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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34화 (34/202)

# 34화

“이제부터는 제가 배운 모든 걸 다 쓸 것입니다. 조심하세요.”

“허허, 해 보아라.”

무황은 연수의 호기로운 말에 웃음이 나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슨 짓을 해도 이길 수 없다느니 하던 녀석이 자신에게 조심하라니 무엇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었다.

연수의 양손에 들린 단검이 순간 사라지며 연수의 손이 교차하자 무황의 눈썹이 꿈틀댔다.

무황은 그 자리에서 삼재검의 방어 초식 펼쳤다.

-따따땅!-

“호오~ 바늘인가? 암기술이 제법이구나?”

연수는 대답 대신 무황의 옆으로 돌며 손을 놀렸다. 무황은 연수의 손에서 매섭게 날아오는 바늘들을 방어해 가며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어디에 이 많은 바늘을 숨긴 거지?’

잠시간 무황이 다른 생각을 하는데 발가락이 따끔 해오자 무황은 대경하여 다리에 혈을 누르고는 뒤로 물러섰다.

발을 내려 보자 엄지발가락에 바늘이 꽂혀 있었다.

“허허 이 내가 암기에 당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연수는 계속해서 바늘을 날려 댔는데 무황은 그 바늘 중 자신의 요혈로 날아오는 무음의 바늘에 놀랐다.

“대영심공이구나!”

처음으로 연수의 입이 열렸다.

“예. 사부께서 이런 식으로 쓸 수 있다 하더라고요.”

“어쩐지 내가 딴생각을 좀 했다고 암기에 맞을 일이 없지.”

“이제부터는 새로운 걸 보여 드리겠습니다.”

“암기 말고 또 무엇이 남았더냐?”

“그럼요.”

연수는 씨익 웃어 보이고는 무황에게 달려들었다.

달려들며 손을 번갈아 휘두르자 무황은 날아올 바늘에 대비했는데 아무것도 날아오지 않자 속았다는 걸 인지했다.

‘허 이 녀석이···.’

연수는 무황과 지척의 거리에 들어서자 다시금 처음처럼 무황에 거리를 빼앗으려 들었는데 그 중간중간 무황에게 바늘을 날리는 척하여 무황의 초식을 흩트렸다.

하지만 무황은 그런 연수의 뻔한 속임수에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대영심공으로 소리 없이 날아오는 바늘은 아무리 무황일지라도 삼재검만을 이용하며 지척에서 방어해내기가 까다롭기 그지없었다.

그 순간 연수는 무황의 호흡이 흐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전 같으면 날카롭게 자신의 호흡을 끊으며 들어오는 초식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면 지금은 작은 손짓 한 번에 반대로 무황의 호흡이 끊기는 것이 느껴진 것이다.

‘보인다.’

연수는 순간 무황의 다음 초식이 미리 보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연수의 가슴을 노리며 뻗어 나오는 무황의 검.

연수는 좌수를 뻗어내며 오히려 무황에게 다가섰다.

무황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서렸다.

연수의 좌수에는 언제 들렸는지 단검이 들렸고 무황의 검 중간을 밀어내며 옆으로 흘렸다.

그와 동시에 무황과 지척으로 가까워지는 연수.

순간 연수의 우수가 빠르게 무황의 어깨로 날아들었다.

-깡깡깡!

무황과 연수가 교차하듯 서로를 지나치자 연수는 무릎을 꿇으며 피를 토했다.

“우웩!”

무황은 무황대로 놀랐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방금 있었던 비무를 복기해 보았다.

연수의 호흡을 읽으며 그 빈틈으로 검을 내질렀다.

평소 같으면 분명 뒤로 물러서야 할 연수가 미친 것인지 자신의 검으로 달려 들어왔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저 어린 녀석이 자신의 찌르기를 슬쩍 밀어내며 파고든 것이다. 순간 무황은 내력을 끌어올려 자신의 어깨로 다가오는 연수의 단검과 이어지는 공격을 막아냈다.

자신이 당황하여 내기 조절에 실패했는지 연수가 내상을 입은 것 같았다.

“하아, 괜찮으냐?”

연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대답했다.

“순간 기혈이 놀란 것 같습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에요.”

“어찌 내 찌르기에 피하지 않고 달려든 게냐?”

“그 초식을 쓸 거라고 알고 있었어요.”

“알았다? 미리 알았다?”

“네.”

“내 호흡을 읽었다?”

“네.”

무황의 얼굴에 당혹감을 넘어 놀라움이 서렸다.

“허허···.”

‘이 어린 녀석이 나의 호흡을 읽었다? 겨우 이류고수에게 초절정 고수가 읽혔다?’

그때 마침 볼일을 보러 나갔던 연수의 사부가 들어왔다.

“응? 내상이라도 입은 게야?”

연수의 옷에 묻은 피를 보며 사부가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별거 아니에요. 잠시 운기 하면 괜찮아질 겁니다.”

연수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자네는 괜찮은가? 무슨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구먼.”

“아? 괘, 괜찮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요상 하고 있거라.”

“예.”

연수는 훌훌 옷을 벗어서는 우물 옆에 두고는 몸을 씻고 빨래를 했다.

무황과 사부는 그런 연수를 잠시 보고는 무황의 방으로 들어갔다.

무황이 차를 내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보통의 재능이 아니야.”

연수의 사부가 흐뭇하게 말했다.

“알고 있던 것 아닌가?”

“아니네, 자네나 나나 잘못 생각했을지도 모르네.”

“왜? 또 무슨 깨달음이라도 얻었던가?”

“그런 건 아니지만 저 아이가 한순간이나마 내 호흡을 읽고 반격해왔네. 너무 놀라서 순간 내력을 과하게 써버렸어.”

“뭐?! 그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던가?”

“나도 여태껏 들어 본 적도 없는 일이네.”

“하수가 고수의 호흡을 읽다니···. 그것도 적은 차이도 아닌 이류와 초절정 사이의 일이 아닌가?”

“내 아무리 삼재검만 썼다고 하나 무서운 재능이네.”

“아니 단순히 재능이라는 말로 결론지을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별수 있는가?”

“그렇지만···. 저 녀석 사람을 너무 놀라게 하는구먼.”

“그러게 말이야. 아마 머지않아 일류의 길에 들것 같아.”

“일류라는 말이지···.”

“이제 슬슬 하산시킬 때가 다가올 것이네.”

“생각보다 일러.”

“이미 배운 바는 다 소화해 조만간 답답해할 걸세. 특히 검기를 다루기 시작하면···.”

“알고 있어. 저 녀석이 배운 무공으로는 절정의 벽을 넘기 힘들겠지.”

“그때가 되면 정기신의 조화가 더 심하게 뒤틀릴 거야. 지금이야 큰 상관은 없네만 저렇게 정이 앞서다가는 곧 문제가 될지도 모르네. 강호에 나아가 바삐 살게 두게. 지금처럼 무공만 익히다가는 혹여 벽에 막혀 고꾸라질지도 모르네.”

“내 살다 살다 너무 열심히 무공을 익혀 문제가 되는 경우도 보는구먼.”

“어쩔 수 없어.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정이 너무 앞서가고 있네. 저런 경우는 나 또한 들어본 적이 없네. 만약 저러다 심마에 빠지면 광인이 될지도 몰라. 그렇다고 무공을 그만 익히라고 할 수도 없으니 차라리 강호에 내보내는 게 아이에게 이로울 거야.”

“그렇다고 저 녀석이 강호행에 무공을 소홀히 익힐까?”

“도둑질하기 바쁠 테니 그렇겠지. 또 아는가? 신공이라도 훔쳐 자네의 한을 풀지.”

“신공이라···. 정말이지 그런 신공과 연이 닿는다면 좋겠네만.”

“상승의 무공이 뒷받침만 해준다면 앞날이 무서울 정도의 재능이네.”

“내가 못난 탓에 제자 놈이 고생하겠어.”

“어찌 그런 말을 하는가?”

사부의 자조 어린 말에 무황이 위로했다.

“자네라도 만났으니 저 재능이 꽃을 피우는 거지.”

“...”

사부는 무황의 위로에도 그저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연수는 몸을 씻고는 바로 빨래한 옷을 두어 번 털어냈다.

그것만으로 물기가 싹 빠져 깨끗이 펴진 옷을 대충 걸어 놓고는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연수의 등과 어깨는 이미 범인의 몸이라고 하기에는 깎아놓은 조각처럼 발달해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는 그 자리에 앉아 요상결을 운기하는 연수.

‘꼬인 기혈이 제법 되는구나. 운기를 마치면 약초를 구해 와야겠어.’

연수는 내상의 위험을 잘 알고 있었다. 작은 상처라도 방치해 놓으면 들불처럼 번지는 것이 이 내상이라는 놈이었다.

연수가 운기 하는 중에도 사부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처음 연수를 데려올 때만 해도 6년 안에 이류의 경지에만 오를 수 있다면 성공이라 생각하고 데려왔다.

그 정도만 돼도 충분히 자신의 노하우를 익혀 내보낸다면 도둑질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라는 것이 끝이 없는 것이 제자 놈의 무재가 비범하여 이제 곧 일류의 경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하니 욕심이 들었다.

거기다 소년일 때 만난 제자가 지금은 장성하여 청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자신의 어리고 심약한 제자 녀석이 걱정되는 것 또한 한몫하니 도무지 하산시킬 생각이 들지를 않는 것이다.

그런 사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수는 요상결을 마치고는 방 밖으로 나왔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것이 한 시진이면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것 같았다.

‘서둘러야겠네.’

연수는 시간을 가늠해 보고는 천리견보를 펼치며 밖으로 튀어 나갔다.

그 속도가 몇 년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빨랐지만, 그 모습 또한 완연한 개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연수는 산속을 네발로 뛰어다니며 등에 메 놓은 망태기에 약초를 캐내 담아 갔다.

해가 떨어져 날이 어두 컴컴해지자 연수는 평소 홀로 수련하던 공터를 찾아 달빛에 의지해 암수검의 수련을 시작했는데 연수의 손에 쥐어진 단검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커다란 암벽을 두부 썰듯 잘라 갔다.

연수는 암검수의 모든 초식을 풀어 놓고는 뒤로 훌쩍 물러서며 양손에 잡힌 단검에 집중했다.

연수의 검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폭사하듯 늘어나자 연수는 허공에 암수검의 연격을 펼쳤는데 연수의 단검에서 무형의 기운이 뻗쳐 나오며 암벽에 암수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쳇! 여전히 내력소모가 막대해. 게다가 이런 느려터진 검기를 맞아줄 눈먼 놈들 찾기도 힘들고···. 대염심공의 공능이 어째서 검기에는 나타나지 않는 거지? 무음의 검기를 날릴 수 있다면 위력이 대단할 텐데 이상하게 검기만 날리면 그 공능이 나타나질 않네.”

연수는 그 자리에 앉아 잠시 운기를 하고는 천리견보를 펼쳐 무황의 집으로 돌아갔다.

달빛이 비치는 암벽에 흔적만이 홀로 남아 일류고수가 지나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두보 사제가 무황의 집에 머문 지 3개월이 훌쩍 지났다.

연수가 무황과 비무를 한 지도 100일이 넘어가고 있었는데 비무의 양상 또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연수는 무황과의 거리에만 신경 쓰지 않고 검기와 암기를 날려대며 공격을 하고 있었고 무황 또한 실전에서 흔히 벌어지는 많은 변수를 몸소 펼쳐 보여주며 연수에게 경험을 심어 주었다.

“검기와 암기가 있다고 이제는 아예 거리를 좁힐 생각은 하지도 않는구나?”

“그간의 경험으로 저보다 한참 고수에게 함부로 공간 싸움을 걸었다가는 죽는 것밖에 길이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유리한 싸움을 해 보겠다고 목숨을 걸 수가 있겠습니까?”

“하하하, 그동안 늘라는 무공은 안 늘고 입심만 잔뜩 늘었구나?”

“설마요. 천하에 무황노야께서 봐주셨는데 무공이 안 늘면 노야의 체면이 말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응? 허허, 이 녀석아 네놈 입심이 정말 보통이 아니구나. 입으로 싸우면 천하에 너를 당할 사람이 손가락 안에 들겠어.”

“그럼 다시 한번 가겠습니다.”

연수는 그동안과 같이 무리하게 거리싸움을 걸기보다는 암기와 검기를 날려대며 무황의 거리 밖과 안을 넘나들며 무황을 공격했다.

그러면서 무황의 거리 안에 들어갔을 때 무음의 바늘을 날려서 그의 호흡을 흩트리려 노력했는데, 그날과 같이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 무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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