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134화 (134/202)

# 134화

참담한 심정의 어깨를 축 늘어트린 구현단을 잠시 바라보던 제갈신이는 한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설마 이리될 줄은 몰랐지만, 준비는 되어있습니다. 암수일살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쳐내야 합니다. 직접 나서주셔야겠습니다.”

제갈신이의 말에 운무검제 부전완은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무림맹의 정무단을 맡은 종남파의 장로 수인척은 제갈신이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장문인이 직접 나서면 암수일살의 명예만 올려주는 격이 아니겠소? 계획대로 부곡을 내 보내도록 합시다.”

“구면장을 사십 년 동안 익혔다는 무당파의 은거고수가 패···. 패했습니다.”

옥현인의 불편한 시선에 멈칫한 제갈신이가 어렵게 말을 마쳤다.

“하지만 이 대회는 우리 정파에서 제안한 정사 화합의 자리입니다. 장문인께서 나서게 되면···. 피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무의 자리가 아니게 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암수일살은 꼭 죽여야만···.”

“군사, 말을 가려 하시오. 듣는 귀가 많소.”

옥현인의 낮은 목소리에 고개를 숙인 제갈신이.

옥현인은 그대로 운무검제에게 시선을 돌렸다.

“어찌하시겠소? 종남의 은원이니 종남의 장문인이 정하는 게 옳다고 생각됩니다.”

감았던 두 눈을 뜬 부전완은 가라앉은 눈으로 멀리 공터의 가운데에 도도하게 서서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연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부곡을 내 보내겠소.”

“장문!!”

제갈신이의 높은 목소리에 깊게 가라앉은 운무검제 부전완의 시선이 제갈신이의 두 눈에 닿았다.

제갈신이는 잠시 그 시선을 마주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도 암수일살에게 패했다가는 맹주님의 입으로 정사 대전의 책임이 정파에 있음을 만천하에 고해야 한다는 것만 알고 계십시오.”

제갈신이의 차가운 목소리에도 운무검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상하게도 그에게서는 종남의 느낌이 강하게 풍겨왔다.

장괘구권을 장수무투가 훔쳐간 일은 이미 유명하여 강호에 모르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장괘구권만 가지고 상승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부곡은 암수일살을 살펴보는데 최적의 상대였다.

자신의 제자와 장문 제자의 자리를 놓고 지금도 치열하게 경쟁하는 무재.

만약 부곡의 재능이 권이 아니라 검에 있었다면 진작에 장문 제자는 부곡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부곡의 재능은 권에 있었다. 장괘구권과 칠자비권을 상당한 수준까지 익혔으며 지난 백 년간 종남에서 오성 이상을 익힌 자가 없다는 현천제탄을 육성이 넘게 익혔다.

현천건강기의 전인으로 낙점된 앞으로 종남의 기둥이 될 몇 안 되는 제자 중 하나였다.

그런 부곡이 장괘구권만으로 비무를 하게 되면 지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 부전완이었다.

앞으로 나서는 수인척.

수인척이 나서서 입을 열자 연수는 깊은 눈빛으로 자신을 관찰하는 부전완을 살폈다.

“종남의 장로 수인척이라 하오! 나는 여기 암수일살! 에게 그 사부의 은원을 묻기 위해 나왔소.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암수일살! 너는 네 사부에게 종남의 장괘구권을 배운 적이 있는가?”

“있소.”

또다시 쉽게 인정해 버리는 연수의 당당한 대답에 장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한 번쯤 그런 적 없다 잡아떼면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단 말이냐!”

성주의 투덜거림에 화령가주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원체 저런 친구 아닙니까? 저 친구에게서 혀와 당당함을 빼면 남는 게 가죽밖에는 없을 겁니다.”

철목가주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사내다운 구석이 있으니, 그 기개가 어딜 가겠습니까?”

“흥! 기개고 나발이고 저 운무검제 놈이 나서면 어쩌려고?”

성주의 말에 두 가주는 입을 다물었다.

한때는 정파의 초절정고수들을 우습게 본 적도 있었던 두 가주였지만 제왕검군 남궁진환의 무위에 정파의 저력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기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검군이 그 정도의 무위였는데 검제라면 그보다 한 수 위일 것은 분명했다.

잠시의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다물고 있던 수인척의 입이 다시 열렸다.

“우리 종남은 장괘구권으로 비무를 신청한다. 장괘구권 외에는 어떤 무공도 사용해서는 안 되고, 만약 네가 이긴다면 너와 네 사부의 은원은 깨끗이 잊겠다. 하지만 만약 네가 진다면···.”

“주겠소. 내 근맥.”

“좋다! 부곡!”

수인척의 부름에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부곡.

종남신권 부곡.

그의 등장에 장내는 또다시 술렁거렸다. 특히나 정파인들 쪽에서는 술렁거림이 점점 커졌다.

정파의 후기지수 중 몇 안 되는 절정고수의 등장이었다.

검제가 있는 종남에서 나온 신권.

그 사실만으로도 부곡은 유명인사였다.

-현천건강기의 전인이다!

-종남신권!

사기가 바닥을 치던 정파 무인들의 열망이 종남신권 부곡에게 쏠렸다.

정파인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으며 연수의 앞에 선 부곡.

“종남의 부곡이다.”

“사황성의 고연수다.”

똑같이 반말로 받아치는 연수의 말에 눈썹을 씰룩이는 부곡. 자신은 이미 이립을 넘은 나이였다.

아무리 봐도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놈이 반말지거리하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인상을 굳히며 장괘구권의 기수식을 취하는 부곡.

잠시 그 자세를 보고는 연수도 기수식을 취했다.

중심을 앞으로 잡으며 직선으로 튀어 나갈 준비를 마친 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두 무인.

-파팟! 팍!

서로의 익숙한 권로를 보며 공수를 주고받는 두 사람이었다.

부곡의 장괘구권은 제법 날카롭고 초식의 연결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뿐. 초식의 이해는 높지만, 그 무리를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군.’

초식에 충실하고 하나하나의 권로 역시 훌륭한 편이지만 그래 봤자 겨우 십 성의 경지였다.

이미 오래전에 장괘구권의 십일 성을 달성한 연수에게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는 부곡이었다.

잠시 그의 장괘구권을 받아주던 연수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부곡의 가슴을 향해 날아가는 일 권.

익숙한 권로에 바로 가슴을 방어하며 왼손으로 연수의 관자놀이를 노리며 내지르는 부곡.

연수는 속으로 혀를 찼다.

‘흥! 무르기는.’

한 발자국을 더 다가가며 부곡의 품으로 바짝 다가서는 연수.

연수의 관자놀이를 노렸던 손을 재빨리 회수하며 동공이 흔들리는 부곡이었다. 이 거리는 권의 거리보다 한참 가까웠다. 장괘구권의 어떤 초식도 이 거리에서 쓸만한 초식은 없었다.

그런데도 암수일살이 품으로 파고들어 오니 의아할 수밖에 없는 부곡이었다.

하는 수 없이 앞으로 뻗었던 오른발을 뒤로 한발 물리며 오른손을 뻗을 거리를 만들어 내는 부곡.

순간씩 웃는 연수의 눈과 마주친 부곡은 문득 등골이 오싹해졌다.

연수의 기세가 순간 불어나며 부곡이 뻗는 주먹을 향해 마주 주먹을 내뻗어왔다.

경구탄권.

한때 바위를 향해 무수히도 뻗어댔던 일 권을 두 무인은 동시에 펼쳐냈다.

-쾅!

과연 사람의 두 주먹이 부딪힌 소리가 맞는지 의심이 드는 굉음이 퍼져 나왔다.

부곡은 이를 악물며 두 치정도 뒤로 밀렸다.

근소한 차이였지만 상대의 권격에 밀리자 수치심이 차오르는 부곡.

이를 악물며 다음 초식을 이어가려는데 연수의 공격이 더 빨랐다.

하는 수 없이 수세로 바꾸며 기회를 노리려는 부곡은 한걸음 물러서며 기세를 뒤로 흘려 연수의 공격에 대비했다.

연수는 또 한 걸음을 물러서는 부곡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종남신권이니 뭐니 하더니 종남의 무공은 쥐뿔도 모르는군.’

부곡이 물러난 만큼 다가서며 기세를 올리는 연수의 장괘구권은 점점 그 위력이 올라가며 빨라지고 있었다.

익숙하다 못해 초식의 흐름만 봐도 다음에 올 초식과 권로를 꿰고 있는 부곡이었기에 한동안 방어는 잘 해냈지만, 그마저도 점점 힘겨워지고 있는 부곡이었다.

분명 익숙한 초식이 분명한데 물러설수록 방어하기가 힘들어지니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상대가 다른 무공을 쓰는 것 또한 아니었다. 분명 완벽한 장괘구권이 분명했다.

부곡이 다섯 걸음째 물러섰을 때 처음으로 연수의 일 권이 부곡의 어깨에 적중했다.

-퍽!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이를 악물고 버티는 부곡.

그와 동시에 운무검제 부전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눈을 부릅뜨며 연수를 노려보는 운무검제.

연수의 시선 또한 운무검제에게 가 있었다.

‘쳇 눈치챘나? 적당히 한다고 하고 있었는데.’

부곡은 붉어진 얼굴과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의 뒤를 신경 쓰는 연수에게 이를 갈며 달려들었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말인가!”

화를 내며 달려드는 부곡의 권로가 조금씩 장괘구권의 권로를 벗어나며 연수에게 날아들었다.

처음에는 심기가 흔들리며 무공이 흔들린다고 생각한 연수였다.

하지만 몇 번 손을 섞다 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무공이 흔들린다고 하기에는 그 기세와 초식이 정교했다.

‘뭐지?’

맹공을 펼치던 부곡의 손이 뒤로 뻗어지며 허리의 회전과 함께 빠르게 뻗어졌다.

‘경구탄권!’

마주 주먹을 뻗어 나가는 연수.

이미 한번 부딪혀 보았던 초식이었다.

-꽝!

전보다 더 큰 소리가 내며 뒤로 한 자 가까이 밀린 연수.

‘이 새끼가!’

연수는 이를 악다물었다.

경구탄권을 같이 펼쳐 주먹을 부딪치는 순간 그의 주먹이 미묘하게 비틀리며 회의 무리가 날카롭게 연수의 팔을 스치고 지나갔다.

게다가 팔이 저릿저릿한 것과 내부가 진탕되는 것으로 보아 현천건강기를 끌어올리고 다른 무공의 무리를 섞어 사용하는 것 같았다.

장괘구권의 주요 무리는 상대를 뚫어버릴 듯한 쾌의 권이다. 한데 분명 상대가 쓰고 있는 무리는 장괘구권에는 없는 회의 무리였다.

‘그렇게 사문의 무공에 자신이 없단 말이지?’

이를 악 다문 연수는 눈매를 좁히며 압력이 느껴지는 부곡을 향해 달려들었다.

두 사람의 비무를 보고 있는 수인척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아직 다른 무인들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지만 종남의 장로인 수인척은 모를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슬쩍 장문인의 눈치를 보니 일어서서 비무를 보고 있는 그의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연수는 비무가 계속될수록 점점 짜증이 났다.

무공의 경지도 장괘구권의 경지도 자신보다 낮은 하수 놈이 꼼수를 부리며 성질을 건드려오니 짜증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저놈을 한 달은 혼자서 밥도 못 먹게 쥐어 패 주고 싶었지만, 저 뒤에서 자신을 굳은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는 운무검제가 걸렸다.

그런 줄도 모르고 신이 나서 공격을 해 대는 부곡.

그런 부곡의 주먹이 볼을 슬쩍 스쳐 지나가자 그간 참아왔던 연수의 인내심이 바닥나 버렸다.

‘육 개월은 기어 다니게 만들어 주마.’

묵직한 기세와 머리털이 삐죽 서는 살기에 순간 흠칫하며 멈칫한 부곡.

그와 동시에 어느새 허공을 가로질러 달려온 운무검제가 입을 열었다.

“종남이 졌다!”

갑작스러운 장문의 선언에 부곡의 눈에 불만의 감정이 가득 차는데 순간적으로 연수의 신형이 뒤로 멀어졌다.

그와 동시에 부곡의 여덟 군데 요혈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부곡은 그 묵직한 바람을 느낌과 동시에 등줄기로 차갑게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장내의 무인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종남의 장문인을 바라봤다.

한창 유리하게 밀어붙이고 있던 부곡의 패배를 선언해 버리니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심한 놈!”

그 말을 남기고는 차갑게 등을 돌리고 돌아가는 운무검제.

수인척은 현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장문인의 전성이 그런 수인척의 머릿속에 울렸다.

수인척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내력을 끌어올리며 외쳤다.

“저희 종남의 부곡이 아직 수양이 부족해 호승심을 못 이겨 그만 장괘구권만 사용해야 한다는 규칙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이에 우리 종남은 암수일살에게 패배했음을 시인합니다.”

말을 마치고는 잠시 부곡을 바라보다가 등을 돌려 돌아가는 수인척.

그제야 장내는 떠들썩해졌다.

부곡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고는 그 자리에 굳어서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 장문인의 전성이 울렸다.

-부끄럼을 안다면 되었다.

그는 잠시 연수를 노려보고는 대충 포권을 하고는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제야 사파의 진영에서는 환호가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아!!!

-역시 암수살성!

환호 속에서 진벽가주는 표정을 굳히며 성주를 바라봤다.

“운무검제가 어째서 나서지 않았을까요?”

“글쎄.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무거운 표정으로 생각에 잠기는 성주와 진벽가주랑은 다르게 화령가주와 철목가주는 소리를 지르며 연수에게 함성을 보냈다.

밝은 표정으로 연신 장하다는 소리를 질러대는 두 가주를 보는 진벽가주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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