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50화 (50/202)

# 50화

“어머니! 이걸 들키면 큰 사달이 날 거예요!”

“민아, 괜찮다. 들키지 않으면 돼.”

“하, 하지만···.”

“걱정하지 말고 어서 외거라. 일단 외워 두고 태워버리면 그만이다.”

“대체 언제 이걸···.”

“후명이 그놈이 매번 널 곤죽으로 만들어놓고 외우는 걸 받아 적어 놓았다. 그러니 잔말 말고 빨리 외워 두어라.”

‘구결을 적어 놓았군.’

“후~ 알겠습니다. 어머니 하루빨리 외워서 태워버리겠습니다.”

“그래 그러면 된다.”

-탁.

강후민의 어미가 방에서 나가는 소리와 그 어미의 한숨 소리가 들린 후 연수의 귀에 들릴 듯 말듯 강후민의 구결 외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목공에 더욱 집중하며 작은 소리에 집중하는 연수.

“저기, 그런데 굳이 우리가 이렇게 서먹하게 지낼 필요는···.”

“입 다물고 근무서라. 두 번 말 안 한다.”

날 선 연수의 말에 영호는 울컥 올라오는 화를 억눌렀다. 나이도 어린놈이 무공 좀 높다고 사람을 이리 핍박한다 생각하니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자신 또한 나름 일류에 들어선 고수다. 그런 자신보다 무공이 조금 높다 해도 강호의 법도와 예가 있는 법이다.

반말도 모자라 막말을 해대니 나름 용기 내 손을 뻗어 보려던 영호는 속으로 연수의 욕을 해댔다.

‘두고 보자, 개 같은 놈. 이 수모는 꼭 갚아주마.’

연수 또한 중요한 순간에 저 빌어먹을 놈이 방해를 해와 혹여 한 구절이라도 놓칠까 안절부절못했다.

‘젠장 빌어먹을 새끼. 끝까지 도움이 안 되네. 화쾌무조 진연척관···.’

강후민은 연수가 근무교대를 할 때까지도 중얼거리며 구결을 외웠고, 교대를 마치고 나가는 연수는 숙소에 처박혀 외운 구결을 계속해서 되뇌며 잊지 않게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다.

‘이제 풀이가 문제인데···.’

구결을 완벽히 암기한 연수는 심호흡하며 조급해지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미 너무 튀었어. 여유 있게 천천히 생각하자. 시간은 내 편이고 기다림은 기회를 줄 것이다.’

대장은 아마도 연수와 영호의 앙금이 풀리기를 기대하고 영호를 연수와 같은 시간대에 종각 근무로 내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연수에게는 안채를 도청할 최고의 기회가 되어준 영호였다.

항상 근무를 서면 연수의 앞에 서서는 앞만 바라보고 입도 뻥긋 않는 영호였기에 연수로서는 마음 놓고 이목공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연수가 종각 근무를 선지 한 달이 다 되어 갈 때쯤 강후명이 찾아 왔다.

강후명을 발견하고는 허리를 숙이는 영호.

“소장주님, 안녕하십니까?”

“그래, 수고가 많아.”

강후명은 영호의 입에서 나온 소장주 소리에 영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지나갔다. 연수는 지나가는 강후명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강후명이 안채로 들어서는 걸 확인하고 회수했던 바늘을 다시 날렸다.

‘또 곡소리 나겠네.’

연수가 이목공에 집중하자 강후명의 짜증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구결을 다 외웠느냐?”

“..예···.”

“흥! 자신이 넘치나 보구나. 외워 봐라.”

“연동서하 벽두진쾌 후연화임 화조광련······.”

연수는 더듬더듬 외는 강후민의 구결을 들으면서 속으로 천천히 자신이 외운 것과 비교해 보았는데 용케 틀리지 않고 끝까지 외우는 강후민이었다.

“다, 다 외웠구나.”

“예.”

“그래 그렇다면 구결을 풀어 들려줄 테니 잘 듣고 외워 보아라. 연동서하는 견정 중부 벽두진쾌는 음유맥 후연화임은 천주 내관....”

연수는 최대한 강후명이 풀어주는 구결에 집중했다.

-후웅!

“창을 잡거라.”

“혀, 형님”

구결 풀이가 끝나자 허공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강후명의 목소리에 연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럼 그렇지. 그냥 넘어가나 했다.’

“내공만큼 초식 또한 중요하다. 창을 들어라”

이후 들려오는 매타작 소리에 연수는 눈을 반짝였다.

“진쾌두단! 발걸음은 가볍게 뻗는 창은 절도있게!”

“컥!”

“이화양타 창을 쥔 손은 강하게 팔꿈치는 힘을 빼고 탈력을 최대로!”

-퍽! 빡!

“크악!”

“진화수연참화격! 폭풍처럼 몰아치듯 모든 기세를 실어서!”

-퍼퍽! 퍽!퍽!퍽!퍽!

“으···. 으···.”

“일어나거라.”

“큭!”

-털썩

“약해빠진 놈!”

강후명이 창을 내던지는 소리를 들은 연수는 바늘을 회수했다.

후련한 표정으로 나오는 강후명을 보며 연수는 고개를 숙였다.

“소장주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수고해.”

연수의 종각 근무가 끝나갈 시점이 되자 영호는 그 한 달 남짓한 사이에 꽤 말라 있었다.

하루 대부분을 연수의 앞에서 긴장하고 굳어 보내다 보니 가뜩이나 육체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영호가 살이 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는 당연한 듯 연수의 앞에서 경계근무를 준비하는 영호.

“이제 나는 오늘이 마지막 종각 근무다. 너는 두 달 더 해야 한다지?”

“어? 어.”

근무를 같이 서고 첫날을 빼고 처음으로 말을 거는 연수 때문에 당황한 영호는 고개도 제대로 못 돌리고 안절부절못했다.

“뭐 그럭저럭할만하네. 처벌치고 이 정도면 양호하지.”

“...”

하루도 쉼 없이 두 시진 근무 두 시진 휴식을 계속해서 몇 달을 한다는 것은 무인에게도 체력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닌가 보지?”

“아니, 이 정도면 괜찮지.”

“그래. 앞으로는 혓바닥 조심히 놀려. 내가 심성이 착한 편이니 이 정도였지, 다른 무인들이었으면 사생 결단 냈을 거다.”

“미안해···.”

“그래. 뭐 교훈이 되었으면 되었다. 나이도 나보다 많은 놈이 나잇값은 해야지.”

“...어.”

연수는 마지막 종각 근무가 끝나자 숙소로 돌아와서 오랜만에 푹 잠들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난 연수.

‘아무래도 초식을 훔칠 기회가 생기지를 않는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장주의 아들놈들이 무사들이 사용하는 연무장에서 수련할 일이 없다 보니 도무지 초식을 볼 일이 생기지를 않았다.

아무리 궁리해봐도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던 연수는 최근 합연십이창의 초식에 훔친 구결을 사용해 봤지만, 도무지 연결이 안 되어 고민이 깊어졌다.

‘심법 또한 훔쳐내기는 했지만, 그 또한 써먹으려면 폐공을 하고 내공을 다시 쌓아야 하고···. 이걸 어째야 할까?’

연수가 이 장원에 머문 지 일곱 달이 지났다. 그동안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기에 더 머물러야 할지 이만 떠나야 할지 선뜻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 연수였다.

‘어느 정도 성취를 이룰 때까지는 있어 보자.’

장원에서 지내게 되면 숙식도 해결되고 연무장을 사용할 수 있으니 사실 무공수련에는 입산하였을 때만큼 좋은 환경이었다.

다만 진신 무공을 전부 드러내어 수련하기가 불편한 점이 있었지만 그걸 빼고 나면 아주 좋은 환경이었다.

그렇게 연수가 장원에 들어온 지 일 년이 지나는 어느 날, 연수는 대장실을 찾았다.

“대장님 황이석입니다.”

“들어와.”

대장실에 들어온 연수는 대장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본론을 꺼냈다.

“장원을 떠나려고 합니다.”

대장의 시선이 연수의 얼굴에 닿았다.

“서운한 일이라도 있었나?”

“그런 일 없습니다. 그저 개인적인 사정입니다.”

“조금만 더 있어. 올해가 가면 군부에 인사 추천이 있을 거다. 너 정도면 나쁘지 않은 자리에 추천이 갈 수도 있어.”

“군부에 출사할 생각은 없습니다.”

“출세하기 좋은 기회일 텐데?”

“전쟁터 나갈 생각 하면 무섭습니다.”

“그래? 네가? 뭐 네가 그렇다는데 그런 거겠지.”

“그러면 내일 떠나겠습니다.”

“후유. 네 뜻이 그러면 그렇게 해.”

“옛!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연수는 꾸벅 허리를 숙이고는 나갔고, 내오삼은 연수가 나간 자리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연수가 떠난다는 소리에 많은 묵연대의 무사들과 청연대주가 찾아와 만류하였지만, 연수는 뜻을 꺾지 않았고, 그들과 짧은 이별을 고했다.

다음날이 되자 연수는 작은 짐을 등에 메고는 강진령의 장원을 떠났다.

“후, 일 년 금방이네.”

연수는 황이석으로의 일 년을 마무리하고 그동안 마사에서 포동포동 살이 찐 말에 올라탔다.

‘오랜만이라 영 어색하네.’

말 또한 느꼈는지 슬슬 속도를 늦추며 게으름을 피우려 하고 있었다.

“이놈이 살만 쪄서 게을러 졌구나.”

어차피 성내에서 빠르게 말을 달릴 일도 없기에 연수는 천천히 말을 몰아 패주에 처음 도착하고 묵었던 객잔으로 갔다.

객잔에 도착하여 말을 맡기고 방으로 올라온 연수는 앞으로의 일을 고민해 보았다.

‘강진령의 가전무공은 대부분 훔쳐냈다. 하지만 심법을 익힐 수 없으니 10할의 위력을 내지는 못할 거야. 상승의 경지로 나가려면 어디를 가서 무공을 훔쳐야 할까? 하북에 있다는 팽가? 아니면 북경에 황궁 무고를 들어가 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던 연수는 당분간은 머리를 식히며 이곳에서 계획을 짜 보기로 하고는 침상에 벌러덩 누웠다.

지난 일 년 남짓, 강호에 나와 첫 도둑질을 시작해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사부가 훔쳐내지 못한 무공을 훔쳐냈기에 또 입산하여 수련할 때만큼 수련하다 보니 잠시간 휴식기를 갖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되었다.

그 뒤로 연수는 한동안 객잔에 머물며 편안한 마음으로 휴식을 취했다.

밖에 나가 구경도 하고 가끔 술도 한잔 마시면서 최소한의 수련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바쁘게 살았던 삶을 달랬다.

그러던 어느 날 허리춤에 길지 않은 도를 비스듬히 맨 무사들을 발견한 연수.

‘팽가. 오호단문도라고 했지? 쾌도와 중도의 조화가 가히 상승의 도법이라던데···. 구경 한번 해봤으면 좋겠네.’

그 이후로 연수는 팽가 근처를 기웃거리며 밖으로 나오는 무사들이 있으면 따라 다녀 보았다.

과연 명문의 무사들인지 제법 기세가 날카롭고 발걸음에 절도가 느껴졌다.

딱 봐도 일류의 경지에 들어선 고수들이었다.

한동안 살피며 제법 많은 무사를 보아왔는데 대부분 팽가에서 밖으로 나서는 무사들은 일류 고수들이었다.

‘오대 세가, 오대 세가, 하더니 명불허전이네.’

연수는 무사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을 주시해 보았지만 패주 내에서 그들이 시비에 말리는 일은 절대 생기지 않았다.

‘하기는 하북내에서 팽가와 대립할 무인이 있을 리가 없지.’

연수가 슬슬 팽가에 대해 흥미가 떨어질 때쯤 익숙한 얼굴들이 연수의 눈에 들어왔다.

패주의 경화루는 하북 내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큰 주루이다.

하여 좀 산다 하는 부자들이나 은퇴한 고관대작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으로 평범한 범인은 안에 들어가기조차 힘든 주루였다.

연수가 뒤쫓던 팽가의 무사들이 그 경화루의 앞에서 한참 있더니 다가오는 일행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남궁세가 소가주랑 그때 보았던 팽가의 아들놈이네. 쟤들은 맨날 붙어 다니나?’

저 둘을 합비 근처의 주루에서 본 것이 일 년도 넘었다.

그런데 패주에서 또 보게 되니 자연히 드는 생각이었다.

무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경화루로 들어가는 그들을 보며 연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따라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잠시 멈추시지요.”

안으로 들어서는 연수를 막아서는 경화루 입구에 건장한 남자.

“왜요?”

남자는 연수를 위아래로 살펴보고는 말했다.

“이곳은 경화루입니다.”

“압니다.”

“큼큼! 안에는 한때 황제 폐하를 모시던 충신분들부터 근처 유명 무가의 실세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렇겠죠. 설명 끝났으면 좀 들어갑시다.”

남자의 얼굴에 짜증이 피어올랐다.

“그거 좋은 말로 하면 알아들으시지요.”

연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얼마 전까지 강 어르신의 장원에서 묵연대 무사로 일했습니다. 선배들이 좋은 일이 있으면 가끔 이곳에서 축하하기도 하더군요. 따라 와본 적이 없으나 들여보내 주어도 괜찮습니다. 무전취식할 그런 놈은 아니에요. 제가.”

강 어르신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앞을 가로막았던 남자는 황급히 길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무복이 다르길래···.”

“묵연대의 무복은 묵연대만 입을 수 있죠. 저는 얼마 전 그만둔 처지라.”

“그렇군요. 안으로 드시지요.”

연수의 말만 믿고도 길을 열어주는 남자를 보며 연수는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거짓말로 묵연대를 팔고 있으면 어쩌려고 저렇게 철석같이 믿는단 말인가?

하지만 연수의 의문은 주루에 들어서자마자 풀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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