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공숙과 손속을 섞으며 필사적으로 항전하는 지영문의 무사들 목이 하나둘 갈라지며 피가 튀어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곱 무인의 목이 벌어지며 피가 튀자 그제야 연수의 신형을 확인한 집법당주가 노성을 터트렸다.
“이놈! 씹어먹어도 시원찮을!”
다섯 도사가 연수가 있는 곳으로 달려오는 순간 연수의 신형이 빙글 돌았다.
‘이거나 처먹어라. 화련쾌참격!’
겨우 연수의 암수에서 벗어난 다섯 명의 지영문무사가 날아오는 검기를 막고는 주르륵 밀려나며 피를 토해냈다.
그 언젠가 느꼈던 감각이었다. 주위가 지워진다. 양손에 꽉 쥔 단검의 감각과 흥분으로 뛰는 심장 소리만이 머릿속을 채우며 몸을 놀렸다.
세 도사가 서로의 기운을 순환시키며 방위를 돌려 밟아 상대를 압박하는 옥령검진은 소수의 하수가 고수를 상대하는 데에는 제일이라는 곤륜의 검진이다.
이 옥령검진의 좌우에 자리를 잡고 순환되는 기운을 보좌하고 끌어쓰는 수법은 곤륜의 삼대 전 장문인이 고안한 방법으로 일월신교의 수많은 고수의 목을 떨어트린 옥령검진의 보안법이었다.
대부분의 독기가 빠져나가며 내기의 수발이 수월해진 다섯 도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암수일살의 목이 떨어질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
서로의 방위를 바꿔 가며 연수에게 다가오는 다섯 도사.
옥령검진의 좌우로 기운을 순환시키는 도사들의 흐름이 읽혔다.
이미 시야에는 도사들의 기운과 흐름 외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고 있었고, 마치 흐르는 물을 지켜보는 듯 기운의 움직임이 훤히 보였다.
점점 붉어지는 시야.
심장이 세차게 뛰며 머릿속에는 상대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집법당주의 검이 강맹한 기운과 함께 연수의 심장으로 날아들었지만, 간단히 몸을 틀며 검을 피하고는 그를 지나쳐 지연화법당주에게 몸을 날렸다.
그 움직임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마치 여섯 명의 무인이 한 진을 두고 기운을 순환시키는 양상이었다.
전체의 기운이 집법당주에게 쏠려 자연스레 그 기운에 순응하며 몸을 날린 것뿐이었지만 그 결과 진의 기운이 등을 밀어주며 엄청난 속도가 붙었다.
-카카캉! 깡!
“크윽!”
검기를 날리거나 기사를 날릴 필요도 없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연격을 날리는 것만으로 절정에 오른 곤륜의 장로이자 지연화법당을 맡은 당주가 뒤로 밀려나며 연수의 검을 막기에 바빴다.
하지만 한번 좁힌 거리를 쉽게 내줄 연수가 아니었다.
-깡! 깡!
단 두 번의 파병초를 펼친 것만으로 검기를 둘렀던 도사의 검에 실금이 가고 있었다.
지혈해 놓았던 오른쪽 소지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도사는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며 연거푸 뒤로 물러섰다.
서둘러 연수의 뒤와 좌측을 점하며 지연화법당주를 도우려고 다가온 도사들.
하나 도사들은 쉽사리 연수를 공격할 수 없었다.
아까만 해도 단검의 끝에 살짝 맺혀있던 붉은 기운이 이제는 단검의 반을 넘게 감싸며 훨씬 선명한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도사들의 기운이 지연화법당주에게 몰려옴을 느낀 연수는 망설임 없이 뒤로 물러서며 옥령검진으로 달려들었다.
몸을 돌리며 다가오는 연수의 신형이 흐릿해지자 젊은 세 도사는 침을 꿀꺽 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까까까까까깡! 깡깡!
어떤 공격도 할 수 없었다.
한 두 번만 연수의 검격을 막아내도 잘린 소지로 피가 쏟아져 나오며 검을 놓칠 듯 힘을 쓰지 못하는 도사들.
그 순간 연수의 옆구리로 검기가 날아들었다.
연격을 이어가다가 딱 반보 뒤로 물러서는 연수.
그런 연수의 앞으로 집법당주가 날린 검기가 스치듯 지나갔다.
몸을 틀며 집법당주에게 달려들어 손을 섞기 시작한 연수.
겨우 다섯 초식이 지나자 집법당주가 검을 놓쳐버렸다.
뒤와 우측으로 도사들이 살기를 뿜어내며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뒤로 물러서느라 진을 흩트린 집법당주의 목과 몸의 여섯 요혈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끄르륵···. 모, 모두.. 도망······.”
피 끓는 소리를 내며 말을 끝마치지 못한 집법당주의 몸이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집법당주의 목을 베는 순간 짜릿한 쾌감과 함께 초식과 내기의 수발에 대한 깨달음이 쏟아지며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황홀하기 그지없는 감각에 온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 와중에도 등 뒤와 좌측에서는 기사와 검기가 쏟아졌지만, 그저 몇 걸음을 이동하는 것만으로 여유 있게 피한 연수의 얼굴에 광적인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런 연수의 얼굴을 확인한 도사들은 멈칫하며 그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주는 미소. 본능이 저 남자에게서 떨어지라며 비명을 지르는것 같았다.
수많은 초식이 완성되어 가며 한시라도 빨리 몸을 움직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그런 연수의 신형이 젊은 도사들에게 부딪혀갔다.
-스스슥
스치듯 세 도사의 품을 파고들며 지나쳐 가자 두 도사의 목이 갈라졌고, 한 도사의 어깨에서는 피가 튀어 올랐다.
“이, 이게···.”
“마공···.”
그게 마지막이었다. 말을 채 못 마친 그들의 목에서 피가 쏟아질 때 이미 연수는 지연화법당주에게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도사들의 목을 딸 때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무리들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황홀함을 넘어서는 무인으로서 느낄수 있는 최고의 쾌감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였다.
하나라도 더 한시라도 빨리 죽이고 싶었다.
지연화법당주가 그런 연수를 보며 이를 악물고는 악을 썼다.
“명령이다! 장문 제자는 지금 당장 곤륜으로 돌아가 이 모든 사실을 고하라!”
검을 왼손으로 바꿔 잡고는 연수를 상대하는 지연화법당주의 몸 곳곳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영환! 뭣하느냐!”
잠시 멍하니 사제들의 시체를 바라보던 도사가 이를 악물며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는 연수에게 등을 돌렸다.
몸을 돌려 경공을 발휘하는 순간 지연화법당주의 목에 혈선이 그어졌다.
두 눈으로 살광을 쏟아내며 몸을 돌리는 연수의 다리를 쓰러지는 지연화법당주가 끌어안았다.
발을 털어내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늙은 도사 때문에 짜증이 솟구친 연수의 단검에서 기사가 뽑혀 나오자 연수의 다리를 꼭 끌어안고 있던 도사의 두 팔이 잘렸다.
시선을 젊은 도사의 등에 고정한 연수의 입매가 비틀리며 신형이 흐려졌다.
마치 빗살같이 젊은 도사의 등 뒤로 뻗어가는 연수.
-깡!
우수에 들린 단검이 젊은 도사의 목덜미로 파고드는데 강렬한 기운과 함께 연수의 단검이 튕겨 나갔다.
반쯤 무아지경에 빠져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연수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갈! 이놈 정신 차리지 못할까?”
무황의 노성이 연수의 귓전을 때렸다.
연수의 광기에 공숙에게 해약을 받아먹은 무황이 몸을 돌볼 새도 없이 연수를 막아선 것이다.
가슴속 노화가 머리로 솟구치며 연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죽여버린다!”
순식간에 무황에게 다가들며 연격을 날리는 연수.
내기의 수발이 아직 자연스럽지 않았지만, 연수의 상태를 보아하니 이것저것 가릴 상황이 못 되었다.
-카카캉! 카캉! 캉!
잔상을 남기며 쏟아지는 연수의 연격을 한 자루의 검으로 모두 걷어내는 무황.
“정화무심 심마살령 구마정심!”
쩌렁쩌렁 울리며 뿜어지는 무황의 기세에 머리가 지끈거리며 고통이 몰려왔다.
잠시 거리를 벌린 연수의 신형이 흐릿해지며 그 존재감이 지워져 갔다.
“갈! 화무심 마살령!”
머리를 흔드는 연수의 신형이 순식간에 무황의 뒤에서 나타나며 무황의 등을 맹렬한 기세로 찍어갔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뒤로 돌며 연수의 단검을 쳐낸 무황의 좌수가 연수의 머리를 붙잡았다.
지척에서 다리가 풀려 일어나지 못하는 젊은 도사는 너무나 흉포한 연수의 살기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그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무황에게 잡힌 머릿속으로 정심한 기운이 쏟아져 들어오며 지금껏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무리가 사라져 가자 본능적인 분노가 끌어 올라오며 가슴을 가득 채운 분노는 곧 살기로 바뀌어 지금까지보다 훨씬 진하고 강력한 살기가 연수의 몸에서 폭사 되듯 뿜어져 나왔다.
“크아아악!”
분노와 악에 받친 악성을 써대는 연수에 의해 젊은 도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마치 뱀 앞에 개구리가 된 듯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이성은 지금이라도 일어나 곤륜으로 돌아가 지금껏 있었던 사단에 대해 보고하고 지연화법당주의 유언을 지켜야 한다고 외쳤지만, 도무지 몸이 말을 듣질 않고 있었다.
천하 곤륜의 대 제자로 어려서부터 모든 기대를 받으며 지금껏 무서울 것 없이 당당히 무인으로 살아왔던 삶이 모두 무너져 내리는 오늘이었다.
무황은 계속해서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심결을 외며 연수의 머릿속으로 기운을 쏟아냈고 이윽고 연수의 동공에 맺혀있던 붉은빛이 흐려지며 점차 본래의 눈빛이 돌아오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살기와 함께 곤륜의 고수들을 몰살시킨 암수일살을 보며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에 조급해지던 비익 대주는 복면 고수에게 암수일살이 붙잡혀있자 크게 외쳤다.
“모두 퇴각한다. 산개하여 살아남아라!”
그리 외치고는 곧바로 등을 돌리며 달아나기 시작한 비익 대주.
‘어떻게 해서든 전극공합만큼은 지켜야 한다.’
그는 가슴에 품은 전극공합을 꽉 쥐고는 경공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쐐에액! 팡!
얼마 도주하지도 못했는데 무서운 파공성과 함께 날아드는 채찍에 어쩔 수 없이 물러서며 멈춰서는 비익 대주.
물러서자마자 붉은색 장력이 날아오자 인상을 구긴 비익 대주는 연신 물러서며 붉은 장력을 피해냈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역시나 짧은 도를 쥔 사황성의 고수가 무섭게 따라붙고 있었다.
‘여기서 발을 붙잡히면 안 된다.’
손에 쥔 검에 내력을 불어 넣으며 기사를 난사하는 비익 대주.
기사를 흩뿌리고 바로 도주하려 했는데 요망한 움직임을 보이는 채찍에서 기사가 뻗쳐 나오며 자신의 기사를 모조리 쳐내고는 오히려 자신을 압박해왔다.
“옥안사목이 빌어먹을 년!”
비익 대주의 욕설과 함께 채찍에서 뻗어 나오던 기세가 훨씬 흉흉해지며 거칠게 요동쳤다.
그와 동시에 사황성의 고수가 비익 대주의 퇴로를 막아서며 떨어져 내렸다.
공숙을 상대하며 흘끗 사황성의 고수를 곁눈질한 비익 대주가 내력을 담아 외쳤다.
“비겁하게 합공이냐?”
귀를 후벼 파며 씹어뱉듯 대답하는 사내.
“오늘 너에게는 그런 말 듣고 싶지 않군.”
비익 대주로서도 할 말이 없었다.
오늘의 사태는 절대 강호에 알려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 애초에 저 곤륜의 도사 놈들과 엮이면서부터 모든 게 꼬여버렸다.
계획대로 저 사파 무리를 모두 죽여 입을 막았어도 찝찝했을 것을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참화를 맞게 생겼으니 명분도 실리도 모두 사황성에 뺏기게 된 너무나 뼈아픈 실책이었다.
‘애초에 차선으로 마무리 지을 것을!’
이제 와 후회해 봐야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비익 대주가 공숙의 채찍을 밀어내며 거리를 벌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도를 든 사내가 신형을 날렸다.
일대일로 붙어도 밀리기만 하던 고수에게 저 미친년까지 달고 이길 방법이 없었다.
삶과 임무를 모두 포기한 비익 대주의 눈에 독기가 어렸다.
그의 검이 모든 방어를 도외시하며 일격필살의 초식이 펼쳤다.
최대한 손해 없이 비익 대주를 죽이려는 사내와 어떻게든 사내를 길동무 삼으려는 비익 대주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자 공숙은 끼어들 틈을 잡을 수 없었다.
손발을 맞춰 본 적이 없는 사황성의 고수에게 방해되지 않고 끼어들 틈이 보이질 않았다.
공숙은 고개를 흔들고 허리춤에 채찍을 걸어 놓고는 독침을 꺼내 들어 비익 대주를 주시했다.
‘지금!’
-쉬이이익! 땅!
호흡이 잠시 끊기는 순간에 작은 독침을 걷어낸 비익 대주의 인상이 구겨졌다.
흘끗 바늘이 날아온 곳을 보아하니 작정하고 손에 바늘을 들고 있는 자세가 계속해서 이 천인공노할 짓을 반복할 셈인 것 같았다.
그렇다고 지금도 자신을 찍어누를 듯 무거운 도를 휘두르는 앞에 고수를 놔두고 저 미친년을 상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도 잠시의 틈으로 인해 연신 몰리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계속해서 잠시간 호흡이 끊길 때마다 독침이 날아왔다.
“이 빌어먹을 년! 꼭 죽여······.”
심기가 흐트러지며 흥분하여 욕을 퍼붓는 순간 사내의 중도가 비익 대주의 목을 날렸다.
저 멀리 날아가는 비익 대주의 두 눈에 분노가 가득 차 있었다.
목을 잃은 몸은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며 땅바닥에 처박혔다.
그런 시체의 품에서 전극공합을 되찾아 품에 집어넣는 사내.
“빚을 졌군. 옥안사···. 처유희와는 어떤 사이지?”
옥안사목이라는 말을 꺼내려 하자 살기 어린 광망이 터져 나와 얼른 말을 바꾼 사내는 멋쩍은 표정으로 공숙을 바라봤다.
“우리 사부님이야. 사부님은 그 별호 정말 싫어하셨어.”
“그렇군. 이 빚은 꼭 갚을 테니 언제든 사황성으로 찾아와.”
“지금 갚지? 그거 전극공합이지?”
사내의 눈썹이 씰룩였다.
“무림에 존재를 아는 자가 스물을 넘지 않는 보물인데···.”
“성주님을 통해 알게 된 거니까 별 신경 쓰지 마. 그것보다 그거 나 줘.”
“뭐?”
사내는 황당한 표정으로 공숙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