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화.
기묘한 동행은 계속되어 동행을 시작한 날 저녁이 되었다.
말을 세우는 연수.
“오늘은 이쯤에서 노숙할 곳을 찾아야겠어요.”
“그냥 여기서 자면 안 돼?”
“관도 한복판이라 안돼요. 근처에 말 매어놓을 곳이 있나 찾아봐요.”
잠시 주변을 살피던 둘은 적당한 자리에 말을 매어놓고 자리를 잡았다.
연수가 일어나자 공숙이 따라 일어서며 물었다.
“어디 가려고?”
“마른 나무라도 주워와야 불을 피우죠.”
“나도 갈 거야.”
공숙은 연수를 따라다니며 연수의 눈에 들어오는 나뭇가지를 먼저 채 주워가며 킥킥댔다.
“숙 누나, 이러면 둘이 나무를 줍는 의미가 없잖아요.”
“히히 나한테 지니까 괜히 심술부리는 거지?”
“아휴···. 고생을 사서 합니까?”
공숙은 잠시 생각을 해 보더니 주운 나뭇가지들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흥! 나 안 들 거야.”
“아이고, 두야···.”
연수는 바닥에 떨어진 나무들을 주워들다가 씩 웃으며 공숙을 바라봤다.
“너! 날 속였구나.”
“속이긴 누가 속여요? 크크”
“그것 봐! 속였어! 내놔 내꺼야.”
“질 거 같으니까 심술내는 거죠?”
“이···! 이 나쁜···! 흥!”
공숙은 경공을 쓰며 주위를 훑어 나무를 모아갔다.
‘무슨 경공이지? 귀신이 따로 없네.’
몸의 중심이 마지 발바닥인 양 몸체가 흔들리며 움직임을 예측하기 힘든 공숙의 경공을 보며 연수는 혀를 내둘렀다.
사파의 여고수로 유명한 옥안사목 처유희의 알려진 무공은 쌍두사편 뿐이다.
그녀가 강호에 이름이 알려진 것은 사실 그 무공보다도 아름다운 얼굴에 뱀 같은 눈동자를 가져 그 얼굴로 인해 더 유명해졌다.
하여 별호 또한 옥안사목이 되었다.
공숙은 한참을 돌아다니더니 숨을 몰아쉬며 한 아름 나무를 모아왔다.
“히히히 내가 이겼지?”
“예. 누님이 이겼어요. 못 당하겠네요.”
연수가 대답하자 공숙은 잠시 좋아하더니 배를 움켜쥐었다.
“뛰어다녔더니 배가 고파 죽겠네.”
“육포 드려요?”
“아우···. 육포는 싫은데···.”
연수는 마른 낙엽과 나뭇가지에 불을 붙이고는 품에서 육포를 꺼내 불붙은 나뭇가지를 들어 육포에 갖다 대어 살살 구워갔다.
육포에서 기름이 떨어지며 맛있는 냄새가 퍼지자 공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고기 냄새다! 나도, 나도 할래.”
연수는 육포 한쪽을 공숙에게 건네주자 연수를 따라 하며 육포를 굽는 공숙.
“잘못하면 타니까 조심해요.”
“응.”
연수는 얼추 요기를 끝내고는 자리에 누웠다.
공숙은 그런 연수를 잠시 살피더니 품에서 작은 목함을 꺼내 열었다.
“연 동생 내가 먼저 운기 할 테니 호법을 잘 서야 해.”
“운기요? 이런 곳에서 함부로 운기 하면 큰일 납니다.”
“그러니까 연 동생이 호위를 서야지.”
“그래도 이런 야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운기를 합니까?”
“먹는 것도 부실한데 운기라도 해야지. 참 내가 운기 할 때는 일장 안으로 다가오면 안 돼.”
말을 마친 공숙은 목합에서 꺼낸 작고 둥그런 사기로 만든 물건을 정수리에 올리고는 양손의 엄지로 받쳐 들었다.
연수는 공숙을 말리려다 그 물건을 보고 궁금증이 일었다.
“그건 뭐에요?”
“아휴, 연 동생 운기 중에는 함부로 말 걸면 안 돼.”
“아직 운기 중 아니잖아요.”
“이건 사무진독공을 익힐 때 쓰는 무진사합주야. 이제 말 걸면 안 된다.”
짐짓 엄한 표정으로 연수를 타이른 공숙은 왼쪽 다리는 앞으로 쪽 피고 오른쪽 다리만 가부좌의 자세를 취한 후 양손의 엄지를 정수리 위 무진사합주를 받친 채 운기를 시작했다.
연수는 그 모습이 신기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무진사합주를 살펴보려 했는데 손등의 핏줄이 꿈틀거리며 강한 독기가 흘러나와 뒤로 물러섰다.
‘지독한 독기네.’
공숙의 엄지에서 흘러나온 독기는 무진사합주에 흘러 들어갔고 그 독기는 붉은 연기로 위로 뿜어졌다.
‘호~ 이건 또 무슨 조화야?’
붉은 연기의 독기는 이내 공숙의 머리 위에서 머물더니 밑으로 가라앉아 공숙의 코를 통해 다시 체내로 빨려 들어갔다. 일각에 한 번을 주기로 뿜어져 나왔다가 흡수되기를 반복하는 독기.
연수는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떨어져 바라보았다.
정확하게 여덟 번을 흡수되고 뿜어지던 독기가 공숙의 몸으로 갈무리 되자 공숙이 눈을 떴다.
연수는 한 시진을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고는 넋을 놓고 있었다.
“연 동생 뭘 그리 넋을 놓고 보는 거야?”
“예? 아···. 숙누나 무공이 신기해서요.”
연수의 말에 공숙은 뿌듯한 표정으로 목에 힘을 주며 말했다.
“당연하지. 사무진독공은 보통 독공이 아니야. 신체의 피를 독으로 바꾸어 혈독을 만들어주는 독공이라고. 양기와 혈독을 쌓아 사람을 독인으로 탈바꿈시키는 궁극의 독공이라고.”
‘양기와 독기라···. 그래서 수염이 나는 건가?’
“대단하네요.”
“이제 내가 호법을 설 테니 연 동생은 운기해.”
연수는 주변을 돌아보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별일이야 있겠어. 호법도 있겠다 요상결이나 운공 해야지.’
그렇게 번갈아 운기를 마친 둘은 노숙을 하며 날을 보내고는 해가 떠오르자 말을 재촉해 길을 나섰다.
노숙할 때마다 공숙은 사무진독공의 수련을 했는데 볼 때마다 신기한 연수였다.
그렇게 여러 날 노숙을 한 끝에 북경에 도착한 둘.
“우와 여기가 북경이구나. 황제가 산다는 곳이라 그런가? 성벽 한번 높네!”
“숙누나! 목소리 좀 낮춰요. 함부로 황제가 어쩌고 했다가 잡혀간다고요.”
“흥! 그깟 황병놈들 백 명이···. 읍! 읍!”
연수는 성문 근처에서 망발을 뱉는 공숙의 입을 막고 주변을 살폈다.
“숙누나! 진짜 잡혀가려고 그래요?”
연수는 공숙을 이끌고 성문에서 한참에 떨어져서야 그녀의 막은 입을 풀어주었다.
“푸하! 에 퉤퉤퉤! 아이 짜다 짜.”
“숙누나는 제발 말 좀 조심히 해요. 잘못하면 정말 큰일 난다고요. 여기는 황궁이 있는 북경이에요. 듣는 귀가 한둘이 아니라고요.”
“나는 그깟 황제 안 무서운데?”
“나도 황제 따윈 무섭지 않아요. 그 황제의 군대가 무서운 거지.”
“황군 따위 내가 마음만 먹으···.”
“쉿! 그러니까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요. 잡혀가면 어쩌려고!”
“연 동생 겁 한번 많네.”
“하여튼 같이 다니려면 약속하세요. 입을 조심한다고.”
“알았어, 알았어! 나 배고프다.”
“어휴,”
연수는 북경의 거리를 잠시 둘러보다 마구간이 딸린 객잔을 찾아 들어갔다.
점소이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자 공숙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동파육, 칭둥귀, 오리구이, 화구육, 탕수육, 깐풍육, 또···. 음···.”
“숙누나, 그 많은 걸 시키면 우리 둘이 어떻게 다 먹습니까?”
“맨날 육포만 먹고 고생이 얼마나 많았는데! 이 정도는 먹어야지.”
“그럼 일단 먹는 데까지 먹어보고 모자라면 더 시켜요.”
식탐이라면 지지 않는 연수였지만 오히려 공숙을 자제시키고는 주문을 다시했다.
“일단 동파육과 오리구이는 주시고, 소채도 좀 볶아주시고, 볶음밥 두 그릇 갖다 주시오.”
점소이는 속으로 그건 둘이서 먹는 양이 맞냐고 투덜거렸지만 내색하지 않고 웃는 낯으로 주문을 받았다.
“나 거북이도 먹고 싶은데···.”
“그건 나중에 먹어요. 부족하면 더 시켜 줄 테니까.”
“알았어. 근데 황제가 북경에 큰 성을 지었다는데 밥 먹고 구경 안 가 볼래?”
속삭이듯 주변을 살피며 말하는 공숙.
“내 사부에게 들었는데 새로 지은 황궁은 함부로 월담 하지 말리셨어요. 영락제가 의심이 많고 적이 많아 숨을 곳도 변변치 않고 성안에 바닥은 걸으면 소리를 내는 벽돌을 깔아 놓아 숨어들기가 힘들 거라고 하셨거든요.”
“성을 다 지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네 사부가 어찌 그걸 알아?”
“우리 사부님은 황궁 무고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황성을 지을 때부터 인부로 가장하고 자주 살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 너희 사부님은 도둑이구나?”
“뭐 비슷한 거라고 해 둡시다.”
둑이 속닥거리며 이야기를 하는데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연수는 입을 다물었다.
연수가 입을 다물자 공숙또한 눈치는 있는지 과장되게 손으로 입을 막으며 딴청을 피웠다.
주문한 음식을 탁자 가득 놓아두고 점소이가 자리를 비키자 공숙이 손뼉을 치며 음식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연수 또한 그에 질세라 음식을 먹어갔다.
공숙은 입에 가득 음식을 물고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그런데 연 동생 나는 돈이 별로 없는데 우리 빨리 먹고 도망가야 하나?”
“아이고, 숙누나 그런 건 음식을 시키기 전에 말해야지 다 시켜서 먹으면서 말하면 어찌합니까?”
“연 동생도 돈 없지?”
“저는 사부께서 노자를 든든히 챙겨 줘서 돈은 부족하지 않게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 돈도 너희 사부님이 훔친 거야?”
“훔쳤다기보다 기지를 발휘하셔서 만든 돈입니다.”
“그래? 너희 사부는 위조도 하는구나?”
“뭘 그런 걸 다 묻고 그러십니까? 여행길에 고생이 많았으니 먹고 쉽시다.”
“알았어. 근데 만두 좀 시키면 안 될까?”
“안될 거 뭐 있어요. 시키세요.”
둘은 만두와 소면까지 추가 주문을 하여 다 먹고는 배를 두드리며 점소이가 가져다주는 차를 홀짝였다.
“연 동생 나 너무 많이 먹었나 봐.”
“저도 무리 했나 봐요.”
“그런데 연 동생. 그러면 황궁은 구경하러 가지 않을 거야?”
“글쎄요. 일단 당분간 이곳에서 지내면서 남궁세가 와 팽가의 소가주놈들 움직임에 대해 알아보고 결정하려고요.”
“그 황궁 무고에 들어가면 무슨 절세 무공이 많겠지?”
“절세 무공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상승의 무공들이 많다고는 하던데요? 사부께 듣기로는 질은 몰라도 양은 넘친다던데요?”
“많기만 하면 뭐해? 절세의 무공이 있어야지.”
“그런 신공이 황궁에 있었으면 황궁 고수들이 벌써 최고수가 되었다고 소문이 났겠죠.”
“연 동생 우리 사부님이 하신 말인데 황궁의 시숙계라는 내시만큼은 엄청난 고수라고 혹시 내시 놈들과 시비가 붙을 일이 있으면 피하라고 하던데?”
“시숙계요?”
“응. 시창공이라고 불리는 높은 내시라고 했어. 동창장인태감이라는 동창 대장의 직책에 있는 놈이래.”
“그런데 숙누나의 사부님이면 옥안사목이라고 불리는 처 선배가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
“숙누나의 채찍질을 보고 짐작했어요.”
“연 동생의 사부님은 누구야?”
“그건 왜 물어요?”
“그래야 공평하지. 내 사부님을 아는데 나는 모르면 불공평하잖아.”
“사정이 있어 사문을 밝히기 어렵습니다.”
“히히히 사부님이 도둑이라서 그런 거지?”
“뭐 그렇다고 해두죠.”
연수는 남은 차를 마시며 입안을 행구고 말을 이엇다.
“어쨌든 오늘은 이만 올라가서 쉬죠. 당분간 이곳에 머물면서 하오문을 찾아봐야겠어요.”
“그 치들은 왜?”
“이곳에 앉아서 남궁세가와 팽가의 움직임을 제가 무슨 수로 알아요? 그들에게 의뢰해서 제 뒤를 정말 쫓는지 아닌지 알아봐야죠.”
“안 쫓으면?”
“그럼 다시 섬서나 사천으로 가야죠.”
“거긴 왜?”
연수는 피곤한 표정으로 답했다.
“사문의 풀어야 할 업이 좀 있어요.”
“그래? 그럼 그놈들이 쫓고 있으면.”
“그럼 꼼짝없이 북경에서 있어야지요.”
“그런다고 그놈들이 널 놔둘까?”
“황궁이 있는 이곳에서는 그놈들도 경거망동 못할 거에요. 잘못해서 황제의 미움을 샀다가는 가문에 화가 미칠지도 모르니까요.”
“만약 그래도 널 잡으러 오면?”
“가문의 무사들을 데리고 이 북경으로 함부로 들어오지는 못할걸요? 무기를 차고 여러 무사가 들어오면 황군의 눈을 피할 수 없어요.”
“소가주 놈이 혼자 올 수도 있잖아.”
“혼자 오면 잡아다가 족치면 되죠.”
“허풍 한번 대단하네. 남궁세가 소가주면 청운풍룡 남궁진수잖아. 벌써 절정고수라고 소문이 자자한 놈을 네가 어떻게 이겨? 팽가의 소가주도 그놈 못지않을걸?”
“안되면 도망가면 되죠.”
“히히히 도망은 갈 수 있고?”
“저희 사문의 비전이 도망가는 겁니다.”
“별 이상한 비전도 다 있네.”
“어쨌든 숙누나 이곳에 있는 동안 시비가 붙어 이목을 끌면 안 됩니다.”
“알았다고, 몇 번을 말하는 거야?”
“걱정이 되니까 그렇죠. 그런데 숙누나.”
“왜?”
아미를 치켜들며 짜증스럽게 대답하는 공숙.
“누나네 사부님은 수염이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우리 사부님이야 수염을 밀고 다니니까.”
“며, 면도한다고요?”
“그럼. 우리 사부님이 얼마나 예쁜데? 그 예쁜 얼굴에 수염이 나면 얼마나 흉하다고. 그래서 사부님께서는 매일 수염을 밀어 말끔히 하고 다니시지.”
“그, 그럼 숙누나도···.”
“흥! 나는 면도할 마음 따위 없어! 그깟 면도 안 해도 충분해.”
“그, 그래요? 그런데 누님네 사부님 눈은 원래 그런 거예요?”
“아 사목? 그것 또한 사무진독공의 성취가 높아지면 나타나는 증상이지. 대성을 앞두면 눈동자의 색깔이 노랗게 변해 완연한 뱀의 눈과 똑같아진다고 했어.”
“트, 특이하네요.”
“사부님은 별로 반기지 않았지만 뭐 나는 괜찮다고 생각해.”
“그,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이제 올라가서 쉽시다.”
연수가 자리에서 올라가자 공숙 또한 연수의 뒤를 따랐다.
점소이의 안내를 받아 객잔의 삼 층에 나란히 붙은 두 방을 본 연수는 점소이에게 식대와 삼 일치의 방값을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