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합연십이창의 후반부를 익힌 지 한 달이 또 지나자 연수는 점점 초식의 속도를 쾌속하게 바꾸며 창법을 펼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고 두 달이 지나자 더는 빠르게 펼칠 수 없을 정도의 한계에 도달했다.
‘더 이상은 무리야. 호검문 암검대 대장의 검술만큼은 빨라지지 못하겠는데···.’
연수가 합연십이창을 쾌속하게 펼치려 노력한 것은 호검문 암검대대장의 쾌검을 본 영향이 컸다. 그의 빠른 쾌검처럼 쾌창으로 초식을 펼칠 수 있다면 제법 위력적이지 않을까 생각한 결과였다.
하지만 검보다 길이가 두 배 이상 긴 이 창으로는 그리 빠르게 펼치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가만, 길이가 길다···.’
연수는 자신의 키보다 한 뺨은 더 긴 창을 올려다보고는 단검을 꺼내 단숨에 창대의 삼 분의 일을 잘라버렸다.
자른 창을 이리저리 휘둘러 보던 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슬아슬하게 균형은 맞는다.’
그리고 펼쳐지는 합연십이창은 전보다 조금 더 쾌속해졌다.
‘조금만 더 잘라 볼까?’
연수는 창대를 한 뺨 더 잘라냈다. 이제는 단창의 길이가 된 연수의 창.
그리고 펼쳐지는 합연십이창.
그 쾌속한 찌르기와 휘둘기는 암검대 대장의 쾌검과 비교해도 느려 보이지 않았다.
‘쳇 너무 잘랐나? 창의 균형이 안 맞아. 창대의 탄력을 이용할수도 없다.’
합연십이창의 초식들 중 창대의 탄력을 이용하여 휘두르며 힘을 싣는 초식이나 공격 반향을 바꾸는 초식들의 위력과 연결이 형편없이 떨어지고 속도만 빨라진 합연십이창이었다.
‘이대로는 반쪽에 불과 한데.’
연수는 그 뒤로 두 달을 합연십이창에 매달렸다.
그리고 연수가 장원에 들어온 후 두 번째 맞는 장원 내에 합동 훈련 삼일째.
“삼일간의 훈련 기간 모두 고생 많았다. 새로 들어온 신입들 또한 이제는 어설프지 않은 모습이 완전히 장원 내에 적응이 끝나 우리 장원의 어엿한 무사로 보이는구나. 그럼 모두 해산하여 쉬도록!”
-옛!
모두가 해산하는 중 연수가 대장에게 다가섰다.
“황이석, 무슨 일인가?”
“승급시험을 보고 싶습니다.”
연수의 말에 대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승급시험?”
“예!”
“뭐 보고 싶다면 봐야지. 청연대주!”
“예.”
“자네의 이석에 대한 인사 평을 듣고 싶군.”
“황이석은 무재가 뛰어나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항상 정진하는 훌륭한 무인의 자세를 지녔으며 예의에 어긋남이 없는 인성의 소유자입니다.”
청연대주의 인사 평에 대장은 말없이 청연대주를 바라보았다. 청연대주는 전혀 주눅 듦 없이 대장의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지금껏 이 정도의 완벽한 인사 평을 자네의 입에서 들은 적이 없어.”
“알고 있습니다.”
“그래? 좋아, 영호!”
대장의 부름에 뒤에 서 있던 묵연대의 무사가 튀어나왔다.
“옛!”
“앞에 황이석과 비무한다.”
“옛!”
‘얼추 일류인가? 아니 아직인가?’
연수는 손을 들었다.
“질문 있습니다.”
“하도록.”
“이겨야 승급하는 것입니까?”
대장의 입매가 호선을 그리며 말려 올라갔다.
처음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인 질문을 했던 녀석이다.
하지만 대장의 대답은 그때와는 달랐다.
“그래.”
‘쳇. 그러시다면야.’
“그럼 새로 맞춘 무기를 가져오게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도록!”
대장의 허락이 떨어지자 연수는 숙소로 달려갔다.
얼마 전 무게중심을 길이에 맞춰 대장간에 주문한 단창을 찾아놓은 연수였다.
숙소에서 천에 둘둘 말아놓은 금속 단창을 손에 쥔 연수는 창을 몇 번 흔들어 보았다.
‘괜찮네.’
다시 연무장으로 달려 나오는 연수의 손에 들린 단창을 본 청연대주와 대장의 표정이 상반되었다.
청연대장의 표정은 뿌듯함이 가득했고, 대장의 표정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그런 대장이 청연대주의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는 끝났나?”
“옛!”
“그럼 시작들 해봐.”
단창을 영호라는 묵연대무사에게 겨누며 한껏 자세를 낮추는 연수.
그런 연수의 기수식을 알아본 영호는 피식 웃으며 두꺼운 자신의 애병인 도를 뽑았다.
“덤벼 보아라, 애송이.”
‘애송이? 고작 나이도 나보다 서너 살 밖에 안 처먹은 하수 주제에 애송이?’
연수의 미간이 좁아졌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상대의 하체를 쓸어 상대를 물러서게 만들고 중단을 찔러가는 빠른 합연십이창의 첫 초식이 펼쳐졌다.
-깡!
-까깡!
순식간에 상대를 몰아치는 연수.
상대의 도의 거리와 연수의 창의 거리는 연수가 살짝 긴 정도라 큰 차이는 없었으나 빠르게 몰아치는 연수의 합연십이창에 영호는 당황하여 수세에 몰려버렸다.
단창의 특성상 창대를 흔들어 창끝의 변화를 꾀하는 초식들은 제대로 위력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연수는 빠른 찌르기로 그 단점을 덮었다.
합연십이창은 애초에 변초보다는 직선적이고 강력한 위력으로 상대를 몰아치는 무공. 연수의 단창과 그 쾌속함은 그런 합연십이창의 궤와 맞아 떨어졌다.
영호는 당황스러웠다.
주워듣기로는 이류에 올라선 지 얼마 되지 않은 놈이라고 들었다.
반수 선배에게 듣기로는 힘은 장사지만 아직 서툰 면이 많고 단검술을 주로 사용하여 병기의 단점이 치명적인 하수라고 하지 않았던가?
‘저런 합연십이창은 들어본 적도 없다고!’
분명 자신이 다 잘 알고 있는 초식들이다. 초식을 펼치기 전 창대를 잡은 손의 움직임만으로 어디를 공격해 올지 뻔히 그려진다.
그런데도 반격은커녕 막기에 바쁘다. 자칫 저 어린놈의 속도를 놓쳐 버리면 큰 망신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영호는 이를 악물었다.
“합!”
기합과 함께 연수의 창을 막는 영호의 도에 아지랑이가 피워 올랐다.
-깡!!!
한참을 공격하던 연수의 기세가 주춤하며 공격이 멈췄다.
연수는 잠시 손에서 울리던 짧은 단창을 양손으로 잡으며 진정시켰다. 하필 한 손으로 찌르는 초식을 도기를 씌워 쳐내니 손이 욱신거렸다.
‘그렇게 해 보자는 거지?’
연수의 눈이 가늘어 짐과 동시에 연수의 창날에 아지랑이가 피워 올랐다.
씰룩이는 영호의 눈썹
‘이 애새끼가 진짜로 해보자는 거야 뭐야?’
이번에는 영호의 선공이 시작되었다.
아지랑이가 피워 오르는 살벌한 도기가 씌워진 도로 연수의 중단을 양단할 듯 베어오며 다가서는 영호.
연수가 내기를 집중하자 창날뿐만 아니라 창대 전체로 아지랑이가 퍼져갔다.
창대로 영호의 도를 막은 연수는 빙글 돌며 영호에게 더욱 가까이 붙어 창대 끝을 영호의 뒷목에 걸며 영호의 다리를 힘껏 차올렸다.
설마 자신의 중단 베기를 저리 간단히 막을 줄은 상상도 못 한 영호는 빙글 돌며 자신의 지척까지 몸을 맞댄 연수의 움직임에 순간 대응하지 못했다.
이 거리라면 창이나 도나 어찌 상대를 공격하기 힘든 거리이다. 서로의 몸이 닿을 정도로 접근한다는 건 흔히 무인들 간의 대결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런데 뒷목에 차가운 금속이 닿는다 느낀 순간 몸의 중심이 무너지며 연무장 흙바닥이 갑자기 솟아올랐다.
연수는 앞으로 고꾸라진 영호의 뒤통수를 잠시 창으로 겨누었다가 물러났다.
영호는 순간적으로 일어난 참사를 한 박자 늦게 인식하고는 얼굴이 시 빨갛게 달아올라 인상을 와락 구기며 일어섰다.
“이, 이 애새끼가!”
영호의 손에 들린 도에 아지랑이가 폭사하듯 진하게 올라왔다.
“그만!”
대장의 목소리에 영호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대장님! 다시 한 ㅂ···.”
“그만이라고 했다. 여기가 전쟁터였으면 넌 이미 죽었어.”
대장의 말에 영호의 얼굴이 구겨졌다. 연수를 한껏 노려보는 영호.
‘사부가 절대 흥분하지 말라 했는데···. 나도 아직 멀었네.’
연수는 잠시 숨을 몰아쉬며 호흡을 가다듬고 영호에게 포권했다.
“많이 배웠습니다.”
영호는 계속해서 연수를 노려보았으나 대장과 청연대주의 눈치에 마지못해 마주 포권했다.
“다음에 다시 한번 해보자.”
연수는 영호의 말에 싱긋 웃어 보이고는 대장을 바라봤다.
“합격입니까?”
대장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승급 합격. 너는 오늘부터 묵연대의 무사다.”
연수는 대장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청연대주에게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대주님의 가르침 덕분에 승급하였습니다.”
대주는 흐뭇한 표정으로 연수를 바라봤다.
“그래, 그래.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대장은 연수의 단창을 한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단창을 사용한 것은 네 생각이었나?”
“예. 단검에 익숙하다 보니 긴 장창이 아무래도 불편하여 창대를 조금씩 자르다 보니 이리 되었습니다.”
“음. 괜찮군. 단창의 장점이 합연십이창과 잘 맞는구나.”
“감사합니다.”
“그래. 영호, 이석을 묵연대의 숙소로 안내해 주고 묵연대 무복을 지급해 주어라.”
“옛!”
영호는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는지 벌건 얼굴로 대답하고는 연수를 바라봤다.
“따라와라. 애송이.”
“예.”
연수는 별다른 반응 없이 조용히 영호의 뒤를 따랐다.
둘은 말없이 움직였는데 예전 묵연대 무사의 옆구리를 후려쳤을 때만큼 걱정이 되진 않는 연수였다.
영호를 따라 내원의 무사 숙소에 도착한 연수의 눈이 빛났다.
내원의 무사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분명 강진령의 거처로 보이는 안채와 화려한 별채가 보였기에.
‘멀지 않았다.’
연수는 뚱한 표정의 영호를 보며 물었다.
“내원 연무장은 어디 있습니까?”
영호는 인상을 와락 구겼다.
“내가 네 안내인이라도 되는 줄 알아? 이제 막 묵연대에 들어온 막내가 어딜 건방지게.”
연수는 고민했다.
아직 묵연대의 분위기를 잘 모르기에 이 속 좁고 뒤끝 길어 보이는 놈에게 누가 더 고수인지 확실히 보여주어 애초에 말썽거리를 없애놓아야 할지 아니면 그냥 소 닭 보듯 무시를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를 않았다.
‘일단 두고 보자. 묵연대의 분위기 파악이 먼저다.’
그때 연수의 눈에 일전에 비무를 했었던 반수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이번 3일간의 합동 훈련에 빠지고 강진령의 호위차 외출했다가 돌아왔기에 숙소에서 대기 하고 있었다.
연수가 반가운 얼굴로 다가서자 반수 또한 연수를 알아보았다.
“어? 네가 내원에는 어쩐 일로?”
“저도 오늘부터 묵연대 소속으로 승급했습니다.”
“네가?”
반수는 연수의 뒤에 서 있는 똥 씹은 표정의 영호를 바라봤다.
대장은 항상 신입이 들어오면 비무 상대 선임자에게 안내를 맡기는 고약한 취미가 있는걸 잘 알고 있는 반수였다.
“영호가 졌다고?”
반수의 말에 가뜩이나 더럽던 영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방심했을 뿐이에요! 겨우 청연대 애송이 따위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이길 수 있습니다.”
영호의 말에 반수의 눈이 커졌다.
“진짜 이겼나 보네. 단검 한 자루 가지고 쉽지 않았을 텐데···.”
“최근 익힌 합연십이창으로 비무했습니다. 그때 무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열심히 익혔거든요.”
“오! 정말? 합연십이창으로 저 녀석을 꺾었다고?”
“그때 무사님도 창이 주 무기라고 하셨잖아요.”
“내가 창술이 주 무기인 건 맞는데, 나는 합연십이창 보다는 다른 창법을 더 오래 익혀왔지. 합연십이창만으로 영호를 꺾었다면 대단하네.”
영호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꺾이긴 누가 꺾입니까?”
“거 새끼 참, 사내새끼가 졌으면 인정을 할 줄 알아야지···.”
“그러는 선배야말로 저 애송이에게 한대 얻어맞고 한동안 고생하지 않았습니까?”
영호의 말에 반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뭐 이 새끼야? 오랜만에 한 번 해볼까?”
“좋습니다. 저도 언제까지 어리바리하던 예전의 한 영호가 아닙니다.”
“좋아, 비무장으로 따라와.”
씩씩대며 사라지는 둘을 보며 연수는 묵연대 내의 분위기 파악이 더 어려워졌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네. 쩝 하수들의 싸움이라 구경하기도 그렇고, 짐 풀고 식당이나 찾아봐야겠네.’
연수는 숙소 안으로 들어가 대충 짐을 풀어놓고는 코를 킁킁대며 음식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보았다.
내원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데 묵연대의 무복을 입은 경계근무 중인 두 명의 무사가 눈에 들어왔다.
“청연대는 내원출입 금지일 텐데?”
날카로운 인상의 무사가 검손잡이에 손을 올리며 연수를 쏘아보았다.
“아 이번에 새로 묵연대에 승급한 황이석이라고 합니다.”
“승급했다고?”
“예, 뭐 그리되었습니다. 그건 그렇고, 혹시 내원에 무사 식당은 어디 있습니까?”
“식당은 숙소에서 동북쪽으로 가면 보일 거다. 그런데 승급했으면 묵연대의 무복을 입어야지 왜 그 꼴로 돌아다니는 거야?”
연수는 한숨을 푹 쉬었다.
“대장이 영호라는 무사에게 무복을 받으라고 했는데 반수 선배와 티격태격하더니 비무 한다고 가버리더라고요. 제가 어디에서 무복을 지급 받는지 알 턱이 있겠습니까? 훈련 끝나고 승급시험까지 봐서 배는 고파 죽겠는데 밥이나 먹자 싶어서요.”
“영호가 반수 선배와 비무를? 그 새끼 간땡이 많이 커졌네. 크큭”
“그럼 수고들 하세요. 저는 이만.”
“잠깐, 무복은 숙소 옆 소연각이라 쓰여 있는 곳에 가서 사정을 설명하면 지급해 줄 거다.”
“감사합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연수는 보았다. 경계근무 서는 무사의 뒤로 멀리 안채 앞마당에서 봉을 휘두르는 어린아이를.
돌아서는 연수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