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수정)
‘기사!’
연수의 눈이 커졌다.
“크크크, 이제 실감이 좀 되지? 그래 지금 그 표정 좋아. 아아···. 너무 좋아!”
연수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서며 남궁진수의 눈을 노려봤다.
“이 변태 새끼. 이제 보니 제대로 미쳤구나.”
“크크크 글쎄? 그저 죽음의 공포에 떠는 너 같은 얼굴을 좋아할 뿐이야.”
능글거리는 남궁진수를 보며 연수의 등 뒤로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어때? 이제부터라도 빌어보며? 또 알아? 잘못했다고 싹싹 빌면 죽이지 않을지도 모르잖아?”
연수는 검을 납검하며 자신을 조롱하는 남궁진수를 보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푸하하하 빌란다고 정말 비는구나. 이 천한 놈아! 이게 너와 나의···. 큭!”
고개까지 저치며 대소를 터트리던 남궁진수는 순간 따끔한 느낌과 묵직하게 저리는 오른발의 감각에 뒤로 물러서며 발밑을 내려다봤다.
엄지발가락에 꽂혀 있는 바늘.
“이, 이 새끼가!”
“왜? 너도 자주 하는 거잖아. 암습.”
“뭐?!”
“남궁가는 가정교육은 발로 하는 거냐? 어떻게 하면 너 같은 희대의 미친놈이 나왔지?”
순간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며 연검을 쥔 손에 힘을 주고 달려들려는 남궁진수.
하지만 이어지는 연수의 말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네가 당한 독, 그거 빨리 해독 안 하면 골 아플걸?”
아닌 게 아니라 서둘러 내력으로 누른다고 눌렀지만, 독기가 벌써 무릎까지 퍼져 오르고 있었다.
남궁진수는 내력을 더 끌어올리며 독기를 누르고는 연수를 노려봤다.
“이 천한 새끼가 비겁하기까지!”
“비겁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네가 흡성신공의 고수를 합공 하고 암습하는거 다 봤다, 이 새끼야! 네가 하면 기습이고 내가 하면 암습이고 비겁이냐?”
“!”
순간 굳어지는 남궁진수의 표정.
자신이 흡성신공의 고수를 뒤쫓은 사실은 세가 외로 나가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 그 몸으로 나 쫓을 수 있겠어? 그거 생각보다 지독한 독이다.”
말을 마친 연수는 경공을 펼치며 장내를 벗어났다.
남궁진수는 품속에서 목합을 꺼내며 청량한 향이 나는 단약 하나를 손으로 집었다.
“이렇게 쓸 게 아닌 것을···.”
단약을 입에 넣고 삼킨 남궁진수는 일그러진 얼굴로 연수의 뒤를 쫓았다.
‘역시나 쫓아오는구나. 변태 새끼.’
두 발로 달리던 연수의 허리가 숙이며 두 손이 바닥에 닿았다.
두 손이 바닥과 닿음과 동시에 빠르게 치고 나가는 연수.
남궁진수는 순식간에 사라져 가는 연수의 뒷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
가뜩이나 독기를 누르느라 내력의 소모가 심한데 연수를 따라잡으려면 더 내력을 쏟아야 하니 스멀스멀 올라오는 화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내력을 더 끌어올려 경공에 박차를 가해 달리는 남궁진수.
연수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를 유지하며 연수의 뒤를 쫓고 있었다.
‘잘도 따라오네.’
연수는 중독된 상태로 자신의 뒤를 바짝 쫓아 오는 남궁진수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피슝
‘쳇’
연수와의 거리가 어느 정도 좁혀지자 지풍을 날리는 남궁진수였다.
연수의 허리와 엉덩이가 좌우로 씰룩대며 좌우로 몸을 흔들며 달려가자 남궁진수의 지풍이 애먼 흙바닥만을 파헤쳤다.
‘괜히 절정 고수는 아니네. 중독되고도 저럴 여력이 있단 말이지.’
반면 남궁진수는 끓어 오르는 화가 정점에 달했다.
안 그래도 화가 뻗치는데 앞에서 엉덩이를 씰룩대며 날리는 지풍을 족족 피해 버리는 연수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약이 바짝 오른 것이다.
“이 천한 새끼야! 언제까지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는 넌 언제까지 쫓아 올 수 있을 것 같냐? 미친놈의 새끼야!”
검을 쓸 수 없는 미묘한 격차를 두고 둘의 추격과 도주는 이어졌다.
한참을 도망치던 연수의 입매가 비틀리며 허리를 펴고 서서 달리는 연수.
연수의 손에서 쉭 소리와 함께 바늘이 쏘아졌다.
남궁진수는 자신이 있는 방향과 전혀 관계없는 허공에 바늘을 쏘는 연수를 보며 피식 웃었다.
“자포자기 했구···.”
-슉 퍽!
비아냥대던 남궁진수는 갑자기 왼쪽에서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에 대경하여 말을 끊고는 옆으로 물러섰다.
앞으로 경공을 펼치던 와중에 급작스러운 움직임을 강제당하자 독을 당해 가뜩이나 상태가 좋지 않던 다리에 무리가 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연수를 쫓기 전 복용한 영약으로 독기를 누르고 밀어내는데 더는 큰 심력을 쏟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남궁진수는 주변을 살피며 기감을 넓혔다.
“누구냐!”
연수는 남궁진수와의 거리를 한참 벌려놓고 남궁진수를 도발했다.
“크크크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모르다니 너 정말 고수 맞아? 남궁세가는 할 줄 아는 게 합공 밖에 없는 거지?”
가뜩이나 화가 치밀어 올랐던 남궁진수였다.
순간 화를 못 참고 연수에게 몸을 날리는 남궁진수.
-슉! 퍽!
연수에게 채 다가서기도 전에 날아오는 화살에 다시 뒤로 물러서는 남궁진수.
그런 남궁진수의 입매가 뒤틀리며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겨우 이런 저급한 함정을 믿고 있었냐? 이런 같지 않은 함정 따위보다는 개처럼 기어 도망 다니는 네놈 경공이 차라리 나은 것 같은데.”
연수는 대답 대신 허공에 바늘을 쏘아댔다.
순식간에 세 개의 화살이 남궁진수가 서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남궁진수는 뒤로 물러서는 것으로 간단하게 화살을 피했다.
연수는 남궁진수가 물러섬과 동시에 그의 옆으로 돌면서 남궁진수에게 바늘을 쏘아댔다.
-따따땅!
남궁진수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연수에게 달려들었고 연수는 그와 동시에 허공에 팔을 휘둘렀다.
멈칫하며 날아올 화살에 대비하는 남궁진수를 보며 연수의 입매가 뒤틀렸다.
“이 개 새···.”
-쐐액!
남궁진수의 욕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연수의 단검에서 매서운 검기가 쏘아졌다.
남궁진수의 연검이 연수의 검기를 막아내며 연수를 향해 날아들었다.
‘두 걸음 뒤였던가?’
연수는 외워놨던 화살이 날아오는 공간을 살피고는 뒤로 물러서며 남궁진수의 연검을 막아갔다.
남궁진수의 연검은 낭창대며 연수의 목과 단전을 동시에 찔러 왔다.
-채챙!
양손에 들린 단검으로 남궁진수의 연검을 쳐내고는 팔을 휘두르는 연수.
또다시 멈칫하며 주변을 살피는 남궁진수.
“사내새끼가 겁은···.”
씩 웃으며 비아냥대는 연수의 말에 남궁진수의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달려드는 남궁진수의 연검은 주인의 심정을 대변하듯 아지랑이를 피어 올리며 연수의 심장을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다시 한번 휘둘러 지는 연수의 팔.
하지만 남궁진수의 모든 정신은 연수의 얼굴에 쏠려 있었다.
‘찢어 발겨주마!’
-깡!
연검으로 찔러왔다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찌르기였다.
옆으로 쳐냈음에도 제대로 밀려나지 않은 연검은 연수의 왼팔을 스쳐 찌르고 거둬 들여졌다.
- 슉 푹!
남궁진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거둬들인 검을 돌려 그대로 연수의 목덜미를 꿰뚫으려 한걸음 내디딘 오른쪽 다리의 안쪽 허벅지에 그대로 화살이 날아와 박힌 것이다.
'바늘을 날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는데.'
잠시 멈칫한 순간 연수가 남궁진수의 품으로 뛰어 들어왔다.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것 같은 지척의 거리.
도무지 검을 쓸 수 없는 거리로 연수가 들어 옴과 동시에 남궁진수는 연검을 역수로 바꿔 잡고 자신의 목덜미로 날아드는 연수의 단검을 막으려 했다.
시간 감각이 극도로 느려지며 찰나가 억겁처럼 느껴지는 순간.
남궁진수는 자신이 연수의 검을 막아낼 수 없음을 직감했다.
이미 연수의 공격에 대한 반응이 너무 늦었다.
이 찰나의 시간이 지나가면 자신의 목은 연수의 저 검에 의해 갈라져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다.
그 순간 남궁진수의 단전에서 흡수된 내기고 용솟음쳤다.
온몸의 내력을 운문혈과 천부혈로 보내며 연수의 검을 막아내며 일장을 내지르는 남궁진수.
-촤악! 퍽!
“크억! 쿨럭!”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듯한 남궁진수의 진득한 살기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하얗게 뜬 연수의 얼굴.
연수의 입매에는 한줄기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목에 가느다란 혈선이 그어진 남궁진수와 가슴을 부여잡은 연수.
첫 살인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때문인지 그게 아니면 과도한 흥분상태 때문인지 목을 벤 연수의 손이 덜덜 떨렸다.
가슴팍이 욱신거리는 것이 가슴뼈도 그다지 멀쩡한 것 같지는 않았다.
남궁진수의 목에 그어졌던 혈선이 점차 벌어지며 피가 쏟아져 나왔다.
‘저, 절정 고수를 죽였다. 내 손으로···.’
남궁진수의 경악하듯 커진 죽은 눈과 마주친 연수는 새삼 실감이 나며 서둘러 이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할 일은 해야지.’
연수는 죽은 남궁진수의 품을 뒤져보았다. 품에는 전낭 하나와 작은 목합이 하나 나왔다.
연수는 서둘러 목합을 열어 보았다. 목합 안에는 제법 청량한 향기와 함께 작은 단약이 하나 들어있었다.
‘적어도 세 개는 들어있을 공간인데···. 나머지는 저 새끼가 처먹었나?’
연수는 찰나의 순간 놈에게서 풍기던 폭풍 같은 기세가 떠올랐다.
‘체 중독돼서 이걸 먹고 날 쫓아왔구만.’
연수는 두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노려보듯 누워있는 남궁진수를 잠시 보고는 뒤를 돌아 숲속으로 뛰어갔다.
한동안 도망을 치던 연수는 갑자기 멈춰 서고는 피를 토해냈다.
“우웩!”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경공을 펼치느라 내력을 썼더니 내상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요상결을 펼치는 연수.
주변을 살펴볼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연수의 상태는 급박했다.
전혀 대비하지 못한 일장이었기에 모든 내장기관이 진탕되며 타격을 입었고, 가슴의 화개혈부터 전신으로 내기가 지나다니는 대맥과 거궐혈이 모두 상해버렸다.
자칫 이대로 방치 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지도 모를 부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