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화
막 연수에게 뭐라 하려던 막여욱은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퍽!
투경의 묘리가 담겨 뱃속으로 예리하게 들어온 내기가 폐부를 찌르며 온 장기를 뒤흔듦과 동시에 대맥을 통해 경락에 퍼져 나가며 내기의 운행을 방해했다.
움찔거리던 망노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연수의 눈과 마주침과 동시에 함부로 출수할 수가 없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
시선은 망노에게 고정해놓은 채로 움직이는 연수의 분주한 주먹.
점점 공중으로 떠오르며 결국 두 발이 땅으로부터 한 치가량 떠오르는 무인.
장내의 무인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입을 떡 벌렸다.
인정 따위는 한 톨도 보이지 않는 과감한 주먹질.
얼마나 잘 때리는지. 가만 보고 있으면 쾌감이 느껴질 만큼의 매질이었다.
한방 한방이 착착 감기는 타격감과 상체를 고루 두드리는 넓은 시야.
-토토도도독. 토톡. 톡.
하나 두 개씩 막여욱에 입에서 튀어나와 바닥을 구르는 하얀 물체들, 그중 하나가 넋을 놓고 보고 있던 진벽가주의 발끝으로 부딪히고는 움직임을 멈췄다.
막여욱이 성내에서 누군가에게 두드려 맞는다는 상황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가주 들은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펑!
가죽북을 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날아가 처박히는 막여욱.
그제야 상황판단이 끝난 가주 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연수를 바라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망노를 노려보는 연수.
“만만해 보이나 봐. 내가.”
마찬가지로 연수를 노려보는 망노의 등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듣기로는 분명 내상과 검상을 입어 정상적이지 못한 상태라고 했다.
망노는 자신에게 그 말을 전해준 성주의 셋째 제자 놈을 때려죽이고 싶었다.
저게 어디가 내상을 입은 놈의 움직임과 기세라는 말인가.
선명히 보이는 암수일살의 거리.
저 두 장 남짓한 거리로 들어가면 초절정의 자신이라 해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이 정도였던가?’
주위에 가주 들은 망노와 연수의 대립을 보고서야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분명 저 늙은 구렁이가 성주의 첫째 제자를 충동질한 것이 뻔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망노를 도와줄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철목가주와 화령가주마저도 표정을 굳히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상대는 성주의 신임을 받는 암수일살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남궁진환의 목을 벤 남자다. 화령가주가 돌아오는 길에 연수를 건드렸다가 성주에게 내쳐질 뻔한 사정을 모두 보아온 가주 들은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옛말에 늙으면 죽어야 한다던데···. 노망이 심한 거 같은데, 어떻게 내가 힘 좀 써줘?”
“기세등등하군! 성주님의 신임을 받는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하지만 여욱이의 저 몰골을 보고도 성주님이 네 편을 들어줄 것 같으냐?”
“누구의 편도 들어줄 생각 없다.”
성화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장내의 모든 시선이 성화전으로 몰렸다.
성화전에 지루한 듯 몸을 파묻고 있는 성주.
언제 다시 나타났는지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마치 계속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편안히 앉아 있는 성주는 한쪽 구석에서 움찔거리며 부르르 떨고 있는 막여욱을 가만히 바라봤다.
“대단하네. 저렇게 떡을 만들어 놓으면서도 의식을 살려놨어. 대충봐도 평생 죽만 먹고 살겠군.”
그 말에 가주 들은 질리는 표정으로 연수를 바라봤다.
“내기를 침투시켜서 백회와 뇌를 보호했죠. 의식은 그 어느 때 보다 또렷하고 맑을 겁니다.”
단순히 성주의 제자에게 손을 대는 정도가 아니라 극한의 고통을 안겨주기 위해 그런 귀찮은 짓까지 서슴지 않은 연수를 보는 가주 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망노는 철목가주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한숨을 내쉰 철목가주가 입을 열었다.
“성주님의 제자를 저리 만들어 놓았으니 성주님의 체면이...”
“목숨은 살려놨잖아. 많이 봐줬네.”
“하지만...”
“하지만 뭐?”
성주의 무심한 눈빛을 보는 순간 철목가주는 알 수 있었다.
성주의 마음에 이미 제자에 대한 애정은 남아있지 않았다.
다른 제자도 아닌 공식적인 후계자이자 첫 번째 제자였다.
그런데도 성주의 반응은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식이었다.
입을 닫고 물러서는 철목가주.
“그렇다는데?”
말을 하며 빙글 도는 연수의 손목. 그의 손에 나타나는 단도.
두 자루의 단도를 손에 쥐자 연수의 기세는 또 일변했다. 그와 동시에 뒤로 훌쩍 물러서는 망노.
‘감 좋은 늙은이.’
연수는 빙글 웃는 미소 뒤에 자신의 암습을 읽어낸 망노에 대한 감탄을 숨겼다.
“성주님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굳이 제가 나설 필요는 없겠죠. 혹여나 성주님의 체면이 상할까 봐 직접 나섰습니다.”
연수는 혀를 몇 번 차며 망노를 노려보고는 몸을 돌려 대전을 나갔다.
-내일 보자.
대전을 나서는 연수의 머리로 성주의 전성이 울렸다.
주렴각으로 향하는 연수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적영대에 쓸데없는 무인들의 보충으로 인해 심기가 불편했는데 모자란 반푼이놈을 두드려 팼더니 체증이 내려가는 듯 가슴이 뻥 뚫리며 상쾌함이 몰려왔다.
주렴각의 정문 앞에서 멈칫한 연수는 주렴각 옆의 감나무를 올려다봤다.
“천영 맞지?”
“예.”
“거기서 뭐 해?”
“경계 하고 있죠.”
“경계라는 건 안이 아니라 밖으로 하는 게 아니던가?”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혹여 내부의 적은 없는지···.”
“헛소리 말고. 그간 별일 없었지?”
“망노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걱정하시는 일은 없었습니다만···. 성주님의 제자분들이 몇 번 찾아왔었습니다. 성주님의 부재 시였기에 허락받지 않은 분들로 단정하고 안으로 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잘했어.”
말을 마치고는 문을 열어 주렴각안으로 들어서자 앞마당에서 검을 휘두르던 정회가 수련을 멈추고 연수를 바라
봤다.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네. 고작 한 달 조금 지났는데.”
“소식은 들었어.”
말을 마치고는 걱정스럽게 안을 바라보는 정회.
자연스럽게 연수의 시선이 그런 정회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러고 보니 공숙과 소개가 분명 먼저 와 있었을 텐데 아무도 나와보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천영은 분명 도화의 신상에 별 탈이 없다는 의미로 이야기를 했다.
주렴각의 안채로 걸음을 옮기는 연수.
큰 방에는 소개와 공숙 그리고 도화가 앉아서 누워있는 세 사람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들어서는 연수의 기척을 느낀 도화가 먼저 연수를 발견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오라버니!”
“잘 있었지? 근데 무슨 일이야? 저 사람들은 뭐···.”
말을 끝까지 맺기도 전에 벼락을 맞은 것처럼 누워있는 자들에게로 신형을 늘어트리며 이동하는 연수.
그들의 얼굴을 확인한 연수는 도화를 바라봤다.
“의원은?”
“열흘 전에 와서 진맥하고는···.”
“하고는?”
“약재만 전해주고는 얼굴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 말에 연수의 전신에서 살기가 새어 나왔다.
“여, 연수야.”
소개의 걱정스러운 음성을 뒤로하고 사라지는 연수의 신형.
“천영.”
심상치 않은 기세에 연수의 앞으로 솟아나는 천영의 신형.
“예.”
“왜 의원이 오질 않았지?”
“망노와 성주님 제자분들의 압력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가서 데려와.”
“누굴···?”
“의원. 저들 중 누구 하나라도 죽으면 성내의 무인들 분노를 감당해야 할 거라고 전해. 저들은 남궁세가를 지우는 데 최대의 공헌을 한 자들이다. 그런 무인들을 한대한 것이 알려지면 아무리 사황성의 천괴의라도 목숨 부지하기 힘들 거야.”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지는 천영.
세 무인이 누워있는 곳으로 나타난 연수의 신형.
연수는 자리에 앉아 세 무인의 진맥을 해 보았다.
누구 하나 생명을 장담하기 힘든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특히나 모도산의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단전에 금이 가 있어 무인으로서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었고 대맥과 모든 경락이 상하고 꼬여있었다.
“젠장! 도평은 어디 갔어?”
진맥을 끝낸 연수의 물음에 도화가 대답했다.
“대약전에 약을 구한다고 갔어요.”
“대약전?”
“성의 모든 영약과 약초를 관리하는 곳이래요. 간 지 한참 되었는데 아직···.”
“갔다 올게.”
다시 사라지는 연수의 신형.
주렴각 옆으로 자라있는 커다란 나무 앞으로 솟아난 연수.
“너 이름이 뭐지?”
연수의 앞으로 떨어져 내리는 인영.
“월영이라 합니다.”
“대약전에 가야 하는데 내가 길을 몰라. 안내 좀 부탁하자.”
잠시 망설이던 월영은 자신들의 대주가 연수의 심부름으로 천괴의를 부르러 간 것을 떠올리며 앞장섰다.
“따르시지요.”
“서두르자.”
연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라지는 두 사람.
“한때 성주님의 직속 암검대의 무사였다 하지 않소?! 지금은 적영대에 적을 두고 있고. 이름은 경도평! 몇 번을 말해야 합니까?”
대약전의 한쪽 약방 앞에서 열을 올리며 목소리를 높이는 경도평.
그의 앞에는 중년인 한 명이 앉아서 경도평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약재 장부를 확인하며 귀를 후비고 있었다.
“다른 약재도 아니고 영약에 준하는 그 귀한 약재와 주영환 같은 고급 내상약은 함부로 내어줄 수가 없다니까. 자네의 신분을 확인할 무엇도 없는 상황 아닌가? 적영대장이 암수일살이라는 말은 들었지만, 그 밑에 적영대원들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어. 후상 어르신의 허락도 없이는 불가능해.”
답답한 듯 가슴을 치는 경도평.
“그러니까 천괴의 어르신이 어디 계시느냐고 몇 번을 묻소?”
“그러니까 나도 모른다고 몇 번을 대답했잖소?!”
눈이 뒤집히기 일보 직전인 경도평에게서 상당한 기세가 흘러나오자 중년인은 움찔하더니 품에서 꺼낸 호각을 불어댔다.
-피-익! 피-익!
짧고 높은 호각소리가 들리자 구름처럼 몰려오는 대약전을 지키는 의각대의 무인들,
의각대주까지 대동하고 나온 무인들을 보며 경도평은 한바탕 욕을 해주고 싶었다. 호각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몰려나온 것을 보니 이미 단단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누가 감히 대약전에서 행패를 부리느냐?”
의각대주 추소방은 천괴의 여후상의 사제이자 절정고수로 사황성에서도 제법 유명한 무인이었다.
“행패를 부린 적 없소. 그저 약을 타려고···.”
“이 자가 내게 위해를 가했소이다!”
“이래도 행패가 아니더냐? 저자를 잡아라!”
스무 명의 의각대 무인들은 경도평을 쭉 둘러싸고는 쇠봉을 겨눴다.
태도마저 대약전의 입구에서 맡겨 놓고 들어왔던 경도평은 작정을 한 듯한 무인들을 노려보며 입을 꾹 다물었다.
이미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저들의 생각이 바뀔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등에 메고 다니는 태도 손잡이가 잡히던 어깨 위로 손을 가져가려던 경도평은 한숨을 쉬며 자세를 낮추었다.
막 의각대주를 포함한 무인들이 경도평에게 달려들려는 찰라. 장내에 솟아는 두 인영.
“누구냐!”
경도평을 제압하려던 의각대주 추소방의 짜증스러운 고성이 터져 나오자 그를 잠시 바라보더니 고개를 돌려 경도평에게 묻는 의문의 고수.
“무슨 일이야?”
“그, 그게···. 약을 좀 구하러 왔는데 내주지 않아 고성을 높이다 보니 이리됐습니다.”
경도평의 말에 주변을 훑어보는 고수.
“고성을 좀 높였다고 때려죽일 듯이 기세를 올린다고? 에이 그럴 리가. 네가 뭔 잘못을 했겠지. 저놈들 부모를 죽였든지 사문을 욕보였든지 했겠지. 그렇지도 않은데 이렇게 살기를 피울 리가 있나. 같은 사황성의 무인들끼리.”
“...”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경도평.
의각대주는 새파랗게 젊은 놈이 중년의 고수에게 하대하고 존대를 편안히 받자 상대의 정체를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었다.
“혹시···. 적영대장 이십니까?”
“그래.”
긍정의 대답이 나오는 순간 흔들리는 무인들의 기세.
“아무래도 양측에 오해가 있었나 봅니다.”
“아니야. 오해가 있었다면 이리 쉽게 풀릴 리가 없어. 내가 느낀 살기는 진짜였어. 도평.”
“예.”
“필요한 약 타서 가져가.”
“예.”
대답과 함께 약방을 관리하는 중년인을 바라보는 도평.
그의 시선에 중년인은 추소방을 바라봤다.
“주요 약재는 대약전의 약전주이시자 사황성의 대의원인 천괴의 어르신의 허가 없이는 내어줄 수 업소.”
약방의 관리자를 대신하여 대답하는 추소방.
“사황성은 참 소식이 느리구나. 뭐 좋아. 월영. 지금 당장 성주님에게 가서 보고 해라. 내가 대약전을 뒤집어 놨다고. 내가 사황성을 나가는 꼴 보고 싶지 않으시다면 주렴각으로 좀 찾아와 달라고 전해.”
상당히 도발적인 연수의 말에 월영은 고개를 숙이고는 사라졌다.
그가 사라지기 무섭게 연수의 신형도 사라졌다.
의각대주 추소방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분명 망노와 성주의 제자가 단언하듯 확실히 말했었다. 적영대장이 돌아오면 어디 하나가 병신이 되던지 무공이 폐해져서 멀쩡히 돌아다니기 힘들게 될 것이라고.
그런데 사지는 멀쩡하고 무공이 폐해졌다고 보기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게 사라지는 저 무위는 뭐란 말인가?
-빠각! 뚜둑!
살벌한 소리와 함께 어디 하나가 부러지며 쓰러지기 시작하는 의각대의 무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