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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36화 (36/202)

# 36화

6년 가까이 생활하며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던 구룡산을 뒤로한 연수는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이 세계에 와서 처음으로 마음을 열고 별의별 고생을 같이한 친구 놈 얼굴을 볼 생각을 하면 기쁘기도 했지만, 자그마치 6년을 부모처럼 따르던 스승과의 이별은 반대로 슬픈 일이었다.

‘좋게 생각하자. 상승의 무공을 훔쳐 고수가 되고, 사부에게 그 무공을 가져다주면 사부도 기뻐할 테니.’

연수는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선은 항주인데···. 그러고 보니 나 길을 모르는구나.”

나름 굳은 결심을 하며 하산을 하고 보니 항주로 가는 길을 전혀 모르는 연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세계에 와서 항주에서만 생활하다가 구룡산에 입산할 때는 사부와 마차를 타고 아무 생각 없이 설레는 마음으로 이동하다 보니 항주로 가는 길을 알 턱이 없었다.

“뭐 대충 마을에 들면 물어물어 가면 되겠지.”

연수는 이제는 제법 몸에 익은 두발 천리견보를 천천히 펼치며 관도를 따라 걸었다.

아침 해가 뜨기 전 하산하여 어느덧 중천에 해가 걸릴 무렵 구주 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을로 들어서자 뭔가 분위기가 어수선함이 느껴졌다.

“그 말이 사실이여?”

“하면 거짓이게? 글쎄 호검문의 서호쾌검 장호진이 그 사파 고수에게 비무를 신청했다니까? 종수 아범이 직접 보았는데, 보통 살벌한 분위기가 아니었대. 말이 비무지 둘 중 하나는 죽을 것 같다는데?”

“그럼 빨리 구경이나 가보세.”

“아서. 그러다 괜히 불똥 튀면 어쩌려고?”

“무림인들도 많을 텐데 대충 섞여서 구경하면 되지.”

“괜히 잘못하면 생목숨 버려. 좀 기다려 보게 어련히 구경하는 양반들이 없을까 봐? 저녁에 요 앞 주루에 가면 호사가 양반들이 알아서 잘 보고 풀어서 이야기해 줄 텐데. 뭐하러 목숨 걸고 구경을 해. 봐도 뭐가 뭔지 알기나 하겠어?”

“그래도 아쉬운데···.”

연수는 주변에 지나가는 말을 주워듣고는 저 멀리 사람들이 몰린 곳으로 달려갔다.

‘호검문이면 항주에 있을 텐데? 서호쾌검? 사부한테 들어본 적이 없는데 신진고수인가?’

공터에 한 아름 몰려있는 인파를 뚫으며 지나가자 앞에는 여섯 명의 무인과 한 명의 무인이 대치하고 서 있었다.

그 여섯 명의 무인을 보는 순간 연수의 눈이 빛났다.

‘암검대!’

검은 옷차림에 등에 멘 검은 예전 연수의 목에 검을 들이댄 그 작자들의 모습과 똑같았다.

반대에 대치 한 무인은 이제 갓 서른 즘 되어 보이는 젊은 무인이었는데 긴 머리를 대충 묶고 허름한 묵색 무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평범해서 딱히 누군가 떠오르지 않았다.

“저기 무사님 말씀 좀 묻겠습니다.”

연수는 낭인으로 보이는 칼을 찬 옆 무사에게 말을 붙였다.

“저 호검대 무인들과 대치하고 있는 저 무인은 누구입니까?”

낭인은 잠시 연수를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글쎄, 잘 모르겠네. 뭐 듣기로는 사파인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그럼 저 무인들이 왜 싸우는지도 모르십니까?”

“주워 듣기로는 치정인것 같았는데, 뭐 저 암검대 대장 놈이 아끼는 기녀를 저 사파놈이 한달동안 전세를 내고 끼고 있었다나 어쨌다나.”

“예? 겨우 기녀 때문에 싸운다고요?”

“또 모르지. 호검문이 요즘 잘 나가다 보니 절강성 근처에 사파들에게 시비를 못걸어 안달이 났다는 소문도 있으니.”

“흠···.”

연수가 알기로는 서호를 끼고 있는 절강성에서는 정사 간의 평화 협정이 맺어졌다고 알고 있었다. 서로가 밥그릇 싸움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공존 할 수 있는 서호를 중심으로 퍼져 나간 평화 협정이 절강성 전체를 정사 간의 중립지 처럼 만들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호검문이 왜? 서호에서 먹고 살기도 충분할 텐데?’

“그런데 비무는 언제 시작한답니까?”

서로들 노려만 보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에 의문이 생긴 연수가 물었다.

“증인이 오면 시작할 것 같네. 나이 장이라고 이 구주에 오래된 무가의 장주가 증인을 서기로 했다는데, 늦는구먼.”

“그렇군요.”

연수는 눈을 돌려 대치하고 선 무인들을 살펴보았다.

호검문의 무사들은 대장이라는 놈이 자신과 엇비슷하거나 조금 더 나아 보였고 나머지 떨거지들은 별것 아니게 보였다. 반대로 사파 인은 도무지 그 경지를 가늠할 수가 없었는데, 허리에 찬 술병을 벌컥벌컥 마시는 모습을 보면 절도와는 담을 쌓고 지내는 것처럼 흐트러진 모습이 고수 같지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술병을 쥔 그의 손을 유심히 살펴보자 손가락 마디마디가 정상인보다 훨씬 두꺼운 것이 뭔가 손을 단련하는 무공을 배운 티가 났다.

게다가 특별히 무기가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보아 권장법을 구사하는 고수일 확률이 높아 보였다.

‘그런데 암검대 대장이라면 내가 알기로는 저놈이 아닐 텐데? 6년 사이에 바뀌었나? 어쨌든 좋은 기회네. 호검문이라면 분명 종남의 속가제자가 세운 문파니까 눈여겨봐 둬야지.’

연수가 한참을 무인들을 관찰하고 있을 때 주위에 가득 찬 인파의 위로 화려한 금색 장포를 입은 중년인이 경공을 펼치며 나타났다.

“많이 기다리게 해 미안하네.”

중년인이 나타나자 호검문의 무사들은 일제히 포권을 해 보였고, 사파 인은 시큰둥하게 본채 만 채 하며 술만 마셨다.

그런 모습에 중년인의 미소 속에 일그러지며 지나가는 표정을 연수는 읽을 수 있었다.

“하하 모두 오랜만이군. 문주께서는 잘 지내시는가?”

“예. 고 장주님께서 많이 신경 써 주신 덕분에 무탈 하십니다.”

“그래. 다행일세.”

고장주라는 중년인은 호검문의 무사들과 일면식이 있는 듯했다. 그는 잠시 그들과 안부를 물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더니 사파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는 연련장의 장주 고진석이라 하네. 자네는 이름이 어찌 되는가?”

“나는 사파의 강모라 하오.”

사파인의 대답에 고장 주의 얼굴이 누구나 알아볼 만큼 일그러졌다.

“아무리 사파 인이라 하나 예의를 모르진 않을 텐데?”

“내 사부께서 말씀하시길 정파놈들과는 말을 많이 섞어 좋을 일이 없다 하셨소만.”

“그래? 그 잘난 사부의 함자는 어찌 되시는가?”

“남의 사문이 뭐가 그리 궁금 하시오? 당신 할 일이 나와 내 사문의 뒷조사는 아닐터인데?”

“뭣?! 상종하기 힘든 망종이구나. 내 오늘 증인으로 나서지만 않았어도 네놈에게 예절을 가르쳐 주었을텐데 아쉽구나.”

“내 됨됨이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당신은 당신 집안 단속이나 잘하시오.”

한 마디를 지지 앉는 사파 인의 입심에 고장주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래. 언제까지 그리 건방질 수 있을지 두고 보자.”

고장주는 암검대의 대장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자신 있는가?”

“그럼요. 저깟 사파의 이름도 없는 나부랭이하나 어쩌지 못 할 만큼 약하지 않습니다.”

호기로운 암검대 대장의 말에 구겨졌던 고장주의 얼굴이 펴졌다.

고장주는 구경 온 인파들을 돌아보며 목소리에 내력을 주입해서 말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호검문의 암검대 대장 서호쾌검 장호진과 저 사파인 강모라는 놈이 비무를 합니다. 저는 저 둘의 비무에 증인이 되어 그 결과를 끝까지 지켜보는 증인이 될 것입니다. 둘의 비무는 공정할 것이며 어떠한 결과가 나오던 둘의 원한은 그것으로 끝날 것이오. 후에 비무의 결과에 수긍하지 못하는 인사들은 이 연련장의 장주인 내가 직접 상대해 줄 터이니 모두 이 점을 명심해 주시길 바라오.”

고장주는 잠시 장내에 사람들을 바라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비무의 규칙은 패배를 인정하거나 아니면 상대를 죽이면 되오. 패배를 인정한 상대에게는 그 이상 위해를 가할 수 없소. 두 사람은 원한이 남지 않도록 정당하게 승부를 내시오.”

말을 마친 고장주는 장내에 나타날 때처럼 훌쩍 뛰어 물러났고, 남은 호검문의 무사 다섯도 따라서 물러났다.

‘굳이 저렇게 화려하게 경공을 써야 하나?’

연수는 굳이 경공을 써서 날듯이 물러서는 중년인의 모습에 잠시 관심병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암검대의 대장 장호진은 주위에 사람들이 물러나자 등에 멘 검을 뽑아 들었고, 사파인은 마시던 술병의 마개를 닫고는 허리에 차는 것만으로 그를 상대할 준비를 끝냈다.

장호진은 그런 사파인의 모습이 같잖다는 듯 사파인을 향해 빠르게 다가서며 검을 휘둘렀다.

‘저 보법은 장괘구권의 보법과 닮았는데?’

상대를 향해 직선으로 움직이며 무게를 실어 공격하는 장괘구권의 보법과 비슷한 보법으로 사파 인에게 접근하는 장호진의 모습을 보며 연수의 눈은 더욱 빛났다.

사파 인은 맨손으로 딱히 어떤 기수식도 취하지 않고 장호진의 초식을 피해냈다.

별 어려움 없이 장호진의 우측으로 돌며 검초를 피해내는 사파인.

‘과연 오른손잡이 검수를 상대로 우측으로 돌면 아무래도 초식이 한 박자 늦을 수밖에 없지. 게다가 저 보법은 물러나는 적에겐 강하지만 측면으로 도는 적에겐 아무래도 약하단 말이야.’

연수의 생각대로 계속해서 자신의 초식을 너무 쉽게 상대가 피해 버리자 장호진은 생각을 바꾸었는지 새로운 움직임을 보였다.

지금껏 상대를 따라가며 검을 놀렸다면 이번에는 제법 변초를 섞어가며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차단하는 방식이었다.

‘오! 쾌검이라 불릴 만한데? 빠르잖아.’

연수는 나름 놀라고 있었다.

저 나이에 겨우 자신과 비슷한 경지로 밖에 안 보이는 암검대의 대장을 조금은 우습게 보던 연수였는데 변초를 섞어가며 검을 놀리는 그 모습을 보니 검에 잔상이 보일 정도로 꽤 빠른 검법을 구사해 냈다.

게다가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차단하며 펼쳐지는 검법은 상대의 움직임을 강제하는 효과 또한 있어 시종일관 장호진의 우측을 파고들며 그를 놀리는 듯 보였던 사파 인이 이제는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흥!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테냐? 이놈!”

-우우웅-

장호진이 내력을 한껏 끌어올리자 그의 검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순간 사파 인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거, 검기다!”

장내에 있던 한 무인이 장호진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무형의 기를 느끼고는 고함을 쳤다.

장호진은 사파인이 이 공격에 죽거나 크게 낭패를 볼 것을 의심치 않았다.

자신에게 있어 가장 자신있는 공격법으로 상대의 좌우를 점하여 피하기 힘든 검기를 폭사하는 초식이었다.

순간 날린 검기만 7개다. 이 초식으로 서호에서 재수 없는 사파 놈을 때려잡고는 서호쾌검이라는 별호를 얻었기에 더욱 자신이 있었다.

사파인은 자신의 몸을 양분할 기세로 날아오는 무형의 기운들을 느끼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사파 인의 손 모 양이 새의 발처럼 구부러졌다.

-까까깡!-

순간 사파 인의 손 주위로 불꽃이 튀며 장호진이 날린 검기가 쇳소리를 내며 소멸했다.

“헉!”

장내에서 제일 놀란 건 장호진이었다.

검기를 발출 할 수 있는 고수는 강호에 흔치 않다. 같은 검기가 아닌 이상에야 쉽게 막기 힘든 것이다.

검기라는 무형의 기운은 그 위력 또한 만만치 않아 자칫 쉽게 막으려 했다간 큰 내상을 입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검기를 맨손으로 막아 내다니? 자신은 그런 고수의 이야기는 지금껏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장호진이 당황하고 있던 순간 사파 인은 기묘하게 구부린 손가락을 펴며 달려들었다.

뒤늦게 정신을 수습한 장호진이 검을 휘둘러 보았지만,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사파인의 손바닥은 어느새 장호진의 단전에 닿아 있었다.

그 모습에 놀란 고장주가 개입하려 하는 순간 장호진의 비명이 한 박자 빠르게 튀어나왔다.

-끄악!-

피를 토하며 뒤로 나자빠지는 장호진. 연수는 장호진에게서 거둬들이는 사파인의 손이 아주 잠시 푸른 빛을 띠었다 사라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만! 승부는 났다. 물러서라!”

아쉬운 눈빛으로 장호진을 바라보는 사파인의 앞을 고 장주가 막고 나섰다.

그 뒤로 장호진을 살피던 무사 중 셋이 검을 빼 들며 사파 인에게 달려들었다.

사파인은 그들의 검을 여유 있게 피하며 고장주를 노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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