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35화 (35/202)

# 35화

이제는 어느 정도 연수의 패턴을 알게 되었는지 아니면 바늘이 눈에 꽤 익었는지 지척에서 바늘을 날려대도 여유 있게 막아내는 무황이었다.

무황이 연수의 바늘을 쳐내며 거의 동시에 검을 뻗어오자 연수는 그간 궁리 끝에 만든 자신만의 초식을 펼쳤다. 찔러져 들어오는 검을 좌수 검으로 막음과 동시에 우수 검으로 검면을 찍어 박살 내는 파병의 초식인데 연수가 무황의 심득을 보고 깨달음을 얻은 후 생각해낸 초식이었다.

순간적으로 상대에게 옆구리가 비는 틈이 있지만 워낙에 파격적인 초식이라 무황에게도 먹힐 거라는 자신감이 있는 연수였다.

좌수 검에 무황의 검이 막힌 순간 연수는 끌어 올려놓은 내력을 전부 우수로 보내며 무황의 낡은 검면을 찍었다.

-깡!-

무황은 연수의 해괴한 초식에 일순 당황했으나 연수의 의도를 읽고 검에 내력을 주입했다. 공력의 운용이 연수보다 몇 배나 빠른 무황이었기에 검이 깨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지만 워낙에 듣도 보도 못한 수법이기에 잠시간 반응이 늦을 수밖에 없었고, 연수가 노리고 있었기에 낡은 철검 전체에는 실금이 가버리는 걸 막을 순 없었다.

무황은 망가진 검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

“허허, 그건 또 무슨 놈의 해괴한 초식이더냐?”

“제가 만든 초식입니다. 파병초라고.”

“허허···. 살다 살다 무기를 노리는 초식을 다 보는구나.”

“완전히 성공하진 못했어도 노야 에게도 어느 정도 먹혀들었으니, 성과가 있습니다.”

“아마 내가 아닌 다른 정파 인이 보았다면 입에 거품을 물고 비난했을 게다.”

“저는 사파 인이니까요.”

“그렇지. 하지만 정말로 파격 그 자체인 초식이구나. 나도 강호에서 별의별 꼴을 다 겪어 보았지. 무기를 놓치게 하려는 식의 초식은 제법 보았다만 이런 식의 무기 자체를 노리는 초식은 본 적이 없다. 물론 네놈이 내 삼재검이 눈에 익어 노릴 수 있었겠지만,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데에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그래 그런 방법도 있는 법이겠지.”

무황은 잠시 연수를 바라보며 씁쓸하게 말을 마쳤다.

만약 연수가 자신의 제자였다면 저런 해괴한 초식을 만든 것에 대한 분노가 끝 간대 없이 솟구쳤을 것이다.

정파인으로서의 자존심이 한줄기라도 남아있는 한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식이다.

하지만 연수의 말대로 그는 사파인이다. 가는 길도 생각하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고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와 그의 사부 더 나아가서는 모든 사파인을 부정하는 것밖에는 안 된다.

그러기에는 무황은 나이도 먹었고 그런 정사 간의 진영 논리를 펼칠 만큼 순수하지도 않았다.

많은 일을 겪어온 세월 동안 이미 정사 간의 쓸데없는 명분과 현실의 차이를 몸소 깨닫다 보니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입맛이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저 아이는 앞으로 어떤 무인이 될 것인가? 앞으로 강호는 저 아이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 것인가?’

무황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망가진 검을 검갑에 납검하고는 마루 밑으로 던져 넣었다.

연수는 슬쩍 던진 무황의 검이 한 치의 오차 없이 마루 밑 있던 그 자리로 들어가는 걸 보며 물었다.

“허공섭물 그거 어떻게 하는 건가요?”

“왜? 하고 싶으냐?”

“여러모로 편리해 보이기도 하고 유용해 보이기도 해서요.”

“허공섭물은 내기의 운용이 자유로워지는 절정고수 이상 되어야 할 수 있다. 내기가 부분부분 막히고 돌아가야 하는 일반적인 고수들은 흉내조차 내기 힘들지. 네놈이 절정의 벽을 허물면 자연히 할 수 있을 게다.”

“절정고수라···.”

연수는 절정고수라는 말에 생각이 깊어졌다.

무황이 말하기를 사부가 말한 고수라는 목표는 결국 절정을 말한다고 했다.

사부 또한 절정의 벽 앞에 머물러 있기도 했다. 검기를 다룰 줄 알게 된 이후부터는 사부가 곤란해 하지 않을까 해서 함부로 모르는 것을 질문하지도 못했다.

자신에게는 무의 길을 열어주고 새로운 세상에 발 디디게 도와준 이 세계에서는 부모와 같은 분이신데 괜히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으시길 바랐다.

하여 기의 발출을 할 수 있게 된 후부터는 그 사실을 사부에게 숨기는 연수였다.

“저, 노야 저는 지금 일류고수라고 분류되는 경지인 거죠?”

“그렇지. 걱정 말거라 네놈 사부에게는 네 부탁대로 비밀로 하고 있으니까. 그저 네놈이 곧 그리 될거라는 언질 정도만 해놨지.”

“절정의 벽이라는 것은 어떤 건가요? 제가 넘을 수 있는 건가요?”

“글쎄, 네놈의 재능이라면 분명 언제가 되었든 그리되겠지. 왜 답답하냐?”

“아니요, 그런건 아니지만요. 지금도 이해가 잘 되지 않는것이 많아요. 하지만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요. 그 답만 알면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을 텐데 노야와는 익힌 무공이 다르니 어디서 그 해답을 찾을지 가끔 답답할 때도 있어서요.”

“네 사부와 네가 같은 일류라도 네가 아직 네 사부를 뛰어 넘은 것은 아니야. 그런 것이 있다면 사부에게 물어도 될 것 같은 데.”

“하지만···.”

“안다. 네 사부가 네놈 때문에 혹여 괴로워 할까 봐 그런다는 건 잘 알아. 하지만 옛말에도 청출어람이야말로 사부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보답이라고 하질 않더냐? 두보는 네 생각만큼 작은 인물이 아니다. 혹 지금 막힌 부분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겠느냐?”

“암수검으로 검기를 발출하는 문제에 막혀 있어요. 검기를 발출하는 것이 제 생각보다 과도하게 내력의 소모가 커요. 게다가 대영심공의 공능이라 할수 있는 무음의 검기를 발출해야 하는데 이것 또한 제 마음처럼 안되네요.”

‘쯧쯧 그것이 무공의 한계인걸···.’

무황은 잠시 안타깝게 연수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력의 소모가 크다는 건 내기의 운용에 있어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거겠지. 결국, 고수가 될수록 내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하는가 어떻게 운용하는가가 중요한 화두가 된다. 암수검은 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초식 위주의 무공이다. 애초에 상승의 검법이 아니야. 그 말은 애초에 검기의 발출이나 기의 운용을 통해 발전을 이루는 무공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 당연히 내력의 소모가 막대하겠지. 대영심공의 공능에 대한 부분은 글쎄, 어차피 고수들은 기를 느끼는데 예민하다. 굳이 소리를 없앤다고 해서 자신에게 날아오는 검기를 눈치 못 챌 고수가 있을까?”

“아, 그렇군요. 초식 위주의 검술···. 이란 것은 상승의 무공이 필요하다는 건가요? 그렇다면 상승의 무공은 무엇이 다른 겁니까?”

“상승의 무공이란 말 그대로다. 무공을 익히면서 네놈같이 벽에 막힌 고수들을 상승의 길로 인도 하는 무공이지. 지금 네놈은 내기의 사용에 중점을 둔 무공을 필요로 한다. 그런 무공을 익혀봐야 내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익히게 될수 있고 또 발전할수 있기때문이지.”

“하지만 저희 사부님은···. 저와 같은 무공만으로 절정을 눈앞에 두고 계시잖아요?”

“네놈도 앞으로 한 10년쯤 지금 익힌 무공만 갈고 닦으면 절정은 되겠지. 그런데 말이다. 네놈의 무재면 상승의 무공으로 얼마나 그 기간을 단축할 수 있을지 나조차 감이 안 잡힌다. 무림인들이 상승의 무공이라고 하면 환장을 하고 달려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겠느냐? 기본 입문은 어느 무관에 가서라도 할 수 있지. 노력하면 이류고수쯤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네놈이 벌써 일류의 경지에 든 것 또한 빠른 성취야. 강호에는 평생을 네놈이 든 경지만 바라보는 자들도 있다. 하지만 절정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물론 수십 년의 수련을 하면 노년에 들어 절정의 경지에 드는 것은 명문에서라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전에 죽거나 폐인이 되는 경우 또한 많은 것이 무인의 삶이다. 네 녀석이 지금 넘으려고 발버둥 치는 벽은 그런 벽이야.”

긴 무황의 설명에 연수는 가슴속 답답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너무나 궁금합니다. 너무나 알고 싶습니다. 마치 한 걸음만 더 들여다볼 수 있다면 금방이고 닿을 것 같은데 그 한걸음이 너무나 먼 기분이에요.”

“이놈아! 조급해하면 안 된다. 지금도 빠르다. 너무나 빨라···. 빠른 놈들일수록 넘어지면 크게 다치는 법이야. 연수야 천천히 가거라. 천천히 가야 해.”

“예···.”

대답은 그리 했지만 최근 무황과의 비무를 하면서 연수의 조급함은 더욱더 커져만 갔다.

특히나 검기를 다룰 수 있게 된 이후로는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궁금한 것이 많아지는 연수였다.

그 전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선이 분명했다. 해서 가야 할 길도 분명했다. 부족한 부분을 수련하고 메워 발전하면 그걸로 됐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모호해졌다. 할 수는 있지만, 생각과는 다르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되질 않는다.

왜 그런지 알 것도 모를 것도 같다.

조금만 더 알면 모든 게 명확해 질 것 같지만, 도무지 그게 무언지 알 수가 없다.

그런 연수에게 무황은 천천히 가라 한다. 상승의 무공이 필요하다고 한다.

‘상승의 무공이 무엇인데? 상승의 무공만 있으면 나의 의문은 모두 풀릴 수 있을까?’

그저 답답함이 더해지는 연수였다.

다음날이 되자 사부는 무황에게 이만 돌아간다고 말했다.

“이 친구야 어째서 벌써 돌아간다는 게야?”

“나도 아쉽네만 잘난 제자 놈 하산시킬 준비를 해야겠네.”

사부의 말에 무황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결심을 한 건가?”

“어쩌겠는가? 더는 내 품에 담을 수가 없는걸.”

“잘 생각했네. 똑똑한 아이니까 잘 해낼 거네.”

“글쎄, 강호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길 바랄 뿐이네.”

“...”

무황은 사부의 걱정에 뭐라 답할 수가 없었다.

무림에 수많은 무인 중 고수가 꼭 장수하는 것도 아니요. 하수가 단명하는 것 또한 아니다. 그 모든 풍파를 직접 겪어 본 둘이었기에 연수의 앞날이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연수는 무황에게 허리를 접으며 꾸벅 인사했다.

“노야, 또 뵙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다시 뵐 때까지 무탈하세요.”

“오냐, 네놈도···. 건강하거라.”

사제와 무황의 이별은 짧았고, 먼지가 가득 쌓인 모옥으로 돌아온 사부는 빠르게 집을 정리하고는 연수를 불러 앉혔다.

짐짓 사부의 진지한 표정에 연수는 덩달아 긴장이 되었다.

“사부, 무슨 일이 있습니까?”

사부는 잠시간 눈을 감고 사색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앞으로는 내가 공부 외에는 하산준비를 위한 수련만 할 것이다.”

사부의 말에 연수는 머리가 멍해졌다.

“하, 하산이라니요?”

“그럼 언제까지 이 늙은 사부 등골을 빼먹고 들러붙을 작정이었더냐?”

“그, 그게···.. 그래도 너무 갑작스럽잖아요.”

“네놈도 슬슬 느꼈겠지만, 무공은 더 가르칠 게 없다.”

“그래도···.”

“연수야, 너도 이제 애가 아니다. 별 볼 일 없다지만 사문의 업은 네가 져야 한다.”

“...”

“걱정하지 마라. 당장 나가라는 게 아니니까. 네놈에게 무공은 더 가르칠 게 없을지 몰라도 도둑질하는데 필요한 기술은 가르칠 게 많다. 앞으로는 그걸 익혀야 한다.”

“어떤 기술인데요?”

사부는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변장술, 변성술 자물쇠 따는 기술.”

“그, 그렇군요.”

“얕보지 마라. 변장술과 변성술은 내 목숨을 몇 번이나 구해준 중요한 기술이다.”

“네.”

그날부로 6개월 연수는 사부에게 여러 가지 도둑질을 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배우고 익혔다.

그 외에도 사부가 강호에서 몸으로 익힌 여러 가지 지식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네가 이곳에 입산한 지 6년이 안 되었구나. 처음 데려 올 때만 해도 6년 안에 이류쯤 되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한데 네놈의 뛰어난 무재 덕에 일류에 올라 하산을 시키니 이 사부로서는 감개무량하기 그지없다.”

사부의 말에 연수는 당황했다.

“알고 계셨습니까?”

“네놈과 함께한 지가 얼만데 모를까 봐?”

“죄송해요, 사부.”

“연수야, 네가 내가 속상해할까 걱정되어 숨긴 걸 잘 알고 있다. 혹여 내 부족한 무공에 갇혀 네가 나를 원망하지나 않을까 걱정도 많이 되었다. 하지만 그러기에 너는 너무 착하구나. 너는 내 모든 걸 물려받았고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렇지만 네가 마음이 너무 약한 게 걸려. 다른 모든 재능은 이 사부를 한참 뛰어넘는데 이제 와 강호로 보내려니 너의 여린 마음이 가슴에 걸린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인격이 훌륭하다 할 수 있지만, 강호는 비정하다. 그런 훌륭한 인격 또한 자격이 없다면 비웃음을 사는 것이 강호야.”

“무슨 말인지 잘 알아요. 저 또한 비정할 때는 비정할 것입니다.”

“글쎄,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어련히 잘하겠지. 잘 해내겠지. 그래, 그래.”

사부는 잠시 중얼거리고는 품에서 전표 두 장을 꺼내어 줬다.

“너도 잘 아는 3천 냥짜리 전표 두 장이다. 노자로는 부족하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많이 주실 필요 없어요.”

은자 6천 냥이면 금자가 300냥이다.

강호행에 이 정도 거금을 들고 다닐 필요가 있을지 걱정되는 연수였다.

“혹시 모를 일이다. 돈은 부족하지 않게 지니고 다니는 것이 좋다.”

“고마워요. 사부.”

“그래. 나 또한 고맙다. 부족한 사문이나마 네가 이어주어서.”

“부족하지 않습니다. 모자라는 것이 있다면 사문의 가르침대로 제힘으로 채우겠습니다.”

“그거면 되었다. 이별은 짧은 것이 좋겠지. 가거라.”

연수는 아쉬움가득한 얼굴로 벌떡 일어나 사부에게 절을 했다.

“언제 다시 찾아뵐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꼭 다시 돌아올 테니 그동안 무탈하세요.”

“오냐.”

연수는 그대로 뒤로 돌아 하산길에 올랐다. 한 번쯤 돌아볼 만도 한데 연수는 발길을 빨리 재촉하며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사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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