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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70화 (70/202)

# 70화

해가 떠오르기 전 눈을 뜬 연수.

습관적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다가 멈칫하며 기감을 펼쳤다.

“하~암. 잘 잤어?”

공숙이 기척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는 하품을 하며 들어왔다.

“거 입에 파리 들어가요.”

공숙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하는 연수.

“또! 또 그런 차림으로···!”

공숙의 옷차림은 보통 기루에 여인들이 잠자리를 상대할 때 입는 속옷 차림이었다.

“뭐 어때. 남매끼리.”

“아무리 의 남매라 해도 내외 할 건 해야죠.”

“귀찮아. 하아아암. 먼저 해.”

더 말해 봤자 듣지도 않을 것을 잘 알기에 그냥 눈을 감고 가부좌를 트는 연수.

연수의 눈이 떠지자 어느새 침상으로 엉덩이를 들이밀며 연수를 밀어내는 공숙.

“하아···. 거 누이 좀 조신해 집시다. 그러다 시집 못갑니다.”

“치, 안 가면 되지.”

“됐어요. 말을 말아야지.”

오전의 끝 무렵이 되자 둘의 운기조식이 모두 끝이 났다.

“빨리 옷 갈아입고 내려와요. 서둘러야 해요.”

“응 알겠어.”

탁자에 올려놓은 장포를 걸치며 밑으로 내려온 연수.

공숙과 늦은 조식을 먹고는 서둘러 객잔을 나왔다.

둘의 여행길은 비교적 무난한 나날을 이어갔다.

“계속 해안으로 이동해야 해?”

“그게 사람들 시선 끌 일도 없고 좋잖아요. 한적하기도 하고.”

“나는 큰 도시 구경도 하고 싶은데···.”

“서호에 가면 싫어도 많이 구경 할 거예요.”

“서호에 가면 뱃놀이해도 돼?”

“예. 뱃놀이하죠, 뭐.”

연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쉬엄쉬엄 걷던 둘은 마을을 지나고 사람들의 시선이 끊기는 한적한 관도가 나오자 경공을 펼치며 달렸다.

한참을 달리는데 둘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멈춰서는 둘.

“혈향···. 맞죠?”

“응. 그것도 이 정도로 진하다면···.”

뒷말을 듣지 않고도 연수또한 느끼고 있었다.

한두 명이 죽어서 퍼지는 냄새가 아니었다.

천천히 걸으며 내기를 끌어올려 만약을 대비하는 둘.

“읔.”

관도를 따라 크게 돌며 숲으로 들어가자 펼쳐지는 광경에 연수는 인상을 찡그렸다.

수십 구의 시체가 참혹하게 난도질 되어 있었다.

“사지가 멀쩡한 시체가 한 구도 없네. 이거 그놈들 맞지?”

“예. 저 가슴에 활자는 아마도 무림맹 맞을 거예요.”

공숙은 시체들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사파와 한판 붙은 걸까?”

“글쎄요. 아마 한 명에게 당한 게 아닐까요?”

“왜?”

“자세히 살펴봐요. 시체에 남아있는 상처들이 거의 같아요. 잘린 팔다리의 단면도 그렇고. 무엇보다 이들의 시체 말고는 뭐하나 흔적이 없어요. 단체로 한판 붙었다면 이들만 이렇게 몰살을 당했을 리가 없어요.”

“싸워서 이긴 후에 자기들 동료 시체는 다 챙겨 갔겠지.”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일방적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어?!”

그때 공숙의 시선이 한쪽으로 집중되었다.

자연스레 연수의 눈길이 공숙을 따라갔다.

둘의 시선이 머문 곳에는 가는 숨을 겨우 이어가는 젊은 무사가 있었다.

“아직 살았네.”

공숙은 손에 내력을 끌어올리며 일장을 준비했다.

“기다려요!”

“이게 이놈을 도와주는 거야.”

“알아요. 그래도 잠시 기다려 봐요.”

다 죽어가는 무사의 상처를 살피는 연수.

등을 가로지르는 긴 검상은 생각보다 깊진 않았지만, 문제는 가슴팍에 난 작은 구멍이었다.

등 쪽으로 관통된 거로 보아서 강력한 지공에 당한 것처럼 보였다.

‘무인의 몸을 관통할 정도의 지공이라···.’

“으으으···.”

연수는 장포안 허리춤에 메어온 수통을 풀러 무사의 입에 천천히 부어 주었다.

“정신이 좀 드시오?”

무사는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며 입을 뗐다.

“전극공합이···. 넘어갔소···. 전극공합이···!”

그 말만 남기고는 정신을 잃은 무사.

잠시 고민을 하던 연수는 품에서 금창약을 꺼내서는 무사의 등과 가슴에 바르고 무사의 혈도를 쳐서 더 이상의 출혈을 막았다.

“뭐 하는 거야?”

날카로운 눈매로 묻는 공숙.

“살릴 수 있으면 살려야죠.”

“뭐 하러?”

“눈앞에서 죽어가는데 그냥 두면 잠자리가 사납지 않겠어요?”

“난 잘자.”

“전 안 그래요.”

“...”

공숙은 마음에 들지 않는 눈으로 연수의 등을 잠시 노려보다가 연수의 뒤를 따랐다.

“후회할걸?”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하고 후회하는 게 더 낫데요.”

“누가 그래?”

“어떤 사람이 그랬어요. 누이는 처음 보는 음식을 먹고 후회하는 것과 안 먹고 그때 먹을 걸 하고 후회는 거랑 어떤 선택을 할거에요?”

무사를 안고 걸음을 옮기는 연수의 뒤를 따르는 공숙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졌다.

“음식을 먹는데 왜 후회를 해?”

“맛이 없어서 입맛을 버릴 수도 있지요.”

“반대로 너무 맛있어서 기쁠 수도 있잖아.”

“그거에요. 이 사람을 살려서 해만 되지 않으면 이 사람도 살아서 좋고 저도 좋은 일 해서 좋고 둘 다 좋잖아요.”

“그거랑은 다르지. 알잖아? 무림맹 놈들은···.”

-우리랑은 상극이야.

뒷말을 전음으로 전하는 공숙의 노련함에 연수는 피식 웃었다.

-그럴 수도 있죠. 확실히 이 놈들 때문에 죽을 뻔했으니까. 그래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에요.

-너 이상해. 알아?

-알아요.

무사를 안고 한참을 걷자 작은 마을이 나왔다.

마을에 들어선 연수는 마을에 작은 의원에 무사를 눕혔다.

“어때요?”

무사의 옷을 벗기고 상처를 한참 살피던 노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힘들겠네요.”

“무림인이에요. 어떻게 버티고 살길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미 사경을 헤매고 있어요. 기호혈을 정확히 꿰뚫려서···.”

“사혈은 아니잖아요.”

사혈이 아님을 정확히 짚어 오자 노인의 시선이 연수에게 돌아갔다.

“당신도 무인이군요.”

“예.”

“혹 당신의 솜씨요?”

“설마요. 근처에서 사경을 헤매길래 데려온 거죠.”

“흠···.”

“무림맹의 무사 같던데 살려놓으면 사례할 겁니다.”

“괜히 불똥이나 안 튀면 다행이지.”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정파인 무림맹에서 해코지야 하겠습니까?”

“무인들과 얽혀서 좋은 일이 없어서···.”

“걱정하지 마세요.”

품에서 금자를 하나 꺼내며 밀어 넣는 연수.

“명이 따르면 살 거고 죽으면 천명이 거기까지 인 거죠. 인명은 재천 아니겠습니까?”

말을 마친 연수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노인이 당황했다.

“그냥 가실 거요?”

“갈 길이 멀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세 시진만 도와주시면 살릴지도···.”

“예?”

노인은 연수의 뒤에서 한기를 풀풀 풍기는 공숙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몇 군데 혈을 막아놓고 상처를 지질 거요. 근데 그 주요 혈들을 막아놓으면···.”

“살이 괴사하겠죠.”

“예. 만약 고수가 진기를 좀 불어 넣어 환자의 기운을 돌려주면···.”

“하아···.”

연수는 슬쩍 공숙의 눈치를 보았다.

“마음대로 해. 난 괜찮아.”

“정말요?”

“응. 대신 이쁜 옷 사줘야 해.”

“이, 이쁜 옷이요?”

심히 당황스러웠다. 그동안 공숙이 이쁘다 한 옷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입는 옷과는 거리가 멀었다.

“응. 서호에서는 면사도 풀고 이쁜 옷 입고 다니고 싶어.”

“그, 그게···. 너무 튀는 옷은···.”

“알아. 가슴 보이는 옷은 안 입을게.”

“큼큼! 뭐 그렇다면···.”

“약속했다?”

“예···.”

연수는 불안한 표정으로 걸음을 돌렸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인두를 옆에 화로에 놓은 의원은 대침을 무사의 가슴 몇 군데에 박아 두었다.

‘혈맥이 다 막혔네.’

의원이 연수를 바라보자 연수는 무사의 단전에 손을 올리고는 진기를 불어 넣으며 막힌 혈맥을 우회하여 무사의 기운을 돌렸다.

이미 시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무사의 기운은 굳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연수는 진기를 더 밀어 넣으며 자신의 기운만으로 무사의 몸 곳곳을 돌렸다.

연수의 이마 곳곳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생각보다 진기의 유통이 쉽지 않은 것이 내상 또한 적잖이 입은 무사였다.

‘젠장 괜히 사서 고생하는구나.’

연수는 삼재심법의 요상결을 무사의 몸에서 행하며 최대한 무사의 기운을 유도해 보았다.

-치지지직

“끄아아아악!”

의식이 없던 무사의 눈이 번쩍 떠지며 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절로 들썩이는 무사의 몸.

-쉬익! 툭툭툭!

옆에서 지켜보던 공숙의 손가락에서 뻗어 나온 세 가락의 지풍이 그런 무사의 혈을 짚어 강제적인 수면에 빠트렸다.

“이제 등을 지져야 합니다.”

연수는 단전에 닿아 있는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대로 무사의 몸이 떠오르고, 연수가 손을 떼며 무사의 다리를 툭 치자 그대로 무사의 몸이 뒤집혔다.

그런 무사의 등에 손을 올려 진기를 돌리는 연수.

-치지지직!

살이 타는 냄새와 함께 무사의 온몸에서 땀이 흘러나왔다.

“이 양반 많이 아프겠네.”

의원은 연수의 말을 무시하고는 독주에 담가놓은 실을 바늘에 꿰어 무사의 등을 꿰매기 시작했다.

“후우. 일단 급한 처치는 끝났습니다. 이제 막은 혈도에 침을 뽑을 건데···.”

“알아요. 굳은 혈을 풀어 기운이 통하게 하면 되는 거겠죠.”

“예···.”

의원이 깊숙이 박혔던 대침을 조심스럽게 하나하나 뽑았다.

연수는 한숨을 몰아쉬며 진기를 불어 넣어 무사의 막힌 혈을 조심히 풀어 갔다.

마음 같아서는 단번에 뚫어 버리고 싶었지만, 내상도 심하고 이미 사경을 헤매는 무사에게 그렇게 했다가 기력이 상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다.

이미 내친걸음 어떻게 해서라도 살려놓고 싶었다.

이 고생을 했는데 살리지 못하면 괜히 시간과 공력만 낭비한 꼴이 아닌가.

겨우 그사이 굳어서 막혀 있던 혈을 풀어놓자, 무사의 기운과 피가 원활히 도는지 무사의 혈색이 제법 돌아오기 시작했다.

“후우.”

“다 된 거야?”

지켜보던 공숙이 묻자 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네.”

의원은 그사이 탕약을 가져와 무사의 입을 벌리고 숟가락으로 천천히 먹였다.

탕약 한 그릇을 다 먹이자 연수는 무사의 짚어 놓았던 수혈을 해혈했다.

“끄으으···.”

오만 인상을 찌푸리며 끙끙 앓기 시작하는 무사.

“웬만하면 사시오. 이만큼 공을 들였는데.”

말을 마친 연수는 힐끗 밖을 보았는데 이미 어둑어둑해졌다.

“의원님 묵어갈 방 좀 있습니까?”

“있기는 한데 하나뿐인지라···.”

“그거면 됐습니다. 누이 그 방을 쓰세요. 저는 여기서 잘게요.”

“알았어. 내일은 일찍 떠나는 거다?”

“알았어요.”

심력을 꽤 소비했는지 지치는 몸을 그대로 자리에 눕힌 연수는 눈을 감고는 낮에 보았던 시체들을 떠올렸다.

정확히는 시체들에 나 있던 상흔을 떠올렸다.

연수의 머릿속에 잘려져 있던 시체들이 결합하며 멀쩡한 사람의 형상이 되었다.

한명 한명 사람의 형체가 되어 가던 중 검은 인영이 솟아오르며 복원된 무사들을 상흔이 일치하도록 벤다.

‘검이 아니구나.’

생각이 드는 순간 검은 인영의 손에 들려있던 검이 묵직한 도로 변한다.

‘중도였군.’

인영의 무거운 일도에 추풍낙엽으로 쓰러지며 팔다리가 잘리는 무사들.

‘중도를 쓰는 고수라···.’

연수의 등 뒤로 오싹한 한기가 올라왔다.

머릿속에서 움직이던 인영의 중도가 무겁게 마음을 짓눌러왔다.

‘절정 이상의 고수구나. 어쩌면 나보다 윗줄이야.’

절정 고수만 되면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강호를 주유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마주치지도 못한 적의 무위에 소름이 돋다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감이 넘쳐 흐르던 마음을 다잡는 연수였다.

‘어째 이제 시작인 느낌이 드네.’

강호에서 절정 고수의 위치는 매우 특별하다고 알고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

명문의 문파나 무가를 보더라도 절정 고수의 숫자는 그렇게 많지가 않다.

절정 고수의 숫자가 스무 명만 되어도 어마어마한 전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대게 이십 대의 나이에 절정에 오른다면 후지 기수 중에는 최고라며 떠받드는 것이다.

명문대파도 그럴진대 중소문파의 경우는 잘해야 한두 명 있거나 없거나였다.

문파 간에 싸움에서 절정 고수의 유무 차이는 매울 수 없는 차이다.

일류고수로는 막는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고 막아낸다고 해도 특별한 진을 치지 않는 이상 엄청난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무림에서 절정 고수의 반열에 오른다는 것은 어디를 가던 환영을 받고 존경을 받는다는 의미였다.

그런 고수가 되었다.

드디어 사부가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 고수의 경지에 올랐는데 어째 앞날이 그다지 순탄치 않을 것 같은 불길한 감이 드는 연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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