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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놈에서 고수까지-28화 (28/202)

# 28화

어느 날 연수는 폭포수 근처에서 이목공과 암수검을 수련하던 중 손뼉을 치며 자리를 박차고는 네발로 천리견보를 펼치며 초옥으로 달려갔다.

“사부! 사부!”

싸리나무로 친 울타리를 치타마냥 뛰어넘어 들어와 호들갑을 떠는 연수 때문에 사부는 운기를 끝내며 눈을 떴다.

“무슨 일인데 그리 호들갑이야?”

“기가 막힌 생각이 났어요.”

“무슨 생각?”

“이건 일단 보셔야 합니다. 바늘과 실, 종이 좀 주세요.”

상기된 연수의 얼굴을 보며 사부는 묵묵히 연수의 말대로 했다.

연수는 종이를 손바닥만 하게 잘라 바늘에 꿰어 실 양쪽에 매달았다. 실의 길이를 꽤 길게 뽑아놔서 10장 거리는 될 것 같았다.

“사부 이 끝의 종이를 이렇게 귀에 대고 계세요.”

사부는 께름칙한 표정으로 연수가 시키는 대로 묵묵히 따랐다.

연수는 빠르게 10장 밖으로 나가서 실을 팽팽하게 만들고 종이 끝을 양손으로 살짝 잡고는 입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들리십니까?”

순간 멀리 있던 사부는 화들짝 놀라며 달려왔다.

“전음을 익혔느냐?”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한데 어찌?”

“사부가 전에 소리는 진동이라 했잖아요. 그러면 실과 종이를 통해 그 진동이 더 잘 전해지지 않을까 생각했죠. 여기에 목이공까지 응용하면 멀리 떨어진 곳에서 타인이 하는 말을 도청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연수는 초등학생 시절 배우고 만들었던 실 전화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그 이야기는 사부에게 할 수가 없어 대충 둘러댔다.

“흠···.”

사부는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한참을 생각해 보던 사부가 입을 열었다.

“실의 존재를 잘 숨길 수 있다면 가능도 하겠구나.”

“그렇죠? 밤에 검은 실을 쓰면 더 용이할거예요. 게다가 바늘과 실을 많이 갖고 있으면 사부의 암기술을 이용해서 더 유용하게 쓸 수 있지 않겠어요?”

“그것도 좋지. 바늘이라면 독을 이용하면 암기로 쓰기에도 유용하고 몸에 숨기기도 좋으니 훌륭한 생각이다.”

그날부터 사제는 바늘을 이용한 암기술과 실과 종이를 엮어 도청하는 방법에 대한 궁리를 시작했다.

오전 수련만 끝나면 오후 일과를 전부 도청 술에 쏟아부었다.

“이렇게 실 끝에 작은 매듭을 매어 두면 종이를 고정하는 데 좋아요.”

“그런데 밝은색 종이는 못 쓰겠구나. 너무 눈에 띄어.”

“검은색 종이 또한 밝은 배경에 가면 눈에 띄어요.”

“여러 색의 종이와 실을 준비해 지니고 다니는 게 좋겠구나. 내가 구해보마.”

“되도록 나무와 겹쳤을 때 티가 나지 않는 색이 좋겠어요. 또 여러 원색계열의 종이도 구할 수 있나요?”

“어렵지는 않을 거야.”

사제의 궁리는 몇 달이 지나도록 계속되었다.

도청 술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이번엔 바늘을 이용한 암기에 쓸 독에 관한 연구가 이어졌다 .

“구천사독전을 살펴보았는데 역시 만들기 편하고 해독도 쉬운 지사독이 좋지 않을까요?”

“거기에 만약을 대비해 분독을 같이 쓰는 게 좋겠어.”

“아! 두 독이 합쳐지면 부화독이 된다고 했죠?”

“그래. 해독제도 따로 준비할 필요 없이 수독환 하나로 모두 해독 가능하니 두 가지 독으로 세 개의 독을 가지고 다니는 효과가 있다. 게다가 해독제는 한 종류만 지니면 되니 여러 가지로 편할 거야.”

“네.”

그렇게 다시 일 년의 시간이 지났다.

“오늘은 무황에게 찾아가 보자꾸나.”

연수는 무황을 보러 가자는 사부의 말에 신이 났다.

무황이 떠난 뒤로는 많은 진전을 이룬 것 같았지만, 도무지 얼마나 발전을 했는지 알 수가 없어 답답했다.

그저 무황과의 비무를 상상하며 심상 수련을 해보는 것이 전부였다.

“오랜만에 뵙겠네요.”

“그러게 말이다. 이 친구 자주 찾아오랬는데 서운해하지나 않을는지 걱정이다.”

연수의 입산 5년 만에 첫 하산을 하게 되었다. 사부가 오랜만에 보는 친구에게 빈손으로 갈 수 없다며 연수를 데리고 구룡산 근처의 마을에 들러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짧지 않은 구룡산에서의 시간 동안 연수는 이제 소년티를 벗고 완연한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제법 준수한 얼굴에 다부진 체격. 키 또한 훌쩍 커서 6척은 되어 보였다.

사부보다 한 뼘은 더 큰 키. 입산할 때만 해도 사부보다 한 뼘은 작았었는데 두 사제의 키가 뒤바뀌듯 훌쩍 자란 연수를 보자 문득 사부는 그간의 세월을 느낄 수 있었다.

훌쩍 자라서 5년 만에 사람들이 모여 부대끼며 살아가는 시장에 온 연수는 감상이 새로웠다.

한때는 그 크던 항주의 서호에서 빌어먹기도 하며 살아보았지만, 자그마치 5년 만에 하산이다 보니 모든 게 새로워 보였다.

연수와 사부가 찾은 시장은 별로 대단치도 않은 그저 그런 작은 상권의 시장이었지만 나름 있을 건 다 있었는데 사부는 무황에게 줄 차와 그 외에도 옷가지며 여러 생필품을 샀다.

연수는 그저 사부에게 받은 은자 몇 개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물어 맛집을 찾아다녔는데 여러 사람에게 물은 결과 사람들은 입을 합쳐 음식은 파호 반점이 최고라 했다.

사부가 여러 볼일을 보는 동안 연수는 오랜만에 식탐이 발동했다. 사부의 음식 솜씨가 아무리 좋고 신경을 많이 쓴들 하루 두 끼만 먹으며 5년간 산에 박혀 있다 보니 잊고 있던 식탐이 돌아온 것이다.

“어서 옵쇼.”

오래되 보이는 허름하지만 정갈한 가게에 들어가자 열심히 음식을 나르던 점원이 연수를 맞았다. 그리 크지 않은 가게임에도 손님들이 가득하여 가게의 맛을 보증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연수였다.

“자리는 있습니까?”

연수는 자리가 없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점원은 작게 미소 짓더니 연수를 데리고 구석진 작은 식탁으로 안내했다.

“혼자 오신 거죠? 혹시 일행이 계신지···.”

“혼자 왔소.”

점소이가 안내한 식탁은 너무 작아 의자도 두 개밖에는 없는 혼자 식사하기 딱 좋은 자리였다.

“그럼 이 자리가 딱 좋습니다. 주문하시겠어요?”

“제가 이 집이 처음이라 그러는데 무엇이 맛있습니까?”

“저희집은 소면부터 웬만한 요리까지는 전부 다 됩니다. 저희 숙수이자 사장님이 한때 북경의 큰 식당에서 음식을 배우신 분이시기에 무엇을 시켜도 맛은 제가 보장합니다.”

“그래요? 그럼 일단 만두와 오리구이 소면에 탕수육을 갖다 주세요.”

“예? 일행분이 없다고···.”

점원은 연수의 주문에 당황했다.

만두와 소면 오리구이만 해도 혼자 먹기에는 이미 틀린 양이다. 그런데 거기다 탕수육이라면 이미 이 식탁에는 다 올리기도 벅차다.

“제가 원래 식탐이 좀 있습니다. 갖다 주세요.”

“아, 네···. 먼저 나오는 음식부터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점원은 빠르게 주문을 넣으러 움직였고 연수는 곧 나올 음식들을 기대하며 침을 삼켰다.

식당 안에는 여러 음식 냄새들이 연수의 입맛을 자극했는데 사실 탕수육 또한 옆 테이블에서 풍겨오는 냄새에 우발적으로 주문한 것이다.

점원은 먼저 만두와 소면을 연수에게 가져다주었다.

소면과 만두는 점소이로 일 할 당시 연수도 많이 먹어보았는데 확실히 한서 객잔의 숙수의 솜씨보다는 북경 물을 먹었다는 이 반점의 숙수가 뛰어났다.

국물은 담백하고 면에 간이 적절하며 맛이 좋았다.

만두 또한 한서객잔처럼 크기로 승부하는 왕만두는 아니지만, 만두피가 얇고 안에 고기와 채소가 가득한 것이 한입에 넣고 씹으면 육즙이 폭 하고 터지는 것이 그 맛이 한서객잔의 왕만두와는 또 달랐다.

맛을 즐기다 보니 게눈 감추듯 만두와 소면을 비운 연수는 아쉬운 듯 젓가락으로 빈 그릇만 휘젓고 있었다.

오리와 탕수육은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가는 요리다 보니 시간이 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보니 조금 천천히 식사해야 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음식을 흡입하다 보니 흐름이

끊기게 된 연수는 아쉬운 얼굴로 하염없이 주방 쪽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 점소이가 쟁반에 기름이 잘잘 흐르는 통 오리 한 마리를 들고나오는 것이 보였는데 연수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오리임에 확신했다.

점원은 능숙하게 오리를 내려 주고는 빈 쟁반에 빈 그릇을 올려 식탁을 치워 갔다.

곧 나올 탕수육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노련하게 빈 그릇은 미리 치워 놓는 것이 일솜씨가 제법이었으나 연수는 그사이에 오리의 기름진 다리를 뜯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릇노릇 구워진 뜨거운 오리 다리를 일단은 뜯어서 먹기 시작하는 연수는 오랜만에 먹는 기름진 음식에 즐거워졌다.

오리의 맛은 겉과 속이 잘 익고 무엇으로 간을 해 구었는지 속까지 간이 잘 배어 있어 따로 소금을 찍을 필요조차 없을 정도였고, 오리의 잡내가 전혀 느껴지질 않고 부드러워 입에서 녹는 식감이었다.

‘이 오리는 진짜 맛있네!’

연수는 이 세계에 와서 오리를 처음 먹어보는 것도 있었지만 사실 전생에도 오리고기를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막연히 닭이나 오리나 비슷하겠거니 하고 살아오던 연수에게 14세기의 오리구이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이제 큰 오리 다리 하나를 다 먹어 치우고는 새로운 다리를 뜯어 보려는데 연수의 식탁에 새콤한 냄새와 강한 기름 냄새가 섞여 식감을 자극하는 요리가 올라왔다.

“저희 숙수께서 개발하신 북경식 탕수에 돼지고기를 튀긴 저희 반점에서만 맛볼 수 있는 탕수육입니다.”

연수는 홀린 듯 기름기 가득한 손으로 젓가락을 집어 뜨거운 김이 나는 탕수육 한점을 입에 넣었다.

21세기에 중국집에서 시켜먹던 탕수육과는 모양부터 향까지 전혀 다른 14세기의 탕수육은 기름진 오리를 먹느라 살짝 느끼하던 입안을 새콤한 맛으로 입가심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달지도 시지도 않은 그 조화가 너무나 어울리는 맛과 향.

그리고 적당히 잘 튀겨진 고기의 식감은 연수를 사로잡았다.

연수는 한점의 탕수육을 천천히 씹으며 음미하고 있었다.

소면과 만두로 어느 정도 배는 차 있었기에 그저 오리구이와 이 탕수육을 천천히 음미하며 즐기고 싶은 연수였기에 그저 천천히 씹으면서 그 향과 맛을 즐기고 싶었다.

-와당 탕탕!

순식간이었다.

사람 하나가 날아 들어와 연수의 식탁 위로 엎어지며 연수의 다리 하나 뜯은 오리구이와 이제 한 점 맛본 탕수육이 깨어진 접시와 부서진 식탁과 함께 땅에 구르는 참사가 일어난 것은.

연수는 멍해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했다. 다친 듯 꿈틀대는 사람을 먼저 챙겨야 할지 아니면 사망한 요리에 대한 분노를 뿜어대야 할지 도무지 상황 파악이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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