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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56화 (56/202)

# 56화

“숙누나 어느 방 쓸래요?”

“나는 왼쪽 방.”

“그럼 내가 오른쪽을 쓰죠. 푹 쉬세요.”

“응.”

방에 들어선 연수는 봇짐을 풀고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는 입구의 바닥에 바늘 달린 실을 쏘아 찻잔에 묶어 놓았다.

창문 앞에도 비슷한 조치를 해 놓은 연수는 혹시 모를 침입자에 대비해 이와 같은 조치를 해 두었다.

대비를 끝낸 연수는 침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굽었던 등이 쭉 펴지며 꼿꼿이 허리를 펴고 운기를 하는 연수.

두 시진이 넘게 운기를 한 연수는 한참을 더 명상하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연수는 일찍부터 밖으로 나와 주루를 살폈다. 주루 근처를 살피며 하오문의 표식을 찾기 위함이었다.

‘북경까지는 하오문의 분타가 진출하지 못했나?’

근처의 주루를 살피다 보니 시간이 꽤 지나 객잔으로 돌아온 연수.

“연 동생! 대체 어디를 갔던 거야?”

공숙이 호들갑을 떨며 달려왔다.

“왜 그래요?”

“나만 두고 또 어딜 갔나 해서 걱정했잖아. 괜히 혼자 다니다가 못된 놈들한테 구박받으면 어쩌려고 그래?”

“아휴, 적어도 말없이 도망가지는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어딜 갔던 거야?”

“어제 말했잖아요. 하오문을 찾아야 한다고요.”

“아, 그래서 혼자 갔구나. 나는 또 말까지 버리고 도망을 갔나 해서 걱정이 컸지.”

연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식탁에 앉아 점소이를 불렀다.

“뭐 먹을래요?”

“음···. 사부님이 아침은 가볍게 먹으라 했는데···.”

공숙은 먹고 싶은 음식과 가볍게라는 단어 사이에서 고민하는 듯 보였다.

“그럼 제가 대충시킬게요. 먹고 싶은 건 저녁에 먹어요. 여기, 소면 두 그릇이랑 채소 볶아주시고 만두 이 인분 가져다줘요.”

“요리 하나 더 시키면 안 돼?”

“안 될 건 없지만, 숙누나 사부님이 가볍게 먹으라고 한 이유가 있는 거 아니에요? 무공과 관련된···.”

“그런가? 그런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럼 이따 저녁에는 내가 먹고 싶은 거로 주문할 거야.”

“그러세요.”

연수와 공숙은 식사를 마치고는 주변 주루를 살피며 돌아다녔지만 하오문의 표식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자 해가 중천을 넘어 기울기 시작했다.

공숙은 배를 움켜쥐며 투덜거렸다.

“종일 걸었더니 또 배고프다.”

연수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점심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연수는 살피던 주루 안으로 공숙을 데려갔다.

“여기서 간단하게 요기하죠.”

공숙은 신이 난 표정으로 주루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보통 객잔이나 반점보다는 주루의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그만큼 많은 요리와 맛이 있는 것이 주루의 특징이었다. 식사보다는 요리 위주의 상차림이지만 그렇기에 반점이나 객잔의 음식보다 화려하고 맛이 좋았다.

주루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주루 안 사람들의 이목이 주루의 구석에 이야기하는 호사가에게 쏠려 있었다.

연수는 요리 두 가지를 주문하고는 공숙과 호사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하는 호사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허우적거리며 나름 진지하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때! 그 고수가 이놈들! 네놈들이 좋아하는 그 명분이 누구에게 있는 것 같더냐! 하면서 일갈을 내지르니 화산파와 무당파의 검수들이 움찔하며 어깨를 떠는 게 아니겠소?”

“오오! 그래서? 그래서 어찌 되었소? 그 고수가 여덟 명의 고수와 싸움이 붙었소?”

“이 친구야 어련히 이야기해줄까? 좀 가만히 있어 보게.”

호사가는 주위를 살피며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청중을 살피더니 빈 술병을 흔들어 너스레를 떨었다.

이야기를 듣던 이들 중 형편이 좋아 보이는 몇몇 청중들이 호사가의 너스레에 피식 웃으며 술과 안주를 시켜 주었다.

연수는 이미 아는 이야기이기에 흥미를 잃고 나온 음식에 집중했는데 공숙은 호사가의 이야기에 푹 빠져 음식이 나온 것도 모르고 있었다.

“숙누나. 안 먹어요?”

“응? 조금만 있다가···.”

연수는 별일이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 걸신이 밥도 안 먹고, 뭘 저리 넋을 놓고 듣고 있어?’

“별 이야기도 아닌데 뭐가 그리 재밌다고···.”

“연 동생 가만히 좀 있어 봐. 얼마나 흡성신공의 고수라잖아.”

“난 그 싸움 직접 봤어요.”

공숙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며 연수를 바라봤다.

“그 고수가 화산파와 무당파 고수들을 죽였어?”

“죽이긴 뭘 죽여요, 일갈을 내지르고 물러났어요.”

“뭐? 그게 다야?”

“그날은 그게 다였죠.”

“에이 설마 그리 허무하게 물러섰으려고···.”

공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새로 나온 술을 한잔 마신 호사가의 이야기가 연수의 말과 일치하자 공숙은 허탈한 한숨을 쉬었다.

공숙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호사가를 원망하는 한탄이 나왔다.

“하하, 여러분의 기대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어쩌겠소? 나는 없는 말을 지어내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청중들의 원망이 사그라지지 않자 호사가는 슬며시 운을 떼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그 고수는 이런 별호를 얻게 되었지.”

호사가가 말을 끌며 청중을 살피니 원망을 토로하던 청중이 잠잠해졌다.

씩 웃은 호사가는 힘주어 말했다.

“사패일성!”

‘별이라···. 하긴 별도 보통 별은 아니지.’

공숙은 손뼉을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사패일성이래 멋지다.”

“멋지죠. 얼마 만에 흡성신공의 재래인데.”

둘은 음식을 먹으며 호사가의 여러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이야기 중에는 남궁진수와 팽이현이 강호를 주유하며 협행을 이어간 이야기가 제법 되었다.

여러 사파 고수들을 저승으로 보낸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중에는 사황성의 고수 또한 있었다.

‘절강성의 협약이 깨어질까 노심초사하던 놈들이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면서 온갖 원한은 다 사놨네.’

연수는 그곳에서의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주변 주루를 살폈다.

그러다 제법 규모가 있는 접화루라는 기루 옆에서 하오문의 표식을 찾아내고는 표식을 남겨 하오문과 접선할 수 있었다.

“무엇 때문에 우릴 찾았소?”

30대 초반의 아직 젊은 청년을 보며 연수는 목소리를 낮추고 직접 물었다.

“남궁진수와 팽이현의 최근 움직임을 알고 싶소.”

청년의 얼굴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이유는?”

‘이놈들은 툭하면 이유 타령이네.’

“말할 생각 없소.”

“만약 내가 당신들에게 그 정보를 팔았다가 혹여 그 둘의 신상에 문제가 생기면 하오문은 큰 낭패를 보게 되는데. 하오문과 원수를 지려 하는가?”

공숙은 연수가 절대 한마디도 하지 말고 잠자코 있으라 해서 목을 뚫고 올라오는 말들을 집어삼키느라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고 있었다.

연수는 그런 공숙에게 잠시 자중하라는 눈길을 주고는 입을 열었다.

“그 두 놈에게 사소한 원한을 판 적이 있소. 혹여 쫓기도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되어 그러오.”

“어떤 원한?”

연수의 눈매가 좁아졌다.

“내가 바보로 보이나?”

순간적으로 강력한 투기가 연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자 청년은 입매를 비틀며 너스레를 떨었다.

“직업병이오. 직업병. 뭘 그리 흥분을 하시오? 대답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을···.”

“정보는 있소?”

청년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호기심 어린 눈으로 연수를 보았다.

“있긴 있소. 대충 열흘 전쯤의 정보요.”

“그 이후로는 없소?”

“하오문이 하늘에 있는 신선이라도 되겠소? 이 정도면 최근 정보요.”

“그 정보사겠소.”

“금자 한 냥만 주시오. 대단한 정보는 아니니.”

청년은 하오문과 원수를 지니 어쩌니 하며 압박을 해대더니 겨우 금자 한 냥을 불렀다.

연수는 고개를 저으며 전표를 꺼냈다.

‘하여간 이놈들은 방심할 수가 없구나.’

전표를 받은 청년은 빙긋 웃으며 전표를 살피더니 연수와 공숙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팽이현은 오랜만에 귀가하여 집안에 박혀 있다고 들었고, 남궁진수는 팽가에 있다가 열흘 전쯤 떠났다고 들었소.”

“남궁진수가 어디로 향했는지는 알 수 없소?”

“그것까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북경으로 향했을지도 모르지.”

빙긋 웃는 청년의 낯빛에 연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크네. 재수 없는 새끼.’

연수는 눈앞에 청년 놈이 보기보다 훨씬 영악하다고 생각했다. 연수는 더 얻을 게 없어 보이자 기루를 나왔다.

“이후, 답답해 죽을 뻔했네. 그냥 그 재수 없는 새끼 콱 죽여버리면 안 돼?”

“안돼요.”

“왜?”

“하여튼 안돼요.”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쫓아올까 걱정되지?”

연수는 공숙의 물음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북경으로 오면서 내 모습을 본 자는 없어. 그동안 한시도 변장을 풀지 않았다. 팽이현 또한 집을 떠나지 않았다 했고···. 남궁진수 어디로 가고 있지? 여기냐? 안휘냐?’

한참을 골몰히 생각하고 있는데 공숙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연수의 상념을 깼다.

“안 들려?!”

“예? 뭐가요?”

“그러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고.”

“일단은 지금 있는 곳에서 잠자코 추이를 지켜봐야겠죠.”

“그러다 남궁진수가 쫓아오면?”

“누님과 둘이서 합공을 하면···.”

뒷말을 흐리며 공숙의 눈치를 살피는 연수.

“둘 다 죽겠지.”

빙글거리며 단호하게 단정 짓는 공숙.

‘어리숙한 것 같은데 바보는 아닌가 보네.’

“그렇겠죠?”

“사부님이 말씀하시길 절정 고수한테 일류 이하의 고수들은 떼로 덤벼도 이기기 힘들다 하셨어.”

“누님의 독으로도 힘든가요?”

“중독만 시킬 수 있으면 어떻게 이길지도 모르겠는데 아마 중독 시킬 수 없을걸?”

연수는 입매를 비틀며 공숙을 도발해 보았다.

“누님도 무서운 사람이 있나 보네요?”

“무섭긴? 죽으면 그만이지.”

“하아···. 정말 안 되겠죠?”

“사부님과 비무할 때 사부님이 마음먹으면 아무리 애써도 사부님의 옷자락 스치기도 힘들었어.”

연수는 그날부터 궁리하기 시작했다. 연수의 생각으로는 남궁진수가 북경으로 향할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

게다가 북경으로 와서 자신을 알아볼 확률은 더욱더 낮았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십 중 구, 십은 죽는다.

‘젠장! 내력만 받쳐줬으면···.’

며칠을 방에 틀어박혀 궁리하던 연수가 방에 틀어박힌 지 사흘째가 되자 객잔을 나와 대장간을 찾아다녔다.

공숙은 연수의 그런 모습에 궁금증이 치밀어 올랐다.

“노는 왜 찾아다니는 거야?”

“만약을 대비하려고요.”

“고수한테 노 한 두 발은 위협조차 안 돼.”

“알아요.”

연수는 여러 대장간을 돌며 제작된 사냥용 노를 대부분 사들였다.

노라는 노는 전부 사들인 연수.

“누님 같이 좀 듭시다.”

공숙은 한 뭉텅이의 노를 담은 자루를 낑낑대며 들쳐 맸다.

“숫자로 밀어붙인다고 고수가 맞아줄까?”

“웬만하면 안 맞을걸요?”

“근데 왜 이렇게 많이 샀어?”

“혹시 모르잖아요. 앞에서 날아오는 고수의 검보다 뒤에서 찔러오는 하수의 검이 무서울 때도 있어요.”

공숙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연수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북경에서 하북의 흥륭현으로 빠져나가는 관도가 있는 근처의 숲에 연수는 짐을 풀었다.

“이쯤이 좋겠네요. 내려놔요.”

“이이고, 어깨 빠지겠네.”

“고수가 엄살 부리지 마요.”

“고수고 나발이고 무거운데 장사 있냐?”

“저녁에 맛있는 거 사줄게요.”

막 뭐라 구시렁거리려던 공숙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연수는 숲의 지형을 살피면서 작은 공터를 중심으로 노를 하나씩 설치하고 방아쇠가 되는 곳에 줄을 매었다.

노가 겨누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바늘을 날리는 연수.

-쇄~액! 푹!

연수의 바늘이 연결해놓은 줄을 가르자 노가 발사되며 맨바닥에 화살이 박혔다.

연수는 같은 노를 재장전해서 몇 번을 반복하며 노가 박히는 바닥을 유심히 살폈다.

‘정확도가 썩 높지는 않네. 적어도 반장 안으로는 들어가면 안 되겠다.’

연수는 같은 실험을 반복하며 노를 나뭇잎이 무성한 곳곳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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