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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78화 (78/202)

# 78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둘은 해가 떠오를 때가 되자 말에 올랐다.

한 달을 넘게 노숙을 하며 길을 재촉하자 귀주를 벗어나 운남에 들어올 수 있었다.

특히나 귀주를 지나는 길에는 거의 마을에 들르지 않고 노숙만 하며 시선을 피하는 강행군이었다.

“드디어 운남이다!”

“예. 그간 힘드셨죠?”

“별로. 그냥 제대로 씻지를 못해서 찝찝해.”

“오늘은 객잔을 잡아 그간 여독을 풀어요.”

“응!”

말은 별로 힘들지 않다고 했지만, 하루 대부분을 말 위에 앉아 말을 달리며 한 달을 넘게 지내는 것이 결코 쉬운 여정은 아니다.

말을 조금 더 달려 관도를 따라가다 보니 선위 현이 나왔다.

꽤 큰 객잔으로 들어와 식사를 마치고는 목욕물에 몸을 담그며 피로를 풀고 나니 절로 잠이 쏟아져 온다.

완벽한 하루의 마무리였다.

물론 객잔으로 들어오며 둘의 행색을 보고 멸시하고는 내쫓으려던 점소이가 공숙의 손에 목이 잡혀 대롱대롱 매달려 고생을 조금 했지만, 연수 또한 여독으로 피곤했기에 모르는 척했던 사소한 일이 있기는 했다.

하루를 일찍 마감한 연수는 다음 날이 되자 바로 하오문을 찾아 현재 곤륜 도사들의 행방을 알아보았다.

금자 한 냥을 지출하여 알아낸 그들의 최근 위치는 덕굉현.

운남의 북쪽 끝에 있는 서장과 매우 가까운 현이었다.

객잔으로 돌아오는 연수의 표정이 매우 경직돼 있었다.

‘도사들이 운남에 도착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덕굉에 있다···. 국경을 넘을 생각인가? 아니면···. 뭔가 있는 건가?’

객잔에 도착한 연수는 공숙과 하루의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말에 올랐다.

“덕굉까지 얼마나 걸려?”

“글쎄요. 얼추 열흘 이상은 걸릴 거에요.”

“꽤 머네.”

“그것보다···. 어쩌면 국경을 넘을지도 모르겠어요.”

“국경을?”

“예. 도사 놈들이 왜 덕굉에 머무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국경을 넘으면 따라갈 생각이에요.”

“도사들이 서장으로 갈 거라 생각해?”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미 곤륜으로 돌아갔어야 할 도사들이 덕굉에서 버티고 있으니 국경을 넘지 않을까 생각돼요.”

“왜 도사들이 돌아가는 게 상식적인 거야?”

“사부가 서장으로 가셨다면 사실상 도사들은 사부를 찾는 것이 불가능해요. 그런데 덕굉에서 무거운 엉덩이를 비비고 있다면···.”

“그렇구나. 아니면 도사 놈들이 사부가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는 거라면?”

“도사들 머리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을 거예요. 서장은 신강 청해 사천 운남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요. 그런데 덕굉을 지키며 사부가 다시 돌아올 때를 기다리며 주력 고수인 장로 셋이 시간을 낭비한다는 건 생각하기 힘들어요.”

“서장은 되게 크구나.”

“저도 잘은 모르지만 듣기로는 그랬어요.”

관도를 따라 속도를 올리는데 저 멀리 먼지를 흩날리며 많은 무인이 피를 튀며 싸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글쎄요. 문파들끼리 사생결단이라도 내는 것 같은데···.”

회색 무복을 입은 도를 든 무사들과 황색 무복을 입고 손에 창을 든 무인들의 싸움은 백중세를 유지하며 양쪽에 사상자를 쌓아가고 있었다.

“하필 관도 위에서 뭐 하는 짓인지.”

“그러니까요. 싸우려면 안 보이는 데 가서 싸울 것이지. 저게 무슨 민폐냐고요.”

“기다릴까? 돌아가기도 힘든데.”

싸움을 지켜보던 연수의 볼이 씰룩이며 미간이 찌푸려졌다.

“돌파해요.”

싸움의 한가운데로 말의 속도를 높이는 연수.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는 곳으로 말을 달리는 연수에게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길을 터라!”

강력한 내공을 담아 내지르는 연수로 인해 순간 치열하던 장내의 사람들이 멈칫하며 모든 시선을 연수에게 집중했다.

사자후라고 하기에는 훨씬 거칠고 고막을 때리며 인상을 찡그리게 하는 강력한 소음에 가까운 굉음을 만든 말을 탄 고수에게 의문을 담은 시선들이 모여들자 연수는 다시 한번 굉음을 질렀다.

“왜 길을 막고 그 지랄들이야! 꺼지라고!”

가까워진 연수가 살기를 담아 굉음을 지르자 자연스럽게 인파가 갈라지며 길이 열렸다.

갈라진 길을 두 말이 지나가고 멍하니 멀어지는 두 말을 지켜보던 두 무리는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저 도를 든 놈들 사파 같던데?”

“왜요?”

“도에 철상도라고 새겨져 있던데?”

“아, 철상문! 철상혈괴가 문주로 있는···.”

“응.”

“그럼 황색 무복 놈들은 정파겠네요.”

“그렇겠지?”

연수는 인상을 구기며 뒤를 돌아봤다.

먼지를 날리며 싸움을 이어가는 무리가 저 멀리 작게 보였다.

“하필 관도 위에서 저 지랄들인지. 쯧쯧”

길을 따라 말을 달리는 연수와 공숙은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이 심각해졌다.

“또···. 인 거 같죠?”

“응. 대규모 기세야.”

“왜 이 근방에서는 가는 곳마다 싸움질들일까요?”

말을 달리는 동안 관도 근처 이곳저곳에서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며 비명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정사 대전이라도 일어난 거 아닐까?”

“그러면 이런 문파끼리의 국지전보다 결집을 했을걸요?”

“그럼 왜들 이러지?”

“글쎄요···. 아마 다들 전운을 느끼고 미리미리 상대방 싹을 자르려는 거 아닐까요?”

“그런가?”

“이러다가 진짜 정사 대전이라도 벌어지면 골 아프겠네요.”

“왜?”

“정파가 이기면 저희 같은 사파인은 당연히 살기 힘든 세상이 올 것이고 사파가 이기면···. 민초들이 살기 힘든 세상이 올 테니까요.”

“사파라고 다 나쁜 건 아니야.”

“알아요. 그런데 대부분은 어찌 되었든 민초의 피를 빨며 사는 게 사실이에요.”

“그래도···.”

“누이는 참전 안 할 거죠?”

“나는···.”

말을 잇지 못하는 공숙을 돌아보는 연수.

“걱정 마세요. 정사 대전이 아니라도 남궁세가 놈들은 꼭 죽일 수 있으니까요.”

“그럼 나는 참전 안 해.”

“고마워요.”

“뭐가?”

“그냥요. 사부의 안위만 확인되면 그때부터는 제가 누이를 도울게요.”

“응!”

열흘을 넘게 말을 달리며 이동하는 동안 운남 곳곳에서는 문파 간의 혈전이 이어졌다.

객잔을 잡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근처 문파 간의 싸움을 주제로 이야기가 한창이었고 어디를 가도 대화의 주제는 문파 명만 달라질 뿐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종전현으로 들어선 연수는 제일 먼저 하오문을 찾았다.

“무슨 정보를···.”

“곤륜파 장로 셋이 제자들을 끌고 운남에 있다지. 아직 덕굉에 있나?”

상대의 말을 끊으며 묻자 중년의 하오문도 표정이 굳어졌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대뜸 반말을 해대니 심사가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런 상대의 심기를 읽은 연수의 몸에서 강렬한 기세가 뿜어졌다.

“나 바빠.”

“그, 금자···.”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품에서 금자 한 냥을 꺼내 던지는 연수.

“덕굉현에 풍림 객잔에 묶으며 대수산을 오가는 거로 알고 있소.”

“대수산?”

“덕굉현에 있는 산인데 산맥을 따라서 올라가면 서장으로 이어지오.”

“거기서 뭘 하는데?”

“거기까지는 알 수가 없소. 한번 입산하면 이 삼일씩 있다가 내려온다고 하오.”

“풍림 객잔이라고?”

“그렇소.”

확인을 마치고는 뒤돌아 나가는 연수를 바라보는 중년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객잔으로 돌아오자 공숙이 음식을 시켜 놓고 연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있대?”

“예.”

“계획은 있어?”

“일단 그들이 묵는 객잔으로 가서 머물며 분위기를 살펴야겠어요.”

“응.”

식사를 마친 둘은 바로 말을 달렸다.

이틀 후 덕굉현에 도착한 연수와 공숙은 사람들에게 물어 풍림 객잔을 찾았다.

제법 큰 객잔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기품이 느껴질 정도로 잘 정리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객주의 기세가 심상치가 않았다.

정중하지만 비굴하지 않은 점소이의 접객 태도 또한 보통의 객잔이 아니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객잔이었다.

점소이에게 말을 맡기고 안으로 들어서서 자리를 잡고 앉자 공숙의 전음이 날아들었다.

-저 객잔 주인 무공을 익혔어.

연수는 객잔을 둘러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계산대에 앉아 손님을 맞고 있는 객주에게서 연수 또한 무인의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

-정갈한 기세가 느껴지는 것이 정파인 같은데요?

-아마도 맞겠지. 도사 놈들이 사파인이 하는 객잔에 묵진 않을 테니까.

점소이가 다가와 주문을 받아 가는데 연수의 시선이 경쾌하게 뒤돌아 걷는 점소이의 발에 닿았다.

-저 점소이도 무공을 하나 본데요?

-점소이가?

-예. 발끝으로 걷는 모양이 어설프나마 뭘 배워도 배운 모양이에요.

-이 객잔 뭐지?

-글쎄요. 당분간 지켜보죠.

연수와 공숙은 며칠 동안 객잔에 머물며 덕굉현을 돌아다녔고 대수산 근처 입산길을 살피기도 했다.

그렇게 오 일째가 되자 드디어 도사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점심 무렵 객잔 안으로 들어서는 도사 무리는 며칠 제대로 씻지도 못한 몰골로 객잔으로 들어섰다.

매일 계산대에 앉아 손님만 받던 객주가 일어나 허리를 굽히며 도사 무리를 맞았는데 그걸 보는 연수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절름발이?’

오른쪽 다리를 절룩이며 늙은 도사들을 극진히 접대하는 객주의 모습으로 보아 곤륜의 무학을 배운 거로 짐작이 되었다.

도사들이 자리에 앉자 내력을 끌어올리며 이목공을 펼치는 연수.

“사형. 언제까지 이곳에서 이러고 있어야 할까요?”

“글쎄···. 장문인에게서 연통이 오질 않으니···.”

“듣자 하니 맹과 사황성의 전황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이런 중요한 때에 본산을 비워 놓는 것이 맘이 편칠 않아요.”

“어디 자네만 그렇겠나? 나 또한 마찬가지야. 하지만 어쩌겠나? 우리는 그 고수의 정체를 꼭 밝혀야 하네. 만약···.”

대화가 끊기는 것이 중요한 대화는 전음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 그렇죠.”

“저, 스승님.”

조심스럽게 대화에 끼어드는 젊은 도사를 슬쩍 본 연수의 입매가 비틀렸다.

-왜 그래?

-저 젊은 도사 놈 말이에요. 곤륜의 일대 제자인데 수준이···.

-킥킥. 별거 아닌데?

-예. 저는 또 장로들 직계제자에 장문 제자까지 있다길래 얼마나 대단한가 했더니···.

-그러게. 차라리 지난번에 같이 있던 장로 두 명이 훨씬 부담스러워.

연수는 무황의 제자는 아니었지만 무황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런 입장에서 묘한 경쟁의식을 곤륜의 제자들에게 느끼고 있었는지 생각만큼 대단치 못한 일대 제자들의 수준을 보며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연수의 귀로 속삭이는 도사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정말 장수무투와 그 고수가 이쪽으로 올까요?”

“솔직히 우리인들 알 수 있겠느냐? 그저 장문인이 직접 고용한 이가 그리 연통을 보내고 있으니 기다릴 뿐이지.”

“제 생각으로는 장수무투와 그 고수는 서장으로 도망쳐 몸을 숨겼을 것 같습니다.”

“내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장문인이 무슨 생각인지 이곳을 지키고 있으라니 따를 뿐이다.”

늙은 도사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입가심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영환아.”

“예. 사숙.”

“너는 장문인의 의중을 좀 알겠느냐?”

“부족한 제가 어찌 스승님의 큰 뜻을 알겠습니까? 그저 무언가 연유가 있겠거니 할 뿐이지요.”

평소 과묵하고 속이 깊어 장문인의 신임을 받는 장문 제자 영환에게 무언가 언질이 있지는 않았을까 물어본 것인데 딱히 그런 것은 없었던 듯하여지자 늙은 도사의 얼굴에 실망의 빛이 어렸다.

“답답하구나. 장수무투야 잡아도 그만 못 잡아도 그만이다. 하지만 그 고수는 대체 정체가 뭐란 말이냐.”

“저 사부님.”

“말하거라.”

“내일도 입산하는 것입니까?”

피곤한 기색을 그대로 들어내며 말하는 젊은 도사를 보는 눈매에 노기가 어리는 늙은 도사였다.

“이놈아! 밖에 나왔다고 수련을 게을리 하려는 게냐?”

“그, 그것이 아니고···.”

“아니긴! 에휴, 이 못난 놈. 영환과 수곤을 봐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산중수련을 알아서 하는데, 대체 네놈은···. 아휴.”

깊은 한숨에 주눅이 드는 젊은 도사.

“사숙님 척관 사제가 그동안 갑갑했나 봅니다. 저희 모두 척관 사제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노여움을 푸십시오.”

속 깊은 장문 제자 영환을 보는 늙은 도사의 눈에 따뜻함이 어렸다.

“그나마 영환이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척관이 저놈에게 너 같은 사형이 있다는 것은 저놈 인생에 제일 큰 복이야. 어디서 저런 놈이···. 에잇!”

말을 채 마치지 않고 일어서 위층으로 올라가는 도사.

척관이라는 도사는 고개를 푹 숙이며 풀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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