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화
연수 일행과 곤륜의 도사 일행들은 서로 간 상황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대관절 갑자기 어째서 사황성과 무림맹의 고수들이 이 자리에 나타난단 말인가.
무림맹의 고수들을 이끄는 걸로 보이는 중년인이 곤륜파 도사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희는 비익대입니다.”
“비, 비익대?!”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곤륜의 장로들을 보며 연수는 사부에게 전음을 보냈다.
-사부 비익대가 뭐예요?
-맹주 직속 무력대다.
‘맹주 직속이라···. 그러면···.’
연수는 자신의 뒤로 무표정한 사내를 보았다.
자신의 직감이 맞는다면 성주의 비밀무기인 혼자서 무림맹 맹주 직속 비밀 수호대 하나를 몰살시키고 전극공합을 훔쳐간 고수는 저자일 것이다.
연수는 복면을 내려 얼굴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성주께 이야기는 많이 들었소.”
무표정한 사내의 눈썹이 씰룩였다.
“내 이야기를 들었다?”
“예. 성주께서 꽤 자랑스러워하시더군요. 비밀무기라고.”
사내의 표정이 심란해졌다.
그런 사내의 귓속으로 연수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맹주 직속 수호대를 몰살시키고 전극공합을 가져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왜 지금 여기에 맹의 고수들과 나타난 겁니까?
-너, 누구지?
-아 정파 놈들은 암수일살이라고 부르더군요.
사내의 눈이 커졌다.
-너구나. 성주께서 뱀 같은 놈이라더니···. 크크크 명불허전이구나.
-아직 답을 못 들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시점에서 난입하셨습니다.
-중요한 시점?
-예. 몰살시킬 생각이었거든요.
살기가 뚝뚝 흐르는 듯한 눈빛으로 곤륜의 일행을 바라보는 연수를 보며 사내가 한숨을 쉬었다.
-이쪽이야말로 중요한 시점에 방해를 받았다.
-곤륜파 장로 셋 일대 제자 셋. 그중 장문 제자가 끼어있습니다. 이들의 모가지를 따는 것보다 중요한 일입니까?
-중요하다.
연수의 표정에 짜증이 어렸다.
-무슨 일인데요?
사내는 잠시 연수를 노려보고는 한숨을 내뱉었다.
-너라면 말해줘도 되겠지. 성주께서 오늘 무림맹의 인사에게 전극공합을 돌려주라 하셨다. 이걸로 정사 대전은 막을 수 있을 거라 하시더군.
사내의 전음에 한참을 생각하던 연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거였군요. 아직 실패는 않았으니 이대로 끝내면···.
-글쎄···. 어떨까? 성주는 실패하면 큰 적이 될 테니 저 비익대를 절대 살려 보내지 말라 하셨는데.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군요.
-저들과의 일이 틀어지는 순간 정사 대전이 시작된다.
연수는 곤륜파의 일행들을 둘러 봤다. 그들도 비익대와 상황파악을 위해 전음을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 결정은 저들의 몫이다. 우린 선택의 자유가 없다. 최선은 정사 대전을 막는 것. 차선은 저들을 모두 죽이는 것 최악은 여기서 모두 죽고 전극공합을 뺏기는 것. 그런데 상황이 좋아 보이질 않는구나. 저 도사 놈들에 회색 무복을 입은 놈들까지···.
연수는 입매를 비틀며 살기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저 도사 여섯은 모두 중독됐습니다. 게다가 저 회색 무복을 입은 놈들은 오래도록 추적을 이어오느라 힘이 빠질 대로 빠져있어요. 저 혼자서도 다 죽일 수 있습니다. 저 비익대라는 놈들 상대로 자신 있습니까?
시종일관 무표정하던 사내의 입매가 호선을 그리며 살기 어린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야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진 않겠구나.
사내는 앞으로 나서며 큰소리로 외쳤다.
“비익대주! 어찌할 것이오? 이 사단이 당신 쪽이나 내 쪽에서 매복시킨 무인들이 아니라는 건 다 파악이 되었을 텐데.”
비익대주라 불린 사십 대 초반의 사내는 곤혹스러웠다. 중원 무림에 사활이 걸린 거래였다.
그런 중요한 거래 중 갑자기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나더니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난리가 났다.
자신은 사황성에서 비겁한 짓을 한 것은 아닌가 식겁을 했고, 저쪽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우연이라지만 지독히도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고민하는 그의 머릿속에 맹주의 당부가 떠올랐다.
-최선은 전극공합을 취하고 상대를 몰살시키는 것. 차선은 전극공합을 받아내고 물러서는 것 마지막 최악은 비익대의 몰살.
한참 머리를 굴리는데 사황성에서 나온 사내의 재촉이 들려왔다.
“거래를 어찌 할거요?”
“거래는···.”
막 화답을 하려는데 곤륜파 장로의 전음이 들려왔다.
-저자 만큼은 꼭 죽여야 합니다. 곤륜에 큰 화가 될 자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여야 하오.
현무당주의 다급한 전음에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자 얼굴을 복면으로 가린 호흡이 거친 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묻지 말아주시오. 곤륜이 맹주에게 큰 빚을 졌다 생각하겠소. 분명 큰 이자와 함께 이 빚을 갚을 날이 올 것이오.
곤륜의 빚이라니 맹주에게 큰 힘이 될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비익대주는 결심을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건이 하나 있소.”
비익대주의 말에 사내의 눈썹이 씰룩였다.
“뭐요?”
“거기 있는 암수일살이 곤륜의 어른들과 제자들을 중독시켰다는군요. 해약을 주시오.”
사내의 눈빛에 살심이 잠시 어렸다가 사라졌다.
연수를 바라보는 사내.
“줄 수 있겠나?”
연수는 비익대주를 바라보며 외쳤다.
“나는 해약 따위 갖고 다니지 않소. 독기를 소충혈로 몰아 소지를 자르면 해독 될 것이오. 그게 싫으면 독기를 누르고 두충, 갈근, 자소를 다려 삼 일간 복용하고 운기 하면 해독될 것이오.”
연수의 말을 들은 사내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성주의 말이 머리가 비상한 뱀 같은 놈이라 하더니 정확한 인물평이었다.
만약 지금 저 도사 놈들이 해독되면 현재 입장에서는 보통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상대가 정파 무리라지만 이 거래는 정사의 사활이 달린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힘의 균형이 무너지거나 밀려서는 안 되었다.
연수의 말에 도사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번에는 연수의 외침이 그런 도사들의 귀로 파고들며 심기를 어지럽혔다.
“이쪽은 해독 방법을 알려줬소. 정파인인 당신들 또한 이쪽 일행의 해독 방법을 알려주시오.”
회색 무복을 입은 지영문의 무인들에게 장내의 시선이 모두 집중되었다.
그중 검붉은 야행복을 입은 무인이 무거운 시선에 떠밀려 앞으로 나섰다.
그는 품속에서 해약하나를 꺼내며 곤륜의 장로들을 바라봤다.
“안된다! 절대 주어선 안 돼!”
그의 말에 사황성쪽 무사들의 투기가 강렬해졌다.
당연히 무림맹 무사들 또한 투기를 끌어 올리며 대항했다.
사황성의 무인들을 이끄는 사내가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이게 그쪽의 방식인가?”
비익대주는 질책의 눈빛으로 현무당주를 바라봤다.
전음을 보내면 될 것을 하필 대놓고 그리 말하는 것은 무슨 심보란 말인가? 게다가 하필 저 검붉은 야행복을 입은 놈은 해약을 손에 꺼내 쥐고 그런 눈으로 장로를 바라보면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무래도 해약은 줄 수 없는가 보오. 이건 사황성과 맹이 끼어들 은원은 아닌것 같소.”
“먼저 끼어들어 도사들 해약을 요구한 건 그쪽 같은데.”
“내가 경솔했소. 미안하오.”
도를 쥔 손에 절로 힘이 들어가며 사내의 이마에 핏대가 잡혔다.
그런 사내의 귀로 비익대주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자,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은원을 해결해야 하지 않겠소? 중원 무림에 앞날이 우리의 거래 결과에 달려 있으니. 물건을 내주시오.”
품에서 작은 단검을 꺼내며 앞으로 흔들어 보이는 비익대주.
묵철로 만들어진 소령도라 불리는 보도로 무림맹주가 아끼는 보물이었다. 전극공합을 무사히 돌려받은 증거로 사황성에 전해주기로 한 예물이었다.
사내는 사나운 심기를 가라앉히며 품에서 작은 목함을 꺼내 들었다.
손바닥보다 작은 육각형의 목함에는 푸른 글씨로 공이라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뚜벅뚜벅 걸으며 서로를 향해 다가가는 비익대주와 사내.
지척의 거리까지 가까워지자 서로 물건을 내밀어 주고받는 순간 장내에 모든 시선은 두 사내에게 쏠려 있었다.
그 순간.
소지를 끊어낸 현무당주가 무서운 기세로 무황에게 다가서며 일 검을 내질렀다.
연수가 눈치채고 움직이기 시작한 때에는 이미 현무당주의 검에 맺힌 푸른빛을 띠는 검기가 무황의 가슴 지척까지 다가왔다.
연수의 입에서 피맺힌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안 돼!!!”
연수의 사부 두보는 망설임 없이 중독된 무황을 밀어내며 옆구리에 현무당주의 검을 맞았다.
쉼 없이 이어서 무황을 베려는 현무당주의 이마로 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하나 남은 왼손으로 검을 쥐고 놔주지 않는 두보의 눈을 마주친 순간 식은 땀이 절로 나왔다.
이를 악물고 검에 내력을 더 불어넣으며 손목을 비틀자 두보의 손가락 네 개가 공중으로 떠오르며 검이 풀려났다.
-퍼 퍽! 펑!
두보의 손가락이 허공으로 떠오르는 순간 연수의 이권과 일장을 가슴에 맞은 현무당주는 피를 토해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사부!!! 사부 날 봐요. 나를 보라고요!”
눈동자가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자꾸만 위로 돌아가는 모습이 정신을 잃고 있는 두보였다.
그런 사부의 옆구리 혈을 두드리며 지혈을 하고는 사부의 단전에 손을 가져다 대어 기운을 불어넣었다.
역시나 옆구리에 맞은 검으로 인해 양문혈부터 대맥이 고루 상해 버렸다.
출혈은 막았지만, 내상이 심각했고 무엇보다 대맥이 상하면서 혈액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빠, 빨리 의원에게···.”
사부를 안아 드는 연수의 뒤로 강맹한 기세가 몰려들었다.
돌아보니 소지를 끊어낸 다섯 명의 도사들이 연수를 노려보고 있었다.
“암수일살! 오늘 끝장을 보자!”
그 광경을 지켜보던 비익대주와 사내의 눈에도 불꽃이 튀며 거리를 벌렸다.
“거래는 아무래도 없었던 거로 해야겠는데.”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전극공합을 품 안에 넣는 비익대주였다.
사내는 비익대주에게 받은 소령도를 흔들며 말했다.
“예물까지 받았는데 인제 와서 뒤집겠다?”
“글쎄···. 저기 암수일살이라는 놈. 장수무투의 제자라던데···. 그 예물은 우리가 도둑맞은 것으로 하면 되겠군.”
“차선이라···. 결국 이리되는군.”
“하늘이 정한 운명 아니겠소? 오늘 이 자리에 저들이 끼어든 것은.”
“그래. 뭐 이리된 이상 어쩔 수 없지.”
너무나 가벼운 사부를 다시 내려놓은 연수가 돌아보지 않고 무황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노야의 부탁은 들어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사부님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무황은 굵은 눈물을 떨구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보를 보는 무황의 눈에는 후회의 빛이 짓게 남아 있었다.
연수가 도사들에게 달려드는 순간 공숙도 그의 뒤를 쫓아 몸을 날렸고, 사황성의 무인들과 무림맹의 무사들도
서로를 향해 달려들며 무기를 뽑아 들었다.
달려드는 연수를 보며 일대 제자 셋이 검진을 짰고 두 장로는 좌우로 거리를 벌려 검진을 펼치는 세 제자를 보좌했다.
달려드는 연수의 눈이 붉게 물들며 신형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연수의 전음이 뒤따라 오는 공숙에게 전해졌다.
-누이 여긴 맡기고 저 추련이라는 놈의 해약을 뺏어 사부를 지키는 노야에게 전해주세요.
-괜찮겠어?
공숙의 표정에 불안감이 어렸다.
-예. 해약이 급합니다.
공숙이 주위를 잔뜩 경계하는 지영문의 무사들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아까는 보지 못한 채찍이 들려있었다.
두 눈의 동공이 날카롭게 세로로 찢어지며 광망을 폭사하는 공숙의 모습에 지영문의 무사들이 잔뜩 긴장했다.
양손에 들린 단검을 꽉 쥐는 연수의 두 손이 교차하듯 휘둘리자 기사가 뽑혀 나오며 검진을 짠 세 도사와 장로 둘에게로 난사되듯 퍼부어졌다.
두 장로는 푸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검으로 연수가 날린 기사를 어렵지 않게 걷어냈고, 검진을 펼치고 있던 도사 셋 또한 장문 제자를 중심으로 연수의 기사를 밀어냈다. 모든 기사를 치우며 연수의 공격을 대비하는 다섯 도사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미친놈처럼 달려들던 암수일살의 모습과 존재감이 느껴지질 않았다.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른다. 암기와 독을 조심하고 만전을 기하라.”
집법당주의 외침에 도사들은 옥령진을 중심으로 주위를 경계하며 연수의 공격에 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