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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57화 (57/202)

# 57화

해가 뉘엿뉘엿 질 때가 되자 모든 노를 설치한 연수.

“이건 잘하면 먹힐 수도 있겠어.”

“그렇죠?”

“응. 나라면 절대 이곳에서 연 동생이랑 싸우지 않을 거야. 어떻게 이렇게 야비한 생각을 다 했어?”

“그거 야비하다니요? 심계가 깊다 해주세요.”

“그거나 고거나.”

“달라요. 아주 다릅니다. 무엇보다 내 기분이 달라요.”

“알았어. 그렇다고 해두자. 나 배고파.”

“예, 예. 빨리 돌아가서 먹어요.”

객잔으로 돌아온 연수는 객잔에 장기 투숙하며 내가 수련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노로 만든 함정과 공숙과의 합공이라면 웬만한 절정고수라도 해볼 만할 거야. 남궁진수가 아니라도 황궁에 들어갔다가 잘못되었을 때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연수는 시간을 보내며 황궁의 침투로와 탈출로에 대한 궁리를 자주 했다. 간혹 궁에 들어가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캐묻기도 하고 궁의 내부에 대해 나름 주워들은 말들로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그 날도 공숙을 떼어 내고 패주에서의 중년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궁에 쌀을 나르던 노인을 찾은 연수.

허름한 주막에서 술을 홀짝이는 노인을 보고는 중년의 모습인 연수가 다가갔다.

“혹시 소 노인 맞습니까?”

“내가 소 씨인 건 맞는데···. 누구십니까?”

“잘 찾아 왔네요. 한때 황궁에서 쌀을 나르셨다면서요?”

“응? 그랬지. 내가 일하던 대감님 집에서 자주 그럴 일이 있어 가끔 황궁에 들어간 적이 있었지. 얼마 전까지 새로 옮긴 황궁에 출입했었어.”

연수는 품에서 50냥짜리 전표를 꺼냈다.

“혹시 기억하는 황궁의 지리를 설명해 주시면 이걸 드리겠습니다.”

연수의 말에 노인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저, 정말이오?”

“그럼요.”

“그런데 매번 가던 길만 가서 많이 알지도 못하오.”

“그거면 충분합니다.”

노인은 황급히 연수가 내려놓은 전표를 움켜쥐고는 술을 한잔 넘기며 목을 축였다.

“그러니까 내가 다녔던 길은 오문을 지나면 보화전으로 가는 길목으로 근 연못이 있는데···.”

연수는 노인의 말을 차근차근 들으며 머릿속에 지도를 그리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언뜻 차가운 살기가 느껴졌다.

‘뭐지? 분명 살기였는데···.’

그제야 긴장하며 주변의 기감을 살펴보는 연수.

‘이 기운은···.’

익숙한 기운이었다. 자신의 대영심공과 매우 닮아 있는 기운.

‘누구지? 분명 날 주시하는 것 같은데···.’

연수는 차분히 노인의 말을 다 듣고는 갑자기 뒤로 돌아 네 달려나갔다.

그러자 다섯 명의 무인이 튀어 오르며 연수의 뒤를 쫓았다.

“이놈! 거기서랏!”

찢어지듯 높은 목소리, 하지만 여성의 것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이질감이 드는 목소리였다.

‘설마!’

연수가 뒤를 돌아보자 내시의 옷을 입은 다섯 명의 수염 없는 남자가 자신을 빠르게 추적하고 있었다.

‘동창! 젠장 너무 쑤시고 다녔구나.’

연수의 후회는 너무 늦었다. 황궁에 지리를 물으며 여기저기 쑤시고 다녔지만, 성내도 아닌 밖에서 일대일로 개인들을 찾아다녔기에 관부의 눈을 나름 잘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동창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

연수가 느낀 동창의 다섯 무인은 갓 일류에 오른 정도의 고수들이었지만 감히 맞붙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괜히 동창과 원한 맺었다가는 북경에는 발붙이기 힘들지.’

연수는 달려나가는 도중 엎드리며 네발로 뛰기 시작했다.

연수의 두 손이 바닥에 닿는 순간 연수의 신형이 폭발적으로 치고 나가며 순식간에 내관들과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엉덩이와 허리를 씰룩이며 엎드려서 뛰어가는 연수의 뒷모습을 보며 내관들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 저런 천한!”

하지만 내관들은 연수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야산으로 뛰어올라 한참을 도망친 연수는 내관들을 모두 따돌린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꼽추의 모습으로 변장했다.

길을 돌고 돌아 날이 어둑어둑 해 질 무렵에나 묵던 객잔 근처로 돌아온 연수의 시선에는 곳곳에 붙여진 중년인의 얼굴이 그려진 방이 들어왔다.

방에는 상세한 중년인의 생김새와 황제암살미수라는 죄목이 붙어 있었다.

‘젠장! 중요한 변장 하나 날아갔네.’

연수는 6개월 동안 사부에게 변장술을 배우며 딱 네 명의 변장만을 배웠다.

사부는 여러 변장을 찔끔찔끔하는 것보다는 역용술에 가깝도록 세세히 한 명의 변장을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하여 하나의 인물마다 저마다의 개성과 목소리를 구현하여 몸에 익혀 놨는데 그중 중년의 연령대의 인물 하나가 날아가니 연수로서는 뼈아픈 일이었다.

객잔으로 돌아온 연수는 한동안 두문불출하며 객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밖에 구경하러 가자니까?”

아침부터 찾아와 칭얼대는 공숙 때문에 연수는 짜증이 울컥 올라왔다.

“말했잖아요. 잘못하면 위험하다고요.”

“조심해서 다니면 되지.”

“그러니까 그런 행동이 이목을 산다고요.”

“이 북경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데도 동창의 내시 놈들이 저를 잡으러 왔었다고요!”

“그럼 나 혼자 나갈래!”

연수는 공숙을 만류하며 달랬다.

“그러지 말고 맛난 거 사줄 테니까 당분간 조용히 좀 있어요.”

“뭐 사줄 건데?”

“누나가 좋아하는 칭둥귀 사줄게요.”

“거북이?! 좋아! 내가 내려가서 시켜놓을게 빨리 와.”

공숙이 신이나 뛰어 내려가자 연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휴, 내 팔자야.”

연수는 잠시 변장상태를 꼼꼼히 확인하고는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갔다.

일 층의 식당에 내려온 연수는 순간적인 위화감에 몸에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분명 신이나 뛰어 내려간 공숙이 자리에 앉지도 않고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연수가 아는 한 공숙이 저리 긴장하는 모습은 굉장히 이질적인 것이었다. 조심히 주위를 살피며 공숙에게 다가가는 연수.

“숙누나, 무슨 일···.”

순간 폭사 되어 나오는 살기.

연수는 내기를 끌어올리며 온몸을 찌르듯 날아오는 살기를 막아냈다. 어릴 때 무황의 살인적인 살기에 노출된 이후 이런 방식의 고수 압박감을 이기는 법은 무황에게 이미 잘 교육받아놓은 연수였다.

연수는 내기를 끌어올리며 안정적인 목소리로 눈앞에 면사와 삿갓을 쓰고 있는 고수에게 물었다.

“누구십니까?”

“그러는 너는 누구지? 내 제자와는 무슨 관계냐?”

‘옥안사목! 처유희!’

“처 선배셨군요. 저는 후배 연수라고 합니다.”

공손히 포권을 올리는 연수.

처유희는 자신의 살기를 덤덤히 받아내며 예를 갖추는 꼽추를 보며 살기를 거둬들였다.

“내 제자와는 무슨 관계지?”

“제 처지가 안돼 보였는지 누님께서 동행해주셔 한동안 동행하며 지내온 것뿐입니다. 이리 서서 이야기하시는 것도 불편하실 텐데 앉으시죠.”

연수가 자리를 권하자 처유희는 성큼성큼 걸어와 탁자에 의자를 빼고 앉았다. 연수 또한 마주 앉았으나 공숙만이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을 뿐이었다.

“이리 와 앉아.”

처유희의 차가운 목소리에 공숙이 와서 조심히 앉고는 사부의 눈치만 살피고 있자 연수는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이 여자도 이렇게 얌전히 있을 줄 아는구만.’

“선배님 식사를 하지 않으셨으면 요기라도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됐다. 차나 한잔시켜다오.”

“예.”

연수는 점소이를 불러 차를 석 잔 주문했다. 점소이 또한 무림인끼리의 살벌한 기운을 감지했는지 조용히 주문을 받고는 주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처유희는 차가 나오자 삿갓과 면사를 풀어 놓았는데, 그 모습에 연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뱀눈이 아니야?!’

옥안이라는 별호처럼 처유희는 중년의 나잇대에도 불구하고 청순하고 품위 있는 얼굴이 과연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사목이라는 말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연수가 사부에게 전해 듣기를 노란 눈동자에 세로로 날카롭게 날이 선 동공은 흉측하기 그지없다 하였는데 지금 연수의 눈에 비치는 처유희의 눈동자는 초록빛이 살짝 돌뿐 보통 사람의 눈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오히려 초록빛이 도는 눈동자와 그 청순한 여인의 모습이 잘 어울려 보기 좋기만 했다.

“숙! 감히 사부의 말을 어기고 도망을 가!”

낮은 목소리로 차갑게 책망하는 처유희의 목소리에 연수의 사색이 깨졌다.

‘도망?’

“죄, 죄송합니다. 사부님.”

“죄송할 일을 어째서 벌인 게냐? 널 찾느라고 얼마나 고생한 줄 아느냐?”

“...”

공숙이 대답하지 않자 처유희의 목소리가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어째서 대답이 없어?”

“그게···. 사부님을 오늘 봐서 그간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크흠! 큼!”

연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이를 악물고 참으며 한 손으로는 허벅지를 꼬집고 헛기침을 하며 연신 차를 마셔 댔다.

“이···! 이 사부가 너를 찾는다고 길림부터 이곳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너를 수소문 해 다녔다. 이래도 이 사부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르겠느냐!”

“...”

“왜 또 대답이 없느냐!”

“그, 그것이···. 저도 길림부터 하북 다시 북경까지 왔지만 별 고생스럽지는 않아서···.”

‘그, 그만! 제발 그만!’

연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점소이를 불렀다.

“점소이! 점소이! 여기 차 좀 더 갖다 주시오.”

주방에 숨어 나오지 않던 점소이는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큰 목소리로 알았다며 대답 했고 연수는 점소이 쪽으로 몸을 돌리며 피가 나도록 볼을 깨물어 정신을 유지했다.

“공숙! 이 사부가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데 너는 편히 여행하느라 사부의 고생은 알지도 못하는구나!”

“죄송합니다. 사부님.”

“죄송하긴 한 거야?”

“예. 사부님.”

“이 사부는 네 걱정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너를 찾아다녔는데 너는 여기저기서 잘 얻어먹고 다녔나 보구나. 살이 포동포동 쪘어.”

“...”

끝내 꾸중을 듣던 공숙의 눈에서 또르르 눈물이 흘렀다.

“뭘 잘했다고 우느냐.”

“흑! 죄송합니다.”

“뚝 그치거라. 별 탈 없으니 됐다. 그러길래 왜 가출은 하여 이 사단을 만들어!”

“흑흑 죄송합니다. 거북이도 먹고 싶고 고기도 먹고 싶고 사람 구경도 하고 싶어서···.”

‘거, 거북이!’

연수는 다시 한번 볼을 깨물며 세 번째의 위기와 맞서 싸웠다. 얼마나 강하게 깨물었는지 눈에 눈물이 고이는 연수.

“그래서 그동안 많이 먹고 구경 다니고 했느냐?”

“예.”

“수련은? 그동안 내가 안 본다고 게을리하진 않았고?”

“아니에요. 매일매일 했어요.”

처유희는 눈물에 젖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하는 공숙을 보며 입을 열었다.

“손을 내밀어 봐라.”

자신 있게 손을 내미는 공숙.

처유희는 붉은 핏줄이 선 손등과 일그러진 팔등을 살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게으름은 피우지 않았구나.”

“예.”

연수는 불편한 자리가 어느 정도 정리되는 것 같자 입을 열었다.

“처 선배님. 숙누나가 이곳에 있는 것은 어찌 아셨나요?”

“길림에서부터 하오문이라는 하오문은 다 뒤지고 내려오면서 수소문을 하다 보니 한 달 전쯤 북경에서 비슷한 사람을 보았다는 정보가 있어서 달려왔다.”

‘젠장! 그 새끼군.’

연수는 재수 없게 빙글거리며 정보를 팔던 청년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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