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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52화 (52/202)

# 52화

“그래. 너한테 한 말이다.”

“너···. 누구지? 뭔데 남궁세가와 팽가의 일에 함부로 끼어들지?”

“오대 세가의 일이란 약자를 수적 우세로 핍박하는 건가 보는군.”

“글쎄. 그건 보는 시점에 따라 다른 일이지.”

“시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연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궁진수에게 다가갔다.

“전에도 보니까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다 대일 밖에는 못하는 것 같던데 나와 일대일로 붙을 자신은 있고?”

연수의 말에 남궁진수의 미간이 좁혀졌다.

자신은 분명 저 촌스러운 놈을 이곳에서 처음 봤다. 한데 저놈은 자신을 봤다고 하고 있다.

“전에 나를 본 적이 있다고?”

“있고말고, 흡성신공의 전인을 다 대일로 상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지. 그러고도 못 이겼지 아마? 남궁세가는 할 줄 아는 게 다 대일밖에 없나 보지?”

연수의 도발은 제법 제대로 먹혔다.

남궁진수는 연수를 향해 달려들었고, 연수는 남궁진수의 검이 탁자에 기대어져 있던 것을 놓치지 않았다.

마주 달려드는 연수.

연수는 달려들며 일장을 뻗어오는 남궁진수를 보며 고소를 머금었다.

남궁세가는 검공으로 일가를 이루었다. 제왕검형 창궁무애검 대연검 등등, 물론 삼뢰장이니 구벽권이니 하는 적수공권으로 펼치는 무공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강호에서 남궁세가하면 떠오르는 것은 검에 있었다.

연수 또한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연수는 남궁진수의 일장에 마주 손을 뻗어갔다.

입매가 비틀어지는 남궁진수. 자신이 적수공권이라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이름 모를 하수가 일장을 마주쳐 오다니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기세 좋게 서로를 향해 일장을 뻗어가던 둘은 마주쳐 오는 것만큼 빠르게 서로를 지나쳐 갔다.

-파팟!

“너···! 죽여버린다.”

“그럼 좀 전엔 살려줄 요량이었나 봐?”

남궁진수는 장심이 깊게 베어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고, 연수의 왼손에는 작년에 새로 맞춘 초승달 모양의 단검이 들려 있었다.

서로의 장심이 부딪히기 직전 연수의 손목이 뒤틀리는 걸 유심히 보지 않았다면 그대로 근맥과 심맥마저 절단될 뻔한 남궁진수는 얼굴이 있는 대로 구겨져 있었다.

연수는 남궁진수가 오른손에 지혈하는 걸 보고 달려들었다.

‘오래 싸우면 필패 필사다. 빨리 치고 빠져야 해.’

설마 이 상황에서 먼저 덤비기까지 할 줄 몰랐던 남궁진수는 뒤로 물러서며 왼손으로 연수를 저지하려 했지만, 연수는 시간을 주지 않고 몰아치려 들었다.

장풍을 날리며 연수를 물리려는 남궁진수.

날아오는 장풍을 양손에 든 단검에서 뽑아낸 검기로 찢어발기며 달려드는 연수.

“남궁가의 일장이 참으로 대단하구나! 크크.”

“이 개···!”

발작하려던 남궁진수는 서둘러 물러서며 전황을 살폈다.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팽이현 또한 자신을 도우려고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검도 없이 맨손으로 다친 상황에서 저 하수 놈을 쳐 죽이는 건 무리라는 판단이 선 남궁진수는 제한보를 펼치며 빠르게 뒤로 물러서는 것에 집중했다.

연수는 남궁진수를 향해 따라붙으며 단검을 들어 뒤를 비춰보았다.

‘젠장! 팽가 놈까지 나서면 답이 없는데···.’

연수는 슬쩍 창문을 살펴보았다.

‘삼 층이라 뛰어내려 도망갈 수 있을까?’

연수가 어떻게 할지 판단을 망설이는데 장내에 내력이 가득 담긴 웃음소리가 뿜어져 나오며 모든 무인을 그 자리에 멈추게 하였다.

-크핫하하하하!

연수는 내장을 찌르르 울리는 웃음소리에 혀를 내둘렀다.

‘보통 고수가 아닌데?’

남궁진수는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어느 고인이시오?”

그때 구석에서 홀로 술을 홀짝이던 젊은 남자가 일어섰다.

‘전성? 설마, 전성이었다니···.’

소리의 진원지를 조종하는 전성은 초절정 고수 이상만 할 수 있는 신기였다.

“전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진수라 하오. 저기 저 친구는 팽가의 소가주 팽이현이고. 형장은 누구신데 우리 세가의 일에 끼어드십니까?”

“너 따위한테 밝힐 이름은 아니야. 네 입에 함부로 올라올 이름은 아니라서 말이야.”

남궁진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본인 한 말이 고스란히 돌아왔지만, 눈앞에 젊은 고수 앞에서 발작하기는 쉽지가 않았다.

이번에는 팽이현이 나섰다.

“이곳은 하북이오!”

“그래 하북이지. 그런데?”

“형장의 눈엔 우리 오대 세가는 보이지도 않는단 말이오?”

“오대 세가 따위 내 눈높이엔 보이지 않아.”

“감히···!”

“너야말로 감히 어디다 대고 협박인지 알고 있느냐?”

“흥! 정체도 밝히지 않는데 누군지 알게 뭐요?”

“크크큭! 미련한 놈들 견문이 좁다. 자랑을 하고 다니는구나.”

“...!”

팽이현은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자신의 안방과 다름없는 패주에서 이런 꼴을 당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한 적이 없었는데 실제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분노보다는 두려움이 컸다. 초절정 이상 가는 고수는 강호에 몇 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그중 저리 젊은 외모라니! 어쩌면 눈앞에 고수는 초절정을 뛰어넘은 입신경의 고수일지도 모른다는 데에 생각이 닿자 빨리 이 경화루를 빠져나가고 싶어졌다.

연수는 연수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사부께서 말씀하시길 초절정 이상의 고수 중 저런 외모를 가진 놈은 십중팔구 입신경의 고수라고 하셨지. 그렇다면···.’

“사황성주 패천후······.”

연수의 입에서 나온 작은 소리에 장내에는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침묵이 내려앉았다.

현 강호에 입신경의 고수는 단 네 명뿐이라 알려져 있다.

사황성주 패천후, 무림맹주 옥현인, 일월신교 교주 목유각, 일월신교 암주 강효각.

그중 일월신교의 둘을 제외하고 무림 맹주라면 당연히 저 오대 세가의 일원인 소가주 놈들이 알 테니 그 또한 제외하면 남는 것은 하나였다.

“크크큭, 아해야 제법 눈썰미가 있구나. 보아하니 사파인인 것 같은데 맞느냐?”

“예, 맞아요.”

젊은 고수가 자신의 정체를 인정하자 장내에 팽가의 무사와 대치 하고 있던 세 무사가 무릎을 꿇었다.

“귀령문의 일검대가 성주를 뵈옵니다.”

“됐어, 됐어. 일어나 뭐 대단한 인물이라고 첫 대면에 무릎까지 꿇나?”

“성주는 저희의 하늘 저희의 희망. 저희 문주께서는···.”

“그래 알아 사황성의 마지막 가문과 연이 닿았다고 했었지? 기억하고 있다.”

“영광입니다.”

“어쨌든 대충 왜 여기에 있는지 알겠는데, 문주에게 가서 전해. 이번 일은 전적으로 성을 믿고 기다리라고. 보다시피 내가 직접 나섰어.”

“예!”

“그래 말 잘 듣네. 그럼 어서 돌아가 봐.”

“예!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패천후는 허리를 숙이며 머리 위로 포권하는 무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럼 이제 너희는 어쩔까?”

연수는 헛기침하며 사황성주의 주의를 끌었다.

“큼큼!”

“뭐 할 말 있어?”

“저도 뵙게 되어 영광이었네요. 그럼 저도 가 보겠습니다.”

“넌 안돼.”

막 뒤돌던 연수의 움직임이 멈췄다.

“왜요?”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럼 하문하세요. 숨김없이 대답해 드리죠.”

“이놈들 있는 데서 괜찮겠어?”

“어차피 다 죽을 놈들 무슨 상관입니까?”

연수의 얼굴에 짓궂은 표정이 떠올랐다.

“이놈들 다 죽어?”

“감히 성주님한테 함부로 대했고 성주님이 보는 앞에서 귀령문 무사들을 모욕했으니 죽이지 않고는 성주님의 체면이 서겠습니까? 살려두면 성주님이 무림맹의 눈치를 본다고 정사가 입을 모아 떠들 텐데.”

“크크크 그래서?”

“어쨌든 저놈들은 여기서 죽겠죠.”

“그리고?”

“뭐 먼저 도발한 건 저쪽이니까 남궁가와 팽가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떽! 어린놈이 어디서 이간계만 배워서 벌써 그러면 못쓴다.”

“너무 노골적이었죠?”

“그럼, 저런 멍청한 놈들이나 넘어가서 등 뒤로 땀을 줄줄 흘리지. 내가 넘어가기에는 너무 뻔하지. 나 사황성주 패천후야.”

“그렇네요. 하문하세요.”

“네놈 사문.”

-무투문 3대 제자입니다.-

연수의 전음에 패천후의 눈썹이 실룩였다.

“호~ 젊은 놈이 경지가 제법이네? 영락없는 하수로 보았더니···.”

-대영심공을 익혔습니다.-

“그래, 그럼, 말이 되지. 어쩐지 저놈 손바닥을 시원하게 찢는다 했다.”

“더 하문하실 것이 있습니까?”

“네놈 단검술 말인데···.”

-암수검 맞습니다.-

“역시! 이야 아직도 그걸 쓰는 사파 놈이 다 있구나.”

“훌륭한 무공이죠.”

“그래 훌륭하다면 훌륭하지.”

“더 질문 하실 것이 남으셨나요?”

“마지막 질문 사황성에 들어올 의향은 있느냐? 요즘 너 같은 패기 있는 전통 사파 놈들이 없어. 정파 놈들처럼 명분이 어쩌고 계산할 줄만 알지 정작 지를 줄 아는 놈이 없어서 고민이야. 어때? 내 제자로 받아줄 수도 있다. 정체된 사황성에 바람구멍을 내어주는 게?”

-바람구멍 내려다 산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부께서 조직에 얽매이면 고수되기 힘들다 하셨어요.-

“나를 봐라. 고수 아니더냐?”

-글쎄요, 사황성을 만들지 않으셨다면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갔을지도 모르죠.-

“크크큭! 역시 재미있는 놈이구나. 그랬다면 지금 사파인들이 지금처럼 살 수 있겠느냐?”

-그럴수도 아닐 수도 있죠. 중요한 건 저는 이어야 할 사문의 업이 있습니다.-

“크크크 그놈의 장수···. 하는 영감탱이 죽지도 않고 제자까지 들이다니 재미있어.”

“...”

“이놈아, 그런 눈깔 뜨지 말아라. 네놈 사부 욕할 생각 추호도 없으니. 되었다. 언제가 되었든 한번 찾아와 보아라.”

“시간이 나면 그렇게 할게요.”

“가 보거라.”

“네. 그럼 이만···.”

연수는 잠시 굳은 채 움직이지 못하는 남궁진수를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쳇, 괜히 얼굴만 팔았어.’

밖으로 나와 말을 찾은 연수는 그 길로 패주를 떠날 채비를 했다.

남궁진수는 패천후를 노려보며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짰다.

“아무리 당신이라도 혼자서 팽가와 남궁세가를 상대할 수···.”

“누가 혼자래?”

말을 하는 순간 장내에 스무 명의 검은 무복을 입은 무사들이 내려섰다.

남궁진수는 강호 출두 이후 처음으로 대경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과 팽이현은 절정고수의 반열에 올라있는 고수다. 그런 고수의 감각을 속인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다.

어마어마한 잠행술의 고수이거나, 아니면 자신들보다 고수이거나.

“내가 이래 봬도 꽤 귀한 몸이시라 혼자 다니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단 말이지. 이 호위 양반들하고 내가 마음먹으면 너희 세가 하나 박살 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란다. 아해들아.”

“...”

“...”

남궁진수와 팽이현은 인제야 앞의 남자가 중원 최고수 두 명 중 하나라는 것이 체감되었다. 젊은 외관과 장난스러운 말투와 행동에 간과하고 있었지만, 눈앞의 남자는 사황성주 패천후였다.

“아해들아, 겁줄 생각은 별로 없으니 여기서 한 시진만 있다가 조용히 돌아들 가거라.”

사황성주는 다시 자리로 가 앉아서는 마시던 술을 홀짝였다.

조용히 장내에 진입한 스무명의 무사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살기와 압박감에 장내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건만 패천후는 신경 쓰지 않는지 편안하게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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