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잠시 고민하던 연수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패천화라던가 옥안사목의 제자, 개방에서 온 무화개의 이야기는 듣지 못했나?”
“패천일미 정도화라면 잘 알고 있습죠. 그녀의 미모는 정사 대회 이후 중원에 널리 소문이 퍼지며 한동안 사파의 제일미라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아마 사황성 쪽으로 붙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옥안사목의 제자라면 옥안혈화 공숙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녀 또한 사황성의 고수로 많은 사패련 고수들을 죽이며 유명세를 떨쳤습니다.마지막 무화개라면···. 사패련을 지원 온 무당 고수들을 수없이 죽여 혈개라는 별호로 유명해진 사황성의 대표 고수입니다. 이년 전 열두 명의 무당의 제자들을 무참히 살육해서 무당의 제일 척살 목표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혈개라···.”
소개의 새로운 별호를 듣는 연수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다행히 일행이 멀쩡한 것 같아 안심하는 연수였다.
“마지막으로 경고 하나하고 가지. 그 옷집 여인한테서는 손 떼는 게 좋아.”
“그, 그럼요. 절대 다신! 찾아가지도 않겠습니다.”
“그 말 지키는 게 여러모로 좋을 거다. 아! 그리고 여기 하오문이 어디에 있지?”
“하오문은···. 연성루에 가시면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연수의 신형.
연수가 귀신같이 사라져버리자 장내의 사내들은 귀신에 홀린 듯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연수를 찾을 수는 없었다.
조각났다는 표현이 딱 맞는 시체 두 구가 아니라면 단체로 꿈이라도 꾼 줄 알았을 것이다.
“시체 치워라.”
힘없이 말하는 흑우파에 두목이었다.
상천루를 벗어난 연수는 몇몇 사람에게 물어 연성루로 곧장 발길을 옮겼다.
연성루의 하오문 문도를 찾은 연수는 다짜고짜 물었다.
“사황성의 인물을 좀 만나야겠다.”
중년인은 눈매를 좁히며 다짜고짜 반말지거리를 해대는 젊은 무인 놈을 어찌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손님을 쥐어 팰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한숨과 함께 화를 삭였다.
“사황성 인물에 대한 정보는 비싸오.”
“지금 내가 돈이 많지는 않아. 특별히 하오문에 빚을 하나 지는 것으로 하지. 언제든 필요할 때 말해.”
중년인의 이마에 두꺼운 핏대가 섰다. 하지만 깊은 한숨과 함께 인내심을 발휘하여 참아내는 중년인.
“댁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하오문이 그리 다급한 형편은 아니오.”
“나중에 높은 양반들한테 질책받지 말고 마음 변하기 전에 이 제안 받는 게 좋아.”
참았던 화를 폭발시키며 벌떡 일어나는 중년인. 막 출수하려는데 눈앞으로 검붉은 수강을 쭉 뽑아내는 연수를 보고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누, 누구시오?”
“한때는 암수일살이라고 부르더군.”
중년인은 눈을 부릅뜨며 입을 벌렸다.
“서, 설마! 암수살성이···. 살아 있었다니···.”
“명이 긴 편이라. 어찌할 거야?”
“하, 하나만 물어도 되겠소?”
“물어봐.”
“사황성의 쪽입니까? 아니면···.”
“사황성. 그리고 단언하지. 같잖은 배신자 놈들은 다 죽일 거야. 만약 하오문이 사패련에 줄을 대고 있다면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연수의 말에 중년인의 이마 옆으로 차가운 땀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질문 끝났으면 대답 좀 해보지? 어찌할 거야.”
“하오문에 빚을 지신 겁니다.”
“어.”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연수.
“누, 누구를 찾는 겁니까?”
“누구든 상관없어. 사황성의 인물이면 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요.”
말을 마친 중년인은 밖으로 나가 부하로 보이는 사내 한 명에게 뭐라 전음을 한 뒤에 연성루 밖으로 내보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시큰둥하게 앉아 있는 연수.
중년인은 무심히 가만 앉아서 여유를 부리는 연수를 보며 눈썹을 씰룩였다.
“언제까지 기다리면 돼?”
“사황성의 무인과 연이 닿은 부하를 보냈으니 오래지 않아 돌아올 겁니다.”
“그럼 몇 가지 묻지.”
“돈은 없으실 테니 질문과 질문을 교환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 와중에도 자신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중년인을 보며 연수는 피식 웃었다.
“그러지.”
“먼저 하문하시죠.”
“듣기로는 사황성으로 열두 가문 중 여덟 가문이 붙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사패련의 덩치가 더 커진 거야?”
“그야···. 그 외에 사파인들이 거의 전부 사황성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왜지?”
“제 차례입니다.”
연수는 눈썹을 씰룩거리며 무심한 눈으로 중년인을 바라봤다.
그런 연수의 검은 눈동자에 붉은빛이 서서히 맺혔다.
그와 동시에 스멀스멀 퍼져나오는 살기.
마치 뱀처럼 중년인의 온몸을 옭아매며 조여오는 그 살기는 세상 처음 느껴보는 소름 끼치는 기운이었다.
검붉은 핏빛으로 물든 눈으로 중년인을 바라보는 연수가 입을 열었다.
“하오문 문도로서 패기도 좋고 기지도 좋고 다 좋은데···. 날 상대로 장난질 하려면 목숨 걸고 하는 게 좋아. 보다시피 지금 내 심기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야.”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중년인.
그와 동시에 온몸을 옭아매던 소름 끼치는 살기가 사라졌다.
“큭! 하! 하아, 하아······.”
숨을 몰아쉬며 그 잠깐 사이 땀에 절어 식은땀을 비 오듯 흘리는 중년인은 조심스럽게 시선을 올려 연수의 얼굴을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지옥의 야차 같던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순진한 젊은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귀형신살과 전 사황성주의 제자들은 전 사황성주가 마교와 결탁했다며 각종 증언을 했습니다. 마교와 결탁하여 마교의 중원침공을 돕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던 전 사황성주를 지지하는 사황성의 인물들을 따를 사파인들은 없었습니다. 전 중원의 사파인들 중 사황성을 돕겠다 나선 사파인은 단 하나도 없었고, 그들 모두는 사패련의 산하로 모여들었습니다.”
중년인의 말에 연수의 눈에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성주의 마지막을 본 자신이었다. 그렇게 죽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만으로도 억울한데 모든 사파인들의 하늘이었던 사람이 한순간에 몇몇 소인배 놈들의 주둥이질에 세상 상종 못 할 인물이 되어버렸다.
“전 사파인 이라···. 하오문도 말이지?”
“예.”
“질문할 게 남았나?”
중년인은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전 성주가 당신을 마교와 함께 키웠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은 진정 마공을 익힌 마교의 무인입니까?”
“크크크. 그 대답 전에 하나만 더 묻지.”
중년인은 창백해진 얼굴로 연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밖으로 나간 그 사내는 진정 사황성의 인물을 부르기 위해 간 것인가?”
중년인은 눈을 감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랬군. 내게 사부는 한 분뿐이시다.”
말을 마치고도 여전히 자리에 앉아서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연수였다.
그런 연수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중년인.
연수가 도망을 치지 않고 자리에 눌러앉아 있자 중년인의 불안감은 더 커졌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습니다.”
“물어봐.”
“어째서 자리를 뜨지 않고 계십니까?”
“생각 중이야. 어떻게 해야 사황성의 인물들과 접촉할 수 있을지. 그 정도로 고립되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사황성을 세운 사황성주 패천후의 진의를 의심하는 놈들이 그리도 많을지는 꿈에도 몰랐어.”
“생각을 하느라 이 자리에 계속 있는단 말입니까?”
“응. 그리고 지금 떠올랐다. 사황성과 접촉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이.”
씩 웃으며 말을 마치는 연수의 얼굴을 보는 순간 중년인의 오랜 강호 생활을 통해 갈고 닦인 오감을 초월한 육감이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살아남을 길이 없음을.
두 눈을 감고 각오를 다진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간단해. 내가 살아 있음을 사황성에 알리면 그쪽에서 내게 접촉해 오겠지. 무리하게 그들을 뒤쫓으려 할 필요가 없어.”
“...자신 있으십니까?”
“내가 할 말 같은데. 나 암수살성이야.”
“...왔군요.”
“그럼 슬슬 시작해 보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는 연수. 그와 동시에 중년인이 뒤로 쭉 물러서며 얇은 판자벽을 뚫고 몸을 물렸다.
그런 중년인을 가만히 바라보던 연수는 천천히 걸어 연성루의 밖으로 나갔다.
서서히 지는 태양 빛을 맞으며 자신을 둘러싼 무인들을 바라봤다.
오십 명이 훌쩍 넘는 각양각색의 무인들이 모여 연수를 둘러쌌다.
“그 사이에 많이도 모아왔네.”
여유롭게 무인들의 면면을 살피는 연수를 보며 인상을 굳힌 중년인이 주위로 눈을 굴렸다.
그런 중년인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다는 듯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복면을 한 세 명의 무인.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중년인이 뛰어가며 포권을 하자 세 명의 복면인은 중년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확실한 거겠지?”
“예. 암수살성이 분명합니다.”
연수를 노려보는 세 명의 복면인.
그들과 시선을 교환하는 연수의 인상이 점차 구겨졌다.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운과 눈매였다.
“오랜만이구나. 그간 하늘이 도와 급살맞아 뒈지지 않고 살아 있어 주었구나. 정말이지 보고 싶었다.”
연수의 말에 가만히 연수를 노려보던 세 복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살아 있었군. 대체 무슨 수로 살아남았는지 모르겠다만 구사일생했다면 절대 나서지 말고 쥐죽은 듯 살아갔어야 했다. 굳이 명을 재촉하다니···.”
“긴말할 필요 있나? 와라.”
세 명의 복면인 중 제일 키가 큰 무인이 천천히 검을 뽑아 들고 연수를 겨누자 그의 검에서 한 자나 되는 검강이 튀어나왔다.
“두 번은 없다. 쳐랏!”
연수를 둘러싼 오십여 명의 무인들은 각자의 병장기들을 빼 들고는 연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연수를 중심으로 삼각 진형으로 퍼진 세 명의 복면인은 연수의 빈틈을 노리며 암습을 준비하고 있었다.
아무리 초절정의 고수라도 오십여 명의 일류고수와 절정고수들이 섞인 이 정도의 전력이 동시에 공격하면 허점을 보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연수를 둘러싸며 각종 검기와 장력들을 날려대는 무인들. 그들의 공격이 연수에게 닿으려는 순간 연수의 신형이 사라져 버렸다.
-!!!
-콰쾅!
수많은 검기와 장력들이 연수가 사라진 공간에 난사되며 요란한 소음을 퍼트렸다.
“모두 조심해라! 상대는 암수···!”
말을 하던 복면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밑으로 내리며 자신의 가슴을 뚫고 들어온 팔을 보았다. 꽉 쥔 주먹에는 놀랍게도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다.
“쿨럭!”
긴 팔이 쑥 빠지자 피를 토해내며 훤히 뚫려버린 가슴의 구멍으로 두 손을 가져다 대고 쓰러지는 복면인.
복면인이 쓰러지기 무섭게 검강을 뽑아낸 초절정의 복면인이 검을 휘둘러 오고 있었다.
“이놈!”
막 검 위로 한 자나 튀어나오며 검을 감싼 검강이 연수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데 연수는 미동도 하지 않고 가만히 팔을 올려다 대며 검을 막았다.
맨 팔을 올려 막는 연수의 행동에 복면인의 가려진 입매가 비틀렸다.
그런 복면인의 검강이 연수의 팔에 닿으려는 찰나 연수의 팔 전체를 감싸며 반장이나 뻗어 나오는 검붉은 수강.
“!!!”
복면인은 그 거대한 강기를 바라보며 비현실적인 현 상황에 순간 판단력을 잃었다.
“퉤!”
복면인이 당황 하거나 말거나 바닥에서 꿈틀거리며 아직 숨이 끊기지 않은 복면인에게 침을 뱉는 연수.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초절정의 복면인을 바라보자 잔상을 남기며 멀어지는 복면인.
“설마 내가 놓칠까 봐?”
복면인이 태어나서 이보다 더 놀라 본 적은 단연코 없었다.
분명 시선을 연수에게 고정한 채 뒤로 물러서던 복면인 이였다.
그런데 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검을 휘두르는데 검강이 씌워진 검을 손가락으로 잡아버리는 연수.
한번 잡힌 검은 아무리 힘을 줘도 빠지지 않았다.
분명 자신은 소리에 반응해 검을 휘둘렀다. 그 전까지 자신의 앞에 보이던 연수의 신형은 잔상 따위가 아니었음을 확신 할 수 있었다.
귀신에 홀린 것 같은 복면인은 그제야 강기에 쌓인 검을 붙들고 있는 연수의 손가락이 보였다.
검붉은 강기를 손끝에 두른 채 자신의 검을 가볍게 쥐고 있는 연수의 손가락.
“도, 도망···.”
한 단어를 채 마치기도 전에 땅 위로 눕혀지는 복면인의 신형.
순간 멍하니 두 복면인이 당하는 모습을 본 무인들은 바로 등을 돌리고 달아났다.
막 무인들이 등을 돌릴 때 연수의 걸죽한 침은 목이 갈라져 죽어가는 초절정 복면인의 눈 위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등을 돌리고 달아나던 무인들이 채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며 어마어마한 양의 피가 연성루 앞으로 쏟아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