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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09화 (109/202)

# 109화

도화가 물러가자 툇마루 밑으로 내려오는 연수.

연수의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중년인의 기세가 일렁이며 투기가 폭사 되어 나왔다.

긴 태도임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쾌속한 베기.

연수의 몸을 양단하며 베고 지나가는 중년인의 태도에는 하얀 기사가 둘려 있었다.

“아!”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이 튀어나온 도화였다.

분명 반으로 갈라지듯 태도에 베이는 연수였다. 하지만 중년인의 구겨지는 미간과 함께 사라지는 연수의 잔상.

밝은 해가 주렴각의 마당을 훤히 비추고 있건만 그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 기척에 중년인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으드득!

어금니를 꽉 깨물며 자세를 낮추고 태도를 꽉 쥐는 중년인.

어디서 나타나건 상대의 경지가 어떻든 자신의 반경에 들어오면 확실히 베어 버릴 자신이 있었다.

“대단하네.”

-쉭!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반응하며 움직이는 쾌도.

하지만 이번에도 여전히 연수의 잔상만 베어버린 중년인이었다.

“그 긴 태도로 이런 속도라니. 태도의 길이를 줄이는 게 좋지 않을까?”

-쉬이이 깡!

기사에 둘러싸인 중년인의 쾌도가 상대의 목, 한 자 앞에서 강기에 쌓인 주먹에 막혀버렸다.

불꽃이 튀며 사방으로 경기가 날아갔고, 연수의 주먹에 맺힌 강기가 불안한 듯 흔들렸다.

뒤로 훌쩍 물러서는 중년인의 태도에 감겨있던 기사 역시 크게 기운이 손상되었다.

“흥, 언제까지 그 여유를 유지하나 보겠소.”

코웃음을 친 중년인의 신형이 흐려졌다.

무영심공과 같은 궤를 따르며 흐려지는 중년인의 존재감.

연수의 얼굴에 미소가 짙어졌다.

마주 사라지는 연수의 신형.

-파밧! 쉭! 까깡!

구경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의아함이 가득 차올랐다.

공숙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파공음만 울리는 장내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순간 도화를 향해 날아오는 경기를 붉게 물든 장으로 밀어내는 공숙.

“제법 쌔네.”

“공랑 뭐가 어찌 되는 거예요?”

“연수가 즐거운가 봐요. 둘이 잘 어우러지고 있어요.”

소개가 쇠붙이와 주먹이 부딪힌다고는 상상하기 힘든 파공음이 울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희끗희끗하며 사라지는 사람의 형체만이 순간적으로 보일 뿐 또다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장내.

그저 흉흉한 기세만이 감돌고 있을 뿐이었다.

일각이 넘는 시간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손속을 섞던 두 사람.

“인제 그만하지. 실력은 알았으니···.”

-퍼벅! 퍽!

“컥!”

상대의 쾌도를 부드럽게 밀어낸 연수의 주먹이 중년인의 어깨와 명치에 닿자 중년인은 짧은 침음을 흘렸다.

휘청이며 뒤로 물러서는 중년인을 보는 연수의 눈썹이 씰룩였다.

쓰러지라고 손을 썼는데 휘청휘청 뒤로 물러서며 태도를 손에서 놓지 않는 중년인의 눈에는 아직 활활 타오르는 투기가 가득했다.

순간적으로 중년인의 앞에 나타난 연수의 손이 많은 잔상을 남기며 중년인의 온몸 구석구석으로 날아들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중년인의 발이 땅 위로 반 치 정도 떠오르며 쉴 새 없이 날아오는 주먹에 속수무책으로 맞았다.

-펑! 퍼석!

마지막으로 연수의 손등이 부드럽게 중년인의 가슴에 닿자 뒤로 날아가며 벽에 처박히는 중년인.

담벼락에 금이 가며 그대로 쓰러지는 중년인이었다.

바로 옆에 서 있던 세 명의 무인이 입을 쩍 벌리고 중년인을 살피려다 말고 멈춰서는 눈치를 살폈다.

연수가 무서운 표정으로 중년인을 노려보고 있어 그의 안위를 함부로 살필 수가 없어 안절부절못하는 무인들.

연수의 시선은 아직 놓지 않고 있는 중년인의 태도를 쥔 손에 가 있었다.

한참을 노려보던 연수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근성 하나는 끝내주네. 잘 데려다 치료해줘.”

“예? 옛!”

세 무인은 조심히 중년인을 살피고는 그를 안아 들고 주렴각을 빠져나갔다.

소개는 입을 쩍 벌리고는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파리 들어가.”

그제야 입을 다물며 새삼스러운 눈으로 연수를 바라보는 소개.

“어떻게 때리면 사람이 뒤로 밀려나지도 앞으로 끌려오지도 않고 허공에 가만히 떠올라 온 충격을 고스란히 몸으로 받게 되는 거냐?”

“경구탄권. 그 무리를 제대로 이해하면 이리된다.”

“경구탄권?”

눈을 반짝이며 묻는 소개와 마찬가지로 눈을 반짝이며 귀를 활짝 열고 다가오는 정회.

피식 웃은 연수는 정회를 돌아보았다.

“너는 들어도 도움이 되지 않을 거야. 가르쳐 준 거나 확실히 익혀.”

연수의 말에 정회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쳇!”

고개를 홱 돌린 정회가 뒷마당이 있는 뒤채로 경공을 발휘해 달려가 버렸다.

도화가 안타까운 눈으로 그런 정회의 등을 한참 바라보더니 연수를 나무랐다.

“같이 알려주시지 그러세요.”

“알려줘 봤자 소화하지 못하고 체할 뿐이야. 괜히 되지도 않는 욕심 부리느니 하나라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게 더 중요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안타까운 눈으로 뒤채를 힐끔거리는 도화였다.

“빨리 이야기 좀 해봐라.”

“그러니까 쾌와 중은 다르나 그 결과는 같다는 심득은 저번에 들려준 적이 있었지?”

고개를 끄덕이는 소개.

“그런데 빠른 권격은 강력한 파괴력을 낸단 말이지. 빨라 지려면 가벼워야 하는 거고. 가벼울수록 더 빨라질 수 있으니 쾌는 경과 맞고 중과는 반목한다. 하여 경구탄권은 가볍고 빠른 타격으로 중권의 힘을 내는 무리야.”

“응? 그게 다야?”

“응.”

“아니, 그게···.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게 어떻게 그런 신기가 되는 거냐? 무슨 구결이 있다거나 권법이 따로···.”

“딱히. 그냥 손이 가는 대로 뻗었던 것뿐이야. 중요한 건 구결이나 특별한 무공이라기보다는 이 무리를 온전히 이해하고 펼치는 건데.”

“...”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이는 소개였다.

그런 소개를 지나쳐 방으로 들어서는 연수.

“그럼 나는 남은 명상이 있어서. 점심때 불러줘.”

안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는 연수.

소개는 여전히 모호한 표정으로 눈을 굴렸다.

“소랑. 이해가 안 되나요?”

“아니, 이해는 되는데···. 그게 저 무위랑 도대체 무슨 상관이···. 이걸 이해하는 것과 저런 권을 쓰는 것과의 괴리감이···.”

“소랑. 무에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있던가요?”

깊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하는 공숙을 보고는 소개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공 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럼 소랑, 뒤뜰로 가서 수련하세요.”

“조금만 더 있다가···. 하면 안 되죠? 네. 저도 그리 생각했어요.”

가만히 바라보는 공숙의 진지한 눈을 보며 자문자답하고 일어서는 소개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도화가 조용히 웃음 지었다.

“두 분 사이가 정말 좋으시네요.”

“그럼. 좋아야지.”

씩 웃으며 대답하는 공숙.

그렇게 두 시진이 지나자 밝은 해가 중천에 걸렸다.

그제야 눈을 뜨며 몸을 일으키는 연수.

몸을 일으키기 무섭게 손가락으로 물구나무를 서서는 천천히 온몸을 굽혔다 피며 호흡을 늘어트리는 연수였다.

“스-읍. 후-우.”

호흡을 천천히 늘어트리며 점점 천천히 늘려가 나중에는 몸을 열 번 굽혀 피는 동안 들숨을 마시고, 내쉬는 동안 또다시 몸을 열 번 굽혀 피는 동작을 마무리했다.

한 호흡에 스무 번 몸 굽혀펴기를 끝내며 손가락을 번갈아 바꿔 수련을 이어 가는 연수.

반 시진 동안 육체 수련을 끝낸 연수가 몸을 세웠다.

“후우. 오랜만에 했더니 개운하네.”

하지만 말과는 다르게 땀 한 방울 나지 않는 연수의 몸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맛있는 냄새와 함께 일행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공숙이 해 맑게 웃으며 연수를 맞았다.

“여기 숙수가 누군지 음식이 매번 달라진다.”

“성주님과 허락을 구한 자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이니까 제법 신경 써 주는 모양이네요.”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며 막 식사를 하려는데 무시무시한 기운이 연수의 기감에 걸렸다.

-탁

소리 나게 젓가락을 탁자 위로 내려놓은 연수가 한숨을 쉬었다.

“하아, 또 뭔 일이래?”

“뭔 일은! 그걸 몰라서 묻냐?”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연수를 노려보며 안으로 들어서는 사내.

“성주님. 푹 쉬라고 이런 곳을 내주신 건 고맙습니다만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시면 제가 불편하지 않을까요?”

“불편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대체 어디가 어떻게 불편하면 중요한 인재를 피떡으로 만들어 눕혀놓는데?”

“피떡이라뇨? 그저 서열정리도 할 겸 불만이 많은 것 같길래 실력도 보여줄 겸 겸사겸사 손을 좀 쓴 거죠.”

“뼈만 멀쩡했지 열흘은 누워있어야겠더만, 그게 조금 손을 쓴 거냐? 나도 화가 난 김에 손을 조금 써 볼까? 응? 너에게 나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되새겨 줄 겸 조금 손을 써볼게.”

“성주님! 체통을 지키셔야죠. 제가 알아서 되새기겠습니다.”

“하나하나가 내 수족 같은 놈들이야. 게 중 제일 쓸만한 놈을 보냈으면 귀하게 두고 쓸 일이지 저리 만들어 놓으면 어쩌라고?”

연수는 난감한 표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불만도 많고 서열정리가 불가피했어요. 제법 근성이 보이기에 손을 좀 과하게 쓴 면도 있긴 하지만.”

“그럼 절정고수가 나이가 많지. 다 너처럼 이십 대에 절정에 오르고 초절정에 오르고 하는지 알아?!”

“그건 그렇지만 좀 고분고분하고 상황 파악 빠른 사람을 붙여 주시면 좋잖아요.”

“내 밑에 그런 놈이 있겠냐! 성주 직속에 있다가 처음 보는 어린놈 밑에 들어가는데 그럼 룰루랄라 하면서 뛰어가겠냐!”

듣고 보니 할 말이 떨어지는 연수였다.

“그런가요? 그럼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었네요.”

“아휴, 이 미련한 새끼! 아휴 답답한 놈!”

“언제는 인재라면서요. 꼭 데려다 쓰고 싶다면서요.”

입을 잔뜩 내민 연수가 중얼거리자 성주의 이마에 두꺼운 핏대가 잡혔다.

“됐고! 앞으로 괜히 애들 못살게 굴지 말고 잘해줘. 귀한 애들이야.”

“예. 좋게좋게 대할게요···. 그런데 성주님. 암영대라는 무인들 말인데요.”

“걔들이 왜?”

“성주님 직속 호법 조직이라면서요.”

“그런데 왜?”

“성주님 직속인 놈들이 왜 자꾸 주렴각 근처에서 얼씬거리는 걸까요?”

“망노가 침입한 이후로 내 체면을 지킨다며 교번 근무 선다고 하던데?”

“그런데 정말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무래도 그 저의가 의심스러워서 말이죠. 게다가 제가 있는데 성주님이나 지킬 것이지 왜 여기서 이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이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성주.

성주가 손을 슬쩍 들자 성주의 앞으로 부복하며 나타나는 회색 무복을 입은 무인.

“천영. 듣고 보니 꼭 주렴각에 인원을 따로 배치할 필요가 있나 싶은데.”

“망노가 한번 성주님의 체면을 구긴 곳입니다. 앞으로는 암영대가 성주님의 명예를 함께 호위하겠습니다.”

빙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성주.

“내가 보기에는 주렴각을 지키는 게 아니라 우리 도화를 자꾸 훔쳐보는 것 같단 말이지.”

“...”

“자꾸만 담벼락 너머로 시선이 느껴지고 말이지.”

“...”

“주변의 나무 위에서 기척이 느껴지는 것이 신경이 보통 쓰이는 게 아니란 말이야.”

“...”

그제야 성주의 눈썹이 씰룩였다.

“천영. 너네 주렴각 지키는 거 맞지?”

“주렴각은 물론 성주님의 손님으로 묵고 계신 일행을 호위하는 건 당연한 임무입니다.”

“그렇기는 한데···.”

슬쩍 천영을 내려다보자 천영의 시선이 뜨겁게 도화에게 닿아 있었다.

“으드득! 이 새끼들이 요즘 왜 이래?”

성주의 시선을 눈치챈 천영이 두 눈을 감았다.

“도화 소저 만···.”

-펑!

말을 채 끝마치지 못하고 뒤로 날아가는 천영.

“꺼져 이 새끼야!”

벌떡 일어선 천영의 신형이 사라지며 그의 마지막 말이 주렴각안을 맴돌았다.

-도화 소저 힘내십시오! 저희가 패련화를 지킬 것입니다.

한숨을 몰아쉬는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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