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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29화 (129/202)

# 129화

무언의 패배승복을 하는 철목가의 무인들.

연수는 거기까지 보고는 무인들에게 다가갔다.

“여기 있는 도평은 암검대 대장 출신의 무인이다. 성주님의 검으로써 화산을 지운 영광스러운 공적을 세웠지. 암검대의 특성상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 너희들 따위가 함부로 투기를 드러낼 상대가 아니야. 갑작스럽게 차출되어 소속이 바뀌다 보니 혼란스러운 건 이해하겠는데, 객기도 통할 상대한테나 부리는 거야. 적영대의 부대장이자 실질적으로 너희를 이끌 사람이니까 앞으로 깍듯이 대해.”

연수의 설명이 끝나자 과연 도평을 보는 무인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특히나 성주가 암검대를 이끌고 화산을 지운 것은 정사를 통틀어 큰 화제였다. 그런 열전의 한가운데에서 활약한 주역을 부대장으로 모실 수 있다고 생각하니 경계심과 적대심 대신 존경심이 차오르는 무인들이었다.

“자 그러면 대충 정리하지. 너, 언제까지 자빠져 있게?”

아직도 정수리에서 피가 배어 나오는 주무연은 연수의 말에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대충 지혈하고 자리로. 두 놈도 빨리 깨워.”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는 두 무인 또한 주무연이 혈도를 두드리자 정신이 들었다.

대충 정리가 끝나자 연수는 화령가의 주무연과 철목가의 철영을 지목했다.

“너희 둘 앞으로.”

앞으로 나서는 두 무인을 잠시 바라보던 연수는 멀리서 지켜 보고 있는 모도산을 불렀다.

“도산 이리와.”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빗살같이 다가오는 도산.

그런 모도산을 바라보는 두 무인은 눈썹을 꿈틀대며 경계의 눈빛으로 도산을 살폈다.

그리 대단한 기세가 느껴지지 않던 도산의 무위에 제법 놀란 것 같았다.

“너희 셋은 조장. 나머지는 서른네 명은 조원. 철 뭐시기랑 주 뭐시기, 출신 차별하지 말고 열둘 씩 골라. 남은 열 명은 모도산 네가 맡아. 그리고 남은 두 놈 깨어나면 네 조로 편입한다. 이상, 질문 있나?”

철영은 연수의 말에 손을 번쩍 들었다.

우람한 근육으로 남들 덩치 두 배는 됨직한 그가 번쩍 손을 드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 연수가 입을 열었다.

“뭔데?”

“가문당 한 명씩 차출해야 합니까?”

“당연하지. 한 조에 열두 가문의 무인들이 한 명씩은 꼭 들어가야 한다. 너희는 이제 적영대야. 니들 가문의 정치 따위 여기서는 통하지 않아. 사이가 좋은 가문도 있고 나쁜 가문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오로지 적영대의 동료일 뿐이다. 그 외의 것들은 잊어. 철목가라고 대단할 것도 주결가라고 주눅이 들 것도 없다. 앞으로의 수련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추월 가능한 고만고만한 놈들이 쓸데없는 편 가르기를 할 생각은 미리 접어둬.”

연수의 말에 무인들의 표정에 미묘한 열망이 서렸다.

“또 질문 있나?”

저 뒤쪽에서 올라오는 손.

“앞으로 나와서 질문해.”

연수의 말에 무인들을 제치며 앞으로 나온 무인이 입을 열었다.

“수련을 시켜 주시는 겁니까?”

“그럼 놀려고?”

“아, 아닙니다!”

“너···. 주결가 출신이지?”

“옛!”

“걱정하지 마라. 네놈들 또한 언제든지 강해질 수 있다. 성주님이 무슨 생각으로 네놈들을 내게 보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내 밑으로 들어온 이상 이제 내 부하들이다. 적영대가 어디 가서 약하다는 이야기를 나오게 할 생각은 전혀 없어.”

잠시 무사들을 둘러보는 연수.

“또 질문?”

손을 드는 무사들은 없었다.

“도평 편제 끝나면 애들 데리고 찾아와.”

“예.”

그대로 사라져버리는 연수의 신형.

그의 무위에 장내의 무사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역시 암수일살···.

-그렇지? 저분의 부하로 들어온 건 행운이야.

“조용! 누가 사담을 나누라 허락했지?”

도평의 번들거리는 눈빛이 좌중을 휩쓸자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장내였다.

“조장들은 조원을 골라.”

-옛!

분주히 움직이는 철영과 주무연.

멀뚱멀뚱 서 있는 모도산에게 다가온 도평은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리 멀쩡한 모습을 보니 좋구나. 큰일을 해냈다.”

모도산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였다.

“심려 끼쳐 드려 송구합니다.”

“고개를 들어. 너희는 큰일을 해낸 영웅이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뭔가 기연이 있었더냐?”

미묘하게 커진 기운을 은연중에 뿜어내는 모도산의 기운을 읽은 도평이었다.

무영심공의 특성상 무의 기운을 감추는데 특화되어 있음이 분명한데 기운을 주체 못 하고 뿜어내는 듯한 모습에 의아한 경도평의 물음이었다.

“그게···. 대장님의 도움으로 생사현관을 타통 했습니다.”

“뭣?!”

경도평이 놀라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온몸의 내기가 충만하여 절정에 오른 고수들도 생사현관을 뚫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충만한 내기가 중단전을 이루며 초절정에 이른 후에야 생사현관이 자연스레 뚫리는 것이 기본이었으니. 아직 절정에도 오르지 못한 일류주제에 자신도 타통 하지 못한 생사현관을 뚫었다니 놀라운 일이 분명했다.

강호에는 간혹 이런 운 좋은 놈이 있었다.

기연이 닿아 주제에 안 맞게 생사현관을 타통 하는 놈들.

“추, 축하할 일이구나.”

“감사합니다.”

“그런 기연이···. 닿다니···.”

“대장님 덕이지요.”

“잘 알고 있으니 더 말 않겠다. 충심으로 보답하거라.”

“옛!”

도평은 최대한 티 내지 않았지만 허탈한 마음으로 시선을 돌렸다.

임독양맥이 생사현관이라 불리는 이유는 그만큼 함부로 덤벼들었다가는 죽기 딱 좋은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중단전이 열리며 자연스럽게 뚫리는 것이 아닌 이상 강제로 뚫으려다가는 십 중 구, 십 죽는다.

그런 임맥과 독맥을 겨우 일류주제에 타통해 버렸으니 상대적 허탈감이 드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부하의 기연을 사심 없이 기뻐하지 못하는 자신의 추태를 깨달은 경도평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나도 아직 멀었군.’

두 눈을 감고 명상에 한창이던 연수는 도화의 기척에 아니, 도화를 따라다니는 천영의 기척에 눈을 떴다.

“오라버니.”

“왔어?”

“명상 중이셨나요?”

“이제 끝났어. 그보다 누이와 소개는?”

“뒷마당에서 수련 중이세요. 정회 역시 일어나자마자 수련이네요.”

“비영 그 양반에게 말해둘게. 너 또한 한 몸 지킬 무는 쌓아야지.”

“예. 그보다 정회가 걱정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최근 무리를 하는 것 같아서···.”

“걱정 마. 무인으로서 자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니까. 저 정도는 해야지.”

“하지만···.”

“괜찮아. 그보다 밥은 먹은 거야?”

“아직 이요. 오라버니랑 같이 먹으려고요.”

“그래.”

도화와 오붓하게 식사를 하러 걸음을 옮기며 쏟아지는 햇살을 맞는 연수는 기분이 상기됐다.

슬쩍 팔짱을 끼어오는 도화가 좋았고, 눈부신 날이 좋았다. 다만···.

-좀 꺼져줄래? 언제부턴가 주렴각 안으로 막 들어오는 것 같다.

-암영대장으로서 권한은 받았습니다.

-그래도 좀 꺼져주면 안 될까?

-저는 패천화와 주렴각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지금은 내가 잘 지킬 수 있거든?

-저는 제 의무를 다 할 뿐입니다.

“하아.”

“무슨 걱정이 있으세요?”

연수의 팔을 꽉 붙들며 말하는 도화.

덕분에 물컹한 감각에 호강하는 연수의 팔이었다.

“아, 아니. 고민이라기보다는···.”

연수의 뒤통수로 날아드는 따가운 살기.

-지금 내 뒤통수에 꽂히는 이거 살기 맞지?

-아닙니다.

-맞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시겠죠.

자신을 걱정스럽게 올려다보는 도화의 커다란 눈과 마주친 연수는 어색하게 웃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별일 아니야. 오늘은 무슨 음식을 해 줄까?”

화제를 돌리며 도화를 이끄는 연수.

꽉 붙든 그녀의 팔짱이 풀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붉게 상기된 연수의 얼굴.

즐거운 도화와의 식사를 마치며 밖으로 나오는데 비영이 빙글 웃으며 연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아, 오셨네요.”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그리 싫은 티 낼 것 없잖아?”

“잘 오셨네요.”

도화의 팔짱이 스르르 풀려 버리자 더 아쉬운 연수였다.

“어떻게 연무장으로 옮길까?”

“아뇨. 주렴각에 넓은 마당 많아요.”

일행이 수련에 한창인 뒷마당으로 걸음을 옮기는 연수.

“아! 그리고 귀형가의 비급 좀 가져다주세요.”

“내가 가주이긴 한데 함부로 외부로 유출하기는···.”

“제가 볼 거 아니에요. 여기 도화도 엄연히 따지면 귀형가의 일원입니다.”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정 소저, 실례지만 무슨 무공을 얼마나 익히셨는지···.”

망노의 습성을 잘 아는 비영은 뒷말을 흐렸다.

“입문공인 사인공을 조금 익혔고, 귀영검을 삼 식까지 익혔습니다.”

“아···. 그럼 제가 내일 비급을 가져다드릴 테니 적영대장에게 직접 배우시는 게 좋겠습니다.”

“예.”

살짝 고개를 숙이는 도화를 보며 얼굴이 붉어지는 비영.

그런 비영의 뒤통수로 여지없이 날아드는 은밀한 살기였다.

“이, 이거···.”

“저한테도 똑같아요. 그래도 그쪽은 전임 대장이잖아요. 어떻게 전 부하들인데···.”

-좀 족쳐주실 수 없나요?

뒷말을 전성으로 하는 연수.

비영은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미 나는 귀형가 사람이야. 성주님의 직속 무인에게 간섭할 수는 없지.

-저 천영이라는 새끼, 원래 저렇게 꼴통이었나요?

-내 밑에 있을 때는 저렇지 않았는데···.

천영이 은신하고 있는 허공을 잠시 노려본 비영이었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잘게 떨리는 몸으로 천천히 초식을 수련 중인 정회와 비무가 한창인 소개와 공숙.

공숙의 현란하고도 패도적인 채찍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손에 맺힌 하얀 기운을 키워가는 소개.

바닥을 쓸듯 휘청거리며 공숙에게 다가서는 소개의 몸놀림이 전보다 더 부드럽게 느껴졌다.

“취룡보였던가? 언제 봐도 신기하군.”

“정파의 무공 중 하체에 힘을 저렇게 분산하는 무공은 개방이 유일하지 않을까요?”

“정파는 땅을 딛는 하체의 중심을 중요시하니까. 그런데 저 친구 생각보다 자질이 좋은 것 같은데?”

“무골이에요. 딱 봐도 체형부터 남다르잖아요. 개방도 눈이 있는데 승개를 그냥 뽑을까 봐요?”

“이립 전에 절정에 오르고도 남겠는데?”

“삼 년이라···. 글쎄요? 저놈도 과도기라서···. 단번에 뛰어넘었으면 좋겠는데. 친구다 보니 직접 손을 대기도 마음 편치 않고.”

-그런데 공 소저는···. 무시무시하군.

-웬만하면 누이의 심기는 건들지 않는 게 좋아요. 한번 가슴에 품어놓은 원한은 절대 잊지 않습니다.

-전에도 생각했네만···. 정신이 온전치 않은 건가?

-아니에요. 그냥 어려서부터 사부와 살다 보니 편향된 성격을 가져서 그렇지. 순진하고 아이 같아서 그리 보일 때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비영은 연수가 잠시 고민하고 대답을 한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 각 정도 지나자 공숙과 소개의 비무가 끝이 났다.

“후우, 왔어?”

긴 숨을 몰아 뱉으며 말하는 소개.

“응. 취룡보라고 하던가?”

“아, 맞아. 개방의 상승무공 중 취와봉룡 궤의 무공이야. 내가 사부께 물려받은 정수 중 하나인데···. 어때?”

“좋은 무공이야. 개방의 무공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낮은 중심의 허단공으로는 으뜸이야.”

“그래도 아직 공매의 품으로는 파고들 길이 보이지 않네.”

“그야 누이가······. 큼큼”

뒷말을 꿀꺽 삼킨 연수는 공숙의 눈치를 살폈다.

“내가 뭐? 할 말이 있으면 해. 사내놈이.”

“그냥 누이가···. 많이 봐 주니까 그렇다는 거죠.”

“이게 봐준 거라고?”

놀란 소개의 반문에 연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과거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누이와 한창 수련할 때는 저 채찍에 온몸을 얻어맞아 멀쩡한 날이 거의 없었어. 너는 아직 안 맞아봐서 모르겠지만 저 채찍에 후려 맞으면 영혼이 깜짝 놀라는 통증이 장난 아니야. 그렇게 얻어맞다 보면 싫어도 채찍의 움직임이 하나하나 다 보이게 돼 있어.”

연수의 말에 공숙을 바라보는 소개.

“공매, 정말 봐 주면서 하고 있는 거예요?”

“소랑의 실력에 맞춰서 하고 있는 거예요. 봐주는 게 아니라.”

새침하게 말하며 연수를 쏘아보는 공숙.

“저도 연수를 상대할 때처럼 해 주면 안 되나요?”

“제 쌍두편에 얻어맞으면···. 많이 아파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공숙.

“괜찮아요.”

당당하게 말하는 소개.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공숙이었다.

공숙이 매섭게 연수를 노려보는데 연수는 모른 척 시선을 돌리며 정회를 불렀다.

“거기까지. 초식이 흔들리면 의미 없어. 조금 쉬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닥에 주저앉는 정회였다.

도화는 그런 정회에게 달려가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마당의 가운데로 걸어나간 연수는 뒤로 돌며 입을 열었다.

“시작해 봅시다.”

씩 웃은 비영의 신형이 연수를 향해 늘어지듯 다가오며 무거운 중의 기운이 연수에게 몰아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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