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135화 (135/202)

# 135화

장내의 소란이 잦아들자 연수가 서 있는 공터로 허공을 가르며 날아드는 고수.

연수는 엄청난 속도로 날아들며 기세를 내뿜는 무인을 보며 긴장 어린 표정으로 내력을 끌어올려 만약을 대비했다.

백발이 성성한 노고수는 잠시 연수를 노려보고는 사황성의 진영으로 시선을 돌렸다.

여기저기 기워입은 옷차림에 허리춤에 달린 아홉 개의 매듭으로 보아 개방 방주 추룡수개 방천일이 분명해 보였다.

“개방 방주 방천일이라 하오! 나는 본 방을 배신하고 정파의 정기를 흐린 개방의 제자를 처벌하고자 하오. 문규를 바로 세워 본 방뿐만 아니라 정파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것은 정사의 화합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이리 나섰으니 동도들의 양해를 바라오!”

연수는 강맹한 기운을 내뿜으며 정광이 뿜어져 나오는 눈으로 좌중을 돌아보며 말하는 방천일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양해를 구하는 것인지 입을 막는 건지.’

소개는 아직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지 않았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숙이 그런 소개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

“공매, 결자해지라 했으니 사내로서 내가 시작한 일은 내가 마무리 지는 게 맞지 않겠어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안심시키는 소개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공숙은 결국 소개의 팔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소개가 당당하게 공터로 걸어 나오자 방천일의 차가운 시선이 소개에게 날아들었다.

강렬한 그 시선을 받으며 덤덤하게 걸어 나오는 소개.

방천일의 앞에 선 소개는 연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주를 향해 포권을 했다.

“전 개방제자 소개. 방주님을 뵙니다.”

전 개방 제자라는 말에 방주의 눈썹이 씰룩였다.

“묻겠다.”

“하문하시죠.”

“너는 서호 분타주 신영방의 제자가 맞느냐?”

“맞습니다.”

“너는 어째서 본 방을 배신하고 정파를 배신하고 사부를 배신하였느냐?”

“사부의 죽음은 분명 저로 인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여 저는 사부의 묘에 맹세했습니다. 사부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무당에 묻겠노라! 맹세했습니다. 그 맹세를 지키려면 개방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파를 배신했다? 예. 했습니다. 정파의 그 추하고 더러운 민낯을 보는 순간 더는 정파인을 자처할 수 없었습니다. 하여 정파를 등졌습니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대답하는 소개의 눈에서는 정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천일은 그 눈을 보며 역시 그날의 덕흥현에서 분명 무슨 일이 있었음을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있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날 덕흥현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방천일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 제갈신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옥현인을 바라봤다.

옥현인 역시 미간에 새로 주름을 세우며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몸을 날리며 공터로 날아가는 제갈신이.

“이 자리는! 그런 자리가 아니오!”

방천일의 몸에서 믿을 수 없는 뜨거운 기운이 뿜어나오며 주위로 휘몰아쳐들자 날듯이 허공을 가로질러 오던 제갈신이는 그 자리에서 휘릭 몸을 뒤집고는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 자리는 은원을 씻는 자리! 문규를 정리하기 전 전후 사정을 아는 것은 중요한 일이오! 이건 개방의 일! 더 참견한다면 내정간섭으로 간주하겠소!”

무서운 기세에 압박당한 제갈신이는 더 다가가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며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이제 와서 무림맹주 옥현인이라 해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제갈신이를 향해 작게 고개를 젓는 옥현인.

제갈신이가 한숨을 내쉬며 돌아가자 방천일의 시선이 다시 소개에게 닿았다.

시선을 받은 소개의 입이 열렸다.

“그날 덕흥현에서는···. 제 정혼자인 공매와 비도문의 싸움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옥안사목의 제자가 맞느냐?”

“맞습니다.”

“그럼 네가 사파인과 결탁했다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구나.”

“뭐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개방에 입방하기 전부터 동고동락했던 친구이자 형제 같은 여기 암수살성 고연수를 통해 저 여인을 알게 되었고, 처음 보는 순간 저 여인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사파와 결탁을 했다고 한다면 그런 거겠죠.”

당당한 소개의 기백에 방천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느냐?”

“제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일을 비도문은 벌이고 있었습니다.”

“어떤 일이냐?”

“당시 비도문의 문도들은 그 여인 하나를 붙잡고 희롱하고 있었습니다. 죽일지언정 모욕하지 않는 것이 무가의 법도이거늘 여인 하나를 여러 무인이 희롱하는 그 장면은 지금도 역겨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소개의 말에 몇몇 무당의 속가에서 반발하고 나섰다.

-거짓말 말아라!

-사파의 개가 된 주제에 거짓을 고해 정파의 정기를 훼손하지 말아라!

소리가 나온 곳으로 방천일의 시선이 닿자 반발하고 나서던 무인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그곳에 있지 않았다면, 직접 본 자가 아니라면 조용히 하는 게 좋을 거요. 할 말이 있다면 앞으로 나서서 당당하게 하시오.”

개방 방주의 앞에 나서서 당당하게 말할 용기를 가진 자들은 무당의 속가에는 없었다.

“계속하거라.”

“당시 저는 제 연인을 보호하고자 했고, 그들의 행태가 잘못되었음을 따졌소. 하지만 그들은 절 배신자라며 공격했고 저는 그들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그때···. 제 사부님이 현장에 도착하여 싸움을 말리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방천일은 그날의 진상을 눈앞에 두고 가슴이 세차게 뜀을 느꼈다.

“그때 같이 현장에 나타났던 것이 무당의 소현풍이었습니다.”

-이놈! 소 진인께서 네놈 친구더냐?

홱!

돌아간 방천일의 고개.

“한 번만 더 끼어든다면 개방의 이름으로 그 책임을 묻겠다!”

방천일의 추상같은 호령에 막 뭐라 하려던 몇몇 정파인들의 입이 다물어졌다.

같은 정파지만 개방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는 정파는 많지 않았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사부님은 저를 지키기 위해 소현풍 그놈에게 사정을 설명했지만, 그는 저를 그리고 사부님을 보내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사부와 그는 싸움을 시작했고···. 사부님은 그의 일 검에 돌아가셨습니다.”

-쾅!

방천일이 오른발을 세차게 구르자 굉음이 퍼져나오며 땅에 구멍이 생겼다.

“영방은···. 따로 남긴 말이 없더냐?”

“사부님의 마지막 유언은 살아남거든 개방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한마디뿐이었습니다.”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느냐?”

“그 이후 암수살성이 현장에 도착했고, 소현풍의 목을 베었습니다. 후에 사부님의 상을 치르며 사부님의 묘에 무당에 책임을 묻고 그 혈채를 다 받아내겠다 맹세했습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개방으로 돌아오지 않았지?”

“개방에서는 스승님의 원수를 갚을 수 없으니까요.”

두 사람의 시선이 뜨겁게 부딪쳤다.

“지금도 그리 생각하느냐?”

“예. 개방은 무당을 적으로 돌릴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정파 인들의 사정은 더는 알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확신에 찬 대답에 방천일은 한숨을 내쉬며 아쉬운 눈으로 소개를 바라봤다.

“네 사정은 잘 알았다. 하지만 네가 개방과 정파를 배신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알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 변명할 생각도 후회도 없습니다.”

“네 무공은 개방의 무공이다.”

“부정할 생각 추호도 없습니다.”

또박또박 당당하게 대답하는 소개.

방천일은 눈썹을 씰룩이며 그런 소개를 잠시 바라봤다.

“세 초식. 받아내면 너에 대한 은원은 잊겠다. 받아 보겠느냐?”

소개가 고개를 끄덕이려는데 연수가 끼어들었다.

“거부하면 어찌할 거요?”

방천일은 두 눈에 강렬한 기세가 맺혔다.

그런 방천일의 기세를 유유히 흘리며 여유롭게 그를 바라보는 연수.

“거부한다면···. 개방의 후개이자 내 제자와 비무를 통해 은원을 정리해야 한다. 진다면 근맥과 단전을 폐하겠다.”

연수가 눈매를 좁히며 입을 열려는데 소개의 대답이 먼저 나왔다.

“받겠습니다.”

눈을 부릅뜨고 소개를 바라보는 연수.

소개는 씩 웃으며 연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겠냐? 상대는 초절정의 고수다.’

연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개는 방천일을 바라보며 담담한 표정이었다.

연수는 하는 수 없이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공숙은 손에 땀을 쥐며 소개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화는 그런 공숙의 옆에서 그녀의 손을 잡아 주었다.

“준비하거라.”

방천일의 말에 취룡장의 기수식을 펼치는 소개.

“취룡장 삼식 후연강룡.”

낮게 읊조린 방천일의 신형이 늘어지며 소개에게로 다가와 일장을 뻗었다.

소개는 가슴을 향해 날아드는 방천일의 일장에 마주 손을 뻗었다.

-펑!

가죽북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피를 토하며 뒤로 물러서는 소개.

“취룡장 육식 운룡잠식.”

빙글 몸을 돌리며 왼손을 뻗어 오는 방천일.

소개는 비틀거리는 다리를 뻗으며 몸을 꽉 조이고는 마주 장을 뻗었다.

-펑! 꽈득!

첫 초식때랑 같은 소리와 함께 뼈가 엇나가는 소리가 같이 들려왔다.

도화의 손을 잡은 공숙의 손에 순간 힘이 꽉 들어갔다.

“쿨럭!”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해내는 소개.

“취룡장 십이 식. 취룡파지!”

허공으로 몸을 띄운 방천일의 신형이 뒤집히며 소개의 위로 떨어져 내렸다.

피를 토해내고는 이를 악물어 핏물을 삼킨 소개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뻗으며 머리 위로 떨어지는 방천일을 향해 두 장을 마주 뻗었다.

-쾅!

사람의 두 손바닥이 마주쳤다고는 믿기 힘든 굉음.

소개를 중심으로 주위 땅이 푹 꺼져버렸다. 잠시 버티던 소개는 끝내 무릎을 꿇었다.

두 무릎을 꿇고는 연신 피를 토해내면서도 버텨내는 소개의 오른팔이 기이한 각도로 꺾이며 내려졌다.

팔이 내려짐과 동시에 방천일의 장력이 소개의 어깨에 적중되었다.

-퍽!

소리와 함께 피를 토해내며 휘청이는 소개.

그런 상태에서도 끝까지 남은 왼팔로 버텨보는 소개였다.

길게 느껴졌던 순간이 지나가고 소개에게서 떨어지는 방천일.

“너는 이제 개방의 제자가 아니다. 너와 개방의 모든 인연은 끊어졌고, 개방과 너의 은원은 정리되었다.”

멍한 눈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던 소개가 후들거리는 다리로 몸을 일으키는데 크게 휘청거리자 연수의 신형이 잔상을 남기며 나타나 소개를 부축했다.

연수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난 소개는 부러져서 제대로 들리지 않는 오른팔에 힘을 주며 등을 보이며 돌아가는 방천일에게 포권을 올렸다.

연수는 그런 소개를 잠시 바라보고는 소개의 오른팔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우드득! 우득!

끝까지 이를 악물고 신음한번 내지 않는 소개.

“장하다. 잘 했어.”

부러진 팔과 빠진 어깨를 맞춰준 연수는 소개를 부축하며 사파의 진영으로 걸음을 돌렸다.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공숙이 뛰어오며 소개를 맞는데 연수의 뒤로 날아든 무인 하나가 입을 열었다.

“저는 매화검문의 총관 황주각이라고 하오! 전 이 자리에서 무당의 이름을 더럽힌 저 배신···.”

소개를 지목하려던 황주각은 화살같이 쏘아지는 연수의 눈빛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주먹에 힘을 주며 다시 입을 열려는데 전신을 짓누르듯 압박해 오는 살기.

이 세상의 기운이 아닌 것 같은 살기를 느끼며 힘겹게 눈을 돌려 연수의 눈을 바라보니 그의 검은 눈동자 속에 뜨겁게 타오르는 붉은 빛을 볼 수 있었다.

어깨를 덜덜 떨며 입을 열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자 장내에 모여있던 무인들이 술렁거렸다.

황주각에게 살기를 쏘아 보내며 공숙에게 소개를 맡긴 연수는 황주각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데 몇 걸음을 옮기기 전에 눈치 빠른 정파인들이 황주각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냈다.

-이미 중상을 입은 무인을 지목할 생각이오?!

-이 자리는 화합의 자리가 아니었소?

-비겁한 짓은 정파의 정기를 해친다!

몇몇 정파인들의 목소리에 상황을 파악한 무인들은 저마다 황주각을 비난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무당의 속가를 제외한 모든 정파인들의 비난을 받자 황주각은 얼굴을 붉히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연수는 그 꼴을 보며 피식 웃고는 뿜어내던 살기를 거둬들였다.

소개가 공숙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로 돌아와 주저앉자 사파인들은 소개를 향해 응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특히나 철목 가주는 직접 그의 패기를 칭찬했다.

“기백이 훌륭하더군. 사내다워.”

팔뚝이 소개의 다리만큼 두꺼운 철목가주가 직접 팔을 뻗어 솥뚜껑 같은 손으로 소개의 등을 두드려주자 소개는 철목가주를 향해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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