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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28화 (128/202)

# 128화

임독양맥을 타통하고도 별 감흥 없이 운기를 하는 모도산이었다.

-들어가겠습니다.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여후상의 목소리.

그는 안으로 들어오며 두 눈이 검붉게 물들고 코피를 줄줄 흘린 모도산을 보고는 눈을 부릅떴다.

“부, 분명 안정되었을 텐데···.”

“그놈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놈인지 살펴봐 줘요.”

“어찌 된 겁니까?”

“나도 몰라요. 이제 막 회복한 놈이 미친 듯이 임독양맥을 두드리더군요. 도저히 내기가 진정되지 않아 될 대로 되라 생각하고 임독양맥을 뚫어 버렸습니다.”

“뭐요?!”

놀라서 허겁지겁 모도산의 맥을 잡아보는 천괴의.

한참을 진맥한 그는 품에서 깨끗한 헝겊을 꺼내 모도산의 코피와 입가의 피를 닦아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뭡니까? 이게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저도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어서···.”

“무슨 특이 체질 같은 겁니까?”

“근골로 보나 기맥으로 보나 튼튼하게 타고난 것 외에는 특별할 게 없습니다. 그렇다고 무재가 뛰어난 건···.”

“아니죠.”

천괴의가 차마 하지 못한 뒷말을 대신해 주는 연수.

“그저 조금 심할 정도로 튼튼한 것 외에는 딱히 뭐라 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지금 상태는 어때요?”

“생사현관을 타통한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경혈이 조금 상하기는 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진짜 뭐 저런 게 다 있지?”

황당함에 절로 나오는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천괴의는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정신이 들 때까지 지켜보는 수밖에는···.”

“언제쯤 정신을 차릴 것 같소?”

“상태로 보아서는 오늘 중으로 깨어날 것 같은데···. 워낙에 특이한 친구인지라···.”

“남은 두 놈은요?”

“저들은 제가 수혈을 깊이 짚어 놓았습니다. 최대한 늦게 깨어나는 게 회복에 도움이 될 듯하여···. 내일 혹은 모레면 깨어 날것입니다.”

“알겠어요. 일단 돌아가 보세요. 무슨 일 있으면 또 연통하죠.”

“그럼.”

밖으로 나가는 천괴의는 몇 번이나 모도산을 돌아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천괴의가 밖으로 나가자 연수는 정신적 피로를 느끼며 그대로 누워서 눈을 감아버렸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자 그간 누적된 피로와 간밤에 난리로 인해 유난히 늦잠을 자고 싶던 연수는 웅성거림과 인기척들로 인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세계에 떨어지고 난 후 처음으로 종일 푹 자고 싶은 날이었다.

한 달이 넘는 긴장된 나날의 출전이 있었고, 돌아와서도 제대로 쉬지 못한 연수였다. 아무리 고수지만 이런 육체적 정신적 피로는 쌓이게 되면 좋을 것이 없었다.

하여 하루쯤 푹 자며 쌓인 피로를 씻어내려 했는데 아침 댓바람부터 시끌벅적하니 짜증이 울컥 솟아오르는 연수였다.

방문을 열며 밖으로 나온 연수는 다짜고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아침 댓바람부터 어떤 새끼들이야!”

웅성거리던 장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주렴각의 앞마당에는 서른여섯 명의 각양각색의 무사들이 정렬해 있었다.

“응? 니들 뭐냐?”

잠이 확 깨는 연수였다.

한쪽에 서 있던 경도평역시 짜증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적영대에 편입된 무사들이라 합니다.”

제왕신공을 탐독하며 심오한 무리에 빠져있던 경도평은 주렴각을 넘는 대규모의 기척에 방해를 받아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하아, 올 것이 왔구만.”

“어떻게 할까요?”

잠시 그들의 면면을 살피던 연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거기 너! 그리고 너! 니들 어디서 온 놈들이야?”

지목을 받은 두 무사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철목가에서 온 철영이라 합니다.”

“화령가에서 온 주무연이라 합니다.”

둘을 유심히 살피는데 경도평의 전음이 들려 왔다.

-여기 있을 놈들이 아닌데요?

-그러게 말이다.

잠시 고민을 하던 연수는 경도평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도평 네가 고생 좀 해 줘야겠다. 애들 상태 봐서 적당히 세 조로 나눠. 저 두 놈 조장시켜 놓고. 남은 조는···. 모도산이가 조장하면 되겠네.”

-도산이 저 두 놈에 비해 처질 것 같습니다만.

-꼭 그렇지도 않을걸?

씩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는 연수.

도평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주목. 나는 경도평이라 한다. 이제부터 너희들의 실력을 확인하여 세 조로 나눠 편제 할 생각이다. 소란스럽지 않게 제삼 수련장으로 해쳐 모인다.”

-예!

우렁찬 대답을 마친 서른 여섯 명의 인영이 우르르 주렴각을 빠져나갔다.

주위가 조용해지자 다시 드러누워 두 눈을 감는데 모도산이 깨어나는 기척이 느껴져 왔다.

“하아, 내 팔자에 무슨 늦잠이냐.”

눕혔던 몸을 일으켜 세우며 고개를 돌리자 긴 숨을 내쉬며 눈을 뜨는 모도산.

그의 눈에서 안광이 폭사 되어 나왔다.

“정신 좀 드냐?”

“대장님? 벌써 돌아오셨습니까?”

“벌써 같은 소리 한다. 온 지 삼 일째야.”

“삼일···.”

모도산은 자신이 얼마나 의식 불명이었는지 잘 감이 잡히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내가 돌아오기 며칠 전에 너희들이 도착했다고 하니까, 적어도 육칠일 정도 정신을 잃고 있었을 거야.”

“그렇군요···. 아! 남궁세가는?”

“지웠다. 너희들 희생 덕에.”

“그렇군요. 잘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너희들은 어떻게 된 거야? 위험한 임무이기는 했지만···.”

어색한 웃음을 짓는 모도산은 자신의 뒤로 누워 있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두 동료를 바라보고는 그날을 회상하며 입을 열었다.

“대장님과 헤어진 이후 흔적을 남기며 사황성으로 복귀 중 얼마 못 가 추적이 붙더라고요. 그때부터 그들의 이목을 끌고 다니며 추적자들을 추살했습니다. 다섯 번째 추적조를 암습 하는데 고수를 만났습니다.”

“용케 살아왔군.”

“저는 진원을 허물어 쓰며 버텼는데 이 멍청한 놈들이 도망을 가지 않았어요. 이미 순번을 정해놓았었는데···.”

위기에 빠지면 죽을 순서를 정해놨다는 말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연수였다.

“제 단전을 부수고는 이 두 놈을 뒤쫓던 고수와 추적조는 무당 출신이 분명해 보이더라고요. 근처에서 암습을 준비하던 이놈들은 숨이 붙어있는 저를 데리고 도망을 쳤고요. 그때부터 저는 의식이 흐려서 잘 기억은 안 납니다만 수 차례의 위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살아온 게 신기하구나.”

“이 두 놈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몸은 좀 어떤 것 같아?”

그제야 자신의 몸을 살피는 모도산.

모도산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는 듯 몸을 살폈다.

중상을 입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단전이 깨지며 무인으로서는 불구가 된 자신이었다.

“어, 어떻게···.”

충만히 느껴지는 내력과 넓어진 경락으로 막힘없이 세차게 흐르는 내기를 느낀 모도산의 입이 귀에 걸릴 듯 호쾌한 호선을 그렸다.

“어떻게 되먹은 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슬아슬하게 단전이 깨지지 않고 버티더군. 게다가 타고나길 워낙에 튼튼하게 타고난 모양인지 끈질기게도 버텼어. 천괴의가 혀를 내두르더군.”

“그러고 보니 어릴 때부터 맷집 하나는 좋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게 맷집이 좋다는 말로 끝날 일이 아닌데···.’

라는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연수는 고개를 저으며 일어났다.

“어디 가십니까?”

“적영대가 보충되었다. 지금 도평이 조별로 나누고 있을 거야. 얼굴이나 비치려고. 너도 조장 자리 하나 맡을걸?”

“제, 제가···!

-쿵!

벌떡 일어서던 도산은 그대로 솟구쳐 오르며 천장 기둥에 머리를 박고 바닥으로 처박혔다.

“쯧쯧. 무인이라는 놈이 자기 몸 상태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다니.”

혀를 차는 연수를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도산.

잠시 내기를 돌리며 몸을 관조해 보더니 두 눈을 부릅뜨고 연수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역력히 떠올랐다.

“어, 어찌···.”

“내가 아냐? 회복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미친 듯이 임독양맥을 두드리더라. 네놈 때문에 놀란 거 생각하면···.”

뒷말을 흐리는 연수.

어젯밤만 떠올리면 욕설부터 튀어나오는 연수였다.

-쿵!

“감사합니다. 대장님!”

“구들장 무너진다.”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찧는 도산.

“죄, 죄송합니다.”

“몸은 멀쩡히 회복한 것 같네. 따라와. 새로운 신체에 적응은 해야지.”

“예.”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 도산은 연수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근데 제삼 수련장이 어디냐?”

“제삼이라면···.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앞장서는 도산을 쫓아 수련장에 도착하자 무인들의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무슨 일 있나?”

열기를 느낌과 동시에 암동을 펼치자 본능적으로 같이 은신하는 도산이었다.

-아직 어색하네. 수련 더해야겠다.

연수의 전성에 놀란 도산은 연수를 찾아보았지만 도저히 그의 위치를 잡을 수 없었다.

“정진하겠습니다.”

하는 수 없이 육성으로 대답하는 도산.

그러거나 말거나 무인들이 모여있는 수련장으로 접근하는 연수였다.

-빡!

경쾌한 타격음이 연수의 귀에 들려오자 연수는 무슨 일인가 더 궁금하여 장막을 치고 있는 무사들을 훌쩍 뛰어넘는 연수.

“...”

목검을 들고 무심하게 주저 앉은 무사를 바라보는 도평.

그는 어깨를 움켜쥐고 있는 무사에게 두었던 차가운 시선을 장내에 서 있는 무인들에게 옮겼다.

“다음.”

궁금증을 참지 못한 연수는 모습을 드러내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뒤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음성에 움찔한 도평은 이내 목소리의 주인이 연수임을 인지하고는 목검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뺐다.

“이들의 실력을 파악하고 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진짜 무슨 일인데?

무사들에게 등을 돌려 얼굴을 가린 도평이 전음을 보내왔다.

-아무래도 기강이 잡히지 않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 특히 화령가와 철목가에서 온 놈들이 뻣뻣해서···.

-크크, 꼭 누구와 같네.

“큼큼! 하여 위와 아래의 차이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몸을 돌리며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씹어 뱉는 도평의 기세가 날카로워졌다.

“그럼 하던 거 마저 해.”

연수는 한쪽으로 물러서며 도평의 하는 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성의 열두 가문과는 연이 없는 적영대의 소속이다. 알량한 실력으로 적영대장님께 짐만 되는 주제에 꼴에 무인이랍시고 시답잖은 자존심 세울 생각이라면 지금 돌아가라.”

도평의 말에 무사들은 인상을 구기며 도평을 노려보았다.

나름 자신들의 가문에 자부심이 강하던 그들이었다.

특히나 화령가와 철목가는 혈연으로 이어진 가문이다 보니 그 정도가 더했다.

화령가의 주무연은 앞으로 나서며 뜨거운 기세를 뿜어냈다.

어느새 연수의 옆으로 다가온 도산은 주무연의 기세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수네요.”

“나름? 딱 보니까 과도기네. 잘 봐둬. 벽을 앞둔 무인이야.”

“벽이요?”

“구분 짓자면 소개랑 비슷하달까? 저기서 한 발자국만 더 나가면 절정. 못 나가고 헤매기 시작하면 일류.”

“...”

모도산은 주변으로 뜨거운 화기를 뿜어내며 도평의 앞에 당당히 서는 주무연을 뜨거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적당히 하면 두고두고 까분다.

연수의 전성에 살기 어린 미소를 짓는 도평.

“와라.”

덤벼드는 주무연의 팔로 불꽃이 튀어 오르는 기운이 맺혔다.

-화르륵.

제법 기세가 붙은 권을 구사하며 달려드는 주무연.

하지만 상대는 이미 신검합일을 이룬 도평이었다.

-빠빠빠빠빡! 빡! 빡! 빡! 빡! 빡! 빡! 빡! 빡! 빡! 빡! 빡! 빡!

순식간에 주무연의 다섯 요혈을 후려치는 쾌검.

이후로 멍하니 서 있는 그의 정수리를 목검으로 계속 내려치는 도평이었다.

결국, 머리가 터지며 피가 흐르고도 몇 대를 더 맞고 나서야 무릎을 꿇는 주무연이었다.

무릎을 꿇은 주무연의 정수리로 날아들던 목검은 완전히 꺾여버린 그의 눈빛을 확인하는 순간 멈췄다.

“다음.”

화령가의 남은 두 무인은 발작하듯 튀어나왔다.

“둘이 동시에 덤벼도 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덤벼드는 두 무인.

한 명은 강력한 장을 뻗어 왔고, 다른 하나는 권을 휘두르며 달려왔다.

-빠빡!

하지만 제대로 보이지도 않은 도평의 목검이 둘의 정수리를 후려치고 지나가자 그대로 거품을 물고 쓰러지는 두 무인.

“다음.”

피에 물든 목검과 얼굴에 핏방울이 튄 채 미소지으며 다음이라는 말을 내뱉는 경도평을 제대로 바라보는 무사들은 없었다. 철목가의 세 무인을 제외하고는.

“철 뭐라고 했지? 너희들 앞으로.”

말없이 앞으로 나서는 세 무인.

“동시에 덤벼도 돼.”

허나 세 무인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더니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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