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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41화 (141/202)

# 141화

순식간에 연성루의 앞은 피의 강이 흐르며 발 디딜 곳이 없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제법 도망을 가던 마지막 복면인은 연수의 손에 뒷덜미가 잡혀 버렸다.

“음···. 편히 죽는 법이 있고, 어렵게 죽는 법이 있다. 편이 죽을 때는 죽는지도 모르고 죽을 것이고 어렵게 죽을 때는 일각이 일 년처럼 느껴질 거야.”

너무나 편안한 목소리로 설명을 하자 머리털이 주뼛 서는 복면인 이였다.

하지만 그는 고문에 버티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막 입을 열어 대답하는 척 입안의 독단을 터트려 삼키는데 헛구역질이 나오며 붉은 막에 휩싸여 자신의 목구멍을 역류해 나오는 독을 바라보는 복면인의 눈에는 경악감이 담겨있었다.

연수가 기막을 씌워 허공섭물로 복면인의 목을 넘어가는 독을 그대로 뽑아낸 것이었다.

“넌 아직 어떻게 죽을지 선택하지 않았어.”

복면인의 눈이 세차게 떨렸다.

“아혈을 짚은 기억은 없는데. 말해. 어떻게 죽을 것인지.”

“어, 어차피 죽을 거 편히 죽고 싶소.”

“좋은 선택이야. 그럼 몇 가지만 답하면 돼. 첫 번째 맹주와 마교는 어떤 사이지?”

복면인은 잠시 연수의 무심한 얼굴을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신교에 대해서는 말 할 수가 없소.”

단호한 복면인의 눈을 바라보는 연수의 입매가 비틀렸다.

“사람을 무너트리는 건 생각보다 쉬워. 별로 그런 방법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못할 것도 없어. 첫 번째로 귀를 자를 거야. 그리고 네 입에 넣어주지. 씹어 삼키면 얼굴은 건드리지 않으마. 삼키지 않으면 반대 귀를 자를 거야. 그다음은 눈을 뽑아 입에 넣어주지. 다음은 코 그리고 손가락과 발가락을 자를 것이고, 양물도 멀쩡할 순 없을 거야. 더 자를 게 없으면 배를 갈라서···.”

“맹주는 신교와 밀약을 맺은 사이입니다.”

연수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복면인의 입이 열렸다.

호선을 그린 연수의 입매가 다시 열렸다.

“어떤 밀약일까?”

“자세한 상황은 모릅니다. 그저 맹주의 일을 도우라며···.”

“그렇지? 역시 마교에서 기어 나온 무인들이었구나. 이상하다 생각했었지. 삼 년 전 그날 전혀 알려지지 않은 신진고수들을 무더기로 끌고 와서 성주를 습격하던 맹주를 보며 언제 저런 고수들을 키웠나 의문이 지워지질 않았어. 불과 삼 년 만에 초절정의 고수가 되어있는 저놈도 그렇고 말이야. 초절정의 고수가 이런 복면이나 뒤집어쓰고 맹주의 뒷일이나 봐 주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았어.”

“...”

“마지막 질문이다. 맹주와 너희의 관계는 얼마나 되었지?”

“십 년이 아직 안 되었습니다.”

말을 마치는 복면인의 옆으로 붉은 기운이 살짝 감도는 순간 그의 머리가 목위에서 떨어지며 피로 흥건한 바닥을 굴렀다.

순식간에 일어난 살육에 연성루의 앞에서 흐르는 피는 대로를 따라 흘러가며 주위의 사람들을 공포에 빠트렸다.

연성루 근처로는 많았던 민간인이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몸을 숨겼고, 연성루안에서 느껴지는 인기척들은 부들부들 몸을 떨며 숨을 죽이고 있었다.

피로 인해 발 디딜 틈을 찾을 수 없는 땅 위로 반 치정도 떠오른 연수는 뒤로 돌아 연성루를 향해 낮게 읊조렸다.

“내가 돌아온 이상 밀린 혈채를 모조리 받을 것이다. 정사마를 막론하고 내게 빚을 진자가 있다면 지옥까지 쫓아가 그 빚을 다 받아낼 것이야.”

낮은 연수의 목소리는 연성루를 포함하여 근처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잠시 연성루안의 기척을 살피던 연수는 씩 웃고는 신형을 감춰 버렸다.

순식간에 그의 신형이 사라져버리자 연성루의 안에서는 몇몇 인영이 나왔다.

그들은 장내의 오십여 구의 시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강호에는 죽었던 암수살성이 돌아왔다며 난리가 났다.

특히나 사패련의 고수들과 무림맹의 맹주직속 비검대를 도륙 낸 무위는 많은 무인에게 충격을 주었다.

비검대의 초절정 고수를 포함한 오십여 명의 일류와 절정고수들. 웬만한 문파에도 밀리지 않을 그들을 너무나 쉽게 도륙 내 버린 그의 무위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절대의 경지라는 입신경임에 틀림이 없었다.

소문은 천리마보다도 빠르게 강호로 퍼져나갔고, 사달이 난 덕창현은 한동안 쥐죽은 듯 조용했다.

강서에 큰 누각을 여러 채 둔 가장 큰 장원의 대전.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앞으로 나서며 말하는 절곡가주의 말에 흑단목에 묵철을 씌워 만든 커다란 패주의에 몸을 묻은 귀형신살은 인상을 찌푸리며 두 눈을 감아버렸다.

절곡가주의 말에 동조하며 나서는 우괘가주.

“비검대의 고수가 강기를 사용하는 고수였다고 합니다. 그런 자를 상대로 순식간에 제압했다고 합니다. 그가 정말 암수살성이라면···. 분명 그는 우리와 반목할 것입니다. 혈채를 받겠다며 강호를 상대로 엄포를 났다 하니 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후우.”

한동안 절곡가,우괘가,주결가,팔쇄가의 가주 들의 우려 섞인 이야기를 듣던 귀형신살의 입에서 끝내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요?”

귀형신살의 말에 사패련 안에서 제일 발언권이 강한 팔쇄가주 재반걸이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사황성과의 전쟁을 멈추고 그들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솔직히 저희 사패련이 무림맹과 연합하여 같은 사파인 사황성과 피를 보는 것은 순리에 맞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전 사황성주의 직계제자 적연단은 인상을 구기며 반발하고 나섰다.

“그놈들은 마교의 주구! 같은 사파인이 아닙니다! 애초에 그들과 반목하는 이유가 그것 아닙니까?”

전 같으면 적연단과 대립하지 않았을 팔쇄가주였지만 이미 그는 별 볼 일 없는 사패련의 무인일 뿐이었다.

“흥! 전 성주가 마교와 흉계를 꾸몄을지는 모르겠지만 나 또한 사황성에 일축을 맡고 있던 자. 어디 나뿐인가? 여기 모인 모두는 사황성의 일인들이 아니란 말인가? 그런 우리 또한 전 성주와 마교의 흑막은 알지 못했지. 지금 사황성에 남아있는 자들인들 뭘 제대로 알았을까? 한 지붕 밑에서 한솥밥 먹은 세월이 얼마인데! 지금은 사파끼리 분열해 있을 때가 아니야. 암수살성이 정말 마교의 주구라면 목숨을 걸고 싸워야겠지만 그 전에 사황성과의 매듭을 지어야만 해. 그들과 휴전을 하던 합맹을 하던.”

합맹이라는 소리에 적연단의 목소리가 자연히 커졌다.

“말을 가려 하시오! 합맹이라니! 어째서 우리 사패련이 명맥만 남은 사황성의 떨거지들과 합쳐야 한다는 거요? 사패련을 만드느라 그간 얼마나 애를 썼는데, 이리 키워놓았는데 어째서 그들과···.”

적연단의 말을 듣고 있던 팔쇄가주의 눈매가 좁아졌다.

사황성에 있을 때도 상위 사대 가문의 한 축을 맡고 있던 팔쇄가주였다. 성주의 제자라는 무소불위의 가호가 있었기에 모든 가신이 적연단을 필두로 한 성주의 제자들을 꺼렸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패천후가 죽고 난 후 그의 비리를 증언하며 사패련의 간부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그를 따르는 무인이 많은 것도 아니었고, 무력 대를 따로 맡은 것도 아니었다.

평소 신망이 없는 적연단이었기에 사실상 사패련에서는 제일 발언권이 적은 간부 중 하나였다. 만약 련주인 귀형신살이 그의 뒤를 봐주지 않았다면 진작에 도태되었을 인물이었다.

“허튼소리! 사패련을 자네 혼자 키웠단 말인가! 누가 들으면 자네가 사패련의 주인인 줄 알겠군.”

은근히 기세를 일으키며 말하는 팔쇄가주.

그에 움찔하며 뒤로 물러서서 입을 닫는 적연단이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고개를 들지 못하는 적연단.

그때 귀형신살의 입이 열렸다.

“그만. 이제 와 사황성과 무슨 수로 협력할수 있겠소? 명목상 그들과 전쟁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그림자도 찾지 못하고 있소. 물리적으로 부딪힌 것도 벌써 반년이 넘어가고 있고.”

“그러니 불필요한 명목상인 전쟁을 이어 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러려고 해도 그놈들을 만나야 이야기를 하든 협력을 하든 할 게 아니오?”

“그야···.”

지하로 숨어든 그들을 도무지 찾아내지 못한지가 반년이 넘었다.

도대체 적지도 않던 그 인원이 어디로 숨어들었는지 알 수 없는 사패련의 무인들이었다.

연수는 연성루의 꼭대기 층에 은신하고 가부좌를 틀며 앉아서는 기감을 넓혀 덕창현의 동쪽 성문을 자세히 감시했다.

벌써 며칠째 그러고 있었지만 익숙한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살아있다는 걸 알았을 텐데 어째서 움직이질 않는 거지? 그렇게나 몰려있는 상황인가?’

칠 일째가 지나자 연수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연성루의 꼭대기 층에서 연수가 내려오자 몇몇 하오문의 문도들은 기겁했다.

그런 하오문도 중 며칠 전 새로이 연성루에 들어온 중년의 여인을 마주한 연수의 얼굴에 밝은 웃음이 피어났다.

여인은 오금이 저림을 느끼며 굳은 채 연수를 바라볼 수밖엔 없었다.

전 지부장을 비롯한 사패련의 많은 고수를 반으로 잘라 죽이고 전 강호에 혈채를 갚겠다며 엄포를 놓은 절대의 고수가 눈앞에서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기분은 저승사자를 마주하는 것만큼 오싹한 일이었다.

“며칠 전에 동문을 지나는 걸 느꼈는데, 역시 당신이 새로운 지부장인가 보군?”

“그렇습니다. 하오문의 목희라 합니다.”

목희는 떨림을 최대한 숨기며 담담함을 가장하여 인사했다.

“할 말이 좀 있어.”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자신의 거처로 연수를 데려가는 목희.

아무런 의심도 경계도 없이 여유 있게 따라오는 연수를 보며 목희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어떤 함정이든 상관없다는 듯 따라오는 그의 모습에는 이미 절대자의 여유가 풍겨 나왔다.

안락한 방으로 들어서서 상석으로 앉자 시비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차를 내려놓고 나갔다.

“왜 저리 떨어? 독이라도 탔나?”

“걱정되십니까?”

“설마.”

말을 마치며 거침없이 찻잔에 손을 뻗어 들이켜는 연수.

“독에 자신이 있으신가 봅니다.”

눈을 빛내며 묻는 목희.

연수는 피식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하여튼 하오문의 문도들은 언제봐도 만만치가 않아. 작은 말 한마디도 다 귀담아 들으니···.”

“저희가 살아남는 방식인걸요.”

“그래 뭐 상관없지. 그런데 잘 알고 있지 않나? 내가 독을 쓰는 것은. 굳이 다시 묻는 이유가 뭐지?”

“독침을 사용하는 건 잘 알고 있죠. 옥안혈화와 의남매인 각별한 사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고요. 그렇다고 만독불침은 아니실 텐데요?”

제법 도발적인 목희의 말에 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지. 독은 무서운 거야. 사파의 하늘이라는 그 양반도 결국에는 독에 당했으니까.”

연수의 말에 목희의 눈매가 파르르 떨렸다.

“몰랐나 보군. 믿던 안 믿든 상관없지만, 성주님은 맹주의 암습에 중독되어 죽었어.”

“...”

눈을 부릅뜨고 가만히 연수를 바라보고 있는 목희.

“지나간 비화는 됐고, 본론으로 들어가지. 하오문 너희는 어느 쪽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사패련쪽인지 무림맹 쪽인지 묻는 거야.”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을 하는 연수를 바라보는 목희의 동공이 한 차례 흔들렸다.

“사패련과 무림맹은 연합을 하고 마교에 맞서고 있습니다.”

“적어도 너희는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사패련과 무림맹은 마교에 맞서는 게 아니고 사황성에 맞서 그들을 탄압하고 있지. 신강에 있는 마교에 그 어떤 공격을 하지도 받지도 않고 있어.”

“그건···! 마교와 결탁하고 있던 패천후가 죽음으로써 마교의 준동을 차단한 성과입니다.”

“그건 무림맹의 말이고. 너희는 정말 그들이 떠드는 대로 믿고 있는 건가?”

“...”

“음···. 너희의 문주를 봐야겠다. 십만 하오문의 주인. 어디 가면 볼 수 있지?”

“불가합니다.”

연수는 반쯤 남은 차를 한 번에 들이켜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의 내게 불가능 한 일은 그리 많지 않아.”

목희는 이를 악물며 연수를 바라봤다.

“저를 그리고 이 지부의 문도를 전부 죽일지언정 문주님의 위치는 알 수 없을 겁니다.”

“하오문의 지부는 여기만 있는 것이 아니야. 전 중원을 떠돌며 하오문의 지부를 지우는 건 별로 힘든 일이 아니야. 귀찮은 일일 뿐이지. 죽은 전 지부장에게도 말했지만 난 마교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야. 그런데도 같은 사파인인 나를 배척하겠다면 하오문을 지울 수밖에. 기억해둬 지난번에 내게 검을 들이댄 걸 그냥 넘어가 준건 변덕스러운 내 아량이었어.”

말을 마친 연수를 바라보던 목희는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저었다.

“십만의 문도들을 전부 죽인들 문주님을 찾을 수는 없을 겁니다.”

“그야 해 보면 알겠지. 당분간은 할 일도 없거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는 연수.

“열흘 후에 다시 올 거야. 문주를 데려오든 고수를 데려오든 알아서 해. 다만 약속하지. 문주를 데려오면 그 누구도 죽지 않을 것이고, 내게 검을 들이밀면 누구 하나 살지 못할 거야.”

말을 끝내기 무섭게 사라지는 연수의 신형.

연수가 사라진 빈자리를 멍하니 보고 있던 목희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방을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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