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둑놈에서 고수까지-24화 (24/202)

# 24화

네발로 뛰는 연수는 감회가 새로웠다.

‘오 빠르구나!’

연수는 획획 지나가는 배경을 느끼며 경공이 굉장한 발전을 이뤘음을 짐작했다.

‘이래서 영약 영약 하는구나.’

얼마 안 되어 연수가 도착한 목적지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가득한 공터가 있었는데 조그마한 아이 크기의 바위 하나에는 여기저기 금이 가 있었다.

연수는 그 바위 앞에 서서는 내력을 끌어올리며 장괘구권의 경구탄권을 펼쳐 주먹을 바위에 내질렀다. 7성 정도의 공력을 담은 연수의 일 권에 아이만 한 바위는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네 조각을 깨져버렸다.

“와···.”

그동안 무수히 두드려도 실금만 가던 바위가 7성 공력에 네 조각이 되어 깨져 버리자 연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영약 영약 하는 이유가 다 있구나.”

연수는 이후 몇몇 바위에 더 실험해 보고는 자기 키보다도 더 큰 바위 앞에 서서 12성 공력을 전부 쥐어짜며 일 권을 내질러 보았다.

-쿵- 부스스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바위가 살짝 흔들렸지만, 그뿐 바위에는 잘 보이지 않는 얇은 금이 조그맣게 거미줄처럼 생겼을 뿐이다.

“후유.”

단전 대부분의 내력을 써버린 연수는 살짝 밀려오는 허탈감과 피로를 느끼며 그대로 앉아 운기조식하기 시작했고, 반 시진 좀 지나자 어느 정도 차오른 단전을 느끼며 눈을 떴다.

평소 같으면 이 각만 운기 해도 내력이 단전에 충만히 넘쳐 났는데 확실히 단전이 커졌는지 반 시진을 운기 해도 꽉 차오르지는 않았다.

겨우 실금으로 그친 거석을 잠시 노려본 연수는 몸을 돌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너 오늘 운 좋은지 알아라.”

물론 큰 바위에 경고해 주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연수가 돌아오자 사부는 저녁상을 차리며 물었다.

“어떻더냐?”

“무림인들이 왜 영약, 영약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내공의 힘이란 것은 실로 엄청나더군요.”

“허허 그래도 반드시 잘 기억해 두어라. 내공의 양면성을.”

“예, 항상 명심할게요.”

‘뭐 저 녀석의 경맥의 튼튼함을 보자면 큰 문제는 없으려나.’

사부는 뒷말을 삼키며 연수에게는 전해 주지 않았다. 혹여 자만하여 경거망동하다가 화를 입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데 사부님 어떻게 내력을 늘릴 방법은 영약과 축기밖에는 없습니까?”

연수는 내력의 힘을 한번 느끼고 나자 내공 욕심이 들기 시작했다.

“영약을 먹거나 축기를 하지 않고 내력을 쌓는 법이라면 몇 가지 있지. 전에 말했듯 타인이 쌓아 놓은 내공을 전수받거나 영약은 아니지만, 영물의 내단이나 극독 중 독기가 강한 독초를 복용하여 독기를 단전으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남이 쌓아 놓은 내기를 빼앗는 법도 있지.”

“구하기 힘든 내단은 둘째치고 독초를 뜯어 먹어도 내공이 늘어나나요?”

“죽지 않으면 그럴 수 있지. 아무런 독초나 그런 것은 아니고 극독을 머금은 독초들은 독기가 실로 어마어마하여 내공 증진을 할 수 있다고 하더구나. 물론 먹으면 백중 백, 천중 천, 만 중 구천구백구십구는 죽을 거다.”

“그럼 소용이 없잖아요?”

“독을 다루는 문파들은 독인을 만들거나 독의 내성을 키우고 독공의 증진을 위하여 독초를 처먹는다고 들었다.”

“저랑은 전혀 상관이 없네요?”

“글쎄···. 굳이 독초로 내공을 증진하려면 목숨이 한 열 개쯤 되지 않는 이상 그렇겠지.”

“그럼 남의 내력을 훔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겁니까?”

“남녀의 방사 중에 훔치는 채음보양 이라는 수법이 있기도 하고, 탁기가 적은  동남동녀의 순수한 정기를 빨아 먹는 법도 있다고 하고, 제일 유명한 건 역시 전전대 고수였던 일대무적 천일중의 흡성신공이지. 사파에서는 전에 말했듯 정파보다 내가 공부의 시간이 짧다 보니 타인의 내력을 흡수하는 사흡공에 대한 공부는 꽤 오랫동안 있었다. 하지만 이종의 진기를 한 몸에 지닌다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이다. 한데 여러 사람의 내기를 흡수하여서 한 몸에 흡수한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 당대에 천하무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천일중 역시 말년이 좋지 않았어. 홀로 오롯이 전 강호를 호령하며 위풍당당했던 고수였지만 내가고수답지 않게 50도 되지 않아 주화입마로 죽었다더라. 결국, 이종의 진기를 융합하여 통일하는 데 실패하고 만 거야. 물론 지금도 신공의 소리를 듣는 사파에서는 누구나 바라는 무공이고 정파에서는 금공으로 정할 만큼 대단한 무공이지만 결국 끝이 안 좋은 무공이야. 천일중이 사문이 어디인지 제자는 있었는지 밝혀진 바는 없지만, 아직 흡성신공이 나타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 거로 보아 아마 절전 된 게 아닌가 싶다. 듣기로는 당시 정파인들이 천일중의 그림자만 봐도 줄행랑을 쳤다고 하는 걸 보니 그 위세가 대단했겠지. 하긴 그동안 힘들여 쌓은 내력을 쪽쪽 빨리는데 누군들 천일중과 손속을 섞고 싶을까? 하여튼 내기라는 건 안정적인 것이 가장 좋은 거야.”

“그 외에는 내력을 쌓을 방법이 없는 거네요?”

“뭐 이 강호에는 기인이 모래알처럼 많은데 어찌 알겠느냐? 내가 모르는 기상천외한 방법이 또 있을지. 하지만 내가 아는 한도에서는 없다고 할 수 있지.”

“혹시 그러면 구룡산을 뒤지다 보면 영약이 좀 나오지 않을까요?”

“하하하 그럴 수도 있지. 구룡산이 험산은 아니지만, 산맥이 길고 넓은 편이며 대기가 잘 퍼진 산이니 천고의 영약은 아니더라도 괜찮은 영초가 있을지도 모르지. 해서 나도 지난 십 년간 매일 한 시진씩은 산을 뒤지고 있으니까.”

“아, 그러셨습니까?”

“그래. 네놈 수련을 봐줘야 하는 날 빼고는 매일같이 산을 뒤지고 있지만 지난 십 년간 영약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뭐 너도 언젠가는 공부해야 할 것이니, 잠시 기다려 보아라.”

사부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는 두 권의 책을 가지고 나왔다.

“한 권은 갖가지 먹을 수 있는 풀들에 관한 책이다. 물론 영초에 대한 설명도 자세히 되어 있다. 그리고 다른 한 권은 삼독악주 여일환의 구사천독전이다. 한때는 그의 난해하고 극악한 독에 전 강호가 벌벌 떨 정도로 대단했지. 내가 훔쳐낸 이후로는 여일환은 강호에서 모습을 감췄지만, 큭큭···.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독공 비급은 훔치지 못했다. 이 구사천독전에 기록된 독의 제조법과 해독법은 여일환에게는 강력한 무기였으며 강호에서는 대단한 보물이다. 구사천독전을 잘 공부해보면 웬만한 독초에 대해서는 잘 알게 될 거야. 강호에는 독을 쓰는 무인이 많다. 독에 관해 기본적인 공부는 해 놓는 게 좋아.”

연수는 두 권의 책을 받아 들고는 영초와 독초에 대한 부분을 찾아 읽어내렸다.

“너도 시간이 나면 산을 돌아다녀 보아라. 또 아느냐? 인연이 닿으면 얻을 수 있을지. 다만 너무 시간 낭비하면 안 된다. 축기 하는 시간까지 까먹으며 영약에 매달려서는 오히려 내력에 손해가 된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두 사제는 오랜만에 긴 대화를 마치고는 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 이후 연수는 신체수련을 쉬는 날에는 약초와 영초에 관한 책을 읽으며 산을 뛰어다녔는데 사부가 구해준 약초 담는 망태기와 호미, 작은 모종삽을 매고 이런저런 약초를 간혹 캐 오긴 했지만, 실제 영약이라 할 만한 무언가를 캐온 적은 없었다. 이후 기본적인 약초의 종류를 익힌 연수는 사부에게 말해 몇 가지 약초학 서적을 구해서 공부했다.

약초의 책을 보다 보니 내가의 공부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특히나 풀의 기운을 이용하여 사람의 기운을 회복시키거나 누르는 방식이 마치 영약을 복용하는 무인의 모습과 닮아 보였다.

21세기의 상식을 가진 연수에게는 새로운 개념이었다.

물론 21세기에도 한의학은 있었지만 대체로 약이라 하면 어떤 성분이 몸에 어떤 반응을 일으키거나 억제하여 치료하는 개념이 대체로 퍼져 있지. 약의 기운을 몸에 받아들여 이용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연수는 실제 영약을 복용하여 단전에 큰 발전을 이루는 경험을 하고 보니 이 약초학에서 말하는 약초들의 기운에 대단히 관심이 가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속에는 영약은 아니더라도 약초를 잘 주워 먹다 보면 조금이나마 내력의 증진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 또한 없지는 않았다.

그렇게 또다시 일 년의 시간이 지났다.

연수는 평소와 같이 구룡산에서의 수련을 마치고 소박한 사부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천리견보를 펼쳐 내려갔겠지만, 최근 들어 천리견보를 두 발로만 쓰는 방법을 궁리하며 여러 시도를 하고 있어 멀쩡하게 두 발로 산에서 내려가는 길이었다.

“읔!”

평소에 비하면 그리 빠른 속도도 아니었지만, 자칫 디딤발에 하중이 쏠려 다리를 다칠 뻔한 연수는 그 자리에 멈춰섰다.

‘네발로 지탱하던 몸을 두 발로 하려니까 영 불안정하네.’

잠시 자리에 앉아 욱신거리는 발목을 살펴보던 연수의 뒤로 언제 다가왔는지 한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다치셨소?”

구룡산에 들어온 지 2년하고 반년이 더 지났지만 사부외에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건 처음인 연수였다. 게다가 지금의 위치는 작은 산길도 나 있지 않은 숲이며 사부의 모옥이 가까운 곳이었다.

순간 사부의 업이 떠오른 연수는 긴장감이 들었다.

“뭐 신경 쓸 만큼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한데 이 근방에서는 못 보던 분이십니다.”

연수가 긴장하며 일어서서 노인과 미묘한 대립을 이루자 노인의 눈썹이 꿈틀댔다.

“무림인이구나.”

연수의 미묘한 경계 자세만을 보고 한눈에 알아챈 노인이었다.

연수는 피가 싸늘하게 차가워지는 감각을 느꼈다.

‘고수다.’

대답 없이 더욱 경계의 자세를 취하는 연수.

“이 근방에서 나도 널 본적이 없다. 뭐 하는 놈이지? 어디서 왔느냐?”

“마치 이 근방이 노인장의 것이라도 되는 듯 말씀하시는구려.”

“웃기는 놈이구나. 네놈이 먼저 한 말이거늘···. 이 근방에 꽤 오랫동안 있었나 보구나.”

“뭐 짧게 있지는 않았죠.”

연수의 말에 노인은 앞에 나무에 가지 하나를 툭 부러트리더니 손으로 가지를 몇 번 쓰다듬었다.

노인의 손길이 몇 번 오가자 부러진 나뭇가지가 목검의 형태로 변해버렸다.

노인의 손에 목검이 들리자 노인의 기세가 완전히 변하며 주변의 공기가 싸늘해졌다.

연수는 마치 눈앞에 너무나 커다란 자신은 한입에 삼켜버릴 뱀이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손가락 하나라도 잘못 까딱였다가는 순간적으로 뱀에게 먹힐 것 같은 무서운 감각.

‘도망가면 죽는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등을 돌리는 순간 노인은 자신을 저 뭉툭한 목검으로 베어 버릴 만한 고수였다.

“설마하니 노인장 같은 고수가 이 근방에 있을 줄은 몰랐군요. 그런데 왜 저를 핍박하는 겁니까?”

“이 근방에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특히나 무림인이라면. 누구냐? 어디서 보냈지?”

“저는 딱히 누가 보내서 온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제 이름을 말한들 노인장께서 알 것 같지도 않습니다.”

연수는 떨리는 목소리를 바로잡느라 안간힘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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