞으로의 사천의 정세와 중원무림의 정세는 완전히 일변할 것이라 말했었다.

그런 파란이 일 강호에서 살아남아 사천을 지키고 정파의 정기를 수호하려면 청성과 아미와의 관계를 돈독히 유지하고 앞으로 파란을 일으킬 패신살성과 절대 척을 지지 않는 것이 관건이라 몇 번이나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말이야. 뭐 자세한 이야기는 가주에게 직접 듣겠지만 역시 이런 결정을 한 것은 맹주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는 거겠지?”

상념에 잠겨있던 당진원의 눈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 역시 듣는 귀가 있었기에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지 않았다.

“예. 현 사천의 정파는 맹주의 최근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습니다만···. 그의 행보에는 의문을 가지게 하는 점이 많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극도로 조심스러운 말이었지만 연수에게는 그걸로 충분했다.

반면 그런 말을 해야 하는 당진원으로서는 마음이 좋을 리가 없었다. 자신 또한 무당파의 친분이 있는 무인들이 있었다.

그런데 다른 이도 아니고 무당파 출신의 무림맹주 옥현인이 마교와 관련하여 의심을 사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 편할 리가 없었다.

그런 당진원의 불편한 마음을 읽은 연수는 더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연수와 도화는 정말 오랜만에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천을 여행하며 큰 마을마다 둘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재미있는 구경을 하며 서로와 함께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둘이었다.

“오라버니, 저기 당과가 맛있어 보여요.”

도화의 말에 순간 연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왜 그러세요? 오라버니···.”

“아, 아니야. 그냥 누가 좀 생각이 나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문을 담아 눈으로 묻는 도화를 보며 쓴웃음 지은 연수는 당과를 사들고는 도화에게 호설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연수의 길지 않은 이야기가 끝이 나자 도화의 큰 눈망울에 가득 찬 눈물이 또르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어린아이가···.”

그런 도화의 눈물을 닦아 준 연수가 말없이 그녀를 안아 주었다.

밝은 대낮에 젊은 남녀가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좋게 볼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주변의 사람들은 마치 그들이 보이지 않는 양 멀리 시선을 두며 모른 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수와 도화의 곁에는 천영을 포함한 십일 인의 무기를 찬 무인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고 호위를 하고 있었다.

마을에 들어오게 되면 도화의 눈에 띄는 미모 덕에 꼭 주제를 모르고 다가오는 사내들이 제법 되었다. 개중에는 제법 한가락 하는 무인들도 꽤 있었다.

물론 그들이 도화의 옆에 있는 남자가 패신살성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애초에 도화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겠지만 아쉽게도 연수의 얼굴은 아는 사람이나 알지 모든 강호에 무인들이 전부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여 시비를 애초에 차단하고자 마을에 들어서면 천화대의 무인들은 연수와 도화의 곁에서 살벌한 눈을 빛내며 호위를 했다.

그 눈길을 받은 사람들은 감히 도화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눈을 깔기 바빴다.

“울지마. 그 착한 아이는 분명 좋은 곳에서 평안할 테니.”

“예. 꼭 그럴 거예요···.”

도화를 달랜 연수가 천영에게 눈짓을 주자 고개를 끄덕인 천영의 신형이 점차 흐려졌다.

마을을 벗어나 계속해서 길을 떠나는 일행.

한참을 관도를 달리고 있는데 마차가 멈춰섰다.

연수가 마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며 도화에게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보내자 도화는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문을 모르는 진원과 적영대원들이 연수를 따라 마차의 밖으로 나오자 천영은 웬 푸른 무복을 입은 젊은 무인의 뒷덜미를 잡고 있었다.

“그놈이야?”

“예.”

천영이 무인의 뒷덜미를 거칠게 놓자 바닥에 쓰러지는 무인.

“제법 무공을 익힌 놈이네. 너 누가 보냈냐?”

“...”

“좋게좋게 말로 하자.”

“...죽여라.”

“하아, 왜 말로 하자고 하면 제대로 듣지를 않지?”

말을 마치는 연수의 주변으로 기막이 쳐지자 고개를 젓는 장내의 무인들.

당진원만이 눈을 끔뻑끔뻑하며 연수와 기막을 번갈아 보았다.

“잘 들어. 뭐 내가 직책과 하는 일이 일이다 보니 별의별 놈들이 다 따라붙거든. 그래서 뭐 웬만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보내줄 수 있어. 근데 나도 누가 날 감시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하잖아? 근데 네가 고집을 피우면···. 내가 많이 궁금하지 않겠어? 그러면 네 몸의 뼈도 부스고, 팔다리도 자르고 눈도 뽑고, 단전도 깨고 그럴 텐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 이거지.”

연수의 장난스러운 말에 장내에 웃음을 짓는 무인은 단 하나도 없었다.

특히나 적영대의 무인들은 얼마든지 연수가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잘 생각하고 답해. 너 누구야?”

잠시 연수의 장난스러운 얼굴을 주시하던 무인은 연수의 검은 눈 속에 차가운 감정을 읽어내고는 입을 열었다.

“무명 낭인 차조인 입니다.”

“그래 그렇게 말로 하니 얼마나 좋아? 그럼 다음 질문. 왜 나를 감시하고 있었지?”

“의뢰가 들어 왔습니다. 덕창의 혈개문에서 중요한 사람이 나왔으니 그들을 추적하고 그 행선지와 만나는 이들을 기록해 알려달라고···.”

“그랬구나. 의뢰인은 누군지 모르지?”

“예. 그저 대리인으로 왔던 자가 고수라는 것밖에는···.”

“그래. 그럴 수 있지. 거봐, 괜히 내가 널 고문하고 죽였으면 낭인회랑 별 이유도 없이 척을 질 뻔했잖아. 다 너도 먹고살자고 한 일인데.”

“그, 그럼 전 가봐도···.”

“그럼. 가봐도 돼. 그런데 말이야. 이렇게 보내주는 건 한 번뿐이다.”

마지막 말을 하는 연수의 몸에서 특유의 살기가 살짝 뿜어져 나오자 당진원은 연수의 뒤로 물러섰고, 살기를 직접 받은 낭인은 일으키던 몸을 다시 바닥에 주저앉히며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그럼 가봐.”

허겁지겁 사라지는 낭인의 등을 보며 천영이 전음을 보냈다.

-뒤를 쫓을까요?

-아니. 일단은 나둬. 낭인회 놈들이랑 부딪혀 봤자 남는 것도 없어. 어차피 사는 세상이 달라. 누구 대가리에서 나온 수인지는 몰라도 어지간히도 날 우습게 보는구만.

-무슨 말씀이신지..?

-평범한 이간계야. 분명 낭인회 회주의 성씨가 차 씨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그럼···.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연수였다.

*     *     *

“누가 어떻게 됐다?”

“그, 그게 음살대가 모두 전멸하였고, 대주 또한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 아이가···. 죽었다? 이 구천진의 제자가 죽었다?”

“예···.”

보고를 하는 사내는 두려움에 목소리가 절로 떨려나왔다.

“그 아이가···. 어째서···. 허어···.”

구천진이라는 노인의 옆에 앉아 있던 노인은 피리를 꺼내어 불기 시작했다. 너무나 구슬픈 그의 연주에 절로 눈물이 흐르는 구천진이었다. 이윽고 피리의 선율에 맞춰 노랫가락을 뽑는 구천진.

이미 피리연주가 시작되면서부터 부들부들 떨면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귀를 막은 사내는 구천진의 시에 음율을 붙인 노래에 눈을 까뒤집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맑은 바람과 벗이 함께하는 이 자리에.

들리는 네 소식에 세상이 변하는구나.

이리도 재미없는 풍경이었던가?

이리도 재미없는 벗이던가.

사무친정은 가슴에 묻고, 빚은 그대에게 물으리.

마음에 내리는 비야 언제고 그칠 진데

허무히 진 꽃은 누가 달래줄꼬?

붉은비가 내려도 못다 핀 꽃봉오리 웃을까?

후회는 가득한데 풀 길은 없구나.

구천진의 구슬픈 노래가 끝이 나자 칠 공으로 피를 쏟으며 죽어있는 사내.

하늘을 바라보는 구천진의 슬픈 눈에는 살심이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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