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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22화 (122/202)

# 122화

의각대가 다른 무력대에 비해 그 실력에 손색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일방적이지 않은가?

저게 어떻게 절정고수의 무위라는 말인가?

절정고수라면 아무리 자신보다 윗줄이라 해도 상대가 무슨 짓을 하는지는 감이라도 잡혀야 했다.

보이지도 않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상상도 되지 않는 현 상황으로 볼 때 적영대장은 절대 절정 고수가 아니었다.

‘속았다.’

그제야 입을 열어 합의점을 찾으려는 의각대주.

“늦었어.”

뒤에서 들려오는 적영대장의 목소리.

무인에게 있어서 완벽하게 뒤를 잡히는 것은 악몽 같은 일이다.

등줄기가 오싹해지며 피가 차게 식는 느낌에 의각대주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툭.

가볍게 어깨를 친 것 같았는데 그대로 빠져버리는 어깨.

“크윽! 마, 말로 해결합시다. 오해가 있는 거 같소.”

“오해 아니라니까.”

-툭.

이번에는 반대편 어깨가 빠졌다.

“큭!”

경도평은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널브러져서 꿈틀대며 부러진 부위를 움켜쥐고 신음하는 무인들을 내려다보았다.

보통의 무인들은 어디 하나 부러졌다고 해서 바닥을 구르며 추태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를 어떻게 부러트려 놓았는지 지금 저 무인들은 그런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양어깨가 빠지고도 의각대주는 계속 입을 움직였다.

“적영대장! 나 또한 대약전의 의각대를 책임지는 대주요!”

-툭.

연수의 발끝이 의각대주의 무릎을 툭 치고 지나가자 크게 휘청인 의각대주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크헉!”

무릎이 빠지는 것은 어깨가 빠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통증을 몰고 왔다.

경도평의 고개가 세차게 돌아갔다.

무릎이 빠진 이상, 근과 건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빠진 뼈야 집어넣으면 그만이지만 한번 상한 건은 두고두고 의각대주를 괴롭힐 것이다.

-툭.

“크악! 그, 그만 제발···.”

-툭.

양어깨와 무릎이 끝나자 이번에는 팔꿈치를 뽑기 시작하는 연수.

경도평은 아예 고개를 돌려 무표정하게 무인하나를 망가트리는 연수의 모습을 외면했다.

“도평. 왜 그러고 있어? 급해. 약 타서 빨리 가.”

“예? 예.”

대답을 마친 경도평의 시선이 약방의 중년인에게로 향하자 언제 준비해 놓았는지 필요한 약재를 들고나와 전해주는 중년인이었다.

그는 밝은 미소와 함께 약의 사용법까지 친절하게 설명한 후 공손히 허리를 숙여 보였다.

경도평은 황당한 표정으로 잠시 그 중년인을 바라보다가 사라졌다.

“이, 인제 그만 좀 하시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소?”

“너도 대약전 소속이고 천괴의의 사제니까 사람 몸의 관절이 몇 개나 되는지는 알고 있지?”

추소방의 얼굴이 핼쑥해지며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걱정 마 열두 개만 뽑을 거니까.”

-툭.

“크헉!”

“이제 반 뽑았다. 손목 발목 그리고 고관절 남았네.”

“고관절까지 뽑으면 폐인 된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성주와 얼굴이 하얗게 질린 풍채 좋은 노인이 서 있었다.

“주렴각으로 오시라니까 이리로 오셨어요?”

“대약전을 뒤집어 놓는다는데 가만있을 수가 있나? 이번에 다친 성의 무사들이 얼마나 많은데.”

연수는 월영이 은신하고 있는 곳을 노려보았다.

분명 뒤집어 놓았다고 전하라 했는데 뒤집어 놓고 있다고 전한 모양이다.

“왜 그러는 건데?”

“월영한테 들으세요. 제가 말하다가 다시 화가 나면···. 여기 있는 무인들 다 죽일지도 몰라요.”

풍채 좋은 늙은이는 단번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깨달은 듯 미세하게 손을 떨며 연수를 말렸다.

“저, 적영대장! 오해가 있다면 말로 해야지. 같은 사황성의 사람들 아닌가?”

“당신···. 누구지?”

“내가 대약전의 대의원 여후상일세.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천영!”

“예.”

“천괴의가 왜 여기 있어? 주렴각에 있어야 할 텐데···.”

“저도 안 가겠다는 사람 강제로 데려갈 권리는 없습니다. 전하시라 하는 말은 모두 전했습니다.”

“크크크 그렇다는 말이지.”

-투투투툭.

-끄어어억!

양 손목과 발목의 관절이 쑥 빠져버리자 굼벵이처럼 꿈틀대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천괴의를 바라보는 추소방이었다.

천괴의는 추소방의 그 눈빛을 고스란히 받아서 성주에게로 보내고 있었다.

천영에게 일련의 이야기를 들은 성주의 몸에서 폭발적인 살기가 풍겨 나왔다. 연수를 제외한 주위의 모든 무인이 고통마저 잊고 숨을 죽였다.

가뜩이나 무공이 일천 하던 천괴의는 성주의 뒤로 비칠비칠 물러서며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

“그 관절 뽑을 거 없어.”

“왜요?”

성주의 손에서 뻗어 나오는 불타는 듯 일렁이는 수강.

성주가 뚜벅뚜벅 걸어와 손을 휘두르자 의각전주의 사지가 잘려나가 버렸다.

“!!!”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눈만 부릅뜨고 누워있는 의각전주.

“버러지 같은 놈. 평생 버러지처럼 굴러다니면서 살아.”

“와, 대단하네요. 잘리는 동시에 불로 지진 것처럼 살을 녹여서 지혈했네요. 출혈이 거의 없어요.”

그 와중에 의각전주의 절단면을 살피며 감탄하는 연수의 모습이 마치 소 돼지를 앞에 둔 도살자처럼 보이는 천괴의 여후상이었다.

“어···. 그···.”

차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 여후상은 성주의 싸늘한 눈을 바라보는 순간 무릎을 꿇었다.

“서, 성주님! 부디 용서를···.”

씩 웃으며 수강을 뽑아 올리는 성주를 연수가 말리고 나섰다.

“저 양반은 죽이면 안 되는데요.”

“왜?”

“살려야 될 애들이 있어요.”

“아, 그랬지.. 후상, 긴말 않는다. 무슨 짓을 하든 멀쩡히 만들어놔. 걔들은 적영대에 가기 전에 암검대에 있던 아이들이야. 만약 멀쩡히 살려내지 못하면···.”

싸늘한 미소를 짓는 성주를 힐끔 바라본 여후상은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외쳤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려 놓겠습니다.”

“빨리 가 봐. 천영.”

“예.”

성주의 앞으로 무릎을 꿇으며 솟아나는 천영.

“저놈 잘 감시해. 혹여나 불상사가 있으면 죽여라. 아니. 비령곡으로 데려가.”

“예!”

비령곡이라는 말에 천괴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비령곡이라면 자신도 각종 인체실험을 위해 자주 찾아가는 곳이었다.

사황성의 대 죄인이나 반역자 혹은 몰래 잡아 온 정파인들을 가두고 고문하는 곳으로 그곳의 고문관으로 있는 자와는 천괴의 본인도 꽤 친분이 있었다.

그래서 잘 알고 있었다. 알량한 친분 따위 죄인과 고문관 관계로 만났을 때 절대 통하지 않음을.

“꼭 살려낼 것입니다. 멀쩡히! 살려 보이겠습니다!”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

마지막 말만 남겨두고 사라지는 성주.

“끄어···. 사, 사형···.”

무릎을 꿇은 채 사지가 모두 잘린 사제에게 기어오는 여후상.

천영은 그런 그의 앞을 막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럴 시간이 없을 텐데요.”

“...”

힘없이 몸을 일으켜 세운 여후상이 몸을 돌렸다.

“가지.”

연수는 잠시 허망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의각대주 추소방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쯧쯧.”

사지가 잘려 몸을 세우지 못하고 그저 땅에 머리를 비비며 몸을 튼 추소방은 혀를 차며 사라진 연수가 있던 허공을 바라봤다.

주렴각에 도착한 천괴의 여후상은 자리에 누워 사경을 헤매는 세 무인을 살폈다.

특히나 단전이 깨지기 일보 직전이던 모도산의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진맥하는 천괴의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온갖 잡념과 걱정으로 가득하던 천괴의였지만 눈앞에 꼭 살려야만 할 환자를 진맥하는 순간 모든 잡념이 사라지며 환자를 살리기 위해 해야 할 모든 처치와 약재만이 조합되며 머릿속에 떠올랐다.

“대약전에 가서 약을 좀 가져와야 하는데···.”

뒷말을 흐리며 천영을 찾는 여후상.

천영은 암영대의 암영이다. 암영을 부릴 수 있는 것은 성내에 성주밖에 없었다.

미리 와서 약탕을 끓이던 경도평이 귀를 쫑긋하며 뛰어 들어왔다.

“약은 갖고 왔소.”

“그걸로는 안되오. 일단 끓이던 약은 그대로 끓이고, 누가 대약전에 가서 전정환과 반로환 정혼옥구환을 받아다 주시오.”

어느새 존대를 하는 천괴의.

“제가 갔다···.”

도화가 말을 하며 일어서는데 그 앞으로 천영이 솟아올랐다.

“금방 가져오겠소.”

말을 마치고는 도화를 잠시 바라보던 천영이 사라졌다.

경도평만이 천괴의의 입에서 나온 영약들의 나열을 듣고는 입을 쩍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진정환과 반로환은 그렇다 쳐도 정혼옥구환이라면 천괴의 비전의 영약으로 일 년에 겨우 세 알밖에는 만들지 못한다던 사황성의 최고 영약이었다.

뒤늦게 도착한 연수는 안으로 들어서며 침을 놓고 있는 천괴의에게 물었다.

“살릴 수 있겠소?”

“...”

침을 놓는 천괴의는 모든 집중력을 발휘하며 모든 시침을 끝내고서 대답을 했다.

“다른 무인들은 모두 살릴 수 있소. 문제는 이 단전에 금이 간 무사인데···.”

“살려야 할거요.”

“알고 있소.”

“내가 도울 일은 없소?”

“아직은. 하지만 계속 옆에서 있어주시오. 만약의 사태가 일어나면 백회 천주 유근 복토 내정으로 강하게 내기를 순환시켜 주시오.”

고개를 끄덕이는 연수.

천괴의는 다시 모도산에게 집중하며 시침해놓았던 침들을 조심히 뽑았다.

그리고는 다른 두 무인에게 시침을 시작하는 천괴의.

서른 여섯 개의 침을 시침한 후 그의 손끝이 반짝하며 한줄기 뇌기가 뻗어 나가자 서른여섯 개의 침들로 뇌기가 옮겨가며 환자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뇌전 침법···.’

연수는 눈을 반짝이며 천괴의가 펼치는 시침을 유심히 살폈다.

하늘이 내렸다는 괴의 여후상.

그는 의술을 조금이라도 아는 자라면 모두가 알만한 유명인이었다.

지금은 사황성에 투신하여 사파의 주구로 취급받고 있지만, 한때는 많은 사람을 살렸던 의원이었다. 다만 그 성정이 편협하고 괴상한 행동들을 많이 하여 괴의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의 비전 침구법인 뇌전 침법은 모든 의원이 한 번이라도 견식 하고 싶어 하는 대단한 침구법이었다.

인상을 구기며 신음하던 환자가 시침해놓은 침을 빼자 한결 편안한 표정으로 변하자 치료를 지켜보던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도평은 약을 달이는 와중에 주렴각으로 뛰어들어오는 대약전 의원들에게 밀려 안으로 들어왔다.

“좀···. 어떻습니까?”

어렵게 묻는 경도평을 보며 연수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도산을 빼고는 희망적인 상황이야. 문제는 저놈이지.”

모도산을 바라보는 연수의 담담한 표정 속 애타는 마음을 읽은 경도평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한 시진이 넘는 시간 동안 집중력을 발휘하며 시침을 끝낸 천괴의는 침구통에 침들을 정리하여 넣어놓고는 밖을 향해 외쳤다.

“주영환과 주화탕을 먼저 올려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각이면 됩니다.

여후상은 더는 대꾸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모도산의 안색을 살폈다.

한참을 살피더니 조심스레 그의 단전에 손을 대는 여후상.

그의 안색은 썩 밝지 못했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하군.”

“지난번에도 진맥은 했을 거 아니오?”

“그때는 다섯 시진을 못 버티고 죽는다고 확신했지.”

경도평은 뻔뻔한 여후상의 말에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의 할 말을 다 하는 여후상.

“대맥과 경락이 뒤집힌 거로 보아서는 도저히 단전이 버티지 못할 치명상을 입은 게 틀림이 없는데···. 어떻게 아직 단전이 깨지고 있지 않은 거지?”

누구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의원 본연의 호기심을 정리하며 중얼거리는 혼잣말에 가까웠다.

여후상의 혼잣말에 대꾸해 주는 연수.

“타고난 혈맥이 튼튼한가 보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여후상.

“아니오. 아니고말고. 아무리 타고나길 그리 타고 났다 해도 겨우 일류의 경지로 이런 상처를 입고도 이리 버틸 수는 없소.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데···. 무엇보다 독특한 것은 이 단전인데. 지금이라도 깨질 것 같은데 끝끝내 흩어지지 않고 내력을 붙들고 있다니···. 이미 환자의 기력이 다하고도 텅텅 비었는데 이리 버틸 수 있다니···.”

가만히 모도산을 바라보는 연수의 얼굴에도 의문이 서렸다.

처음 모도산을 진맥했을 때 자신도 느꼈었다. 모도산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계속 숨을 이어가고 그의 단전 또한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 내력을 붙들고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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