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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52화 (152/202)

# 152화

마지막까지 몰려 있던 제갈세가의 핵심전력인 이백 명의 무인들은 재빠르게 진세를 유지하며 연수에게 덤벼들었다.

제갈세가의 부흥기를 이끌어오며 무림맹주를 만들었다고도 회자되는 전대고수이자 제갈세가의 정신적 지주인 제갈황엽이 너무도 황망하게 가버리자 무인들은 필살의 각오로 기세를 끌어올렸다.

흥분하여 이성이 마비될 만도 하건만 연내진을 펼치며 연수를 압박해 오는 무인들의 움직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사불란했다.

연내진은 작은 진 여러 개가 합쳐져 하나의 진이 되어 돌아가며 적을 상대하는 진으로 제갈세가의 특유의 진 중 하나였다.

진의 짜임이 보통 촘촘한 것이 아니고 그 진세가 대단하여 함부로 상대하려 하다가는 진세에 눌려 제대로 힘 한 번 써보기 힘들 정도였다.

보통은 다수를 상대하기 위한 이 진을 연수하나를 잡기 위해 꺼내 들었음에도 조금의 방심도 하지 않는 무인들이었다.

내력도 바닥을 보이고, 사흘간 한숨 자지 않고 있는 연수였기에 연내진을 짜며 공격해 오는 이백의 무사를 쉬이 상대할 수가 없었다.

스무 명이 이룬 회진의 공격을 받아내는 순간 삼 방에서의 또 다른 진을 짠 이들이 각종의 진세를 키워 연수를 압박했고, 사방의 서로 다른 진에 휩싸이는 순간, 네 진세가 서로 엮이며 전혀 새로운 진이 되어 연수를 압박해 오니 답답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는 연수였다.

강기를 뽑아내어 눈앞에 무사들을 베어 내려 해도 어찌어찌 진세를 키워 방어해 내는 무인들. 한 명의 무인도 베어내지 못하고 이어 들어오는 공격을 막아야 하니 정신을 차리기가 쉽지가 않았다.

-까까깡!

막 얼굴과 어깨 등으로 날아오는 곤을 막아내자 이번에는 여섯 개의 곤이 온몸으로 날아들었다.

이를 악물고 곡월을 휘두르는 연수.

‘파병초!’

하나 연수의 파병초에도 불구하고 방진의 진세로 돌아선 기운이 서린 무사들의 곤을 잘라내지는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사들의 기운은 급격히 쇠해갔다.

물론 연수 또한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연수보다 이백 명 무사들의 체력이 급격하게 빠져갔다.

그런데도 연수는 연내진을 펼치는 무사들을 상대로 우위를 차지하지 못 하고 있었다.

‘흐름이 읽히지를 않는다.’

그랬다. 아무리 손을 섞으며 진세를 읽어보려 해도 무사들의 진이 이상하게 쪼개지고 합쳐지며 변화무쌍하다 보니 도무지 그 안에서 흐름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스걱.

한순간의 실수였다.

입신경의 고수를 상대로 긴장 상태를 유지하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체력의 소모가 엄청났다.

한 번의 공방 때마다 반장이 넘는 길이의 강기를 받아내야 하니 자연스럽게 압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재수가 없었는지 벌써 자신이 저 무시무시한 강기를 여섯 번이나 상대하고 있었다.

금벽세가 자신의 온몸을 충만하게 채워주고 있었지만, 순간 이글거리는 강기를 보는 순간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진세를 돌리며 강기를 막는 박자가 한 박자 늦어버렸다.

입신경의 고수인 연수가 그 순간의 망설임을 놓칠 리는 당연히 없었다.

깔끔하게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 반으로 쪼개지는 무사.

그와 동시에 연수의 정면을 막고 있던 진세가 크게 흔들리며 연수를 둘러싸고 차륜을 하고 있던 전체의 진세가 크게 일렁거렸다.

-까까까까깡! 퍼퍽!

사방이 막혀 엄청난 기세를 내뿜으며 진세에 저항하던 연수의 균형 역시 미묘하게 흔들리며 밀리는 진세에 의해 살짝 흔들렸고, 그 순간의 공방에서 다섯 무사가 피를 토하며 나자빠졌다.

하지만 연수의 등으로 날아든 곤 두 개가 대서혈과 격유혈을 쳤다.

연수의 입가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평소의 상태였다면 저 정도의 공격 따위 호신강기로 신경도 쓰지 않고 막아냈겠지만, 지금의 연수는 그런 여유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입가에 흐르는 한 줄기의 피를 닦을 새도 없이 곡월을 휘둘러야 하는 연수였고, 그런 연수를 보며 사기를 끌어 올리는 제갈세가의 무사들이었다.

-쇄애액! 퍽!

바닥에 떨어진 곤하나를 발로 차 날리자 연수의 부상에 흥분하여 진세를 무리하게 이탈하며 공격하던 무사의 얼굴에 곤이 그대로 처박히며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대로 허물어지는 무사의 뒤로 성난 표정을 하고는 달려드는 무사들.

순간 연수의 머릿속을 스쳐 가는 빗살 같은 생각.

‘체력을 보전해야 한다.’

이리저리 몰아치듯 공격을 하며 이백의 무사들을 사방으로 이끌고 다니던 연수의 반경이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연수의 초식 또한 그 움직임이 작아졌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하고 피할 수 없으면 막아내고 공격했다.

연수가 땅에 붙은 듯 몇 장의 반경 안에서 진을 상대하기 시작하자 무사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크게 움직여 진의 위치를 새로이 잡고 진세에 변화를 주어야 하는데 정작 연수의 움직임이 제한되니 본인들의 진세 또한 변화를 꾀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스스슷.

정면에서 머리와 명치 사타구니를 노리며 날아드는 곤을 향해 연수의 손이 기묘하게 움직이자 세 개의 손목이 잘려나갔다.

손목이 잘리기 무섭게 인파의 속으로 사라지는 무사들.

그들을 대신해 새로운 공격들이 연속하여 쏟아졌다.

‘보인다.’

단순히 체력을 보존하기 위해 움직임을 최소화하던 연수의 눈에 현격히 변화가 준 진세의 흐름이 훤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순간적으로 자신을 밀어내려는 진세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연수.

굉음과 함께 달려들던 다섯 무인이 육편이 되어 사방으로 흩날리며 연수는 두 걸음을 물러섰다.

연수가 뒤로 물러서기 무섭게 사방의 진이 네 갈래로 찢어지며 뒤로 물러서서는 힘을 모았다.

‘쳇!’

단전의 바닥에 남겨놓았던 내력을 전부 끌어올리는 연수.

대비하기 무섭게 동시에 달려드는 네 개의 진.

'화생목'

-콰콰콰콰아아아앙! 스아아아.

무시무시한 소리와 함께 장내에는 혈향이 짓게 풍겨 나왔다.

엄청난 힘의 충돌에 바닥이 갈라지고 사방으로 날아오르던 먼지가 가라앉자 피를 토해내는 연수가 보였다.

주위 사방으로 무사들의 절반이 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었다.

이미 진세를 유지하기 힘들어 보이는 무사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여기저기 부상 입은 곳을 움켜쥐고 연수를 노려보는 무사들이었다.

그나마 서 있는 무인들도 그런 상태였다.

하지만 연수의 상태 역시 멀쩡하진 못했다.

그런데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곡월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무사들을 향해 달려드는 연수.

정상인 무사들이 거의 남지 않았지만, 아직 서서 버티고 있던 무인들 역시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다.

이미 강기를 뽑아낼 내력조차 남지 않은 연수는 숨을 몰아 내쉬며 무사들과 손을 섞어 그들의 목을 베어갔다.

제대로 된 진조차 유지하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무사들과 연수의 박투는 갈수록 치열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으로 쓰러져 가는 무사들은 늘었다.

“죽어!”

-스슷 푸슛!

손에든 곤으로 연수의 정수리를 찍어내라던 무사의 목에 가는 혈선이 그어지며 피가 튀어나오자 분노 가득한 눈빛을 한 무사의 눈이 생명을 잃어갔다.

비틀거리면서도 여전히 덤벼드는 무사들을 모조리 베어내는 연수였다.

연수가 제갈세가에 난입한 지 한 시진이 훌쩍 지났다.

장내에는 서 있는 제갈세가의 무사들이 남아 있지 않았다.

오직 오십여 명의 여자와 아이들만이 벌벌 떨며 온몸을 피로 적신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연수를 공포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 순간에도 연수의 곡월은 아직 바닥에서 신음하며 숨이 붙어있는 무사들의 숨을 착실히 끊어내고 있었다.

누워서 신음하는 마지막 무사의 목에 곡월을 박아넣자 경동맥이 잘리며 무사의 목에서 세차게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피가 연수의 얼굴을 적셨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동공을 끊임없이 운공하여 내기를 모으는 연수는 한숨을 내쉬며 이미 검붉은 색으로 축축한 팔로 눈가를 닦아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피로 목욕을 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그의 모습에 몇몇 아이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자신들의 아비며 삼촌이며 형들의 숨통을 악착같이 끊어내고는 자신들을 바라보며 한 걸음씩 다가오는 연수를 보자 절로 울음이 터져 나오는 아이들이었다.

“무가의 사내로 태어나 적을 앞두고 눈물을 보이다니! 그러고도 네가 제갈세가의 혈족이란 말이냐!”

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는 아이의 어미가 이를 악물며 아이를 나무랐다.

여전히 비틀대며 무사들의 시체를 밟고 넘으며 남은 혈족들에게 다가오는 연수.

그런 연수의 앞을 막아서는 창백한 얼굴의 여인.

그녀는 연신 넘어오는 토악질을 참아내며 검을 뽑아 들었다.

잠시 멈춰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수.

“너···. 익숙한 얼굴이군.”

“전에 당신을 추적한 일이 있어요.”

“아아, 기억났어. 제갈령이었던가?”

“...네.”

“제갈세가의 무인은 단 한 명도 살려 둘 생각이 없어.”

“곱게 죽어 줄 생각따위 없어요.”

“좋군. 와라.”

-쇄액! 툭.

쾌검을 뻗어오던 제갈령의 목이 바닥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연수가 그녀의 곁을 지나치자 잘린 목에서 피가 솟구치며 그녀의 신형이 허물어졌다.

“아가씩! 끄흑!”

이를 악물고 울음을 삼키는 여인들.

그런 혈족들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연수의 앞을 어린 여자아이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막아섰다.

이제 대여섯 살 되었을까 싶은 계집아이였다.

그녀의 목으로 곡월을 휘두르는 연수.

하지만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가족을 지키고자 조그마한 두 팔을 벌리고 있는 그 아이를 도무지 벨 수가 없는 연수였다.

아이의 얼굴과 호설의 얼굴이 겹쳐져 보이며 이를 악무는 연수.

잠시 망설이던 연수의 입이 열렸다.

“제갈의 성을 버리고 살아간다고 약조하면 목숨만은 살려줄 것이다.”

“...”

장내에는 그 누구 하나 목숨을 구걸하는 사람이 없었다.

“살길을 열어준다는데 굳이 죽겠다고?”

“악인에게 구차한 목숨을 구걸할 생각은 없어!”

다부진 인상의 중년 여인은 아이를 꽉 안아 든 채 말했다.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

그것은 분명 제갈세가의 내공과 궤가 같았다.

연수의 곡월이 흔들리는 순간 곡월의 끝에서 한 줄기 기운이 뽑혀 나와 그녀의 미간을 꿰뚫었다.

쓰러지는 그녀의 신형.

이제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와 그보다 어려 보이던 어린아이는 어미의 사체를 끌어안으며 오열했고, 사방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악마!”

“악마라 부르든 뭐라 부르든 상관없어. 마지막 기회다. 구걸해라. 그 더러운 목숨을. 버려라, 그 역겨운 성씨를. 그렇지 않으면 계집아이들은 모조리 매음굴에 팔 것이고 사내아이는 거세하여 노비로 평생을 부릴 것이다.”

“!!!”

“크흐흑! 제, 제 아이만은···! 부디 살려주십시오. 제갈이란 성씨는 쓰지 않겠습니다.”

한 여인이 치욕의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자, 여기저기 여인들이 주저하지 않으며 목숨을 구걸했고, 자식들의 무릎 또한 꿇렸다.

한참을 자식들의 목숨을 구걸하며 제갈이란 성을 버린다, 비는 그녀들을 보는 연수의 입매가 차갑게 비틀렸다.

“그 약조 지키는 게 좋을 거야. 몇 남지 않은 제갈세가의 무인들 따위 다신 만나지 않고 연을 끊는 게 좋을 거야. 언제고 내 눈에 선명히 기억된 너희 중 약조를 어긴 연놈이 있다면 죽는 것보다 만 배 힘든 삶을 강요할 테니.”

“크흑! 흐흐흑!”

“흑흑흑!”

사방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조아린 혈족들을 잠시 바라본 연수는 한 줌 남은 내력을 운공하며 신형을 날렸다.

그의 신형이 장내에서 사라지자 오십여 명, 남은 혈족들의 통곡이 커다란 세가의 장원을 울렸다.

장원의 대전 뒤 안채로 들어선 연수는 비틀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고는 안채의 방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몇 개의 목합을 발견한 연수는 목합을 열어, 그 모습을 드러낸 검푸른 단약의 끝을 살짝 떼어 입에 대어 보았다.

청량감과 동시에 녹아내리는 느낌.

그대로 단약을 입에 밀어 넣는 연수.

단전으로 단약의 기운이 빠르게 몰아치며 차오르기 시작하자 한숨을 몰아쉰 연수의 신형이 사라졌다.

호북의 하오문 지부를 찾아가는 연수.

청명화루의 꼭대기 층에 갑자기 연수의 신형이 드러나자 주변의 기세가 일렁거렸다.

하지만 이내 잦아드는 기운들.

이미 연수의 용모파기는 하오문의 문도들에게 철저하게 전해져 절대 그를 건드리지 말라는 교육을 철저히 받은 문도들이었다.

다만 피를 뚝뚝 떨어트리며 나타난 그의 모습을 멍하니 보며 덜덜 떠는 기녀만은 차마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굳어있을 뿐이었다.

“지부장을 좀 만나야 하겠는데.”

“...아! 네. 안으로 들어가시면···.”

그녀의 말을 채 끝까지 듣지도 않고 그녀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가는 연수.

자신의 방문을 허락 없이 벌컥 열고 들어오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무인의 얼굴을 본 중년의 여인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몰골이 지옥에서 막 기어 올라온 야차와 같았고, 슬금슬금 흘러나오는 살기는 금방이라도 살이 베일 듯 날카로웠다.

꿀꺽.

침을 삼킨 여인은 금세 연수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한가한 인사나 나눌 기분이 아니야. 문주에게 내 이야기는 전해 들었겠지?”

“예. 모든 도울 수 있는 일은 도우라 하셨습니다. 어, 어떤 정보를···.”

“정보는 됐어. 짧게 말 할 테니 빠르게 움직여. 제갈세가를 멸문시켰다. 방금. 세가 내 혈족 몇을 빼고는 모조리 죽였어. 그 장원에 쌓인 재물과 보물 각종 무서와 진서가 상당할 거야. 뒤를 잡히지 않을 사람들을 써서 모조리 가져와. 철전 하나 흘리지 말고 모조리. 수수료로 너희들에게 삼 할을 주지. 단 절대 들켜서는 안 돼.”

“...”

너무도 엄청난 말에 입을 떡 벌리고 대답을 못 하는 그녀를 무심하게 바라보는 연수의 입이 다시 열렸다.

“알아들었나? 아니면 더 설명이 필요한가?”

절대 친절히 설명을 해 주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님을 모를 그녀가 아니었다.

순간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여인.

“아, 알겠습니다.”

“수수료를 뺀 물건은 모두 혈개문으로 은밀히 가져와.”

“예!”

그녀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사라지는 연수의 신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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