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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37화 (37/202)

# 37화

사파인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비무의 증인으로서 막지 않을 텐가?”

고 장주는 짐짓 딴청을 피웠다.

“둘의 원한은 끝이 났으니 내 할 일은 끝이 아닌가?”

“후회 하지 마라.”

순간 사파인이 호검대 무사의 검을 피하며 그의 머리 위로 뛰어올라 무사의 머리를 한 손으로 잡았다. 마치 무사의 머리를 한 손으로 짚고 물구나무를 서는 것처럼 보였다.

-끄어어억!-

다른 두 무사가 어떻게 대처를 하기도 전에 사파 인의 손아귀에 잡힌 무사의 칠공으로 피가 터져 나오며 피부가 쪼글쪼글해졌다.

“흡성신공!!!”

고장주는 눈이 튀어나올 듯 놀란 표정으로 경악했다.

비무를 구경하던 인파들 또한 술렁였다.

“흡성신공이라고?”

연수의 눈 또한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호오~ 사부가 틀렸구나. 절전 되지 않았어. 저것이 흡성신공. 과연 무시무시하네.’

고장주의 흡성신공이라는 말에 놀라 주춤거리며 물러나는 두 무사를 향해 사파 인이 두 손을 뻗자 그의 장심에서 기이한 흡입력이 생겼는지 두 무사는 발을 질질 끌며 사파 인에게 딸려갔다.

끝까지 검을 휘두르며 반항하는 무사들이었지만 사파인의 두 손에 허무하게 막히는 검이었다.

두 무사의 가슴이 사파인의 장심에 닿았다.

-꺽!-

-꺼어어...억!-

두 무사 역시 칠공으로 피가 흘러나오더니 이내 쭈글쭈글한 피부만을 남겨 놓고 절명했다.

“이놈! 네놈이 이러고도 무사할 성싶으냐?”

고 장주는 당장에라도 덤벼들 기세였다.

“무사하지 않으면? 당신이 덤벼 보게? 한번 해봐. 비무의 약속을 어긴 건 너희 쪽이야. 손속에 사정을 두고 목숨까지 부지하게 해 줬더니 뒤통수를 치고도 뻔뻔 하구나. 하긴 그게 너희 정파 놈들의 방식이지.”

“이, 이···. 이놈이 뚫린 입이라고!”

고 장주는 할 말이 없었다.

사실 비무의 증인으로서 자신은 무사들을 막아야 할 의무를 져버렸다.

“너는 입만 산 전형적인 정파 인이구나? 오지 않는다면 내가 가주마.”

“이놈! 강호의 동도들이 두렵지 않더냐? 금공을 익히고 뻔뻔하게도 나대다니!”

고장주는 사파인이 덤벼들듯 하자 뒤로 훌쩍 물러서며 목소리에 내력을 실었다.

“지금 저 사파의 악종이 흡성공이라는 금공을 익혔음이 만천하에 들어놨소. 정파의 동도들은 지켜만 보고 계실게요?”

연수는 고장주의 하는 꼴을 보고는 기가 찼다.

‘사부께서 정파놈들과 상종하지 말라고 한 이유가 다 있었구나.’

하지만 연수의 생각과는 다르게 인파 속에서는 몇몇 인형이 튀어나오며 사파인을 가로막았다.

“무당파다!”

“화산파도 있어!”

순간적으로 튀어나와 사파인을 가로막은 8명의 검수를 보고 인파 속에서 그들을 알아본 자들의 고함이 들려왔다.

사파인의 앞을 가로막은 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40대의 도사가 입을 열었다.

“무당의 현소라 하오.”

“무당신장 현소!”

현소라는 도명을 가진 도사가 나타나자 장내가 더욱더 술렁거렸다.

‘무당신장? 사부께서 말하기를 무당 제일의 장법고수라 했던가?’

사파인은 자신들을 가로막은 무리를 유심히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사파의 강모다. 막을 셈인가?”

“이미 셋이 죽고 한 명이 크게 다쳤소. 굳이 더 살계를 여실 필요가 있겠소? 비무는 당신의 승리였지 않소? 이 자리에 있는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증인이오.”

“저 고 장주라는 놈은 비무 증인으로서의 의무를 져버렸다. 대가는 치러야지.”

“그 대가는 이미 고 장주의 떨어진 명예로 치를 것이오.”

“떨어진 명예라···. 큭큭 저런 뻔뻔한 놈이 무인의 명예 따위 신경 쓸 것 같진 않다만.”

“당신이 금공을 익힌 것 또한 사실. 더 해보겠다면 우리를 상대해야 할 것이오.”

현소의 말이 떨어지자 7명의 검수가 일제히 검을 뽑았다.

“금공이라? 우리 사파에서는 흡성신공을 금공으로 정한 적이 없다만.”

“우리 정파에서는 그리 정했소.”

“사파인이 무엇을 익히든 너희 정파인이 무슨 권리로?”

“그건···.”

“게다가 이곳은 절강성이야. 정사 간의 평화 협약이 맺어진 곳이다. 이런 곳에서 비무의 규칙을 져버리고 뒤통수를 친 것도 모자라 이제는 합공으로 나를 족치겠다? 큭큭큭. 이 도사 놈들아!! 네놈들이 그리 좋아하는 명분이 누구에게 있는 것 같으냐?!!!”

순간 내력을 담아 지르는 사파인의 일갈에 현소를 비롯한 검수들이 주춤했다.

“무엇이 어찌 되었든 눈앞에서 사람을 그것도 정파인을 죽인다는데, 막지 않아야 할 이유 따윈 없소.”

“큭큭 네놈들은 변하질 않는구나. 위선자 새끼들.”

말을 마친 사파인은 몸을 돌려 경공을 펼쳐 장내에서 빠져나갔다.

“이놈! 어딜 도망가느냐! 돌아오지 못할까?!”

고 장주가 황급히 소리를 지르며 그 뒤를 따르려다 현소를 바라봤다.

“쫓지 않을 셈이요?”

“어째서 쫓아야 하오?”

“뭣이? 저자는 금공을 익혔소. 그것만으로 강호의 공적이오.”

“하지만 저는 굳이 쫓을 생각이 없소. 쫓으려면 고장주가 쫓아 보시오.”

고 장주는 한참을 현소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움직일 마음이 없는 현소를 더 이상 강제할 방법이 떠오르진 않았다.

“큭! 이번 일은 내 무당과 화산에 꼭 따져 물을 것이오! 맹주에게도 꼭 이 일을 알려 무거운 책임을 물을 것이오!”

고 장주는 할 말을 끝내고는 술렁이는 인파들을 노려 본 후에 경공을 써 황급히 장내를 빠져나갔다.

현소의 옆에 있던 도사가 그 모습을 황당하게 바라봤다.

“살다 살다 저런 개구리 낯짝을 가진 양반을 다 봅니다. 괜히 나서서 도와준 것 아닙니까?”

현소는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게 말이다. 그보다 흡성신공이라니···.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다. 남은 일정은 모두 포기한다. 한시라도 빨리 무당으로 돌아가 소식을 전해야해. 자네들도 사문에 알려야 할 테니 갈 길이 바쁠 것이네.”

“예. 그럼 다음에 다시 뵙겠습니다.”

사파 인의 앞을 막았던 검수 8명은 네 명씩 찢어져 경공을 펼치며 사라졌다.

조금 전까지 뜨거운 열기가 뻗쳤던 장내에는 그 주인공들이 모두 사라지고 구경꾼들만 남았다.

‘흡성신공이라···.’

연수는 장내에 뜨거운 열기의 여운을 느끼며 생각에 잠겼다.

흡성신공이란 사파 인들에게는 자존심이며 긍지였다. 그건 연수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파에는 수많은 신공절학이 존재하고 이어져 내려오며 명문이라는 이름으로 지켜져 왔다.

사파에서는 이름을 남긴 고수들은 많고도 많지만 정작 신공이라 불리는 무공은 정파에 비해 그리 많지 않았다. 정파만큼의 전통도 역사도 이어져 내려오지 못했다.

그건 단순히 정파에 비해 사파가 한발 늦었기에 생긴 일은 아니었다. 사파 특유의 문화와 사파 인의 특성과도 연관이 있고 무엇보다 정사 간의 싸움에서 정파는 자신들의 조직을 지켰고 사파는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컸다.

사파는 그 특유의 특성으로 인해 사람을 따르는 경향이 강했다.

반면 정파는 특정 고수를 따르기보다 명분을 내세운 명문 정파들을 따르는 경향이 강했다. 해서 정파의 뿌리라는 소림부터 구파 일방과 5대 세가의 정파의 명문이라 불리는 조직들은 항상 세를 유지했다.

그건 단순히 그들이 잘난 것보다는 정파에 몸담은 수많은 이름 없는 무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명문들이 모여 주축을 이룬 정파의 무림맹.

반대로 사파는 그동안 사패련이니 사주련이니 사패맹이니 하며 사람을 주축으로 조직을 만들어왔다. 최근에는 사황성을 위주로 정파의 무림맹을 견제해 오는 사파였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한때 모든 정파의 고수들을 무릎 꿇리고 무적이라는 별호로 불린 일대무적 천일중은 사파 인들에게는 가슴속에 위인처럼 받들여 지는 무인이요, 그의 무공인 흡성신공은 천일중이 존재했다는 증거이자 사파인의 자존심이었다.

사실 흡성신공을 익혀 대단한 고수가 되었다는 천일중은 고수의 면모에 맞지 않게 주화입마로 죽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 그의 무공은 신공이라는 말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파 인들은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흡성신공이라는 말을 쓰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흡성신공이 70년 만에 다시금 강호에 나왔으니 연수의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 또한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던 연수는 주변에 구경하던 인파들이 물러가자 발길을 돌렸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마을을 둘러보는 연수의 눈에 전가전장의 분점이 눈에 들어왔다.

‘찾았다.’

전가전장의 분점은 화려한 금색 간판을 내걸고 있었고 내부 또한 고급스럽게 꾸며 놓았다.

연수가 안으로 들어서자 염소수염을 기른 인상이 썩 좋지 않은 왜소한 중년인이 연수를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꾸벅 인사를 하며 연수의 위아래를 훑어본 중년인의 밝은 미소가 무표정하게 가라앉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수는 전장 내부에 있는 고급스러운 돌을 깎아 만든 탁자 앞에 의자를 빼내어 앉았다.

그런 연수를 보는 중년인의 눈썹이 씰룩였다.

“무슨 일로 오셨소?”

“돈을 좀 찾으러 왔소.”

연수는 품에서 전표 한 장을 꺼내어 내밀었다.

연수가 꺼내든 오래되어 바랜 전표를 받아든 중년인의 눈썹이 다시 한번 씰룩였다.

“자, 잠시 기다려 보시오.”

전표의 발행 연도가 굉장히 오래된 것과 저 어린놈의 행색으로 보자면 위조일 확률이 높았다.

저 어린놈이 이 전표의 주인은 아닐 테고 분명 누구에게 받았을 텐데 삼천 냥이나 되는 전표를 저런 어린놈에게 줄 정도의 가문이라면 저 어린놈의 싸구려 옷차림은 무언가 앞뒤가 맞질 않았다.

중년인은 해당연도 전표 발행부를 찾아 꼼꼼히 읽어 본 후에 전표에 찍혀있는 인장까지 한참을 들여다보고는 얼굴에 미소를 가득 머금었다.

“저희 전장의 전표가 분명하군요. 미향아~ 손님 오셨으니 차 좀 내오 거라!”

태도가 일변하며 살짝 비굴하게까지 보이는 미소를 짓는 중년인을 보는 연수의 마음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중년인은 그러거나 말거나 말을 이어갔다.

“어떻게 모두 찾아가실 생각이십니까?”

“그렇지는 않고 은자로 열 냥 주시고 금자로 열 냥 주시오. 나머지는 전표로 바꿔 주시면 됩니다.”

“예. 금방 준비해 드릴 테니 내오는 차로 목 좀 축이시며 기다려 주십시오.”

90도로 허리를 꺾으며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중년인.

연수는 미향이라 불린 중년인과 묘하게 닮은 여인이 따라 주는 차를 마시며 아까 보았던 비무를 떠올려 보았다. 암검대의 대장인 장호진의 쾌검은 분명 고수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게다가 그의 검기는 자신의 검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빨랐다.

자신이었다면 막는 것만으로도 급급했을 것이다.

그런 그의 검기를 맨손으로 가볍게 처리하는 그 사파인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순식간에 다가서서 장호진의 단전을 친 장법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신속하여 자신이었더라도 대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잠깐! 단전을 쳤다? 아니야. 그는 단전을 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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