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노사부가 자신의 사부에게 이 질문을 들었을 당시에는 그걸로 성문 경비의 나이를 어떻게 아냐며 따져 물었던 기억이 났기에 놀람은 더욱 컸다.
“굉장하구나. 굉장해. 이 질문은 내 사부께서 선입견을 깨고 생각하는 법을 넓히게 한다며 유명 상인들에게 배워온 문제 중 하나인데 그리 쉽게 맞추다니 너는 무재는 몰라도 공부에 재능이라면 차고 넘치겠구나.”
“이 정도야 뭐 어렵지는 않죠. 재미있는 문제입니다. 또한, 사부님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지도 알겠습니다. 생각하는 법이란 결국 말 그대로 생각하는 방식의 다양화와 시각의 차이를 말하는 거군요.”
“맞았다. 생각하는 방식은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하지만 많은 사람은 대부분이 비슷하게 생각을 하지. 하지만 꼭 그렇게 하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조금만 시각의 차를 둬도 많은 것이 변할 수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더는 궁금한 것은 없느냐?”
“제가 선택해야 한다는 심법 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음, 우선 무당의 심법을 먼저 설명해 주마 내가 훔친 심법은 태청심법이라는 내가 공부의 수법으로 보통 삼재심법으로 기초를 닦은 어린 제자들이 익히는 무당의 기초 심법 중 하나다. 축기에 유리한 심법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정순한 내기를 쌓을 수 있고 정신이 맑아지며 대성하면 백회가 열리고 우주 천지의 기운을 흡수하여 등 선할 수 있다고 알려진 심법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말뿐이고, 내가 느끼기에는 정신과 마음을 맑게 해주는 정도의 심법으로 어린 제자들의 정신수양을 위해 익히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보통 3대 제자들은 모두 삼재 심법과 태 청심 법만을 익히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들의 평균 내력을 가늠해 볼 때 10년을 익히면 20년에서 30년의 내력을 쌓을 수 있다고 판단된다.”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잘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전부 듣고 판단해 보거라.”
“예.”
“두 번째 종남의 입문 심법은 선천공이라 하며 본연의 가지고 있는 선천 지기를 자극하여 키우고 혈맥과 심맥을 튼튼히 만들어 주며 신체에 활력을 북돋아 줘 회복력을 높이고 극한의 수련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대성한다면 선천 지기가 자연과 맞닿아 등 선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 또한 그다지 신빙성 있는 말은 아니고 그저 신체와 혈맥 심맥을 튼튼히 단련하는 데는 제법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생각된다. 얼추 무당의 심법과 비슷하게 10년 정도 익히면 20년 정도의 내력을 쌓을 수 있다고 판단되는 심법이다.”
“대영심법은 어떤 심법입니까?”
“대영심법은 사파의 심법으로 내가 오래전 훔친 비급 중 하나다. 원래는 사황성의 고수였던 무음살 이라는 살벌한 양반의 제자 중 하나였던 이에게 전해진 심법인데 그 제자의 후대는 거의 자객 질을 많이 해 먹은 것으로 보아서는 자객 잘하는데 유용한 심법이 아닌가 싶다. 익히게 되면 내력을 쌓을수록 나타나는 많은 특징이 거의 나타나지 않게 되며 내기를 숨기는데 탁월하다. 당연히 기척을 숨기는 데에도 매우 탁월한 편이지. 얼추 10년을 익히면 30년에서 40년 정도 되는 내력을 쌓을 수 있다.”
“그럼 저는 대영심법을 익히겠습니다.”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거라. 내가 익히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따를 필요는 없다.”
“도둑질하기에는 그만한 심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그건 그렇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훗날 종남이나 무당의 상승심공을 훔쳐내면 폐공해야 한다.”
“뭐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그것도 훔쳐낼 기대라도 해 보려면 대영심법을 익히는 게 맞는 길 같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무슨 심법을 익히든 처음은 삼재 심법입니까?”“그래. 삼재심법을 통해 쌓은 내기는 웬만한 어떤 진기로도 동화가 쉽게 되고 안정적이며 내가공부에 입문하는 사람이 처음 기를 느끼고 파악하는데에 큰 도움이 된다. 진기의 정순함 또한 매우 뛰어나며 혈맥과 심맥을 아주 튼튼히 닦을 수 있는 심법이지.”
“그렇게 좋은 심법인데 왜 알아주는 사람이 없나요?”
“그저 축기의 속도가 매우 느려서 그렇다. 만약 삼재심법이 축기의 속도만 조금 더 빨랐다면 신공이라 불려도 전혀 틀림이 없을 것이다. 좀 전에도 말했지만, 자연의 기를 인간의 몸 안에 쌓아 놓고 있는 일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건 내력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 위험할 수 있다는 말과도 같지. 큰 힘을 가진 많은 내력을 몸 안에 쌓아 두었는데 자칫 잘못 다스려 몸을 해치게 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다. 흔히 주화입마라 부르는데 폐인이 되거나 광인이 되거나 죽는 사람들의 수가 부지기수다. 그만큼 내가 공부에 있어서 조심해야 하는 이유지. 하지만 그동안 수많은 무인이 삼재 심법을 익혀왔지만 삼재 심법을 익히다가 주화입마에 빠졌다는 소리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만큼 삼재 심법의 안정성은 인정받고 있지.”
“그럼 삼재 심법을 먼저 익히고 그다음 대영심법을 익히는 겁니까?”
“맞다. 얼마나 걸릴지는 너에게 달려 있다만 삼재 심법으로 기초를 어느 정도 쌓고 그 후에 대영심법을 익혀야 한다. 보통 재능이 평범한 사람들 같은 경우 삼재 심법으로 기를 느끼고 내기를 쌓기 시작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반년 정도 된다. 물론 무재가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 반 정도 걸리지. 무재가 탁월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거기서 또 반 정도가 줄어들기도 한다.”
“흠 혹시 영약 같은 것이 있으면 시간이 더 줄기도 하나요?”
“하하 아직도 미련이 있구나. 뭐 영약이 있다 해도 그걸 소화하려면 어쨌든 기초는 닦아놓아야 한다. 내가 공부의 기초도 없이 영약 따위 먹어봐야 축기에는 하나도 도움이 되질 않아.”
연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품속에서 소개가 주었던 소정환을 꺼내어 사부에게 보여주었다.
“제 친구가 이별 선물로 전해 준 영약입니다.”
사부는 연수에게 소정환을 받아서는 냄새를 맡고는 감탄 어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개방의 소정 환이로구나!”
연수는 놀란 표정으로 사부를 바라보았다.
“어찌 아셨습니까? 개방의 연단법은 극비라 들었는데.”
“도둑질의 첫 번째 규칙, 아는 것이 힘이다. 정보는 많을수록 좋고 정확할수록 힘이 되며 빠를수록 이롭고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유용하다. 천고의 영약이라고 하기에는 손색이 많지만 소정환이라면 제법 뛰어난 영약이지. 중복하여 복용하면 그 효용이 많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지만 처음 먹는다면 제법 축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특히 너 같은 입문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고도 남지. 좋은 친구를 두었다.”
사부는 소정환을 조심히 연수에게 돌려주었다.
“먹게 되면 얼마나 내력이 쌓일까요?”
“내가 알기로는 개인차가 꽤 있는 영약이지만 적어도 5년에서 많게는 20년 가까이 내력이 쌓인다고 들었다.”
“차이가 너무 큰데요?”
“소정환의 단점 중 하나인데 흡수하는 이의 신체적 차이를 크게 탄다고 하더구나. 즉 소정환과 잘 맞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네게는 가뭄의 단비와 같이 큰 도움이 될 것이야.”
“그런데 그 내력이라는 양이 그렇게 정확하게 척척 알아낼 수 있는 것인가요?”
“그럴 리가 있겠느냐? 내력의 양을 알아보는 데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지만 가장 정확한 건 1갑자 이상의 내력을 가진 자가 기맥을 살펴보는 방법이 정확하지. 내력이 1갑자를 넘게 되면 정확하게 단전이 소성을 이루며 완전해지게 된다. 이건 느껴봐야만 아는 거야. 그 전에는 그저 내력을 측정하기 위한 단계를 실험해 보며 내력을 측정하거나 혹은 1갑자 이상의 고수가 기맥에 기를 보내 반발력을 보며 자신의 내기에 비교해서 추측하는 거지.”
“그렇군요. 그럼 사부님 저는 언제부터 무공을 배우기 시작하는 겁니까?”
“내일부터다. 오늘은 먼 길을 오기도 했고 이야기도 많이 했으니 쉬고 내일부터 수련에 돌입할 거다. 우선 당분간은 오전에는 삼재 심법 오후에는 종남의 장괘구식권과 무당의 구면장을 익힐 것이고 해가 떨어지면 잠들기 전까지 다시 삼재 심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무당이나 종남의 심법을 익히지 않는데 입문외공을 익혀도 별 쓸모가 있겠습니까?”
“모르는 소리. 명문정파의 입문무공인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초 근골을 단련하고 무리를 익히는 데에는 최고의 권장이다.”
“알겠습니다.”
사부는 연수를 부엌으로 데려가 밥 짓는 법과 소채를 볶는 것 등을 보여주었다.
“어차피 늙은 몸 소일거리 삼아 내가 밥을 해 먹일 테지만 가끔 내가 없을 때가 있다면 네놈 끼니는 네놈이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찌 젊은 놈이 사부에게 밥을 짓게 하겠습니까? 앞으론 제가 하겠습니다.”
“되었다. 이런 소일거리 마저 없으면 심심해서 안 돼. 너는 그런 걱정은 말고 무공에만 전념해라. 내 밑천을 전부 배워 간다 해도 겨우 이류소리나 들을까 말까 하겠지. 저 강호에는 약관의 나이에 절정 고수가 되어 강호행을 다니는 젊은 고수들이 즐비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무시무시한 고수들이 생겨나고 있다. 다들 좋은 명문에 들거나 명가에서 태어나 금수저 물고 호의호식하며 결국 호랑이가 된다. 너도 고수가 되고 싶으면 어서 내 밑천을 다 빼먹고 나가서 그런 호랑이들의 무공을 네 것으로 만들어라.”
소채를 볶으며 이야기하는 사부의 말에서 언뜻 강한 집착을 본 것 같았다.
두 사제는 마당의 커다란 평상에서 소박한 상을 차려놓고 식사를 마쳤다. 식사가 끝나자 이른 저녁 임에서 산속이라 그런지 벌써 해가 지고 주위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사부는 연수를 방으로 데려가 짐을 풀게 하고 이부자리를 보아 주었다.
객잔에 있는 연수의 방보다 조금 더 커진 방에 침상 대신 두껍고 푹신한 이불이 바닥에 깔려있었다. 작은 나무 상이 있었는데 연수는 거기에 허름한 지필묵을 놓고는 대충 짐을 풀고는 푹신한 이불 위에 누웠다.
확실히 먼 길을 와서 육체는 피곤했지만, 내일부터 그토록 원하던 무공수련을 한다고 생각하니 다시 가슴이 두근거리며 흥분되어 쉬이 잠이 오질 않았다.
그새 사부에게 들었던 부정적인 이야기는 잊히고 마치 금방이라도 고수가 될 것만 같은 생각에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일찍 든 잠자리였지만 연수는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해가 뜨기 전 연수의 눈은 자동 적으로 번쩍 떠졌다.
이 세계에 와서 단 하루도 해가 뜨고 나서까지 잠을 잔 적은 없었던 연수다.
이미 익숙해진 연수의 몸은 자동으로 일어나 침구를 정리하고는 기지개를 켜며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에는 거석을 싹둑 잘라 만든 평상에 사부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하고 있었다. 연수는 자칫 사부에게 방해가 될까 가만히 마루에 앉아 사부의 모습을 따라 해 보았다.