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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27화 (127/202)

# 127화

두 무인의 묘한 기류를 재미있게 지켜보던 연수에게 눈물을 그친 정회가 입을 열었다.

“정말 오 년 안에 날 절정의 고수로 만들어 줄 수 있어?”

“음···. 아마도? 네가 따라올 수만 있다면.”

“어떤 수련이지?”

“별거 없어. 내가 가르쳐 준 대로 하루 세 시진. 심법수련 두 시진 다시 초식수련 세 시진. 명상 한 시진. 신체훈련은 익숙해 질 때마다 그 강도를 강하게 하여 몸이 항상 힘들게. 이렇게 삼 년을 하면 아마 싫어도 일류의 끝까지는 올라서겠지. 그럼 신체훈련을 줄이고 그때부터 죽도록 비무와 무리를 머릿속에 때려 박아주다 보면 절정고수의 길이 열릴 거야.”

“저, 정말 그렇게···.”

정회의 말을 끊는 경도평.

“정회 소저. 이런 말 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초절정 고수의 지도를 받는다는 건 보통의 기연이 아닙니다. 무림 전체를 통틀어 두 손에 꼽히는 고수에게 조금이라도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면 천금을 준비하고 줄을 설 무인들이 수두룩할 것입니다.”

경도평은 진지한 눈으로 정회를 나무라듯 말했다.

“아, 알고 있어요.”

“전에도 말했지만 무에 있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없어. 예전에 공숙 누이와 산에 박혀 수련할 때는 하루 한 시진 반을 빼고는 거의 수련만 했어. 삼 년을 조금 넘게.”

공숙은 아련한 표정으로 그때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때는 정말 질리도록 수련만 했었지. 분명 처음에는 연수보다 내가 더 빨리 절정에 올랐는데 어느새 따라잡혀 버려서 더 이 악물고 했었어.”

“공매 저 자식 재능이 괴물 같은 거니 실망하지 마요.”

“소랑 재능도 재능이겠지만 연수의 노력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독기로 가득한 시간이었어요.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해도 재능만으로 되는 것은 없어요.”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이는 소개.

“그렇죠.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알아요.”

뜨거운 눈길을 주고받는 둘을 보며 인상을 찌푸린 연수는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됐고, 도평 이거···. 필사해서 원본은 내게 가져오고. 도움이 될 거야. 한동안은 별일 없을 것 같고, 이놈들도 위기는 넘겼으니 그만 가서 쉬어.”

연수가 내미는 비급에는 제왕신공이라 적혀있었는데 그걸 본 경도평은 눈을 부릅뜨며 두 손으로 공손히 비급을 받아들었다.

“이, 이걸 제가 봐도 되겠습니까?”

“안될 거 뭐 있어? 대충 읽어보니 내력의 운용에 대해 심오한 내용이 많더라. 아마 도움이 될 거야. 필사 끝내면 무리를 잘 정리하고 이놈들도 잘 알려줘. 도움은 안 되겠지만 그래도 목숨 걸고 사지로 달려들어 살아왔는데 이 정도 보상은 있어야지.”

“충!”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이는 경도평.

“됐어. 나가봐.”

비급을 조심스럽게 품속에 갈무리한 경도평은 서둘러 주렴각을 벗어났다.

소개와 비영이 부러운 눈빛으로 그런 경도평의 뒷모습을 바라보더니 연수를 은근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필사해오면 돌려 보든지요. 다만 소개야 너에게는 별 도움이 안될 거야.”

공숙은 소개의 팔짱을 끼며 반발했다.

“왜? 우리 소랑이 얼마나 자질이 뛰어난데?”

“자질의 문제가 아니라 경지의 문제에요. 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소개는 저런 심오한 내가의 공부보다는 기초적인 기의 운용을 확실히 정립하고 수련해야 해요. 아시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저런 심오한 비급은 나중에 보면 돼요. 그런 것보다는 이런 게 더 도움이 될걸요?”

말을 마치며 품에서 목합 하나를 꺼내는 연수.

눈을 번쩍이는 소개가 연수의 손에 들린 목합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 그거 여, 영약이냐?”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연수.

“그때 네가 준 영약 덕분에 크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지. 그에 대한 보답이다. 영약도 다 때가 있는 거니까.”

도화는 영약을 받아드는 소개를 부럽게 바라보는 정회를 보며 연수에게 눈짓했다.

그 눈짓을 확인한 연수는 비영의 옆구리를 찔렀다.

“하나 꺼내 보시죠?”

“무, 뭘?”

“그거 몇 개 있을 거 아니에요?”

“두, 두 개밖에 없어.”

“제왕신공이라면 정혼옥구환 열 개의 가치는 있는 보물인데···.”

“나도 딱 두 개 있는 건데···.”

“하나만 있으면 충분하죠. 비무 몇 번 해 드릴게.”

그 말에 주저 없이 품에서 목합을 꺼내는 비영이었다.

그 목합을 받아서 정회에게 건네는 연수.

하지만 정회는 망설임이 가득한 눈빛으로 목합을 뚫어지게 주시하며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자존심은 고수가 된 다음에 지켜. 내가 네 경지일 때는 하루 몇 시진씩 산을 뛰어다니며 영약을 찾아 헤맸는지 알아? 그리고 다 때가 있다고 했지? 이런 영약이 큰 효용 가치가 있는 건 하수일 때나 가치가 있는 거야.”

“하지만 나도 염치가 있어.”

“너 이뻐서 줄까 봐? 도화를 잘 지켜달라고 주는 거야. 네가 빨리 고수가 되어야 안심하고 도화를 맡기지.”

잠시 연수를 바라보던 정회는 연수의 손에서 목합을 받아 들었다.

“꼭 갚을게.”

“수련이나 잘 해. 일단 소개부터 시작하죠.”

연수의 말에 공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개의 뒤로 선 연수와 앞에 마주 앉은 공숙.

소개가 잠시 둘을 바라보고는 목합을 열어 정혼옥구환을 입안으로 가져갔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영약이 뱃속으로 들어가며 시원한 감각이 느껴지자 눈을 감고 운기를 시작하는 소개.

그런 소개의 백회에 손을 올린 연수와 단전에 손을 대는 공숙.

도화는 여인의 손이 남자의 단전에 닿자 얼굴을 붉히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비영은 백회에 손을 올리고 눈을 부릅뜬 채 진기도인 하며 벌모세수를 하는 연수를 유심히 바라봤다.

‘저런 건 어디서 배운 거지?’

물론 절정고수쯤 된다면 벌모세수정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연수처럼 백회에 손을 올려 할 수는 없다. 보통 공숙처럼 단전에 손을 올려 진기를 이끌고 경락을 뚫어주는 게 보통이었다.

그마저 꽤 심력과 내기를 잡아먹는 일이기에 아무에게나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두 시진이 꼬박 지나고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져 오자 손을 떼는 연수와 공숙.

그와 동시에 눈을 뜨는 소개의 두 눈에서는 정광이 쏟아져 나왔다.

“후우, 확실히 개방의 심공은 정심하네. 화기가 정기의 주를 이루고 있어서 그런지 세맥도 제법 깨끗해.”

자리에 주저앉으며 소개의 손목을 붙들고 진기를 흘려보내며 단전을 살피는 연수.

단전의 반발력에 제법 탄탄한 것을 확인한 연수는 씩 웃었다.

“한 갑자 반. 잘 흡수했네. 어디 가서 내력이 부족해서 낭패를 볼 일은 없겠다.”

“네 덕이다. 고수 친구 둔 덕을 다 보네.”

“나도 네 덕 좀 많이 보게 빨리 커라.”

시답잖은 농을 주고받는 둘을 애가 타게 보고 있는 정회.

연수는 그런 정회의 시선을 느끼고도 짓궂게 그녀를 외면하며

시답잖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벌써 날이 어두워졌네? 다들 피곤하죠?”

보다 못한 도화가 연수의 옆으로 와서 그의 팔을 붙잡았다.

“오라버니.”

“응? 왜?”

그런 연수를 슬쩍 노려보는 도화.

연수는 미소를 지으며 정회의 뒤로 돌아갔다.

“하여튼 짓궂으시긴.”

그런 도화의 말에 웃음으로 답하며 입을 여는 연수.

“준비해.”

정회는 그제야 가부좌를 틀며 목합을 열었다.

공숙 또한 정회의 앞에서 그녀의 단전에 손을 올렸다.

입안에 집어넣은 영약이 사르르 녹으며 목을 넘어 들어가자 두 눈을 감으며 운기를 시작하는 정회.

정회의 경락 곳곳을 영약의 기운을 고루 퍼지게 미리 내기로 정리해 가는 연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경지보다 막힌 세맥이 많았고, 분명 뚫려 있어야 할 경락이 막힌 경우도 많았다.

몇몇 대맥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주요 경혈을 제외하면 무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화기와 탁기가 고루 차 있는 정회였다.

‘무슨 놈의 무인 혈맥과 경락이 이 모양이지?’

식은땀을 흘려가며 경락을 정리하는 연수.

겨우 한 시진이 지나자 눈을 뜨는 정회였다.

공숙은 연수와 같은 의문 가득한 표정으로 연수를 바라봤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고 있는 연수였다.

“너, 미안한데 심법구결 좀 읊어봐.”

“!!”

눈을 부릅뜨는 정회. 당연했다. 무인에게 비전 심법을 읊어보라니 상대가 연수가 아니었다면 칼을 뽑고 덤벼들어도 모자랄 정도였다.

“그런 눈 하지 말고. 아무래도 이상해서 그래. 네 초식은 분명 종남의 상승 무리의 요체가 그대로 녹아있어. 하지만 네 경락과 주요 혈맥은 이게 무인의 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엉망이야.”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긴, 마치 삼류 심법을 익힌 무인 같다는 말이지.”

말을 마치며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내기를 흘리는 연수.

“역시 아직 한 갑자가 안되네. 반도 흡수하지 못했어. 그나마 나와 누이가 최대한 도왔기에 이나마 흡수한 거야.”

“하지만···.”

망설이는 정회.

“너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종남의 무공이라면 너보다 잘 알아.”

잠시 연수를 빤히 바라보던 정회는 고개를 끄덕이며 단념한 듯 입을 가리며 연수에게 전음으로 구결을 알려주었다.

모든 구결을 들은 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반쪽짜리구만.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반쪽짜리라니?”

“그 구결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온전한 구결이 아니야. 특히나 주요 행공에 꼭 필요한 뼈대 말고는 다 빠져 버렸다.”

“그럴 리가!”

“호검파가 호검문에 쉽게 무너진 것이 이유가 있었네. 이래서 무인들끼리의 교류가 중요한 거야.”

정회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연수를 바라봤다.

“잘 외워놔. 같은 궤의 심법이니 익히는데 전혀 문제 없을 거다.”

-연동서하 벽두진쾌 후연화임 ...

강진령의 장원에서 훔쳐낸 심법을 일러주는 연수.

세 번을 외워주니 모두 외워내는 정회였다.

“지금 네가 익히고 있는 건 굳이 구분 짓자면 상승의 심법을 억지로 깎아낸 심법으로 입문공과 비슷한 심법이야. 하지만 그마저 억지로 만들어 기초를 쌓는 데에는 입문공만 못해.”

“...”

“앞으로 내가 수련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거야. 네가 일류의 경지에 오른 것도 순전히 타고난 자질이 좋아서였을 뿐이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정회.

생각보다 충격이 컸는지 생각이 많아 보이는 그녀였다.

“쓸데없는 생각은 고수가 된 후에 해도 늦지 않아.”

잠시 주변을 둘러본 연수는 일행을 한번 쭉 둘러보고며 입을 열었다.

“시간이 늦었네요. 다들 가서 쉽시다.”

비영은 반짝이는 눈으로 연수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내일 언제 올까?”

“왜요?”

“이러면 섭섭하지.”

“귀형가 오래 비워놔도 되는 겁니까?”

“정리 끝났다니까.”

“하아, 편할 때 오세요.”

“그럼 그렇게 알고 갈게.”

일행들을 모두 내보낸 연수는 아직도 두 눈을 감고 활발히 운기 중인 모도산과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 두 무사를 잠시 바라보고는 자리에 벌러덩 누워 눈을 붙였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임이 분명한데 불안하게 흔들리는 기세에 눈을 뜨는 연수.

“응?”

모도산을 중심으로 흔들리는 불안한 기세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하아, 이놈 가지가지 하네.”

벌떡 일어나 그의 백회에 손을 올리는 연수.

분명 치유되기 시작하며 안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경락에 무리가 가고 있었다.

세차게 휘몰던 그의 내기가 단전이 회복되기 무섭게 임독양맥을 두드리고 있었다.

‘이놈 진짜 뭐지?’

자의로 하는 짓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단전이 깨질 뻔한 무인이 회복되자마자 이런 짓을 한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가만 놔뒀다가는 주화입마에 빠지기 딱 좋은 상태였다.

‘대체 왜 이러는 거냐···. 나도 좀 쉬자.’

그의 내기를 달래며 단전으로 돌려보내려는데 도무지 인도에 따르지 않는 모도산의 내력이었다.

경락을 세차게 돌며 임맥과 독맥에 때려 박히는 모도산의 내력.

이리 무리한 운공이 계속되면 아무리 튼튼한 그의 경락이라도 멀쩡할 수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절로 한숨이 나온 연수는 울컥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빌어먹을 될 대로 돼라.’

아예 막대한 내기를 모도산의 백회를 통해 흘려보내는 연수.

그와 동시에 연수의 전성이 주변으로 울렸다.

-천괴의 빨리 데려와!

온몸을 달리며 덩치와 속도를 키우는 모도산의 내력에 연수의 막대한 내기가 보태지자 그 힘과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무리한 운공으로 인해 터질 듯 커지는 모도산의 경맥.

경락에 무리가 가니 혈과 혈맥 또한 상당한 무리를 받고 있었다.

모도산의 감긴 눈 주위로 핏줄들이 파열되며 검붉은 멍이 번지고 있었고, 그의 코로 쉴 새 없이 코피가 줄줄 새어 나왔다.

그의 온몸의 혈관들 또한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며 꿈틀대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혈관이 터져 죽을 것처럼 보였다.

‘기회는 단 한 번이다.’

등이 축축해질 정도로 내력을 보탠 연수의 내기는 어느새 모도산의 내력보다 그 덩치가 커졌다.

-꽝!

연수와 모도산의 귀에만 들리는 굉음.

-울컥!

굉음과 함께 모도산은 한 움큼의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피를 토해내자 얼굴까지 올라와 있던 부픈 혈관들이 점차 가라앉으며 안정을 되찾아 가는 모도산.

-털썩.

주저앉은 연수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도산을 바라보며 욕을 내뱉었다.

“뭐 이런 빌어먹을 새끼가 다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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