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천천히 묵직하게 휘둘러지는 비영의 도는 마치 주변의 기운을 옭아매며 흡수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저 단순한 베기였지만 그 초식을 보고 있는 장내의 무인들은 손에 땀을 쥐며 인상을 굳혔다.
만약 자신이라면 저 느린 베기를 피할 수 있을까?
공숙을 제외한 무인들은 그저 침을 꿀꺽 삼킬 뿐이었다.
-캉!
무겁게 세상을 벨 듯한 기세를 담은 중도를 막은 연수는 반발력에 저항하지 않고 몸을 회전시키며 비영에게 반걸음 다가갔다.
비영은 어금니를 꽉 물며 밀리지 않고 마주 도를 휘둘렀다.
이미 둘의 거리는 도를 쓰는 비영의 거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비영은 단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일격필살. 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비영의 중도.
연수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그의 중도는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 정도로 그 기세가 엄청났다.
-깡!
하지만 채 완전히 가속하기도 전에 연수의 단검이 그의 단도 하단을 쳐올리자 보기와는 다르게, 쉽게 막혀버리는 중도였다.
그런데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비영.
두 손으로 꽉 잡은 그의 중도는 빙글 회전하는 그와 함께 다시 휘둘러졌다.
연수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도를 쓸거리가 나오지 않았지만, 빙글 돌며 몸을 뒤로 기울여가며 도를 휘둘러 오는 비영.
-깡! 그그극!
처음으로 연수에게 막힌 도가 뒤로 밀려나지 않고 오히려 연수의 단도를 밀고 들어왔다.
놀고 있던 연수의 반대 손에 들린 단도마저 비영의 중도를 막아내는데 보태지고서야 떨어지는 중도.
비영은 인상을 굳히며 반보 더 다가오며 도에 기세를 보태 휘둘러 왔고, 연수는 그런 비영에 맞서며 반보 더 다가서며 두 단도를 교차해 비영의 중도를 막아섰다.
-꽝!
기어코 쇠끼리의 부딪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굉음과 함께 사방으로 경기가 퍼져 나왔다.
공숙은 채찍을 휘두르며 일행에게 날아오는 경기를 걷어냈다.
중도와 두 단도를 맞대고 서로를 노려보던 두 무인은 동시에 뒤로 멀어졌다.
“후우, 그래도 중도를 쓰는 고수 소리 듣는 사람인데, 단도 두 개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
“제가 할 말이네요. 무당제일검 마저 물러서게 만든 저입니다. 근성 하나는 알아줘야겠네요.”
씩 웃은 비영은 양손에 꽉 움켜쥔 도를 사선으로 내리며 연수를 향해 몸을 날렸다.
다가오며 몸을 회전시켜 중도를 사선으로 휘둘러 오는 그의 중도에는 기사가 가득 감겨있었다.
그와 동시에 연수 역시 두 단도로 기사를 풀어내며 비영에게 맞서 갔다.
-깡! 까깡! 깡깡깡!
연수의 빠른 단도를 중도 하나로 모조리 막아내는 비영.
중도를 휘두르지 못하고 틀어가며 단도를 막아가는 그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어찌어찌 방어는 해내고 있었지만, 도무지 도를 휘둘러 공격을 할 틈을 찾지 못하며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는 비영을 보며 연수의 미간 역시 좁혀지고 있었다.
‘쳇, 곰 같은 양반일세?’
조금의 요령도 없이 정면으로 밀고 들어오며 물러서지 않는 비영의 기세에 연수는 슬그머니 짜증이 솟아올랐다.
-까깡! 깡! 깡! 깡! 깡!
파병초를 펼치는 연수.
연수의 단도가 자신의 도를 두 번째 찍어갈 때부터 연수의 의도를 읽은 비영은 네 번째 같은 곳을 찍어오는 단도를 보며 이를 악물고는 도를 슬쩍 비틀어 연수의 단도가 도에 닿는 순간 위로 밀어냈다.
순간적으로 두 치 정도 위로 올라가며 틈이 벌어졌다.
비영은 도의 날을 그대로 앞으로 들이대며 그 틈에 자신의 도를 밀고 들어왔다.
어이가 없는 연수였다. 이쯤 되면 누가 더 무식한지 해 보자는 것 같았다.
이를 악물며 한 손의 단검을 그의 중도에 갖다 대는 순간 뒤로 주르륵 한 치가량 밀리는 연수.
인상을 팍 구긴 연수의 두 손에 단도가 사라지는 순간.
-퍼퍼퍼퍽! 퍼퍽! 쾅!
순식간에 비영의 네 군데 요혈을 두드리고 몸을 기울이며 회전시켜 그의 두 다리를 두드린 연수.
휘청이며 쓰러지는 그의 얼굴 바로 옆으로 떨어져 내린 연수의 발뒤꿈치는 땅에 두 자도 넘는 깊은 구멍을 만들었다.
한순간에 어찌 당하는지도 모르고 쓰러진 비영은 슬쩍 옆으로 시선을 돌려 연수의 발뒤꿈치가 떨어진 땅을 보고는 안도의 한번 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닌가? 날 죽일 셈이야?”
“제가 할 말입니다. 그렇게 무식하게 들이대다가는 목숨이 열 개여도 모자랄걸요?”
“그러는 자네는?”
자신에게 뻗은 연수의 손을 붙잡고 몸을 일으킨 비영.
“저는 무공의 특성상 앞으로 나아가며 기세를 키우는 거고요.”
“나도 마찬가지네.”
뒤로 밀리며 바닥에 끌리듯 나 있는 발자국을 보며 고개를 젓는 연수.
“제가 뒤로 밀린 적은 없었는데 말이죠.”
“나 또한 바닥에 누워 본 적은 없었네.”
둘은 동시에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뭔가 좀 얻으셨습니까?”
“글쎄, 비무라기보다는 오기 싸움을 한 기분이야.”
“다음에는 조금 더 비무답게 해 보죠.”
“좋지.”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정회는 두 눈을 부릅뜨고 넋을 놓고 있었다.
입까지 쩍 벌리고 있는 정회.
“고수들의 싸움 구경은 좋은 경험이 된다. 잘 봤어?”
말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는 정회.
특히나 마지막 번쩍이는 순간에는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비영이 뒤로 쓰러지고 있었고 그런 비영의 옆으로 연수의 뒤꿈치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인간의 움직임이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 그 움직임에 마치 귀신을 본 기분이 드는 정회였다.
제법 놀란 도화에게 다가가는 연수의 등을 바라본 비영은 고개를 저었다.
순식간에 끝난 비무였지만 자신은 온몸이 축축해질 정도로 땀을 흘렸는데, 연수의 뒷모습에서는 땀 한 방울 보이지 않았다.
축축하게 젖은 자신의 등과 뽀송뽀송한 연수의 등을 비교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분명 비슷한 시절도 있었는데 이 정도로 차이가 벌어졌던가? 초절정이라···.’
“놀랐어?”
연수의 물음에 고개를 가로젓는 도화.
“저도 무인이잖아요.”
허세를 부리는 도화의 모습이 귀여운 연수였다.
말없이 씩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데 여지없이 날아오는 예리한 살기.
-너 그러다 진짜 혼난다.
-기분 탓입니다.
‘어째 점점 뻔뻔해지는 것 같단 말이지.’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정리한 연수는 비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도평과 한번 싸워 봐요. 서로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그와는···.”
“제가 중재를 해 볼 테니, 안심하고 붙으셔도 됩니다.”
초절정의 고수가 봐 준다. 하지만 선뜻 대답할 수 없는 비영이었다.
전 암검대와 전 암영대의 대장으로서 자존심이 걸린 일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애매한 대답을 하는 비영.
그제야 이성을 되찾은 소개가 입을 열었다.
“대단 하구나.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보이면 그게 이상한 거야.”
도화와 몸을 돌리며 걸음을 옮기는 연수.
“그럼 다들 수련에 힘쓰세요.”
멀어지는 둘을 따라 비영이 걸음을 옮기려는데 공숙이 눈을 반짝이며 비영을 붙잡았다.
손을 뻗어 앞을 막는 공숙을 부담스럽게 바라보는 비영.
“무슨 일이신지···.”
“상대 좀 해 줘.”
채찍을 풀어헤치며 말하는 공숙을 보는 비영의 얼굴에 난감한 빛이 어렸다.
“그, 그게 방금 입은 부상이 얕지 않아서···.”
“내가 그렇게 하수로 보여?”
한숨을 푹 내쉰 비영은 그날 종일 공숙에게 시달려야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화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가한 오전을 보내고 있는 연수.
한참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가 좋은데 묵직한 기세를 내뿜으며 주렴각 안으로 들이치는 무인들.
“하아.”
절로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오는 연수였다.
“적영대 일 조장 철영 대장님을 뵙습니다.”
“적영대 이 조장 주무연 대장님을 뵙습니다.”
“적영대 삼 조장 모도산 대장님을 뵙습니다.”
강렬한 기세를 자랑스럽게 내뿜으며 군기가 잡혀 있는 그들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며 연수를 향해 어깨를 쭉 펴 보이는 경도평이었다.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여 답해준 연수.
무거운 엉덩이를 떼며 자리에서 일어선 연수는 그들의 앞에 서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앞으로 하루 아홉 시진 수련한다. 일단 오전 수련은 신체훈련. 물구나무서서 몸 굽혀펴기를 백 개 한 후 각자 익히고 있는 초식을 천천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펼치는 수련을 오전 내내 하고 식사 후 오후에는 성 뒤의 산을 한 시진 구보 내력을 쥐어짜며 최대의 경공으로 유지한다. 내려와서는 다시 초식 수련. 밤에는 잠들기 전까지 두 시진 이상 내가 수련. 세 시진 취침 후 반복.”
연수의 말에 불만을 표시하는 무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강한 의지를 불태우는 무인들이었다.
“도평.”
“예.”
“적영대 숙소는 어떻게 하라고 못 들었어?”
“주렴각이 넓어서 이들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겁니다.”
고개를 젓는 연수.
“아니야. 주렴각은 수련하기에 환경이 좋지 않아. 사황성 뒤 치하산 밑에 적당히 막사를 짓고 거기서 생활하게 해. 수련은 산중수련이지.”
“예!”
“자율적으로 수련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네가 좀 들여다보며 신경 좀 써줘.”
“예!”
“그리고···. 음···. 너희 세 조장.”
-옛!
“이제부터 너희들은 경쟁 관계다. 조별로 수련 여하와 성장도를 그때그때 판단하여 도평과 내가 점수를 부여할 거야. 항상 긴장하고 지지 않도록.”
-옛!
“됐어. 그럼 가봐. 오후 일과부터 시작!”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무사들.
‘후, 이걸로 한 짐 덜었네.’
적영대원들이 물러가자 속 편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와 앉는 연수였다.
“오라버니. 저들을 따라가 보지 않아도 되나요?”
“괜찮아. 도평이 있으니까.”
“하지만 오라버니의 부하들이잖아요?”
“틈틈이 들여다보면 되지.”
말을 하며 슬쩍 도화의 무릎을 베고 드러눕는 연수.
찌릿.
따가운 살기가 쏟아졌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연수였다.
당황한 도화는 얼굴을 붉히며 어찌할 줄을 몰랐지만, 연수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자연스럽게 연수의 머리를 쓰다듬는 도화.
부드러운 그녀의 손길이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지나가자 절로 졸음이 쏟아지는 연수.
한가한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잠드는 연수였다.
이 세계에 온 이후 가장 편안한 나날을 보내는 연수.
그렇게 한동안 간혹 적영대의 무사들을 봐 주는 시간 외에는 비영과 비무를 하고는 종일 도화와 시간을 보내는 연수였다.
여전히 천영을 비롯한 암영대의 따가운 살기를 받기도 했지만, 그녀와 보내는 시간은 연수의 두 번의 인생 중에는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었다.
무엇도 더 필요하지 않았고, 순간순간에 만족과 행복이 충만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가자 성주는 대전으로 모든 가주와 무력대장들을 호출했다.
거기에는 물론 적영대장이자 암수일살인 연수 또한 포함되었다.
대전에 들어서자 성주는 짧게 말했다.
“사흘 후 출전한다.”
가주 들을 비롯한 대전 안 무인들의 표정이 굳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지만 그들의 기세가 오르며 뜨거운 열기가 대전 안을 채워갔다.
철목가주가 특유의 쇳소리 섞인 저음을 내었다.
“위치는 어디입니까?”
“사천의 미고산.”
사천이라는 말에 가주 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특히나 진벽가주는 미간을 좁히며 입을 열었다.
“사천에는 아미, 청성, 당문이 있습니다. 게다가 운남이 코앞입니다.”
“어차피 정파의 이름 좀 있다 하는 놈들은 다 모일 거야.”
“만에 하나···.”
“보름 전 암천각의 움직임을 파악했다고 나한테 보고한 게 진벽가주 아니었던가? 설마 마교 놈들과 무림맹이 손을 잡았다고 보는 거야?”
성주의 말에 진벽가주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세상이 무너져도 그런 일이 있을 확률은 없었다.
“그건 아닙니다만···.”
뒷말을 흐리는 진벽가주는 여전히 사천에서 정사대회를 연다는 것이 찜찜했다.
“암천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자칫 중원을 그놈들에게 짓밟힐지도 몰라. 아무리 우리가 사파라지만 소의와 대의는 따져야지.”
무엇하나 틀린 말이 없었기에 진벽가주는 가만히 고개를 숙이며 물러설 수밖엔 없었다.
다른 가주들 역시 사천이라는 말에 뒷맛이 개운하진 않았지만, 마교라는 이름 앞에서는 입을 닫았다.
일월신교라는 곳은 그럴 정도의 존재감이 있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정파 놈들 앞에서 절대 추태를 보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옛!
“정사의 원한을 씻고 단합을 도모하는 자리야. 사적인 원한보다는 대의를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해.”
-옛!
“그럼 사흘 후 정오 출정한다.”
마지막 말과 함께 사라지는 성주.
역시나 제일 먼저 발길을 돌리는 연수의 옆으로 비영이 다가왔다.
“적영대는 모두 출전 하는 건가?”
“글쎄요.”
“썩 내키지 않는 모양이군.”
“예. 하지만 별수 없죠.”
“자네는 많은 지명을 받을 것 같은데.”
“결자해지. 라잖아요. 제가 맺은 은원은 제가 풀어야겠죠.”
“곤륜에서···. 자네와 나를 가만두지 않으려고 할 거야.”
“글쎄요. 곤륜은 아마도 나서지 못 할 겁니다.”
대답을 바라는 의아한 표정의 비영을 보며 잠시 뜸을 들인 연수의 입이 열렸다.
“일단 곤륜에는 고수가 없어요.”
도가의 성지중 하나인 곤륜에 고수가 없다는 말은 그 누구도 동의하기 힘든 말이었음에도, 그 상대가 암수일살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구파 중 일파야.”
고개를 끄덕이는 연수.
“맞아요. 그게 발목을 잡을 겁니다. 세상에는 칼보다 무서운 세 치 혀도 있는 법이니까요.”
무황의 비화를 알고 있는 연수였다. 구파 중 하나인 도가의 성지 곤륜. 연수는 그 곤륜에서 무황의 일이 다시 강호인들의 입에 오르는 걸 원치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무당은 어쩌려고?”
“무당제일검을 죽였어요. 뭐가 무섭겠습니까?”
연수에게 다가오던 몇몇 가주 들은 그 말을 듣고 환하게 웃었다.
“역시! 암수일살이오!”
한 가주의 감탄 어린 말에 뒤로 시선을 돌리니 철목가주와 화령가주는 주변에 몇몇 가주를 이끌고 다가왔다.
특히나 화령가주와 철목가주는 목에 힘을 주며 보란 듯이 다가오고 있었다.
“암수일살이라면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있지.”
화령가주의 말을 철목가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았다.
“무당 따위 안중에 없음은 당연하지.”
연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인사를 건넸다.
“보내주신 무인들은 잘 받았습니다.”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대답하는 화령가주.
“무연이 잘 부탁하네. 아이가 조금 모난 구석은 있지만, 자질도 있고 기개도 제법이지. 무엇하나 빠지는 것 없는 아이네.”
“훌륭한 무인이더라고요.”
그런 기개가 훌륭한 무인이 도평에게 까불다가 머리가 터지게 줘터졌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는 연수였다.
“큼큼!”
헛기침하며 주목을 모은 철목가주는 은근히 입을 열었다.
“우리 영이도 어디 가서 빠지는 아이는 아니네. 특히 호기롭고 남자다운 성미는 철가의 기개를 그대로 이어받았지.”
“확실히 그 기개가 보통이 아니더라고요.”
그런 놈이 도평에게 쫄아 손 한 번 섞어보지 않고 물러섰다는 말 또한 할 수가 없는 연수였다.
무언가 더 칭찬을 바라는 두 가주의 뜨거운 눈빛에 잠시 눈을 굴리던 연수는 말을 이었다.
“주무연과 철영은 벌써 적영대의 조장 자리를 꿰차고 수련 중입니다.”
두 가주는 말은 하지 않아도 턱을 치켜들며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데 수련이라면?”
진벽가주의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며 묻는 연수였다.
“무인이 수련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잖습니까?”
“그, 그렇기는 한데···. 혹시 직접 가르치시려고?”
“뭐 일단은 그러고 있습니다.”
몇몇 가주 들은 부러운 눈빛으로 눈을 빛냈다.
암수일살에게 직접 사사할 수 있다는 것은 현 사파인 이라면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잠시 그런 열망의 눈빛을 느낀 연수는 황급히 몸을 빼내었다.
“저는 무사들의 수련지휘로 바빠서 이만···.”
그런 연수를 붙잡을 수 없던 가주 들은 아쉽게 연수의 등을 바라보았고, 화령가주와 철목가주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다른 가주 들을 내려다보았다.
평소 진중하고 말이 많지 않던 철목가주의 그런 모습을 본 진벽가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적영대장 알고 있소? 철영은 철목가주의 둘째 손자요.’
차마 전하지 못한 이야기를 속으로 삼킨 진벽가주는 멀어지는 연수의 등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