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66화 (66/202)

# 66화

늪 속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오랜만에 바깥으로 나오니 온몸에 범벅이 되어있는 진흙이 너무나 찝찝했다.

이목공을 펼치는 연수.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기감을 넓혀 보았지만, 주변에 무인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작은 물가에서는 감당이 안 되겠는데?’

몸을 내려다보니 이미 진흙에 절어 있는 옷이며 몸이 냇가에서 어떻게 해볼 수준이 아니었다.

이상태로 사람을 만난다면 난감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았다.

조심하며 주의를 기울여 이동하는 연수.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붙은 진흙들이 굳어오며 찝찝함을 더해갔다.

한참을 주변을 살피며 이동하는데 연수의 귀로 '쏴아아' 하는 폭포수의 소리가 들려왔다.

연수는 경공을 펼쳐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 크지 않은 삼 장 높이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를 보며 연수는 그대로 떨어지는 폭포수 밑으로 날아갔다.

묵직한 폭포수가 온몸으로 떨어져 내리자 찝찝한 진흙과 약향이 씻겨져 가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폭포수에 두 손으로 힘차게 얼굴을 씻어 내자 개운하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었다.

늪 속에서 대소변을 그대로 보며 느꼈던 거부감과 찝찝함은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들었다.

생각이 닿자 연수는 물가 밖으로 나와 옷을 전부 벗어 놓고는 물속에 몸을 담그고는 한참을 씻어냈다.

물속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각이 끝없는 상쾌함과 자유를 만끽하게 해주었다.

늪 속에서 겨우겨우 움직이며 짓눌려 보낸 지겹던 기간이 이 차가운 물 속에서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푸하!”

한참을 물속에서 유영하던 연수의 머리가 물 밖으로 나오며 참았던 숨을 뱉어냈다.

터덜터덜 물 밖으로 걸어 나오는 연수의 손에는 팔뚝만 한 물고기가 팔딱대며 쥐여있었다.

연수는 주변에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와서 불을 피우고 모닥불 위로 물고기를 구웠다.

불 위에 물고기를 올리고 벗어 놓은 옷을 보니 얼룩덜룩한 것이 찌든 진흙이 아직 다 씻겨 나가지 않았는데 연수는 옷가지를 획 하고 공중으로 던진 후 주먹질을 시작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퍽!

연수의 주먹이 난타를 하자 옷이 허공에서 이리저리 휘청이며 세탁되었다.

옷을 몇 번 물에 헹궈놓고는 반복하여 주먹질하자 깨끗이 세탁되었다.

웃옷의 품속에 들어있던 전낭을 조심히 열어보고는 그 안에 넣어두었던 전표가 멀쩡한 것은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연수는 진흙을 잔뜩 먹은 전낭 또한 깨끗이 씻었다.

긴 나뭇가지에 옷을 끼워 불 옆에 세워놓고 노릇노릇 익어가는 물고기를 뒤집고어 놓는 연수.

“후우”

주변에 자신을 쫓는 무사들도 없는 것 같고 그동안 도주하며 쌓였던 피로와 부상들도 모두 회복하고 나니 지난 시간이 머릿속을 스쳐 가며 절로 한숨이 나오는 연수였다.

겉이 까맣게 타들어 가는 물고기를 가지 채로 불가에서 빼낸 연수는 후후 불어가며 통통한 옆구리를 한입 베어 물었다.

연한 살이 입안을 가득 채우며 부서지는 맛이 일품이었다.

싱거운 감이 있었지만, 그동안 먹어온 풀떼기들과 나무뿌리와 비교하면 수라상이 따로 없다 느껴질 만큼 좋은 맛이었다.

‘무엇보다 흙이 안 씹히니 정말 좋구나.’

연수가 21세기에서 살 때만 해도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간혹 흙을 파먹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어린 나이 임에도 흙 먹는 아이들을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고는 했는데 이 시대에 와서 흙을 씹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꺼끌꺼끌한 식감과 썩은 나무 맛이 나는 흙 묻은 나무껍질을 먹다가 부드러운 민물고기의 살을 입안에 넣고 씹어 삼키니 세상 편한 행복감이 몰려왔다.

“아, 이제야 살 것 같네.”

어느 정도 허기가 가시자 아직은 덜 마른 옷을 입고는 주변을 살펴보는 연수.

‘한동안 이곳에서 무공을 익히면 딱 좋겠구나.’

연수는 폭포 옆으로 숲속에 작은 오두막을 지어놓고 이곳에서 무공을 익히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상태로 다시 강호로 나가는 것 또한 위험하게 느껴졌고, 무엇보다 황궁의 무고에서 훔쳐낸 무공들을 익히고 자신의 단검술을 완성할 필요가 느껴졌다.

마음먹은 연수는 근처 마을로 내려가서 필수품을 사와 이곳에서 생활할 준비를 하기로 했다.

경공을 펼치며 산길을 찾으며 산에서 내려가는 연수.

한참을 내려가자 인적이 닿은 길이 보였다.

길을 따라 내려가자 작은 마을이 보인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작은 상권이나마 형성되어 있는 마을을 보니 마음이 놓이는 연수.

‘무리해서 현으로 이동할 필요는 없겠네.’

한참 걸음을 옮기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연수의 기감에 내력을 익힌 무인이 걸려 들어왔다.

순간 암동을 펼치며 몸을 숨기는 연수.

으슥한 골목에 몸을 숨기고 있자 가슴에 활자를 수놓은 무복을 입고 칼을 찬 무사 세 명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직도 이 근처에 있는 건가?’

무사들이 지나가고 한참이 지나서야 연수는 조심히 길목으로 나섰다.

변장할 물건은 모두 버려놓고 도망을 치다 보니 위기감이 몰려왔다.

‘그냥 산으로 돌아갈까?’

하지만 무사의 숫자도 몇 되지 않았고, 그다지 경계심도 느껴지지 않아 소금과 쌀만 구해서 빨리 산으로 돌아가기로 한 연수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연수가 외곽으로 움직이며 기감을 넓혀 천천히 움직이는데 연수의 기감에 또 한 명의 기척이 느껴졌다.

기척을 죽이며 조심히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이동해 보자 웬 머리를 산발한 여인이 사람 머리보다 훨씬 큰 무거운 돌을 들고 옮기고 있었다.

‘뭐지?’

연수는 먼발치에서 몸을 숨기고 여인을 살펴보았다.

그런 여인의 주위로 한 무리의 아이들이 나타났다.

“하하하 저 여자야. 맨날 밥 한 끼 얻어먹으려고 몇십 리나 저런 돌들을 옮긴다니까.”

“벙어리인지 말도 안해. 볼래?”

아이는 작은 손으로 조그마한 돌을 들어 여인에게 던졌다.

-퍽

소리와 함께 여인의 머리에 맞은 돌.

아이들은 묵묵히 걸음만 옮기는 여인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벙어리 맞지! 하하하.”

연수는 의문 가득한 시선으로 여인을 살폈다.

아이들의 눈에는 작은 돌이 머리에 맞은 거로 보였겠지만 연수의 눈에는 확실히 보였다.

여인의 몸이 움찔거리는 것을.

분명 무공을 익힌 여인이 맞았다.

날아오는 돌에 무의식적으로 몸이 반응하는 걸 억지로 억눌러 돌에 맞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했다.

무엇보다 꽤 무게가 나가는 저런 큰 돌을 맨손으로 들고 몇십 리나 들고 옮기는 것 자체가 일반인이 매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뭘까? 도대체 누구지?’

연수는 자신의 처지도 잊고 여인에 대한 호기심에 조금 더 지켜봤다.

아이들은 여인을 계속 따라다니며 돌을 던지기도 하고 놀리기도 하며 여인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때 전에 연수가 피했던 무사 무리가 개입했다.

‘분명 무림맹의 무사들이었던 것 같은데?’

“이놈들! 뭐 하는 짓이냐!”

무사 중 수염을 제법 기른 무사하나가 아이들의 행태에 소리를 지르며 나섰다.

여인을 괴롭히던 아이들은 칼을 찬 무인의 호통에 놀라며 그 자리에 굳어 버렸다.

“어린놈들이 벌써부터 몰려다니며 사람 괴롭히는 짓이나 배웠구나!”

“그, 그게 아니에요!”

처음 돌을 던졌던 아이 하나가 변명을 시작했다.

“이놈!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는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 여자가 이상한 여자라서 그런 거예요. 이 여자 우리 마을 사람도 아니에요! 맨날 밥 한 끼 먹자고 저런 돌이나 옮기고 다니고 어른들도 이상한 여자라고 했어요.”

“그렇다고 사람에게 돌을 던져도 된다고 누가 그러더냐? 썩 꺼지거라!”

아이들이 후다닥 사라지자 무사는 여인에게 물었다.

“괜찮소?”

여인은 말없이 걸음을 계속 옮겼다.

“저, 저기···.”

막 뭐라 더 말하려던 무사를 지나쳐 돌을 들고 무거운 걸음을 옮기는 여인.

그때 한참 도망가던 아이가 저 멀리서 소리를 질렀다.

“수염 나는 가짜 여자! 우리 마을에서 사라져라!”

수염 나는 가짜 여자라는 소리에 세 명의 무사들의 눈빛이 변했다.

“멈춰라!”

여인의 앞을 막아서며 검을 뽑는 세 무사.

여인은 돌을 내려놓고는 멈춰섰다.

“처유희와 무슨 관계지?”

“...”

여인은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분명 그놈과 관계가 있을 겁니다. 잡아가서 심문해야 합니다.”

다른 무사의 말에 앞에 나선 무사는 여인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우리가 오해한 거라면 지금 말씀하시오. 처유희와 관계가 있소? 혹시 이런 자와 관계가 있지 않소?”

무사의 품에서 나온 용모파기를 보는 여인의 눈이 커졌다.

무사는 그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

“분명 아는 사이군.”

세 무사는 여인을 삼각으로 포위하며 검을 들이밀었다.

“조용히 따라서 온다면···.”

-퍽!

앞에 무사가 뭐라 말을 하는데 갑자기 여인의 뒤를 잡고 있던 무사가 여인의 등에 일장을 내질렀다.

“쿨럭! 큭!”

여인은 앞으로 쓰러지며 피를 게워냈다.

산발한 머리가 뒤로 넘어가며 여인의 얼굴이 보였다.

‘공숙 누이! 왜 여기에서···.’

공숙을 알아본 연수는 기가 막혔다.

공숙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됐다. 분명 사부의 손에 이끌려 구모산으로 간다던 공숙이었다.

수염은 깨끗이 면도했지만 그렇다고 공숙의 얼굴을 못 알아볼 연수가 아니었다.

수염만 밀었지 상거지 꼴을 한 공숙을 보는 연수는 갈등이 되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모른 척 지나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저 무사들은 분명 자신 때문에 이 마을에 남아있는 듯 했는데, 괜히 모습을 드러내 겨우 따돌린 추적을 돌리고 싶지 않았다.

이제야 겨우 악몽 같던 그 추적을 피해냈는데 이제 와 반복하고 싶을 리가 없음은 당연했다.

연수의 갈등이 커질 때 기습을 한 무사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사파년 치고는 제법 곱상하구나.”

“계곤! 이게 무슨짓인가?”

“어차피 적이지 않습니까? 혹여 이년이 처유희의 제자라면 그 위험한 독공을 쓸 텐데 저희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여자는 아무리 봐도 제정신으로 보이질 않아! 그런데 뒤에서 기습이라니!”

“상형, 강호에서 그런 동정은 사치입니다. 목숨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저 얼굴을 보시라고요. 제법 괜찮지 않아요? 어차피 맹으로 끌려가면 고문관이 가만두질 않을 텐데···.”

“계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정파인이 그런 말을 입에 담다니!”

“상형 어차피 상형도 남자 아니오? 상형이나 나나 맹에서 출세하긴 그른 소문파 출신의 무사들인데 이런 재미 좀 본다고 어디가 어떻게 됩니까? 안 그렇습니까? 사형?”

옆에서 두 무사의 말을 듣던 무사는 쓰러져 있던 공숙의 얼굴을 슬쩍 보고는 침을 삼켰다.

“큼큼,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장형! 장형까지···. 사제가 잘못을 저지르면 말리지는 못할망정 이 무슨 짓이오?”

“큼큼!”

“참나, 상형은 무슨 군자나 되는 그것처럼 구는군요. 생각 없으면 됐수다. 우리는 알아서 저년을 고분고분 만들어 맹으로 압송할 테니 먼저 숙소에 가 있으시오.”

“뭐?!”

“아니면 같이 재미 좀 보겠소?”

수염을 기른 무사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는 분을 못 참고 발길을 돌렸다.

“흥! 지만 잘났지, 별 볼 것도 없는 문파 출신 주제에. 안 그렇습니까? 사형.”

“근데 저놈이 맹에 일러바치면···.”

“그런 적 없다 잡아떼면 그만이죠. 어차피 사파년 아닙니까?”

“그렇겠지?”

“그럼요. 흐흐 이 년 정상 같진 않은데 빨리 재미 좀 보죠.”

“그래 내가 먼······.”

“사형 제가 먼저 찜했으니 제가 먼저죠.”

공숙에게 다가서며 말하던 무사의 움직임이 멈췄다.

뒤에서 자신의 사형 말이 들려오질 않자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는데 낯선 이의 손이 자신의 시야를 가리며 다가왔다.

거기까지였다.

무사의 의식은.

-우드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