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65화 (65/202)

# 65화

한번 바닥에 주저앉았더니 일어서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다리는 부들부들 떨려오고 온몸은 천근만근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이제는 한계라고 편히 누워 쉬게 해달라며 육체가 악을 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도 멀리서 호각소리가 들려오며 소개가 자신을 위해 달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포기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소개의 얼굴을 볼 면목이 생긴다.

어찌어찌 겨우 몸을 일으킨 연수는 걸음을 옮겼다.

양팔을 휘두르며 점점 속도를 높여 이동하니 조금씩 이나마 단전이 채워진다.

뼈가 보이도록 베였던 어깨의 검상이 조금씩 벌어지며 날카로운 통증이 연수의 머릿속을 맑게 해줬다.

단전이 조금이나마 채워지고 내기가 돌자 흐렸던 시야도 조금씩 또렷해졌다.

얼마나 이동했을까 심한 악취가 연수의 코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읔!”

순간 걸음을 멈추게 만들 만큼 강력한 악취.

‘뭐지?’

연수는 조심스레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곧 악취의 진원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대략 세평이 채 안 되는 늪이 연수의 앞으로 대단한 악취를 자랑하듯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순간 연수의 머리를 스치고 가는 빗살 같은 번뜩임.

‘어쩌면···.’

연수는 서둘러 주변을 살피며 머릿속에 번뜩인 생각과 일치하는 것이 있는지 찾았다.

멀지 않은 곳에 연수가 찾던 대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대나무 중에서도 황조죽이라 불리는 얇은 이 대나무는 말려서 낚싯대로도 쓰는 두께가 약지에서 검지만 한 대나무다.

길이가 대략 6척 정도 되는 대나무 하나를 베어낸 연수는 얼마 안 되는 내력을 조심스레 손끝에 모았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가락을 대나무의 끝에 대고 지풍을 흉내 내 쏘아 보내자 대나무가 쩍쩍 갈라지며 박살이 났다.

‘젠장!’

망가진 대나무를 우거진 대나무 숲 깊숙이 버리고는 한대를 더 잘라 다시 조심스레 대나무의 막힌 마디를 뚫으려 시도하는 연수.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완성한 대나무 대롱을 들고 연수는 늪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코가 달렸음을 저주하게 만드는 악취가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감을 뽐냈다.

‘정말 지독하구나. 도대체 뭐가 들었길래 이리 악취가 심한 거야?’

하지만 이미 내친걸음.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늪으로 돌아오며 주변에 흐르는 물가에서 목을 잔뜩 축였고 대나무 자생지에서 막 자라는 죽순 또한 먹을 수 있을 만큼 먹어 두었다.

이제는 오로지 근성의 싸움이었다.

대나무를 늪에 찔러넣으며 깊이를 가늠해 보는 연수.

늪의 깊이는 대나무가 다 들어가고도 연수의 팔꿈치까지 들어갔다.

‘우욱!’

대나무를 넣어보느라 허리를 숙이며 늪과 얼굴이 가까워지자 그 악취에 헛구역질이 다 올라왔다.

‘대단하네···.’

연수는 이를 악물고 그대로 늪으로 들어갔다.

두 다리를 집어넣자 자연스럽게 몸이 늪에 잠식되기 시작했다.

몸부림을 치듯 발버둥 치자 더욱 빨리 늪에 잠기는 연수의 몸.

순식간에 턱밑까지 잠기자 연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숨을 참았다.

머리끝까지 늪에 잠기자 연수는 가부좌를 틀고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자 드디어 엉덩이가 바닥에 닿는 느낌이 났다.

대나무를 손으로 더듬어 끝을 입에 물려는데 문득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최대한 입술에 힘을 주며 오물이라 표현해도 무방할 진흙을 밀어내며 입에 대나무를 물고는 아랫배에 힘을 주며 힘차게 숨을 뱉어냈다.

-폭

소리와 함께 늪 밖으로 튀어나온 대나무 끝에서 진흙이 튀어 올랐다.

숨을 쉬며 조금씩 자세를 낮춰 드러눕듯 몸을 눕히며 호흡했다.

‘아직 더···.’

조금씩 몸을 눕히자 대나무 끝이 늪에 잠겨 호흡이 되지 않는 단계가 찾아 왔고 거기서 조금 몸을 세우며 그 자세를 유지하는 연수.

늪 밖으로 튀어나왔던 대나무는 이제 한치도 채 되지 않게 늪 밖으로 빼꼼 튀어나와 은폐되었다.

‘이제부터는 인내력 싸움이다.’

연수는 마음을 느긋하게 먹으려 노력하며 숨을 내쉬는데 입맛이 이상했다.

‘꼭 약재 맛 같은데···. 이상하네.’

심한 악취를 자랑하던 늪 속 진흙이 묻은 대나무를 입에 물었는데 약재 맛이 나니 자신의 몸이 많이 피곤해서 착각을 일으킨다고 생각한 연수는 운기를 시작했다.

완벽한 가부좌를 틀어야 했지만 그러기에는 여건이 좋지 않은 연수는 살짝 뒤로 눕는 듯한 자세 그대로 천천히 운기를 시작했다.

들숨과 날숨을 구분할 수 없어 단전이 빠르게 차오르지는 않았지만 그나마 동공을 펼칠 때 보다는 훨씬 나았다.

‘무영심공은 확실히 대영심공보다 뛰어난 심법이구나.’

내기가 몸 안을 활기차게 돌며 상했던 혈과 기맥들이 조금씩 바로잡히자 호흡이 점점 편안해지고 안정적으로 되어가는 연수.

운기 요상을 하지 않아도 제법 그 효능이 있는 무영심공에 연수는 마음이 뿌듯해졌다.

‘무영심공과 지금 변형시키고 있는 단검술만 완성된다면···.’

물론 강가쾌련창을 변형시켜 쓰고 있는 지금의 단검술이 언제 완성될지는 전혀 짐작되지 않았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과는 다른 경지에 올라설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의 위기만 넘기면 된다.’

단전이 든든하게 차오르자 지금껏 쫓기며 쌓였던 피로감에 절로 잠이 쏟아졌다.

남궁진수를 죽이고 도망친 지 벌써 40일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제대로 쉰 적이 없다시피 하다 보니 그간의 피로감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쏟아지는 잠을 거부하지 않고 편히 잠에 빠지는 연수.

꿈속에 연수는 남궁세가의 중년고수와의 사투를 제삼자의 시점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막상 당시에는 제대로 살피지 못했던 많은 부분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특히나 모 아니면 도식으로 상대에게 달려들며 반응이 매우 날카롭고 빠르게 이루어진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 감탄을 했다.

그 당시의 그 감각이 다시 한번 떠오르며 중년인과 싸움을 지켜보는 연수.

자신의 단검이 중년인의 목을 스쳐 지나가자 꿈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깼지만, 꽉 감고 뜨지 못하는 눈.

어둠밖에 없는 눈앞에 흐릿한 하얀 빛이 떠오르며 중년고수의 모습을 흐릿하게 재연했다.

중년고수의 검에서 기사가 뽑혀 나오며 자신을 베어온다.

초록색 은은한 빛을 내는 자신의 신형이 아슬아슬하게 중년인의 기사를 피했다.

‘아!’

연수가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 초록색 빛을 내는 연수의 신형이 빠르게 중년 고수에게 부닥쳐 가며 중년고수를 몰아붙였다.

검기도 기사도 쓰지 않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두 자루의 단검만으로 쉼 없이 공격을 퍼부어 가자 중년고수는 방어하기 급급했다.

중년고수는 회심의 초식을 펼쳐 보지만 채 초식을 펼치기도 전에 연수의 연속되는 공격에 초식을 풀어내지도 못하며 고전을 하더니 머지않아 초록빛을 뿜어내는 연수에 의해 목이 갈라졌다.

중년고수의 빛이 부서지며 점차 사라져 갔다.

그가 사라지자 이번에는 붉은빛을 뿜어내는 남궁진수가 연검을 휘두르며 덤벼 온다.

이리저리 남궁진수의 검을 피해가며 검기를 뿌려 보지만 남궁진수의 기사에 의해 연수의 검기가 갈가리 잘려나가며 연수를 궁지로 몰아왔다.

남궁진수의 기사는 중년고수의 기사보다 훨씬 빠르고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연수를 조여왔다.

아슬아슬하게 기사를 피하며 남궁진수에게 다가서 보지만 쉽게 거리를 주지 않고 오히려 연수를 몰아붙이는 남궁진수.

연검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연수의 요혈 곳곳을 찔러 왔다.

강가쾌련창의 단 한 초식뿐인 방어 초식을 펼치며 연검을 쳐내 보지만 밀려나지 않으며 자연스레 초식을 이어 연수를 공격하는 연검.

반장만 더 다가설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 반장의 거리를 좁히기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뒤로 밀려나는 연수.

연수는 두 빛이 싸우는 모습을 보며 결심한 듯 이를 악물었다.

그러자 초록빛의 신형이 남궁진수의 공격에 공격으로 받아치며 방어를 도외시하기 시작했다.

연수의 팔을 찔러오던 연검이 처음으로 회수되며 방어의 초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늪 속에 잠겨있는 연수의 몸이 움찔거렸다.

한걸음.

초록빛이 붉은빛을 향해 내디딘 한걸음에 연수의 온몸이 찌르르 울렸다.

폭풍처럼 쏟아지는 초록빛의 연격에 점점 수세에 밀리더니 점차 뒤로 물러서는 붉은빛.

붉은빛이 정확히 세 걸음을 뒤로 물러서자 초록빛의 단검이 붉은빛의 목을 갈랐다.

울컥

순간 연수는 손을 들어 대나무를 입에서 떼고 고개를 돌려 늪 속에다 피를 토해냈다.

몸이 조금 가벼워지며 정신이 맑아지고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듯한 감각.

다시 대나무를 물고 호흡하며 무영심공을 운공하자 평소보다 더 큰 기운이 연수의 온몸을 휘돌았다.

무영심공의 운기를 끝내고 삼재심법의 요상결을 운공했다.

여기저기 검상을 입은 채로 늪 속에 몸을 담고 있다는 것이 걱정되었다.

요상결을 운공하는데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검상을 입은 곳들이 간질간질하며 마치 새살이 딱지를 밀어내는 듯한 간지러움이 검상 곳곳에서 느껴졌다.

‘뭐지?’

이상했다.

혹시나 해서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의 검상을 슬쩍 만져 보았다.

‘어? 뭐지?’

제법 깊었고 계속 무리를 해서 상처가 계속 터졌던 부위였다.

한데 벌써 상처가 아물어 쿡쿡 눌러보아도 둔감한 감각만 느껴질 뿐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

‘설마···. 약지 늪?’

약초학 관련 서적을 읽으며 온갖 약초가 들어가 늪지대 전체가 거대한 약탕과 같은 성질을 내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왜 냄새가···.’

분명 땅위에서의 늪지대 냄새는 보통이 아니었다.

연수는 마음을 편히 먹고 머릿속 의문을 지웠다.

좋은 일은 좋게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그 이유가 어찌 되었건 모르는 일을 아무리 생각해 봤자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이곳에 숨어 최대한 몸을 회복하고 그간의 깨달음을 흡수하는 게 지금 최선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

몸의 내상을 모두 치료하고 검상이 완벽히 아물어 볼록 튀어나오며 단단한 흉터가 자리를 잡았다.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문제는 시간을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배도 꽤 고팠고 목도 꽤 말랐다.

하지만 아직 버틸 만한 것으로 보아 며칠 지나지 않은 것도 같기도 열흘이 넘게 지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함부로 밖으로 몸을 빼낼 수가 없었다.

늪지대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밖으로 몸을 빼면 주변에 흔적이 고스란히 남을 테니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몸을 뺄 수가 없었다.

연수는 육체가 한계에 달할 때까지 아슬아슬하게 버텨 볼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잘못 나갔다가는 죽는다. 최대한 버틴다.’

시간 감각을 도무지 느낄 수가 없었지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분명 무림맹과 남궁세가의 추적조라면 흔적이 끊긴 시점에서 반경을 넓히며 추적을 이어갈 테고 이 산맥을 이미 샅샅이 뒤져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발견되지 않을걸로 보아 지금 이곳은 밝은 등잔의 가장 어두운 밑이 분명했다.

연수는 간혹 이목공과 기감을 최대로 펼쳐 보았지만 늪 속이라 그런지 도무지 느껴지는 것이 없었다.

‘오래 버티는 놈이 이기겠지.’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늪 속에서 몸을 일으켜 천천히 움직이며 몸이 굳지 않게 몸을 푸는 연수.

‘문제는 식량과 식수인데···.’

이 안에서는 오래 버틸 식량도 식수도 없었다.

지금의 몸 상태로 본다면 운기로 버틴다 해도 보름이 한계일 것이 분명했다.

‘아!’

순간 무언가 떠오른 연수.

연수는 대나무를 통해 최대한 숨을 마시고는 조금씩 손을 더듬으며 벽을 찾았다.

엄밀히 말해 이 늪 속은 땅속이라 할 수 있었다.

벽은 분명 흙으로 이루어져 있을 테니 파헤치다 보면 나무뿌리나 칡뿌리라도 있을지 몰랐다.

한참을 숨을 참으며 손에 느껴지는 벽의 감각을 찾던 연수의 입매가 비틀렸다.

‘찾았다!’

양손에 내력을 끌어모으며 흙벽을 파헤치는 연수.

한참을 파헤쳤더니 손끝으로 나무뿌리가 느껴졌다.

하나 남은 단검으로 뿌리를 잘라낸 연수는 조심히 앉아 대나무를 통해 호흡하고는 나무뿌리의 껍질을 조심히 벗겨냈다.

그리고 껍질을 입에 갖다 대다가 멈칫했다.

‘너무 더러운데···.’

늪 속에서 모든 행동을 하다 보니 당연히 이 나무껍질에는 이 늪의 진흙이 잔뜩 묻었음이 당연했다.

잠시 망설이던 연수는 와락 인상을 쓰며 입술 속으로 나무껍질을 밀어 넣으며 최대한 진흙을 입술로 밀어내 나무껍질을 입에 쑤셔 넣고 씹었다.

으적으적 나무껍질을 씹는데 이사이로 씹히는 흙의 식감이 연수의 기분을 심히 우울하게 했다.

좋은 느낌이 절대 아니었다.

평소 같으면 돈을 뭉텅이로 준다 해도 먹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씹어 삼키고 나서 대나무를 통해 호흡하면 묘한 약향이 입안에 남아있다는 것이었다.

‘먹어도 병은 걸리지 않겠지.’

그렇게 나무뿌리만으로 연명하며 버틴 지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연수의 육체는 한계에 달했다.

정확한 시간의 흐름은 모르겠지만 거의 탈진상태에 온 것을 보면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물론 나무뿌리에는 어느 정도 수분이 포함되어 아직 버텨오기는 했지만, 더 버티다가는 이 늪에서 빠져나갈 기력마저 날아가 이 안에서 아사할 것이 분명했다.

연수는 품에서 실이 달린 바늘을 더듬어 손에 쥐었다.

손에 쥔 바늘을 쏘아내자 바늘이 순식간에 늪 밖으로 날아가며 실이 풀려갔다. 점차 실이 천천히 풀리더니 이내 실의 풀림이 멈췄다.

실을 당겨보자 쉽게 끌려 왔다.

‘젠장.’

천천히 실을 감아 다시 바늘을 손에 쥔 연수는 다른 방향으로 바늘을 쏘아 보냈다.

몇 번의 시도를 하자 드디어 실이 팽팽해졌다.

‘박혔구나!’

순간 연수는 내력을 끌어올려 경신술을 최대로 펼쳐내며 실에 내력을 조심히 보내며 실을 강화했다.

잠시 내력을 조절하던 연수는 팽팽해진 실을 당기며 힘차게 발을 굴렀다.

-파앗! 후두둑.

늪지대 위로 연수의 신형이 튀어 오르며 주변으로 연수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던 진흙들이 떨어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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