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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05화 (105/202)

# 105화

생사현관이 타통되자 전신의 막혀있던 세맥들을 향해 달려나가는 내력. 거침없이 세맥을 뚫어가기 시작했다.

세맥에 끼어있던 노폐물부터 화기들이 몸 밖으로 밀려났고 그렇게 한 시진이 지나고 눈을 뜨자 소개가 두 손으로 코를 막으며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

“응? 너 왜 그러고···.”

말을 채 다 마치기도 전에 코를 찔러오는 냄새에 몸을 내려다봤다.

끈적한 핏덩이에서 올라오는 비린내는 양반이었다.

마치 치과에서 썩은 이를 뽑아냈을 때 나는 사람의 입에서 난다고는 믿을 수 없는 그 냄새가 온몸에서 진동하고 있었다.

머쓱해져는 괜히 소개를 탓하는 연수였다.

“이 정도로 심하면 창문이라도 열어야지.”

“혹여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할 말이 없어 창문을 열고 옷을 벗은 연수가 내력을 끌어올리자 그의 몸에서 김이 나며 옅은 아지랑이와 함께 더러운 노폐물과 진득한 땀이 타버렸다.

눈을 동그랗게 부릅뜬 소개가 물어왔다.

“어떻게 한 거야?”

“그냥.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대단하네.”

봇짐에서 새로운 무복을 꺼내 입은 연수는 피식 웃으며 소개의 어깨를 두드렸다.

*      *      *

사황성에서 성주를 빼고는 그 누구도 들지 못한다는 금지 주렴각.

그 안에 두 여인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을 거예요. 분명 약속을 어길 자는 아닙니다.”

“알아. 그래도 걱정이 돼서.”

목검을 들고 지나치는 청년들의 한마디에 눈빛이 변한 그의 행동은 두 여인이 그동안 보지 못한 낯선 모습이었다.

“급한 일이 있으니 일단 사황성으로 찾아가. 사황성의 성주에게 내가 보냈다고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망노의 손아귀에서 지켜 줄 거야. 반드시 찾아갈 테니 가 있어.”

그 말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지던 그의 등이 선명히 떠오르는 도화의 눈이 붉어졌다.

그때 정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인영.

두 여인이 벌떡 일어나며 허리를 숙였다.

“아아 됐다니까. 매번 그럴 필요 없어.”

“항상 감사드립니다. 성주님.”

이십 대 청년이 손을 내저으며 도화의 과례를 말렸다.

사황성주 패천후는 얼굴 한편에 근심이 가득한 도화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좋은 소식이 들어와서 말이야. 내 친히 알려 주고 싶었지.”

좋은 소식이라는 말에 두 여인의 눈에 기대심이 어렸다.

“그놈이 무당 제일 검 소현풍을 격살했다고 난리가 났어.”

“그, 그럼?”

“그래. 아마도 머지않아 이리로 오겠지.”

“감사합니다! 성주님!”

꾸벅 허리를 숙이는 도화의 모습에 성주는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였다.

“내게 감사할 일이 뭐 있다고···. 아 그리고 절대 주렴각 밖으로 나오지 마. 지금이 비상상황이다 보니 열두 가문의 가주 모두가 성내로 들어와 있는지라. 말은 해 놨지만, 그 노친네 말을 그다지 잘 듣지 않는 편이니. 괜히 마주쳐서 좋을 일 없어.”

망노의 이야기가 나오자 금세 얼굴이 어두워지는 도화였다.

그녀의 어두운 표정을 보는 것만으로 마음 한편이 아려오기 시작하는 성주. 보는 것만으로 절로 마음이 쓰였다.

과연 대단한 미색이라는 생각과 함께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성주였다.

“걱정하지 말아라. 아무리 그 노친네라도 감히 내 앞에서 경거망동할 수는 없을 테니까.”

“예. 성주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말을 마친 성주는 잠시 도화를 바라보고는 몸을 돌려 사라졌다.

*       *       *

말을 타고 달리는 일행은 무리하지 않으면서 여유롭게 이동을 하는 중이었다.

강서를 벗어나며 여유를 찾은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옆에 든든히 버티고 있는 초절정고수의 존재가 컸다.

현 강호에서 알려진 초절정고수는 겨우 아홉 명. 물론 은거하거나 알려지지 않은 고수들도 있겠지만 일단 알려진 고수는 그러했다.

그런 초절정의 고수가 옆에 있다는 것은 든든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오늘은 여기서 쉬다 가면 되겠네요.”

“응. 그럼 나는 불피울게.”

노숙을 오래 해 와서 그런지 공숙이 익숙하게 모닥불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공숙을 잠시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기감을 넓히는 연수.

기감에 잡히는 반경 백 장 안에 작은 생명의 기운까지 모두 느껴지기 시작했다.

순간 연수의 신형이 사라졌다.

잠시 후 모닥불이 완성되기 무섭게 두 마리의 꿩을 들고 오는 연수.

소개는 연수가 잡아 온 사냥감을 익숙하게 손질하기 시작했다.

과연 거지 생활을 오래 해 와서 그런지 제법 손놀림이 능숙했다.

손질이 끝난 꿩을, 깎은 나무꼬챙이에 꿰서는 모닥불에 굽는 소개의 표정이 제법 진지했다.

“언제봐도 참 진지하게 한다.”

그 말에 소개는 꿩에서 눈을 돌리지 않으며 말을 받았다.

“조금만 더 익히거나 태우면 육즙은 육즙대로 날아가고 고기는 질겨진다. 이것도 다 무의개 시절 구박받아가며 익힌 기술이라고.”

진지한 소개의 말에 공숙이 편을 들고 나섰다.

“그럼! 우리 소랑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야. 웬만한 객잔 음식보다 훨씬 더 맛있다고.”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야, 너 하는 사이에서 공자가 되었다가 이제는 랑 이라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는 공숙을 보며 연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적응하기 힘드네요. 누가 보면 몇 년은 알아온 정혼자인지 알겠습니다.”

“서로를 안 시간보다 중요한 게 서로에 대한 감정 아니겠냐?”

진지한 표정으로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소개가 낯설기만 한 연수였다.

“누이 분명히 말해두는데 남자 얼굴 잘생긴 거 다 필요 없는 거예요. 언젠가 얼굴값 할 겁니다.”

전과 다르게 깨끗이 씻고 더벅머리를 정리하여 묶고 누더기 같은 옷을 벗은 소개.

푸른 무복과 장포를 입고 있는 그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그동안 거지꼴로 다녀도 특출난 외모가 눈에 띄었는데 이리 해 놓으니 마치 귀하게 큰 명문의 자녀 같은 귀티가 줄줄 흘렀다.

“그게 뭐 어때서. 인기가 많은 건 좋은 거지. 괜히 질투 나니까 그러는 거지?”

황당한 표정으로 공숙을 바라보는 연수였다.

소개는 잘 구워진 꿩을 불길 위로 들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저는 공매 말고 다른 여자는 마음에 둘 생각이 전혀 없어요.”

거기까지 들은 연수는 한숨을 몰아쉬며 나무 위로 올라가 가부좌를 틀며 앉았다.

“밥은 먹고 해!”

공숙의 외침에 연수는 퉁명스레 대답했다.

“됐어요.”

품에서 벽곡단 한 알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자신을 관조하기 시작하는 연수였다.

최근 가장 신경 쓰는 수련이었다.

그간 자신의 상태가 어째서 그러했는지 자신의 정이 앞서는 것이 어째서 그런 결과를 가져왔는지가 손에 잡히듯 훤히 보였다.

제일 중요한 지금의 상태 역시.

전신의 세맥이 모두 뚫리며 몸 안에 모든 경락과 혈이 뚫려 이어지며 어떤 경락으로도 내력을 움직일 수 있게 되고, 가장 처지던 기가 무섭게 쌓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신이 정과 균형을 맞추며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편하게 무공을 펼칠 수 있었다.

백회에 흘러 들어갔던 살심 역시 그대로 자리를 잡으며 더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그렇다고 흩어지지도 않고 있었다.

그로 인해 한번 살심이 들끓기 시작하면 손속이 과해지는 때도 있었지만, 이 정도는 별 신경 쓰지 않는 연수였다.

딱히 마을에는 들르지 않고 귀주를 향해 이동하는 일행이 처음으로 의지와 상관없이 발길을 멈추게 되었다.

중원의 오악 중 남악이라 불리는 형산.

한때는 형산파의 본거지였지만 전대의 정사대전으로 형산파가 쫓기듯 산동의 태산으로 본거지를 옮기며 무인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형산의 초입을 지나는데 일행을 잡아 세우는 무인들.

“뭐냐? 나 바빠. 비켜.”

지루한 표정으로 말하는 연수.

일행에게는 그 어떤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낮부터 야행복을 뒤집어쓴 삼십 명의 무인들은 그런 연수의 반응에 오히려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네가 암수일살이 맞나?”

“맞아. 알았으면 비켜.”

“소문보다 건방진 놈이구나! 작은 허명을 얻었다고 기고만장하기···.”

순간 말 위에서 사라진 연수의 신형이 무인들의 한 가운데에서 나타났다.

“내가 한번 눈이 뒤집히면 보이는 게 없어요. 요즘 같이 정세가 사나울 때 같은 사파인들 피는 보고 싶지가 않아서 그래. 좋게 말로 할 때 길 열어.”

-채채챙!

말이 끝남과 동시에 뽑혀 나오는 검.

너무 놀란 무인들의 대장은 본능적으로 뽑혀 나오는 검을 반대 손으로 막았다.

자신들의 전력은 절대 약하지 않았다. 절정 고수가 무려 다섯이나 있었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연수의 신형을 놓치고 말았다.

네 고수를 향해 눈짓을 주고받은 결과 그 누구도 암수일살의 신형을 잡아낸 자들이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명령이고 나발이고 함부로 검을 들이댔다가는 몰살당하고 만다.

명을 수행하지 못한 것은 질책을 좀 받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몰살을 당하게 되면 그 싫던 질책을 받을 일도 없어진다.

“모두 물러나라!”

대장의 말에 검을 뽑아 든 고수들이 넓게 퍼졌다.

잠시 갈등의 눈빛으로 고민하던 대장이 결단을 내리고 후퇴명령을 내리려는데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절정고수 한 명이 겁에 질려 소리를 쳤다.

“귀령진을 펼쳐!”

그와 동시에 연수를 가운데에 두고 빙글빙글 도는 무인들.

그들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잔상을 남기는 것이 제법 눈을 현혹하는 진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인들의 신형이 흐려지며 잔상이 늘어갔다.

그 순간 연수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귀형가 놈들이었구나!”

어느새 연수의 손에 들린 단검에서 붉은 검강이 한자나 튀어나오자 대장은 너무 놀라 눈이 튀어 나올뻔했다.

‘느낌이 안 좋더니 역시!’

이래서 조용히 누가 다치기 전에 물러나고 싶었다.

잠시 후 가만히 주변을 노려보던 암수일살의 몸에서 차마 뭐라 표현하기 힘든 끈끈하며 두려운 살기가 폭사 되어 나왔다.

“헉!”

“어어..”

“도, 도망가···.”

몇몇 경지가 낮은 무사들은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는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살기였다.

대장이 이제는 결심한 듯 소리쳤다.

“모두 물러나!”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연수의 앞으로 무릎을 꿇는 대장.

“내가 대장이오. 내가 주도한 일이니 부하들만큼은 살려주시오.”

사람의 심령을 조여오는 듯한 살기가 순식간에 씻은 듯 사라졌다.

“네가 꾸민 일이 확실해?”

“확실하오.”

“나 거짓말 싫어해.”

“...”

“내가 바보로 보여?”

“그게 아니고···.”

“망노 그 망할 늙은이가 끝내 성주의 체면을 무시했다 이거지!”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제 과잉 충성입니다. 제가 공을 세우고 싶어 혼자서···.”

눈매가 좁아지며 그에게 집중되어 쏟아지는 살기.

차라리 목에 칼을 들이밀었다면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름대로 절정고수로서 무인으로서의 긍지가 있는 자신이었다.

그런데 두려웠다.

이런 살기는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신강에 있다는 일월신교의 마인들의 마기와 같이 사람의 원초적인 공포감을 자극하는 살기에 대장의 어깨가 잘게 떨려왔다.

“망노는 어디 있지?”

“그분은···. 사황성에···.”

“그렇다는 말이지. 됐다. 꺼져!”

순식간에 사라지는 기운.

이만한 기운이 단번에 사라진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란 대장이었다.

일어나 뒤로 걸어가는 그의 다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야행복을 입은 일단의 무리가 물러가자 소개의 앞에서 기막을 쳐서 연수의 살기를 막아내던 공숙이 한숨과 함께 기막을 거뒀다.

“무슨 이야기를 한 거야? 왜 다 살려 보냈어?”

기막을 치느라 이야기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던 둘이었다.

“귀형가 놈들이더라고요.”

“귀형가면···.”

“망노가 보냈겠죠.”

“근데 살려 보냈다고?”

한숨을 푹 쉰 연수는 고개를 저었다.

“성주의 얼굴을 봐서요. 성주에게 중요한 사람들을 맡겨 놓았어요.”

“전에 말한 그 도화라는 여자?”

“예.”

소개는 떨리는 손을 들어보며 쿵쾅대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그나저나 살 떨리는 살기다. 너 진짜 괜찮은 거냐?”

“괜찮아. 아마도 백회에 자리 잡은 살기의 영향일 거야. 정신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서 상관없다.”

“후우, 살벌하네.”

걱정 가득한 표정의 공숙이 물어왔다.

“사황성에 가면 망노와 부딪힐 텐데.”

“예. 그렇겠죠. 가서 확실히 선을 그어야죠. 망령난 노친네 같으니라고.”

침을 퉤 뱉은 연수는 말에 올라타서 거칠게 말을 출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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