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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45화 (45/202)

# 45화

어색한 침묵 속에 연수가 반수의 심기를 살피려는데 반수의 무거운 입이 열리며 특유의 저음이 들려왔다.

“제법 민첩하더구나.”

“가, 감사합니다.”

“젊어서 그런가? 힘도 좋더군.”

“사부께서 나름 근력은 타고난 편이라 하셨습니다.”

“그래. 단검이 아니라 언월도를 휘둘러도 좋겠어.”

“배워 본 적이 없습니다.”

“원한다면 이곳에서는 창술과 언월도 다루는 법은 배울 수 있다.”

“창술이라면?”

“군부에서 강 어르신의 창술을 유명하다. 이제 은퇴하셨지만, 한때는 그 창술로 군부 내에서도 이름이 높은 무인이셨지. 어르신의 가전 창법은 아니지만, 한때 부하들에게 직접 가르침을 주신 창술을 장원 내 무사들에게도 원하면 가르치고 있다.”

‘그럼 그렇지. 가전무공을 함부로 풀리가 없지.’

연수는 속마음과 달리 기대에 부푼 목소리로 답했다.

“정말 창술을 가르쳐주는 겁니까?”

“물론.”

연수가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하자 반수의 얼굴에 자부심이 떠올랐다.

“나 또한 주 무기는 창이다. 만약 오늘 내가 창을 들고 있었다면···.”

“어이쿠, 장검을 드신 것만으로 따라붙기 벅찼습니다. 창을 들고 계셨으면 근처에 가지도 못했겠네요.”

연수의 맞장구에 반수의 무거워 보이던 입매가 호선을 그렸다.

“주먹 한번 맵더구나. 아직도 옆구리가 욱신거려.”

“그, 그렇습니까? 믿을게 힘밖에 없는지라.”

“그런 것 같더라. 신력은 타고난 것 같으니 장원에서 열심히 일하고 배워 보아라. 나쁘지는 않을 거야. 우리 장원의 무사 출신으로 군부에 나간 무인들도 많다.”

“방에서 읽었습니다. 정말 군부로 추천해 주시나요?”

“그럼. 강어르신께서 직접 해주시지. 얼마전에도 대거 장원내 무사들을 인사추천하여 군부에 넣어주셨다. 그 중 일성진이라는 무사가 있는데 그는 단번에 호산장군의 부관으로 입명되어 가기도 했다.”

‘염병, 미쳤다고 고생해서 일하고 전쟁터로 나가냐?’

“대, 대단하네요. 무사님은 군부로 안 가십니까?”

연수의 물음에 반수의 얼굴에 씁쓸함이 떠올랐다.

“나는 한때 관부에 있던 몸이다. 좋지 않은 일로 관부를 떠나게 되었는데 그때 날 거둬 주신 것이 오삼대장과 강 어르신이었지.”

“그렇군요.”

이야기를 섞어본 반수는 제법 사내다웠다. 사소한 일로 꽁하여 연수에게 화를 품지도 않았고.

둘이 어색함을 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외원의 숙소로 도착한 연수와 반수.

“이 이곳에 짐을 풀면 된다. 방은 이인 일실로 되어있고 식당은 바로 맞은편 건물이 보이지? 근무시간만 빼면 언제든지 찾아가 식사를 할 수 있다.”

“언제든지요?”

“그래 열 두시진 무사식당은 문을 닫지 않으니 새벽에도 근무가 끝나고 출출하면 찾아가 식사를 하면 된다.”

“정말 좋습니다!”

연수의 감동이 느껴지는 진심이 담긴 감탄에 반수가 피식 웃었다.

“우리 장원은 무인들에 대한 대우가 나쁘지 않은 편이다.”

“네!”

“일단 짐을 풀고 쉬고 있거라. 앞으로 삼일간은 더 무사를 뽑을 텐데 그동안은 딱히 할 일이 없을 거야. 모든 무사를 뽑고 다면 단체로 장원 내에 생활 양식을 교육할 테니 그동안은 편히 지내거라.”

“그럼 지금 밥 좀 먹어도 되나요?”

“물론. 오늘부터 너 또한 장원의 경호와 경비를 책임지는 무사이니 언제든지 괜찮다.”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연수를 보며 피식 웃은 반수는 연무장으로 돌아갔다.

‘제법 자유가 주어진다는 말이지?’

연수는 안내받아 오며 익힌 지리를 최대한 침착하게 머릿속에 집어넣고는 일어섰다.

“일단은 먹자.”

등에 메고 온 봇짐을 침상 위에 대충 풀어놓은 연수는 식당으로 달려갔다.

식당에 들어서자 긴 탁자들과 의자가 주르르 놓여있었는데 얼핏 봐도 의자의 수가 80개는 넘어 보였다.

‘교대로 쓴다 해도 무사 수가 많을 때는 150명은 넘겠는데? 이 정도면 사병 수준이네.’

연수는 몇몇 앉아서 식사하는 무사들을 살펴보고는 주방 근처에 있던 젊은 청년에게 물었다.

“오늘부로 뽑혔는데 식사하려면 어찌해야 하나요?”

청년은 비슷한 또래의 연수를 슬쩍 보고는 답했다.

“저기 식기를 집고 배식받으시면 돼요.”

주방의 앞에는 청년보다 서너 살 많아 보이는 여자들이 연수를 보고는 큰 접시와 그릇에 간단한 식사를 담아내었다.

연수는 여자들이 담아놓은 식사를 들고 탁자로 옮겨와 창가 근처로 앉았다.

음식을 먹으며 창밖의 전각과 위치를 살피는 연수.

‘아무래도 내원으로 드는 길은 아닌 것 같은데?’

한동안 이곳에서 생활하며 기회를 찾아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사부가 기다림이야말로 최고의 기회라고 했었지.’

연수는 마음을 느긋하게 먹으며 이틀 동안 그간 제대로 하지 못한 내가 수련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틀이 더 지나자 모든 장원 내 무사들에게 집합명령이 떨어졌고 커다랗던 연무장에 장원 내의 무사들 중 대부분이 모였다.

연무장에 모인 무사들 중 삼분의 일이 연수와 같은 사복을 입고 있었다.

연무장의 앞에는 작은 단상 위에 내오삼이 올라가 무사들을 죽 둘러보며 살폈다.

“모두 잘 들어라! 나는 이 장원에 모든 경호와 경비를 책임지는 내오삼이라고 한다. 너희들은 나를 대장이라고 부르면 된다. 앞으로 너희들은 강 어르신의 장원 경비와 어르신 일가의 경호를 책임지게 될 것이다. 다들 품은 생각은 다르겠지만, 열심히 임한 자들에게는 결코 섭섭한 일이 없을 거라 단언할 수 있다.”

내오삼의 내력이 실린 소리는 연무장 구석구석 잘 퍼져나갔다.

“일단 새로 뽑힌 무사들은 내가 직접 판단한 대로 직급이 주어질 것이다. 직급에 따라 무복과 무기를 지급할 테니 보급품을 잘 받아 관리하기 바란다. 어린아이들이 아니니 보급품을 분실하고 우는소리 하는 인물들은 없다고 생각하겠다.”

내오삼의 말이 끝나자 단상 앞에 긴 탁자에 각종 무복과 검을 쌓아 놓고 있던 무인들이 이름을 호명했고, 사복을 입고 있던 무사들이 하나둘 단상 쪽으로 다가가 보급품을 지급받았다.

“모두 보급받은 무복과 무기를 그 자리에서 착용한다!”

내오삼의 말에 눈치를 보던 사복을 입은 무사들이 하나둘 옷을 훌렁훌렁 벗기 시작했다.

연수 또한 천천히 무복을 벗으며 품에 숨겨 놓았던 암기와 독을 조심스레 사복 속에 감추며 옷을 갈아입었다.

무사들의 무복의 색깔은 전체적으로 적갈색의 어두운 무복이었는데 겉 윗도리의 색만이 달랐다. 어떤 무사들은 무복의 색과 같이 적갈색으로 통일되었고, 어떤 무인들은 푸른색이 도는 색이었으며 내오삼과 그 주위에 있는 무인들은 묵색의 윗도리를 입고 있었다.

“적색의 옷을 지급 받은 자들은 외원 밖 담장과 정문과 후문을 지키는 경비를 맡는다. 푸른색 옷을 받은 자들은 외원과 내원의 경계 경비를 맡는다. 마지막으로 묵색의 무복을 지급받은 자들은 어르신 일가의 경호와 안채의 경비를 맡는다. 나머지 궁금한 사항이 있다면 소속 대주들에게 직접 듣도록 한다. 각 대주들은 신입 무사들을 인솔한다!”

내오삼의 말이 떨어지자 세 명의 무사들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복장은 각각 세 가지 색의 무복을 똑같이 입은 무사들이었으나 허리에 두른 금색으로 보이는 요대를 착용한 세 무사는 거리를 벌려 서더니 큰 소리로 무사들을 불러모았다.

“나와 같은 무복을 입은 무사들은 이리로 모여라!”

각 대주의 주위에 있던 중년의 무사들이 어슬렁어슬렁 움직이는 무사들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며 소리를 질러댔다.

“이 새끼들! 빠릿빠릿 안 움직여? 대주님을 기다리게 한다 이거지?”

“빨리 뛰어 이 새끼들아!”

“너 이 새끼 지금 걸어오지?”

묵색 무복을 입은 무인들을 빼고는 전부 대주의 옆에선 무사들의 상스러운 소리를 들으며 모여들었다.

‘새로 뽑힌 무사 중 묵색 무복 셋, 청색 무복 나 포함 다섯, 적색 무복 열둘. 이 자리에 모인 총 무사는 얼추 팔십인가? 나머지는 경비와 경호 중이라고 하면 총 무사 수가···. 얼추 백이십 명 정도?’

연수는 청색 무복을 지급받아 갈아입은 후 연무장에 모인 무사들의 경지와 숫자를 헤아려 보았다. 대주들을 빼면 얼추 적색 무복 삼류 청색 무복 이류 묵색무복은 이류와 일류가 섞여 있는 듯 보였다.

‘잘못하면 훔친 무공 익히기도 전에 죽겠구만. 절대 걸려서는 안 되겠네.’

강진령의 무위는 분명 절정이라고 했다. 그것도 20여 년 전에 무위가 절정.

허나 사부의 말을 떠올려 보면 제대로 되먹은 무인으로는 보이지 않았기에 아마 현재도 큰 발전을 이루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절정고수와 그를 지키는 일류부터 삼류까지 무사의 숫자만 백 이십명. 현재 연수의 수준으로는 자칫 실수하면 도저히 빠져나갈 길이 없어 보였다.

마음을 다잡으며 여유를 가지려 애쓰는 연수.

‘어차피 길고 긴 싸움이다. 사부는 머슴살이만 반년을 하며 기회를 보았다고 했어. 길게 보자.’

연수는 청색 무복을 입고 금색 요대를 찬 대주의 앞으로 갔다.

“모두 반갑다. 나는 청연대의 대주 방하수라고 한다. 앞으로 너희들의 근무 일정과 장원 내에 생활 양식을 가르치고 경계근무와 요인경호법까지 모두 가르쳐 궁극적으로 묵연대에 승급시키는 것이 나의 일이다. 허니 앞으로 잘 따라와 주기를 바란다.”

-옛! 에~

“대답은 짧게 끊어서 하되 목소리는 힘있게! 이것은 상관에 대한 기본 예우이다. 알겠나?”

-옛! 에~

기존의 무사들 외에 여전히 대충 대답하는 신입 무사들을 향해 대주의 옆에 기립해있던 무사들의 호통이 날아왔다.

“어떤 새끼들이 눈치가 없어!”

“거기 너! 너 이 새끼 여기가 네 집이야? 너 놀러 왔어?”

지목을 받은 무사는 자신의 또래 무사에게 상소리를 듣자 와락 인상을 구겼다.

청연대의 대주는 한 손을 올려 옆 무사들을 제지했다.

“너희들이 자유로운 강호의 생활을 하며 지내온 것은 본인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장원에 들어오게 된 이상 장원 내에 규율과 법도를 따라야 한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싫다면 언제든지 장원을 떠나도 붙잡지 않는다. 알았나?”

-옛!

그제야 모든 무사들이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마치 군대 같군. 역시 군부 출신이라 그런가?’

“본인의 옆에 있는 이 무사들은 앞으로 너희 새로운 무사들을 교육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울 교관들로 선발된 무사들이다. 적어도 너희가 장원의 무사로서 잘 적응할 때까지는 순응하고 따르기를 바란다. 좀 전에도 말했지만 언제든 떠나도 붙잡진 않는다.”

‘고분고분 따를 생각 없으면 나가라는 거군.’

연수는 21세기의 군 생활을 경험해본 육군 병장 출신이다. 군대 중에서도 아마 군기로 빡세기는 북한 다음이 아닐까 생각되는 대한민국 육군 병장 출신에게 이 정도 군기 따위 별로 힘들 것도 없었다.

“그럼 신입 무사들은 앞에 교관들을 따라가 교육을 받도록 하고 나머지 무사들은 일과를 계속하도록”

-옛!

연수는 이런 군기가 강한 곳에 빨리 적응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목소리 크면 장땡이지.’

연수의 우렁찬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앞에 있던 교관이 연수를 지목했다.

“거기 너, 이름이 뭐지?”

“저는 황!이!석! 입니다!”

“마음에 드는 자세다. 앞으로 너희 신입 무사 다섯 명은 한 조가 되어 교육을 받게 된다. 이석이 네가 조장이니 책임지고 조원들을 통솔하도록! 알겠나?”

“옛!”

“좋아, 다들 날 따라오도록.”

‘괜히 나댔구나.’

연수는 진한 후회와 함께 한 조가 된 신입 무사들을 둘러 보았다.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무사는 하나도 없었고, 자신을 빼면 30대 이상의 무사들이었다.

그런 무사들의 조장으로 하필 제일 어린 자신을 지목하니 교육받는 동안 조원 통솔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특히나 당분간은 아니, 이 장원 내에서는 절대 튀어 보일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첫날부터 조장이라니 난감했다.

‘개뿔 허울뿐인 귀찮기만 한 걸 맡아 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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