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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102화 (102/202)

# 102화

목검을 들고 느긋이 걸어가던 두 청년은 갑작스레 막혀오는 숨에 어리둥절하여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어디지?”

금세 얼굴이 붉어지며 막힌 숨통과 떨려오는 온몸에 정신이 없던 두 청년의 동공이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그들의 시선이 연수를 발견하자 숨통을 조여오던 무서운 기세가 사라졌다.

“헉! 하아, 하아···. 누, 누구십니까?”

“마지막으로 물어본다. 처유희의 제자는 어디 있지?”

마지막이라는 연수의 눈과 마주친 청년은 입을 잘못 놀리면 그대로 죽는다는 사실을 절로 깨달을 수 있었다.

“성도 밖 관도에서···.”

거기까지 들은 연수의 신형은 이미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주위 사방에서 날아드는 비도들.

허공에서 몸을 틀며 그 많은 비도 들의 틈으로 몸을 꺾어 회피하는 여인.

하지만 비도 들은 날아온 방향으로 되돌아가며 여인의 몸에 검상을 남겼다.

이미 온몸 여기저기는 붉은 피로 물들어 원체 어떤 색상의 옷을 입었는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여인의 상태였다.

“끝까지 방심하지 마라! 악독한 처유희의 제자다. 독공을 조심해야 한다!”

말을 마친 사내는 쇠줄에 연결해 놓은 단도를 회전시키며 여인에게 쏘아 보냈고, 그를 따라 스물두 명의 무인들이 같은 무기를 같은 형식으로 여인에게 쏘아 보냈다.

몇 개의 단도에는 아지랑이가 피워 오르고 있었다.

이를 악다문 여인의 팔뚝 위로 붉은 핏줄이 꿈틀거리며 드러나더니 여인의 손끝까지 붉게 달아올랐다.

“독공이다!”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여인의 손에서는 붉은색의 장력이 날아드는 비도 들을 휩쓸었다.

그 독장을 뚫고 들어온 하나의 비도가 여인의 허벅지를 스치고 지나갔다.

“모두 손을 놓아라!”

비도에 연결된 쇠줄을 타고 빠르게 퍼져오는 독기를 느낀 무사의 외침에 스물세 개의 비도가 허공에서 중심을 잃고 땅으로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여인을 향해 사슬이 날아들었다.

미처 대처할 틈도 없이 여인의 양팔과 다리, 그리고 목을 휘감는 사슬.

“잡았다!”

다섯 줄의 사슬이 사방으로 당겨지자 어떻게 힘을 쓸 틈도 없이 공중으로 매달려 버린 여인이었다.

온몸에 검상을 입으며 갈라진 옷이 중력의 힘으로 밑으로 쏠리자 여인의 피 묻은 속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가슴의 절반 이상이 드러났고, 벗어나려 몸부림을 쳐 흔들리는 통에 팔과 맨다리가 드러나 주변 무인들의 눈요기를 시켜주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비릿한 웃음을 짓는 중년인 하나가 무사들의 사이를 가르며 걸어 나왔다.

“과연 옥안사목의 제자답게 제법 미색이 뛰어나구나. 얌전히 색이나 팔고 살 년이 어딜 더러운 무공에 손을 대서는.. 그러니 이런 꼴을 당하는 게다.”

뱀의 눈을 닮은 세로로 날카롭게 선 눈동자를 가진 여인의 입이 열렸다.

“죽여라.”

“네년 때문에 죽은 정파의 무인이 몇인데 그리 쉽게 죽일 것 같아? 네년의 사지를 찢고 고통에 울부짖는 목소리를 승전보로 삼을 것이다.”

말을 마친 중년인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유두를 가리고 있는 남은 옷조각을 슬쩍 걷어냈다.

그 안에 드러나는 젖가리개.

“크크크.”

“음탕한 년 같으니라고!”

“더러운 년!”

“대주! 아예 빨개 벗겨 사파 년의 본보기로 삼읍시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무인들의 외침에 중년인의 검이 그녀의 젖가리개로 다가서는 순간.

“멈춰라!”

무사들의 머리를 훌쩍 뛰어넘어 장내에 내려서는 거지.

중년인은 검을 거두며 장내로 뛰어든 거지를 바라봤다.

“누구시오?”

거지는 분노로 가득한 눈으로 중년인을 바라봤다.

“이게···. 이게 정파인이 할 짓이란 말이냐?”

중년인의 눈이 거지의 허리춤에 매달린 네 개의 매듭을 확인했다.

“큼큼! 개방의 제자였군. 아직 어린 제자 같은데, 이것은 승리를 자축하며 아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너희 비도문은 이딴 짓거리를 해야 사기가 오른단 말이냐! 무당의 속가라는 너희가!”

무당파를 걸고 넘어오자 중년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상대는 아직 사결제자라 해도 개방이었다. 그런 개방에서 무당의 속가 문파가 적일지라도 여인을 희롱했다 하는 이야기를 하게 둘 수는 없었다.

“그게 아니고,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으니 우리 천천히···.”

“풀어.”

“뭐?”

“저 사슬 풀라 했다.”

살기를 풀풀 날리는 목소리에 팽팽하게 당겨졌던 사슬이 슬그머니 늘어지며 여인의 몸이 땅으로 내려졌다.

서둘러 사슬을 풀며 가슴을 가리는 여인.

그런 여인에게 다가가 처참한 여인의 몰골을 내려다보던 거지는 겨우 입을 뗐다.

“괜찮습니까?”

거지의 눈을 피하며 고개를 돌리는 여인이었다.

“왜 여기까지 왔어요?”

“늦어서···.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곁에서 지켜주겠습니다.”

여기까지 들은 중년인의 이마에 두꺼운 핏대가 섰다.

“그년은! 옥안사목 처유희의 제자다! 아무리 개방 제자라지만 이럴 수는 없다!”

“비켜. 죽여버리기 전에.”

아직 애송이티를 벗지 못한 거지의 막말에 중년인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흥! 인제 보니 사파와 결탁한 더러운 배신자 놈이었구나! 살려둘 수 없다. 쳐라!”

중년인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날아드는 비도들.

거지는 손에 꽉 쥐고 있던 개구봉을 휘둘러 날아오는 비도들을 쳐냈다.

하지만 거지의 실력으로 모든 비도를 거둬내기에는 무리였다.

어깨와 허리에서 피가 튀며 검상이 길게 남았다.

이를 악물며 여인에 앞을 가로막고 몸으로 비도를 막아내며 개구봉을 휘두르는 거지.

시간이 지날수록 거지의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이각이 채 안되서 한쪽 무릎을 꿇고 가득 찬 숨을 내뱉으며 장내에 무인들을 노려보는 거지.

그런 거지의 앞으로 나서며 손에든 비도를 훙훙 소리가 나게 돌리는 중년인.

“내 오늘 배신자의 멱을 따 떨어진 정파의 기개를 바로 세울 것이다!”

근엄한 말과 함께 비도를 날리는 중년인의 입매가 비틀렸다.

날아오는 비도를 보며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니 옆구리에 비도가 박힌 채로 쓰러져 있는 여인이 거지의 눈에 들어왔다.

-깡!

“소개야!”

중년인은 자신의 비도를 쳐낸 늙은 거지의 등장에 눈썹을 씰룩였다.

소개는 그러거나 말거나 정신을 잃고 쓰러진 여인의 몸을 세웠다.

“공 소저! 정신 차려봐요! 공 소저!!!”

힘겹게 눈을 뜬 공숙이 핏기없는 얼굴로 밝게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미안···.”

그 말을 끝으로 축 처지며 정신을 잃는 공숙.

그런 공숙의 숨을 확인하는 소개의 어깨를 잡아 일으키는 늙은 거지.

“이놈아! 이게 무슨 꼴이냐?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중년인은 나타난 늙은 거지의 허리춤에 매듭에 여섯 개인 것을 확인하고는 재빨리 외쳤다.

“그놈은 사파와 결탁한 배신자요!”

순간 늙은 거지의 고개가 중년인을 향해 돌아갔다.

이글거리는 살기가 가득 담긴 늙은 거지의 시선에 중년인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감히! 너희 따위가 개방 제자에게 손을 대?”

“그게 아니라 그놈이···.”

뒷말을 흐리는데 장내로 떨어져 내리는 도사.

“무슨 일이지?”

무당의 장로이자 비도문의 든든한 후원자인 소현풍의 등장에 중년인의 움츠러들었던 몸에 힘이 들어갔다.

“저 어린 거지 놈이 정파를 배신하고 저 사파 년과 결탁을 했습니다.”

“그 말, 사실이겠지?”

소현풍의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하는 중년인이었다.

“확실합니다. 여기 이 자리에 있는 눈과 귀가 몇 개인데 감히 거짓을 고 하겠습니까?”

“거기 어린 거지. 이것에 대해 할 변명이 있느냐?”

늙은 거지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엉망이 된 채 기식이 엄연한 여인만 넋 놓고 바라보는 소개를 대신해 입을 열었다.

“오해요. 내 제자는 그럴 아이가 아니니 비켜 주시오. 보다시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소.”

그와 동시에 검을 뽑아 들며 늙은 거지의 앞을 막는 소현풍.

“무슨 의미요?”

늙은 거지의 물음에 소현풍은 고개를 저었다.

“배신자는 놓아줄 수 없소.”

“이 아이가 설사 배신을 했다 해도 이것은 맹과 개방에서 처리할 일이요. 무당이 개방의 내정에 간섭하겠다는 게요?”

“비상 상황이오. 후에 내 직접 맹주에게 보고하면 되겠지.”

“지금 그 결정 후회하지 않겠소?”

“...”

소현풍은 바보가 아니었다.

헐벗다시피 한 피투성이의 여인과 어린 개방제자 그리고 늙은 개방 거지. 일련의 상황이 얼추 눈에 선했다.

지금 이 상태로 저 어린 거지를 살려 보내면 후에 비도문과 무당파가 어떤 비난을 살지 안 봐도 훤히 그려졌다.

“어디 한번 해 봅시다. 그럼.”

내력을 끌어올리며 출수를 준비하는 늙은 거지.

하지만 이미 준비를 끝마치고 있던 소현풍은 그보다 한 박자 빠르게 출수했다.

그렇게 서호의 분타주와 무당의 집법당주의 대결이 시작됐다.

채 열 초식을 겨루기 전에 늙은 거지의 표정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내 상대가 아니구나.’

나름대로 개방에서 오랜 세월 무인으로 살아가며 적지 않은 수련을 거쳐 절정고수라는 경지에 올라섰지만, 상대는 무당 제일 검이라는 소현풍이었다.

과연 소문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검로는 하나하나가 막아내기 쉽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의 무심한 눈 속으로 가득 차 있는 여유가 느껴지자 더욱 힘이 빠지는 늙은 거지였다.

그렇게 육십 초식이 넘어가자 늙은 거지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미 한참 전에 자신을 제압하고도 남을 정도의 실력 차를 절감하고 있는데, 미묘하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현 상황은 전적으로 소현풍의 의지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늙은 거지는 아차 싶었다.

그 순간.

“끝까지 이렇게 막겠다면 나도 별수 없소!”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현풍의 검에 맺히는 유형의 기운.

흐릿한 푸른색 기운이 검에 맺힘과 동시에 늙은 거지의 개구봉이 예리하게 잘렸다.

그 한 수의 교환을 마지막으로 서로에게서 물러나는 두 무인.

“소개야. 기억하거라. 만약 이 아수라장에서 살아남거든, 개방으로 돌아오지 말아라.”

그제야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사부를 올려다보는 소개.

소개의 시선이 닿자 늙은 거지의 가슴이 쩍 갈라자며 피 분수와 함께 늙은 거지의 몸이 허물어져 버렸다.

“아, 아···. 아···.”

말을 잇지 못하며 기어가서 절명한 사부의 몸을 끌어안는 소개.

그의 두 눈으로 시뻘건 피눈물이 흘러 내렸다.

“아아아아!!!!!!!”

죽은 사부의 몸을 끌어안고 악을 쓰는 소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현풍의 눈짓을 받은 중년인은 비도를 빙글빙글 돌리며 크게 외쳤다.

“개탄을 금치 못하겠구나! 천하 정파의 한 축을 차지하는 개방에서 사파와 결탁하는 배신자가 나타나다니! 오늘 사파와의 결전의 시작이 되는 이날! 소 진인께서 이를 알아차려 정파의 정기를 흐리는 배신자들을 단죄할 수 있어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구나!”

“너희가···. 네 따위 것들이! 정파냐!”

소개의 울화 가득한 악에 받친 소리에 소현풍이 앞으로 나섰다. 보는 눈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기에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는 역풍을 맞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무당을 부정하는가? 너 같은 배신자가? 감히 정파를 논하는가?”

“배신? 크크크 그래 니들 정파해라.”

“무당이 정파인 것은 비도문이 정파인 것은 너 따위의 허락이 필요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하라고! 씨팔! 내가 안해! 정파 안해! 이 씨팔 놈들아!”

악을 써대는 소개.

그런 와중에 중년인에게 소현풍이 눈짓을 했다.

“오늘 강서에서의 첫 승전보의 마무리로 배신자인 네놈을 단죄하겠다!”

그와 함께 빗살처럼 소개의 목을 향해 달아 드는 단검.

부릅뜬 눈으로 날아오는 비도를 똑바로 주시하는 소개였다.

-깡!

똑같은 전개에 짜증이 난 중년인은 자신의 비도를 쳐내며 등장한 무인을 향해 눈을 돌렸다.

“정신 차려라. 이러다 누이 죽는다.”

“여, 연수야! 공 소저가···! 사부님이···.”

가슴이 쩍 갈라져 절명한 신영방을 보는 연수의 얼굴이 구겨졌다.

어려서 술과 함께 인사를 드렸던 기억이 있었다. 그때보다 많이 늙었지만, 그때의 반갑게 대해주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했다.

이번에는 가는 숨을 겨우 이어가는 공숙의 모습이 연수의 눈에 들어왔다.

마지막으로 무력하게 피투성이가 되어 자신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소개가 보였다.

이를 악문 연수의 입이 열렸다.

“복수하면 된다. 소개야. 정신 차려. 누이는 살려야지.”

최대한 냉정하게 이야기했지만 연수의 마음은 말처럼 냉정하지 못했다.

가슴 가득 차오른 분노가 폭발할 것 같은 것을 누르느라 죽을 힘을 다하는 연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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