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60화 (60/202)

# 60화(수정)

연수는 그간의 시간의 흐름을 차분히 따져 보았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와 잠들었던 시간까지 천천히 따져 보는 연수.

‘얼추 밤이 맞아.’

어두컴컴한 지하에 숨어 있으면서 시간의 흐름을 예측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었지만 틈틈이 운기를 계속했고, 평소 두 시진 이상은 자지 않는 연수였기에 대략 시간을 측정할 수 있었다.

연수는 머리로 빼꼼히 바닥 문을 들어 올리고는 최대한 조용하게 잠가 놓은 자물쇠를 열었다.

그러고는 몸을 빼내 다시 자물쇠를 잠가 놓고는 이틀 전에 발견한 암동이라는 잠행공을 무영심공으로 동화시킨 내력을 끌어올려 펼치며 주변을 살폈다.

‘역시! 저 녀석이었구나.’

보화전 내에는 며칠 전 보았던 어린 내시가 피곤한 표정으로 서책들의 목록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연수는 어린 내시의 머리 위 천장에 매달려 있었는데 특별히 전처럼 못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몇 권의 벽착공 비급을 읽으며 내력을 이용해서 벽에 붙어 있는 방법을 알게 되어 써먹는 중이었다.

못을 이용하는 것 보다 내력의 소모는 심했지만, 나흘을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있었기에 몸에 생각보다 기력이 없어 최대한 체력의 소모를 아끼려는 중이었다.

어린 내시는 한동안 목록을 써 내려가고는 기지개를 켜며 정리를 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보화전의 정문이 열리자 제법 환한 달빛이 사위를 밝히고 있었는데 미풍과 함께 검은 그림자가 보화전에서 밖으로 지나갔다.

경계를 서는 경비병과 어린 내시는 당연하게도 그림자를 눈치채지 못했다.

암동을 펼치며 어둠에 동화하여 이동하는 연수.

‘잠행술이라는 게 제법 쓸만한데?’

벼락치기로 펼친 어설픈 잠행술이었지만 제법 쓸만하다 느끼는 연수였다.

한참을 이동하여 처음 월담 한 위치로 향하는 연수의 발길이 멈췄다.

‘뭐지?’

연수의 기감에 느껴지는 내기.

연수가 지나야 하는 길목에는 금의위 위사 둘이 지난번과 같이 경계를 서며 주변을 주시하고 있었다.

‘또 왜?!’

연수는 잠시 그 자리에서 고민해 봤지만, 딱히 길이 없었다.

‘도박을 하는 수밖에.’

연수는 무영심공을 끌어올리며 암동을 펼쳤다.

사실 연수의 어설픈 잠행술이 수월하게 느껴진 데에는 무영심공의 공능이 큰 힘을 발휘한 덕이었다.

그런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던 연수였기에 암동을 펼치는데 평소보다 더 무영심공을 끌어 올린 것이다.

처음 월담했을 때보다 훨씬 밝은 달빛이 연수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러 왔다.

‘괜찮다. 최악의 경우 천리견보를 펼치면 내가 더 빨라.’

천천히 어두운 곳곳의 지형으로 움직이는 연수.

연수와 위사들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연수의 심장이 강렬히 뛰었다.

사 장, 삼 장 결국 위사들과의 거리가 이장까지 줄어들었다.

그때 위사 하나의 손이 올라갔다.

모든 정신을 위사들의 행동에 집중하고 있던 연수의 몸이 멈칫했다.

올라간 위사의 손이 정수리를 긁고 내려가자 연수의 이마에서 흐른 땀이 콧잔등을 지나 얼굴을 가린 복면을 적셨다.

다시금 천천히 멀어지는 연수와 위사들.

이장에서 삼 장으로 다시 사 장, 오 장.

육 장의 거리를 벌리자 연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황궁의 담을 넘어 밖으로 튀어온 연수는 경공을 펼쳐 최대한 황궁과 떨어진 후에 미친 듯이 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후우”

잠시 쪼그려 앉아 숨을 돌린 연수는 야행복을 벗어 원래의 옷으로 갈아입고는 야행복을 등에 집어넣고는 다시 꼽추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흘 만에 자신의 객방에 창문을 통해 들어온 연수는 찻잔에 물을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찻주전자에 가득 담긴 물을 모두 마시고서야 한숨을 내뱉는 연수.

“하아~ 이제야 살겠네.”

음식이야 며칠 아니 몇 주쯤 굶는다고 상할 연수의 몸이 아니었지만 물은 달랐다.

이슬과 대기의 충만한 기를 호흡으로 흡수하며 몇 달을 산다는 신선과 같은 경지에 다다른 도사도 고승도 아닌 연수였기에 물을 먹지 못한다면 탈진하는 것은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 시일이 조금 더 길어질 뿐.

연수는 갈증을 해소하자 의자에 앉아 차분히 황궁 무고에서 얻은 것들을 떠올려 봤다.

‘무영심공. 이것이 가장 큰 성과다. 폐공하지 않고 상승의 경지로 나아갈 발판이 되어줄 심법이니···. 음영체심공 이건···. 그다지 쓸모는 없고, 암동 이 잠행술 또한 훌륭한 성과지. 거기다가 지동권과 봉익퇴 이 두 권각술은 수련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고, 여러 경공비급을 읽어 본 것 또한 천리견보를 두 발로 펼치는 데 큰 도움이 될거야. 유엽환단검법 또한 잘만 익혀두면 나만의 단검법을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될 거야.’

지난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강진령의 장원에 잠입하여 훔쳐낸 강가쾌련창법은 폐공하지 않고서는 십 할의 위력을 낼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초식을 함부로 써먹기도 쉽지 않아 단검으로 초식을 바꾸어 보려 노력하는 연수였다.

그러다 보니 연수의 암수검은 전혀 다른 무공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강진령의 장원에서 보낸 1년의 가장 큰 성과는 미진하게 느껴졌던 연수의 암수검으로 발출 하는 검기가 강가쾌련창법을 통해 제법 발전했다는 것이었다.

그에 비해 연수가 훔쳐낸 유엽환단검법은 단검술임에도 변초와 허초가 많은 변화무쌍한 단검법이었다.

이 둘을 잘만 녹여내어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확신하는 연수였다.

‘물론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없다는 게 답답하지만.’

한동안 한적한 곳에서 무공수련을 하고 싶어지는 연수였다.

‘구룡산으로 다시 입산하기에는 뭔가 민망하고···.’

연수는 어디에서 무공을 익혀야 좋을지 고민을 해 보았다.

여러 날 고민을 하며 객잔에서 때마침 식사하고 있던 연수의 시선에 푸른색에 가슴에는 날아오르는 학을 수놓은 무복을 입은 무사 세 명이 들어왔다.

연수는 전에도 저런 무사를 본 적이 있었다.

‘창궁대.’

남궁세가의 소가주 놈과 흡성신공의 고수를 쫓던 놈들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남궁세가가 이곳 북경까지 들어와 있는걸 확인한 연수는 신경이 쓰였다.

‘남궁진수놈과 같이 온 건가?’

연수는 순간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창궁대가 남궁진수를 도와 자신을 쫓기 위해 북경까지 온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다른 일로 이곳에 왔는지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알기 위해 창궁대를 미행하는 건 자칫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집어넣는 실책이 될 수도 있었다.

짧은 고민을 마친 연수가 몸을 일으켰다.

연수는 최대한 먼 거리를 창궁대의 무사들과 유지하며 그들의 뒤를 쫓아 보았다.

그들은 북경의 가장 큰 객잔인 청수려목 객잔으로 들어갔다.

‘따라 들어가 볼까? 몇 명이나 온 건지 확인을 해야 하는데···. 아니야. 지금의 모습은 너무 눈에 띄어서 위험할 수 있어.’

연수는 잠시 청수려목이라 쓰인 입구를 노려보고는 발길을 옮겼다.

‘어차피 북경에서 얻을 것은 모두 얻었다. 이곳을 뜨면 그만이지.’

객잔으로 돌아온 연수는 짐을 싸고는 객잔을 나섰다.

순전히 우연, 아니 악연과 악운이라는 말로밖엔 설명할 수 없었다.

하북을 지나 산서쪽을 통과하여 멀리 청해까지 가려던 연수가 남궁진수와 마주친 것은.

북경은 절대 작지 않다.

이 크고 사람 많은 북경에서 남궁진수와 딱 마주친 순간 연수는 어이가 없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게 무슨···.’

그리고 악운이었다. 지금까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꼽추에게 남궁진수가 의문을 품고 말을 걸어온 것은.

“이봐, 등 굽은 양반.”

연수의 등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왜 부르시오?”

남궁진수의 눈썹이 올라갔다.

“혹시···. 이런 놈을 본 적이 있나?”

남궁진수가 품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 들었는데 거기에는 자신의 얼굴과 흡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어쩌지?’

“글쎄 잘 모르겠는데···.”

순간 눈매가 좁아지는 남궁진수.

연수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쓰며 주변에 다른 무인의 기척이 느껴지는지 기감을 넓혀 봤다.

‘지금은 이놈 혼자인데···.’

그때 남궁진수는 손바닥을 내밀며 입을 열었다.

“여기 이 긴 검상은 말이야. 평생 지워지지 않는다고 하더군. 어떤 점쟁이는 이 검상이 내 생명선과 운명선을 가로질러 앞으로 내 팔자가 사나워졌다는 말을 하지 뭐야?”

순간 연수는 날카로운 살기가 느껴짐과 동시에 말의 등을 박차고 올랐다.

남궁진수의 허리에 매여있던 연검이 순식간에 뽑혀 들렸고 연수가 뛰어오르기 무섭게 연수가 타고 있던 말이 반으로 갈라지며 피웅덩이가 생겼다.

남궁진수 또한 말의 등을 박차며 뛰어올라 연수에게 연검을 휘둘렀다.

‘어떻게 알았지?!’

“역시! 네놈이구나!”

연수는 말없이 변화무쌍하게 자신의 요혈 곳곳을 노리며 찔러오는 남궁진수의 연검을 막아내고는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뒤로 돌아 뛰어갔다.

“흥! 놓칠 줄 아느냐?”

남궁진수의 경공은 연수가 두 발로 펼치는 경공보다 훨씬 빨라 순식간에 연수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떻게 알았지?”

“글쎄? 어떻게 알았을까?”

입매를 비틀며 특유의 비릿한 표정으로 능글거리는 남궁진수.

“그거 알아?”

연수의 말에 남궁진수의 입매가 더욱 뒤틀렸다.

“뭐?”

“너···. 재수 없어.”

말을 함과 동시에 연수의 양팔이 휘둘러 지며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바늘이 쏘아졌다.

-따따땅!

“흥 하찮은 재주를 다 부리는구나. 감히 내 몸에 상처를 내고 도망을 가? 내가 누구인지···.”

“알아.”

연수는 남궁진수의 말을 끊었다. 말이 끊긴 남궁진수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감히!”

연검을 휘두르며 연수를 향해 달려오는 남궁진수.

연수는 뒤로 물러서며 바늘을 계속해서 날렸다.

-따따땅!

“그런 하찮은 재주는 안 통한다.”

순식간에 남궁진수의 연검이 닿을 거리까지 좁혀졌다.

“이제 끝이다. 이 천한 놈.”

-깡깡!

어느새 연수의 양손에 들린 단검 두 자루는 아지랑이를 피어 올리며 연검을 쳐 냈다.

“천한 놈치고는 제법이야. 내 검만 가지고 있었어도 네놈을 반으로 쪼개놓았을 건데.”

아닌 게 아니라 얇은 연검일 뿐인데 막아낸 연수의 손아귀가 욱신거려 왔다. 아마도 황궁이 지척인 북경에 들어오느라 병장기를 눈에 띄게 차고 오지 못한 것이 연수에게는 천만 다행한 일이었다.

“재수 없는 새끼.”

연수의 입에서 나온 욕에 남궁진수는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제법 많은 사파 새끼들 모가지를 잘랐는데 말이야, 너처럼 죽이고 싶었던 놈은 없었어. 모가지를 썰어주마.”

살기를 뚝뚝 흘리며 비웃음과 함께 내뱉는 남궁진수의 말에 연수의 등에 소름이 가득 돋았다.

‘누가 끝에 웃나 두고 보자!’

연수의 긴장 어린 표정을 보며 남궁진수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래, 맞아. 그렇게 겁먹은 표정! 그거야, 그거! 좋아 그대로 그대로 뒈져!”

연수는 갑작스레 뻗어 나오는 검기에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지금!’

남궁진수의 검기가 코앞까지 다가오자 연수는 바닥을 뒹굴며 단검을 휘둘렀다.

연수의 단검에서 발출된 두 개의 검기가 낮게 날며 남궁진수의 다리를 노렸다.

“흥! 겨우 이따위 것!”

남궁진수가 연검을 휘두르자 채찍처럼 뽑혀 나온 기사가 연수의 검기를 갈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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