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142화 (142/202)

# 142화

연성루를 벗어난 연수는 덕창현의 뒷골목에 있는 노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난 며칠간 끼니를 해결하던 노점이었다.

“젊은 총각 또 왔는가? 매 끼니를 국수로 때우면 안되는디···.”

늙은 노파의 걱정에 연수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건강이라면 자신 있어요.”

“그려그려.”

노파의 얼굴 가득한 주름이 진하게 구겨지며 환한 웃음이 지어졌다.

그릇에 가득 삶은 국수 면을 담고는 미지근한 국물을 부어주는 노파.

“미안혀서 어쩐댜? 장작이 떨어져서 국물이 미지근혀.”

“괜찮아요.”

씩 웃으며 국수를 받은 연수.

연수의 손에 잡힌 국수 그릇이 좁은 탁자 위에 올려지기 무섭게 김이 나기 시작했다.

“워매! 이게 뭔 일이랴? 젊은 총각이 인제 보니 고수였구먼?”

“예. 뭐 제법 고수죠.”

말을 마치며 젓가락을 들어 국수를 한 젓가락 푸는데 노점으로 다가오는 사내들.

막 노점의 노파에게 뭐라 입을 열던 사내들은 연수를 발견하기 무섭게 노점을 지나치며 막다른 골목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애초에 지나가는 길인 양 보일 정도였다.

“거기 막다른 골목일걸?”

국수의 국물을 마신 연수가 국수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하자 네 명의 사내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이제 보니 암수살성님이 계셨군요. 알아보는 게 늦어 죄송합니다.”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가 땅에 닿을 듯 허리를 숙이는 사내들.

“같은 사파인으로 흑도에 투신해서 먹고사는 거 뭐라 나무랄 생각은 없는데, 흑도도 나름의 도리는 지켜야지. 노인네가 먹고살려고 장사하는데 매일같이 찾아와 그러는 거 아니다. 젊은 놈들이 남는 게 힘밖에 없어 보이는데 장사라도 잘 할 수 있게 장작이라도 좀 패오던가. 장작이 떨어져서 발만 동동 구르고 계시는데 무슨 장사를 하시겠냐.”

“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저희가 당장 가서···.”

“그건 남은 놈들 시키고 너는 나랑 같이 가야겠다.”

“어딜···.”

“기다려봐 식사 좀 끝내고.”

사내들을 세워놓고 국수를 마저 먹는 연수.

노점의 노파는 어두운 얼굴로 연수의 뒤로 서 있는 사내들을 바라봤다.

식사를 끝낸 연수는 은자 한 냥을 노파에게 내밀며 일어섰다.

벌써 며칠째 같은 은자를 받아왔던 노파는 사내들의 눈치를 보며 은자를 받아 품에 꼭 넣었다.

“남은 놈들은 여기 장사할 수 있게 장작 좀 넉넉히 패다 드리고, 너는 네놈 두목 있는 곳으로 안내해. 아직 상천루에 있나?”

“예? 아, 아니 그것이···.”

“뭐?”

눈매를 좁히는 연수를 보며 사내는 재빨리 앞장섰다.

“얼마 전 구한 장원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저희도 모두 그곳에서 기거하고 있습니다. 따르시지요.”

“참내, 흑도 놈들이 얼마나 악독하게 민초를 쥐어짰으면 장원을 다 사?”

“그, 그게 오랫동안 모은 돈을···.”

“나 거짓말 싫어해. 하려면 들키지 마라. 겨우 삼 년 전에 자리 잡은 네놈들이 뭘 오래도록 돈을 모아?”

“죄, 죄송합니다.”

“흑도도 흑도 나름의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거야. 무조건 쥐어짠다고 다가 아니야. 소상인들과 같이 먹고산다는 개념으로 공존할 생각을 해야지. 그들이 다 굶어 죽으면 니들은 뭐 먹고 살래?”

“죄송합니다.”

그저 고개를 숙이며 죄송하다는 말만 하는 사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연수였다.

제법 큰 장원의 정문에는 흑우장이라는 현판이 달려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나름 무가의 분위기를 내며 위통을 들어낸 사내들이 단체로 수련을 하고 있었다.

수련 이래 봤자 근본을 알 수 없는 권법을 한 동작씩 기합과 함께 펼치는 것뿐이었지만 나름 땀을 흘리는 사내들을 보니 연수의 입매가 비틀렸다.

“요즘은 흑도도 수련을 다 하냐?”

“덕창현에만 저희 말고도 세 개의 조직이 더 있습니다. 경쟁 관계에 있는 화련파에서 이번에 고수를 영입해서 위기의식을 느낀 두목님이 비전 무공을 특별히 전수하셨습니다.”

“저, 저게 비전 무공이라고?”

“예. 저희 두목님이 덕보산에서 십 년 동안 수련한 우각귀살신권 이라고···.”

“됐다.”

장황한 이름을 대며 설명하려는 사내의 말을 바로 끊어버리는 연수였다.

도대체 도가의 무공인지 불가의 무공인지 그도 아니면 사도의 무공인지 알 수가 없는 초식을 펼쳐대는데 동작이 끊어지며 절도있는 것이 강권의 초식인가 싶으면 하체가 불안하고 변초의 중점을 둔 환권이라 하기에는 무식하게 직선적인 권로였다.

나름 두목의 비전 무공에 대해 장황한 자랑을 하려던 사내는 입맛을 다시며 입을 다물었다.

연무장처럼 쓰는 앞마당을 지나 뒤채가 펼쳐진 곳으로 가자 큰 별채가 하나 나왔다.

이목공을 익힌 연수는 벌건 대낮부터 별채에서 들려오는 낯뜨거운 소리에 인상을 찌푸렸다.

“두목이라는 놈이 부하들은 땀을 흘리며 수련을 하는데 저 지랄이나 하고 있고.”

사내는 연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걸음을 옮기다 별채의 안에서 나오는 교성을 듣고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두, 두목님.”

-아아! 하아아아!

“두목님!

-이런 씨팔! 어떤 새끼가 밤일 중에 찾아와!

“나다 이 새끼야. 지금이 밤이냐? 낮에 왜 밤일을 하고 지랄이야.”

갑자기 튀어나오는 젊은 남자의 반말지거리에 씩씩거리며 옷도 제대로 못 입고 튀어나오던 흑우방의 두목은 연수의 얼굴을 보자 벼락을 맞은 듯 움찔했다.

“어, 어, 어 어쩐 일로 이 누추한 곳까지···.”

“누추해? 이게 누추하면 나같이 집 한 칸 없는 놈은 완전 거지네.”

두목은 맨발로 튀어나오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 뜻이 아니옵니다. 죽여주십시오.”

“진짜? 뭐 정 원한다면···.”

“헉! 살려주십시오!”

이마를 바닥에 찧는 두목이었다.

별채의 안에서는 옷매무시를 바로 한 여인들이 셋이나 밖으로 나와 심상치 않은 상황에 잔뜩 긴장했다.

젊다 못해 어린 여인들의 모습을 본 연수의 아미가 절로 찌푸려졌다.

“하여튼 어디를 가나 흑도 새끼들은···.”

그런 연수의 표정을 슬쩍 올려다본 두목은 연수의 의도를 오해하여 말했다.

“이, 이번에 들인 첩들인데···. 어떻게 단장을 시켜···.”

“그 주둥이 닫으면 오래 살 텐데···.”

“...”

“앞으로 너는 웬만해서는 그 입을 안 여는 게 좋겠다. 꼭 필요한 말을 빼고는 입을 닫아.”

“예.”

“내가 온 이유가 궁금할 텐데, 한동안 지낼 곳이 필요해. 해서 누추하다는 네 집에 방 한 칸 준비해 놔. 이것저것 시킬 일도 많으니까 이놈은 내가 데려갈게.”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두목은 대답을 기다리며 점점 좁아지는 연수의 눈매를 보기 무섭게 앞장섰다.

“안채로 모시겠습니다. 따르시지요.”

맨발로 앞장서는 두목.

연성루에서 피로 이루어진 강을 봤던 그였다. 시체는 다 치운 뒤였지만 그 넓은 일대에 피로 만들어진 진흙 바닥은 아직도 검붉은 핏기와 혈향이 다 가시지 않았다.

듣기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한순간에 그렇게 만들었다 하는데 이미 자신은 상천루의 지하에서 부하 둘을 순식간에 조각내 버리는 연수의 신위를 본 경험이 있었다.

자칫 저 심기를 거슬러 죽게 되면 자신만 억울했다.

‘분명 떠난 줄 알았는데···.’

삼 일 전 수금을 하러 갔던 부하가 저 괴물이 아직 덕창에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상천루를 벗어나 장원으로 들어왔다.

사는 동안 다시는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 인물이 이제는 자신의 안방에 눌러산다니 미칠 노릇이었다.

두목의 심정이 어떻든 넓은 그의 안채에 자리를 잡은 연수는 매우 만족한 상태였다.

넓다 못해 거대한 안채의 안방은 안락하기 그지없었다.

푹신한 방석이 깔린 의자에 앉아 등을 기대자 연수를 따라 들어온 사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사내는 잠시 연수를 뭐라 불러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러고 보니 묻는 말에 대답이나 했지. 먼저 부를 일이 없었다.

“왜?”

“제가 어찌 불러야 할까요?”

“일단은 적영대장이라고 부르면 된다.”

“예. 적영대장님.”

“그러니까 왜?”

“다른 건 아니옵고, 저희 흑우장에 머물러 주셔서 참 영광이옵니다. 그런데 얼마나···. 머무실지 알면 저희가 준비를···.”

“언제 나갈 거냐 그거지?”

“아이고, 당치않습니다. 감히 제가···.”

“거짓말 더럽게 못하는 거 같은데 하지 마라.”

“예···. 죄송합니다.”

“머물 만큼 머물다 갈 테니까 신경 쓰지 마.”

사내는 신경 쓰지 말라는 말에 속으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신경이 쓰이는데 어떻게 안 쓰냐!’

하지만 흑도에서 오래 굴러먹은 만큼 조금도 불만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근데, 너 이름이 뭐지?”

“석철이라 합니다.”

“석철? 그럼 돌쇠구나. 앞으로 그리 부르지.”

“예···.”

어색하게 웃어 보인 사내는 연수의 옆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돌쇠가 가시방석 같은 곳에 서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던 연수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하오문을 흔들어보면 더 빠르게 소문이 퍼지겠지. 그도 안되면···. 사패련을 족쳐볼까? 아니야. 한곳에 진득하니 붙어있어야 누가 찾아와도 찾아올 거야. 하오문을 휘어잡아야 사패련과 무림맹의 움직임을 훤히 볼 수 있을 텐데···. 그렇다고 언제까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수도 없고, 자리를 잡아야 할까?’

거처에 대한 생각으로 고민이 깊어지는 연수였다.

사황성에서는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게 되면 분명 접촉을 해 올 것이다.

그렇기에 한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야만 했다. 그렇다고 어디 한 곳에 대놓고 자리를 잡고 있다가는 자칫 성주처럼 당할 수도 있었다.

맹주가 직접 고수들을 이끌고 오지 않는 한 절대 당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마교의 고수 놈들이 진을 짜고 맹주와 합공을 한다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었다.

“돌쇠야.”

“예.”

“이 일대에 몇 개의 흑도 조직이 있다고 했지?”

“저희 말고도 세 개가 더 있습니다. 화련파와 백웅파 그리고 신생 조직인 흑개파가 있습니다.”

“흑개? 거지들이야?”

“예. 고아 거지들이 자라서 만든 조직으로 별 볼 일 없는 놈들입니다만 제법 악다구니들이 있는 놈들이 몇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잠시 생각에 잠기는 연수.

돌쇠는 이 인간이 대체 덕창의 흑도에 왜 관심을 두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무림인들은 흑도를 경멸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정파인들은 말 할 것도 없이 툭하면 흑도를 잡아다 족치고 협행을 했다며 떵떵거렸고, 사파인들은 그나마 덜 했지만 보는 눈이 곱지는 않았다.

하여 흑도들의 수입원이란 건 어쩔 수 없이 민초들의 삶과 밀접하게 붙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흑도에서 가장 성공한 자들이 하는 사업 이래 봤자, 홍루였다.

여인들이 몸을 파는 홍루는 주루 중에서도 급이 제일 낮고 천시 여겨지는 업종이지만 흑도에게는 이 홍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성공의 척도였다.

이런 바닥 중에 바닥 인생을 살아가는 자신들에게 강호를 뒤흔드는 절대의 경지라는 입신경의 고수가 왜 관심을 두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돌쇠였다.

한참 닫혀있던 연수의 입이 열렸다.

“돌쇠야. 너 지금 가서 그 세 조직의 우두머리들 다 데려와.”

“예?”

돌쇠는 순간 자신의 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들었잖아.”

“아니, 그······. 그러니까 경쟁 조직들의 두목들을 찾아가서 이리로 데려오라고요?”

“그래.”

“저···. 죽을 텐데요?”

“왜?”

돌쇠는 너무도 무심하게 묻는 연수의 얼굴을 찢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적대하는 경쟁 조직에 가서 그것도 두목에게 ‘잠깐 우리 집에 오래.’라고 하는 순간 칼을 맞을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들이 절 가만 둘리가 없잖습니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대답하는 돌쇠였다. 연수에게 대들기에는 핏물이 되어 조각나던 부하들의 잔상이 떠올랐기에.

“내가 오라 하는데 누가 널 건드려? 나 암수살성이야.”

“아!”

그제야 돌쇠의 얼굴이 밝아졌다.

“알았으면 빨리 데려와.”

“예.”

한참 뛰어가던 돌쇠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되돌아와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안 온다 하면 어떡하죠?”

“그럼 내가 간다고 그래.”

연수의 싸늘한 목소리에 돌쇠는 흠칫 어깨를 떨며 고개를 숙이고는 빠르게 뛰어나갔다.

‘열흘, 그리고 또 얼마를 기다려야 할까? 소개야 인마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날 찾아와야지. 서운하게.’

귀주의 청고산 모처.

“그래서 내가 간다고 했잖소!”

“그러니까 안된다고 했잖아!”

언성을 높이며 흥분하는 무인들.

“성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연수의 일이오!”

“그는! 그는 그날 명예롭게 죽었다. 저 더러운 새끼들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는 모르지만 이건 십 중 십! 함정이야!”

“성주는 그날 이후 겁쟁이가 다 되었소!”

“뭐?!”

흥분하여 막말하는 남자의 팔을 붙잡으며 말리는 여인.

“가가. 말이 너무 심해요. 성주님 또한 흥분을 좀 가라앉히세요.”

“공 매! 하지만···.”

“알아요. 저도 그 누구보다 그 녀석이 살아있기를 바라요. 그건 저희 모두의 바람이에요. 누구 하나 그리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이 안에 없어요.”

얼굴 왼편에 이마부터 턱까지 긴 자상의 흉터가 눈마저 빼앗아가 잘생긴 얼굴을 망치는 듯 보이는 남자는 습관적으로 잃은 왼눈의 자상을 만지며 자리에 앉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